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94
#594화
열린 문을 잡고 선 시몬의 눈이 이내 커졌다.
“루 솔라여… 감사합니다….”
감격한 듯 탄식하는 그의 뒤통수를 노려본 테사이아가, 훌쩍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길가의 나무들이 듬성듬성해지고 드넓은 밭이 이어진 저 너머. 비죽 솟은 잿빛 성과 그 주위를 겹겹이 감싼 도시를 눈에 담은 그녀가, 비로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확실히 오른델이네….”
그녀의 시선이 이안 쪽으로 돌아왔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커진 것 같지만 말이야.”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이주민들을 수용하는 판자촌이던 공간은, 또 하나의 성벽을 두른 도시로 변했다. 그리고 그 주위로 목책만 두른 새로운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거기 필요한 나무들을 베어낸 자리는, 전부 경작지로 변했으리라.
“제가 기억하는 아겔 란 보다도 더 큰 것 같아요.”
마차 반대편, 지붕에 한쪽 팔을 얹고 기대선 루시아가 덧붙였다.
도시를 응시하는 시몬의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규모만으로는 제국의 대도시에 버금갈 것 같군요. 물론 지저분하고… 조악해 보이긴 합니다만.”
“죄다 한 곳에 모여 사나 보네. 하긴. 주변 꼴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테사이아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시몬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원을 공급할 위성 도시가 몇 개쯤은 더 있을 겁니다. 어쨌든, 역사의 한 장면을 직접 보고 있는 기분이 드는군요. 옛 왕국들은 물론이고, 제국도 저런 식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니까요.”
“어쩌면 살아남은 변방의 왕국들은 전부 저런 식인지도 모르겠네요. 일종의… 도시국가처럼요.”
루시아가 동의하듯 덧붙였다. 열린 문을 잡고 선 샤힌은 공부라도 하듯 눈을 빛내며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다.
테사이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뭐, 다른 왕국으로 이어지는 안전한 길이 아예 없진 않겠지. 완전히 고립된 상태는 아닐 테니까.”
“제국은 몰라도, 북부로 이어진 안전한 길은 없을 것 같은데.”
이안이 나지막이 말을 받았다.
제국 본토라면 모를까. 북부와 변방은 본래도 직접적인 교류는 전혀 없지 않았던가.
“정확한 건 빨강 머리를 만나면 알게 되겠지, 뭐. 어쩌면 그 전에, 서자왕이 알려줄지도 모르고.”
아예 가부좌를 틀고 테사이아가, 은근하게 이안을 돌아보았다.
“짝귀가 너와 서자왕 사이의 각별한 인연에 대해 알려 줬었거든.”
“글쎄….”
이안이 심드렁하게 읊조릴 찰나, 시몬이 눈을 빛내며 테사이아를 돌아보았다.
“각별한 인연이라니요?”
“서자 왕이 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을 수 있게 된 게 이안 덕분이라더라고. 본래 영주와 후계자가 타락자였다나. 뭐, 나도 멀리서 본 것 같긴 해. 그땐 그게 무슨 상황인 건지도 몰랐지만.”
어깨를 으쓱인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그 뒤로도 뭐. 이안의 명성 덕을 톡톡히 본 모양이더라고.”
“허어… 그런 비화가…!”
낮은 탄성을 흘리며 이안을 돌아본 시몬이, 묘한 기대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렇다면 아주 극진하게 대접받을 수 있겠군요. 추억도 나누실 수 있겠고 말입니다.”
“지금도 날 반길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
이안이 낮은 코웃음을 흘리며 내뱉었다. 이제는 아련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된 일이 아니던가.
혼돈과 광기가 곳곳에 스민 땅에서 왕국을 세우고 몇 년이나 지켜낸 자가, 그가 기억하는 것과 같은 모습일 리 없었다.
“어쨌든, 일단은 여관으로 갈 거야.”
“예…?”
“뭐?”
이안이 덧붙인 말에, 시몬은 물론 테사이아도 눈을 치켜뜨며 그를 돌아보았다.
“성이 바로 앞인데, 굳이 왜?”
“해가 지고 있잖아.”
이안이 당연하다는 듯 내뱉었다.
테사이아가 그제야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시몬이 입맛을 다셨다.
“합당한 예를 갖추시려는 거군요. 어쨌든 상대는 한 나라의 왕이니… 방문을 알리고 약속을 잡는 게 순서이긴 하겠지요.”
“다들 꼴이 말이 아니기도 하니까.”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테사이아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하룻밤 쉬고 몸 좀 추스른 후에, 낮에 들어가자고.”
“전령은 누굴 보낼 건데?”
“제가 갈게요.”
테사이아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한 건 루시아였다.
“지금 이안 님의 공식적인 대리인은 저잖아요.”
“…내 증명서는, 잘 가지고 있지?”
“물론이죠. 전 물에 빠진 적도 없는걸요.”
이안의 질문에 냉큼 대답하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테사이아가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언니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은 모양이네. 우리 동생.”
“물론이죠.”
루시아가 선선히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뒤섞인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미구엘도 함께면 좋겠네요.”
“제 말을 타고 가십시오.”
끼어든 건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던 브레넌이였다. 루시아가 미소 띤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사양하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브레넌 경.”
“굳이 서두를 필요 없어. 천천히 와도 돼.”
이안이 덧붙였다. 먼저 메브와 미구엘을 만난다면 기쁨을 충분히 나누고 오라는 뜻이었다.
“그게 동생 마음대로 되겠어?”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테사이아가 넌지시 덧붙였다.
그녀의 미소는 어느새 짓궂게 변해 있었다.
“다들 부리나케 달려올 텐데. 특히 빨강 머리는 말이야.”
“…다시 안으로나 들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은 이안이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눈에 띄는 건 무카파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들은 감자인지 고구마인지 모를 작물들을 재배 중인 경작지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앞에서 도시로 돌아가는 농부들은, 연신 일행들을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사실상 도망가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알았어. 없는 것처럼 조용히 있을게.”
장난스럽게 덧붙인 테사이아가 묘기를 부리듯 훌쩍 마차 안으로 뛰어내렸다. 샤힌과 루시아, 그리고 호사가의 눈빛이 된 시몬도 차례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가운데, 이안이 브레넌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누군가 앞을 막으면, 내가 상대하겠소.”
그가 무카파에게 곁으로 다가오라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변방의 방식에는 내가 더 익숙하니까. 다들 그냥 입 다물고 물러나 있어.”
“예. 성자 대행.”
“그 말도 하지 마시고.”
브레넌이 꾹 입을 앙다무는 가운데, 무카파가 옆으로 나란히 따라붙었다.
이안의 시선이 그가 탄 조랑말을 훑었다. 모로 다음으로 멀쩡한 건 놀랍게도 저 녀석이었다.
살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인 다른 말들과 달리, 녀석은 처음과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겁먹은 기색도 없이, 늘 특유의 뚱한 얼굴로 턱을 우물댔다.
‘…뭐든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두건을 눌러쓰며, 이안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듬성듬성한 목책 너머 곳곳에 횃불의 불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뒤편에 솟은 성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안의 시선이 성벽에 머무른 건 아주 잠깐이었다.
“거기. 당장 멈추시오.”
장창을 꼬나쥔 경비병 둘이, 출입구로 이어진 길 앞을 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눌러쓴 강철 투구 아래의 눈빛이 형형했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에드워드가 곧바로 마차를 멈췄다. 브레넌과 무카파도 함께 멈춰 서는 가운데, 이안만 조금 더 앞으로 나섰다.
“신분을 밝히시오.”
눈빛과 목소리에 적의가 묻어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행의 무장 상태가 심상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오크까지 섞여 있지 않은가. 남쪽에서 올라왔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불길하리라.
“우리는 지금 제국 중앙으로 향하는 길이다.”
적당한 거리에 멈춰선 이안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차에는 남부 요정 가문인 에레노스의 원로와 챔버스 자작 가의 차남이신 시몬 도련님이 타고 계시다.”
“제국…?”
경비병들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 명에게 다가오라 손짓한 이안이 뒤편의 브레넌을 돌아보았다.
“신분증명서를 확인해라.”
눈을 끔뻑인 브레넌이 한 박자 늦게 품을 뒤적이며 앞으로 나왔다. 잠시 망설이던 경비병이, 이윽고 슬쩍 창을 거두고는 마주 다가왔다.
“…….”
브레넌이 그에게 증명서를 건네고 돌아가는 사이, 남은 한 명은 무카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언제든 꺼낼 것처럼 허리춤의 뿔피리에 왼손을 얹은 채였다.
“으음….”
증명서를 펼친 경비병의 입에서 낮은 침음이 번졌다. 까막눈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쨌건 귀족의 신분을 증명하는 문서라는 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곧 증명서를 다시 접은 그가, 경계를 거두지 않은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제국의 귀족분들이, 여기까진 어떻게 오셨습니까?”
“내해가 봉쇄되었다. 부득이하게 변방으로 밀항할 수밖에 없었지.”
이안의 대답에 경비병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설마, 남쪽의 옛 국경 지대를 지나서 여기까지 오셨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정확히 그렇게 왔다만.”
“하지만 그쪽은….”
“지옥 같더군.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어서 버려둔 모양이지.”
이안의 덤덤한 대답에 오히려 경비병이 말문이 막힌 듯 눈을 끔뻑였다. 이안을 잠시 올려다본 그가, 이윽고 덧붙였다.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전령을 들여보낼 생각이었어. 국왕 전하께 직접.”
“…예?”
“전해드려야 할 소식이 있다.”
태연하게 내뱉은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전하께서 답을 주실 때까지, 나머지는 성벽 바깥에서 머물도록 하지.”
“…….”
“걱정하지 마. 우리가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라면, 진작 그렇게 했을 테니까.”
잠시 갈등하듯 이안을 응시한 경비병이, 이윽고 옆을 돌아보았다.
“…이 친구가 안내할 겁니다.”
“고맙군.”
이안이 마차 쪽으로 돌아간 브레넌을 돌아보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훌쩍 안장에서 뛰어내려 마차로 다가갔다.
안에서 두건을 눌러쓴 루시아가 걸어 나오는 가운데, 이안이 다시 경비병을 돌아보았다.
“가장 가까운 여관이 어디에 있지?”
“큰길을 따라 쭉 들어가신 후에, 좌측 세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대기 중이던 경비병이 다가오는 가운데, 루시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증명서는 제게 주세요.”
“…예.”
이안의 옆에 멈춰선 루시아가 손을 내밀자, 경비병이 선선히 대답했다. 창대를 어깨에 기대고 증명서를 양손으로 공손하게 내민 건, 본능적으로 그녀에게서 어떤 기품이나 고귀함을 느껴서일 터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증명서를 받아든 루시아가, 다가온 또 다른 경비병에게 고삐를 넘기며 말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곧바로 몸을 돌린 경비병이 걸음을 옮겼다.
이안의 시선이 도시 안쪽으로 멀어지는 루시아의 뒷모습을 좇는 사이, 남은 경비병이 내뱉었다.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가능하면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그러지.”
대답한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대기 중이던 에드워드가 기다렸다는 듯 고삐를 흔들었다.
마차가 다가오고, 옆으로 걸어온 브레넌이 자연스럽게 이안에게 고삐를 받아 앞장섰다.
다각- 다각-
일행의 마차가 비로소 도시로 접어들었다. 홀로 남은 경비병의 시선은 한참이나 일행의 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경비병들의 기세가 범상치 않더군요. 정규군보다는 경험 많은 용병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브레넌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혹은, 그런 자들만 살아남았거나.
내심 덧붙이며, 이안은 대로 저 너머를 눈에 담았다.
말에 탄 루시아는 이미 저만치의 성문 앞까지 멀어진 상태였다.
뒤이어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고, 경비병의 인도를 받는 그녀의 뒷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졌다.
…별문제 없겠네.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차를 따라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으헉…!”
“괴, 괴물…?”
그사이, 거리를 오가던 주민들은 저마다 다양한 경악성을 터뜨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은 무카파 때문이었다.
“마, 마물이 어떻게 말을…?”
“저건 오크잖아, 멍청아. 그런데 왜 이런 곳에….”
놀라는 건 순찰을 돌던 경비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크가… 뭔데?”
“무식한 촌놈 같으니라고… 제국에 사는 이종족이야. 중앙의 높으신 분들이나 고용한다더군.”
“저런 괴물을…? 역시 제국의 귀족들은 남다르군…. 그, 그럼, 저 마차에 제국 귀족이…?”
…이런 식으로 변방에 온 걸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길을 지나치는 경비병들의 속삭임에, 두건 아래로 드러난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절로 비틀렸다.
이내 고개를 숙인 그가 내뱉었다.
“경. 말과 마차를 챙겨 주겠소? 여긴 오크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태반인 촌 동네라서.”
“물론입니다. 그냥 무카파 경과 함께 들어가십시오. 저와 에드워드 둘이서 정리하겠습니다.”
브레넌이 선선히 대답했다.
무카파는 신경도 쓰지 않는 얼굴이긴 했지만, 어쨌건 그를 배려하려는 것이리라. 창문이 살짝 열리고 샤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도 돕겠습니다. 염려 마세요.”
“그러면 더 좋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은 골목 너머를 눈에 담았다.
여관을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벽면에 횃불이 유독 밝았을 뿐만 아니라, 벌써 주정뱅이 몇이 기대앉아 자고 있었으니까.
“금방 정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문 앞에 모로를 멈춰 세운 브레넌이, 무카파 쪽으로도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안이 훌쩍 안장 아래로 뛰어내리고 뒤이어 멈추지도 않은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음, 이 구린내. 역시, 이 동네는 어딜 가나 지독하다니까.”
테사이아가 훌쩍 밖으로 내리며 읊조렸다. 뒤이어 시몬도 쭈뼛대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는 저만치의 주정뱅이들을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룬 카티스에서 시달린 여파이리라.
“걱정하지 마. 무카파나 이안을 보고도 시비를 거는 놈들은,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취한 상태일 테니까. 제대로 걷지도 못할걸.”
이어진 테사이아의 목소리를 등진 채, 이안은 주점으로 들어섰다.
변방 촌구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당히 좁고 지저분한 실내.
“…헉.”
“……!”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몇몇이 숨을 들이켰다. 이안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무카파와 테사이아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이안은 그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
미간을 설핏 좁힌 그의 시선은 저 안쪽의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벽면에 박제된 커다란 마물의 머리통과 날 한복판에 금이 간 도끼가 나란히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낯이 익은 장식품이었다.
“어서… 오세요…? 자리로 안내해 드릴까요…?”
여급이 쭈뼛대며 다가온 건 그때였다. 무카파를 연신 곁눈질하는 그녀를 돌아본 이안의 입가에, 비로소 옅은 헛웃음이 번졌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네…? 무슨 말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돌아보던 여급이 우뚝 멈춰 섰다. 이안이 뒤집어쓰고 있던 두건을 벗어서였다.
그의 얼굴을 응시하던 여급의 눈이, 이윽고 찢어질 듯 커졌다.
“해… 결사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