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97
#597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인 듯 눈을 깜빡인 데클란이, 이내 되물었다.
“외곽의 그… 늪지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리둥절한 눈빛이 된 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테사이아만이 뭔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소. 아겔 란 남쪽처럼, 늪지대도 버려졌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이안이 덧붙였다. 데클란이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지켜내거나 손에 넣으려 한 적도 없습니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본래 유배지에 불과한 쓸모없는 땅인 데다, 그 저주받은 밀림과도 이어져 있지 않습니까. 몇 년 전에는 웬 제국에서 온 요정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럼 지금 그 일대가 어떤 상태인지는 전혀 모르시겠군.”
“예.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리란 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내심 덧붙이며, 이안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지금 늪지대는 온갖 것들이 뒤섞인 마경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정신 나간 늪지 요정들이 숨어 사는 는 숲도, 더 위험하게 변했으리라.
“그런데, 늪지대의 상황은 왜 궁금하신 겁니까?”
맥주를 들이켜는 그를 바라보던 데클란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거기 볼 일이 있어서.”
이안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백마법사 퀘스트를 완료해야 하지 않던가.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현재로선 그 저주받은 숲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다. 설사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단서 정도는 얻을 수 있으리라.
데클란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그곳에… 대체 무슨 볼일이….”
“뭐, 사적인 일이오.”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이안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경이 돌아오기 전까지 다녀오는 건 어렵겠군.”
“…예.”
의문을 떨치듯 시선을 돌린 데클란이, 패튼과 눈빛을 교환하며 덧붙였다.
“원하신다면 힘을 보태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보름 안에 왕복하는 건 쉽지 않으실 겁니다.”
“마음만 받겠소. 날 따라가면, 아마 거의 다 돌아오지 못하게 될 테니까.”
이안이 담담하게 내뱉었다. 늪지대까지 가는 것도 위험할 텐데, 그는 심지어 저주받은 밀림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던가.
“그러시군요….”
데클란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읊조렸다. 루시아와 테사이아는 묘한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클란이 떠난 뒤에 묻기 위해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리라.
“어쨌든 그럼….”
맥주로 목을 축인 데클란이, 다시 이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메브 경이 귀환할 때까지, 오른델에 머무르시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군.”
“그러시다면….”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클란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성자 대행께,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의뢰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오?”
이안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되물었다. 전혀 놀라지 않은 건,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어서였다. 달려온 것까진 그렇다 쳐도, 식사까지 반갑다는 이유만으로 함께하지는 않을 테니까.
“여전히 의뢰를 받으시는 거군요.”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뱉은 데클란이, 곧이어 덧붙였다.
“의뢰라고 한다면,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건 내용을 먼저 들어본 뒤에 결정해야겠지.”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알겠습니다.”
풀썩 웃음을 흘리며 말한 데클란이, 문득 자세를 바로 하며 이안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 땅의 왕이라 불리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자처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제국의 공인을 받은 것도, 대교회의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내용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일행들의 시선이 절로 데클란에게 집중됐다. 그의 곁에 앉은 패튼이, 불편한 듯 낮은 헛기침을 흘렸다.
하지만 데클란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독립을 천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르긴 했습니다만, 저는 아직 즉위식을 거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왕관조차 쓰지 않고 있죠.”
“…그러니까, 왕관을 씌워 달라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시겠지.”
미간을 슬쩍 좁힌 채 듣고 있던 이안이 내뱉었다. 데클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자 대행.”
“하….”
이안이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는 법이었다.
물론, 데클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긴 했습니다. 변방의 새로운 왕국들은 다들 비슷한 처지인 데다, 마땅한 순간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성자 대행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
“저는 상관이 없었던 게 아니라, 운명이 인도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감았던 눈을 뜨며, 이안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런 반응인 건 그뿐이었다.
가뜩이나 생기 넘치는 얼굴로 경청하고 있던 시몬은 광선이라도 뿜을 듯한 눈빛이 되고 있었다. 테사이아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미소를 지었고, 루시아와 무카파는 수긍한 듯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왕관을 씌워 준다 해서, 그게 황실이나 대교회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니오.”
이윽고 이안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데클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실과 대교회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대륙의 그 누가, 감히 성자 대행의 권위를 의심하겠습니까?”
“물론 충분하지요…!”
내뱉은 건 시몬이었다. 브레넌이 끼어들지 말라는 듯 헛기침하며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시몬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감히 지엄한 황실과 대교회에 도전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만. 성자 대행은 이미 자신의 고결함과 위대함을 입증한 분이십니다.”
그가 웅변이라도 하듯 한 손을 들어, 경건하게 하늘을 가리켰다.
“찬란한 여신과 타오르는 여신, 그리고 투쟁의 신께서도 보증하시겠지요. 물론, 인간인 제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원로 요정인 나도 동의해요.”
테사이아가 고개를 까딱였다. 입가에 여전히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가운데, 데클란이 감사를 표하듯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거절하셔도 전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성자 대행.”
“…….”
“하지만 제게 이 변방을 다스릴 자격이 있다고 여기신다면. 이 왕국을 잘 이끌고 있다고 판단하신다면… 부디, 도와주십시오.”
미치겠네, 진짜.
내심 읊조리며, 이안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데클란은 제대로 된 즉위식을 준비할 게 분명했다. 아주 낯 뜨거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딱 잘라 거절하지 않는 건, 물론 데클란이나 일행들의 뜨거운 눈빛 때문은 아니었다.
“…내게 왕관을 받는다는 건, 반대로 오른델이 나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오.”
이윽고 남김없이 비운 술잔을 내려놓으며, 이안이 내뱉었다.
데클란의 흔들림 없는 눈을 잠시 응시한 그가 말을 이었다.
“만약 나와 제국. 그리고 대교회의 관계가 지금과 달라진다면, 오른델 역시 그렇게 되리란 뜻이고.”
“……!”
데클란의 눈이 설핏 커지는 가운데, 이안이 말을 맺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상관없으시겠소?”
잠시 기묘한 적막이 이어졌다. 시몬과 브레넌, 에드워드는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시몬이 불현듯 눈을 치켜뜨며 탄성을 흘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혹시, 저 위대한 백금룡께서 검은 벽을 무너뜨리셨다는 소문 때문입니까…?”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
이 와중에도 데클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묘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아니었다. 이안이 보기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이윽고 술잔을 들어 안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켠 데클란이,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자 대행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설마….”
그의 목소리가 한층 무겁게 낮아졌다.
“제국. 그리고 대교회와 대적하시기라도 하실 겁니까?”
“뭐… 그래야 할 상황이라면.”
시몬 일행의 눈이 절로 커지는 가운데, 이안이 덤덤하게 덧붙였다.
“원치 않더라도, 그렇게 해야겠지.”
무카파조차, 이안을 물끄러미 돌아보았다. 샤힌은 숨을 죽인 채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데클란이,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식탁 한쪽에 놓인 술통을 집어 들어, 이안의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술잔을 내려다보며, 데클란이 입술을 달싹였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오른델은 성자 대행과 뜻을 함께할 겁니다.”
다시 이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여전히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히려,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가.’
이안은 비로소, 이자의 야망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자로 태어나 왕의 자리에 오르고도, 아직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제 머리에 기름을 붓고 왕관을 씌워 주시겠습니까, 성자 대행?”
데클란이 식탁에 술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장내의 모두가 숨을 멈춘 채 이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즉위식은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시오.”
이윽고 이안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으며 일어섰다.
“내 마음이 언제 다시 바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으니까.”
덧붙이며 술통을 집어 든 그가, 데클란의 잔에도 술을 따라줬다.
굳어져 있던 패튼이 감격과 안도가 뒤섞인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데클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자 대행…!”
일행들은 그런 둘은 저마다 다른 감정이 담긴 눈으로 돌아보았다.
술통을 내려놓은 이안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데클란은 아니었다.
“즉위식에는 참관인이 필요한 법이지요.”
여전히 선체로 술잔을 집어 든 그가, 일행들을 차례로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제국에서 오신 귀빈분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겁니다. 변방의 대관식에 불과하나, 자리를 빛내 주시겠습니까?”
“기꺼이 그러죠.”
테사이아가 곧바로 대답했다. 술잔을 치켜드는 채였다. 시몬이 튕겨 오르듯 일어선 건 거의 동시였다.
“참관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하!”
“도, 도련님…!”
눈을 치켜뜬 브레넌이 탄식했다. 재빨리 시몬의 등 뒤로 고개를 기울인 그가 속삭였다.
“각하께서 알게 되신다면, 가문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나는 가문을 물려받지도 않을 텐데.”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뱉은 시몬이, 보란 듯 술잔을 집어 들었다.
“나는 대관식을 참관할 거야. 사교계에 내가 본 것들을 똑똑이 알릴 거고. 그게 마음이 들지 않으시면 뭐, 가계도에서 내 이름을 파내시라고 해.”
“맙소사, 루 솔라여….”
브레넌이 체념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데클란은 그런 시몬을 돌아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분이시군요. 만약 가문에서 추방당하신다면, 이곳으로 오십시오. 이 도시에는 활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제국의 문화와 이야기에 능통한 분도요.”
“중앙의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얹혀살아도 십 년은 거뜬할 것 같긴 합니다만.”
시몬의 특유의 무책임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흔들었다.
“…전하의 권유도 기억해 두겠습니다.”
“저는 성자 대행의 대리인 자격으로 동행할 거예요.”
덧붙인 건 루시아였다.
“성자 대행의 정통성과 권위를 보증할 대리인이 필요할 테니까요.”
“메브 경의 혈족이자 타오르는 여신의 사도께서 그 역할을 맡아 주신다면, 감히 그 누구도 의문을 제시할 수 없겠지요.”
대답한 데클란이, 루시아를 돌아보며 정중하게 덧붙였다.
“제 왕관의 전달자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영광입니다. 전하.”
루시아도 자리에서 일어서 술잔을 들었다. 무카파가 술잔을 든 건 바로 그때였다. 데클란의 시선을 받은 그가, 엄니가 솟은 입을 달싹였다.
“참관만이라면, 규율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고맙소.”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났네. 상황을 지켜보던 이안의 입꼬리가 절로 비틀렸다.
데클란이 식사를 함께하려 한 이유를 깨달아서이기도 했다.
이안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행들을 설득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안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저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전보다 더 여우 같아 졌구만.’
이안이 내심 읊조릴 찰나, 데클란이 그를 돌아보았다.
“술잔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성자 대행?”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결정일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시오.”
이안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내키지 않을 뿐. 사실 그에게도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었다.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마경과 마물이 들끓는 변방에서 담금질 된 정예병들이 그를 돕게 될 테니까.
“그것이 운명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물론, 데클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검은 벽 너머에 흑태자가 군단을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지도 몰랐지만.
“그럼, 왕관을 준비하시오.”
애석하게도 이안은 그 사실까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술잔을 들자, 브레넌과 에드워드도 체념한 듯 술잔을 들고 일어섰다.
미소 지은 데클란이 술잔을 이안에게 내밀었다가 단숨에 들이켰다.
입맛을 다신 이안도 술잔을 입에 가져가는 사이.
“…성자 대행.”
술잔을 말끔하게 비운 데클란이, 문득 눈을 빛내며 내뱉었다.
“작은 부탁을,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술잔을 입에 문 채로, 이안이 미간만 슬쩍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데클란이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속삭였다.
“식이 거행되기 전까지, 성자 대행께서 오른델에 머무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그래 주신다면 백성들에게 더 큰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하게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