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03
#603화
“맙소사, 루 솔라여….”
이안의 얼굴을 홀린 듯 응시하며, 파엘이 입술을 달싹였다.
“대체 어떻게… 이곳에 계신 겁니까…?”
“어쩌다 보니.”
어깨를 으쓱이는 이안의 곁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은발의 요정이 나란히 섰다. 응접실의 문이 닫히는 가운데, 파엘의 멍한 시선을 받은 그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오랜만이에요, 단주.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나요?”
“……!?”
파엘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하지만 그가 뭔가 대답하기도 전에, 뒤편에서 토해내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전사를… 뵙습니다…!”
보르였다. 화들짝 어깨를 떤 파엘이 뒤를 돌아보았다. 금속 상자를 양손으로 든 보르가 북부식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보르.”
이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못 본 사이에 장비가 더 좋아졌군.”
“언젠가는 무사히 돌아오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보르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덧붙였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건, 내면에 격정이 휘몰아치고 있어서일 터였다.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보답받아서이기도 하리라.
오히려 덕분에 조금 평정심을 되찾은 파엘이, 다시 이안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반신반의했습니다만… 성자 대행께서 이 땅에 축복을 내리셨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군요.”
“천상이 내리셨지. 합당한 자격을 갖춘 분이 왕관을 쓰신 덕분이고.”
이안이 데클란의 뒤통수를 일별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한 말이라는 건 파엘이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제야 화들짝 눈을 깜박인 파엘이 고개를 숙였다.
“전하를 모시고 사담이 길었군요.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전하.”
“그럴 것 없소. 당연한 일이니.”
너털웃음을 지은 데클란이 뒤편에 선 이안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성자 대행을 다시 뵈었을 때, 단주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소. 괘념치 마시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공손하게 내뱉은 파엘이, 다시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즉위를 경하드립니다.”
옆으로 슬쩍 손을 내뻗는 채였다.
일렁이는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고 있던 보르가 냉큼 옆으로 다가섰다. 파엘이 그대로 손을 움직여 상재의 뚜껑을 열었다.
“도착하고서야 소식을 듣게 되어, 준비한 선물이 약소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부디 노여워하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상자 안에는 윤기가 흐르는 잘 접힌 푸른 천과 몇 개의 유리병이 담겨 있었다. 여전히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채, 파엘이 손바닥으로 푸른 천을 가리켰다.
“중앙의 달인이 제작한 최고급 망토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질길 뿐 아니라, 잘 타지도 젖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호오.”
데클란이 상자 안을 내려다보며 탄성을 흘리는 사이, 파엘의 손바닥이 유리병 쪽으로 움직였다.
“이것들은 보르타 산 포도주입니다. 최상품 중에서도 최상품들만 엄선해 담았습니다.”
“…진심 어린 축하만으로도 충분하거늘. 허나 사양하지 않겠소.”
흡족한 미소와 함께 내뱉은 데클란이 파엘을 바라보았다.
“고맙소, 단주. 잘 쓰리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늘 그랬듯, 판매할 물품도 든든하게 준비해 오셨겠지?”
데클란이 덧붙인 말에, 파엘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훌륭하군. 보다시피 도시 전체에 연회를 열어서 말이오. 금고를 모두 털어서라도 준비해 온 물건들을 전부 구매해야 할 것 같소.”
“염려하지 마십시오. 즉위를 감축드리는 의미에서, 전 품목을 황금 휘장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파엘의 시선이 이안을 훑었다.
“마침, 이 자리에 황금 휘장의 주인께서 계시기도 하니 말입니다.”
“기쁜 소식만 이어지니 두려울 따름이군.”
낮게 웃음 지은 데클란이 말했다.
“기쁨이 지나고 나면 그만한 크기의 슬픔이 기다리는 법이라잖소.”
“불행은 방심하지 않는 자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파엘의 공손한 화답에, 데클란의 미소가 더 선명해졌다.
“아주 마음에 드는 격언이군. 자, 거래에 대한 부분은 내일 다시 이야기 나누도록 합시다. 지금은…”
데클란이 슬쩍 고개를 까딱였다.
“해후의 기쁨을 마저 나누시는 게 우선일 것 같아서 말이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파엘은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능숙하게 응대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이안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해야 할 말도, 듣고 싶은 말도 한가득 이지 않던가. 고개를 끄덕인 데클란이 이안을 돌아보았다.
“고된 일정을 감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자 대행.”
“별말씀을.”
“약속대로 더는 번거로우실 일 없을 겁니다. 연회장에, 식사를 마련하라 이를까요?”
“그건 내게 물으실 부분이 아닌 것 같군. 나는 이것저것 잔뜩 먹었잖소. 어떠시오, 단주?”
이안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왔다. 파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괜찮습니다. 이동 중에 요기한 데다, 놀란 나머지 식욕이 전혀 없군요.”
“잘 됐군.”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미소 지은 이안이, 데클란을 돌아보았다.
“우린 이대로 방으로 올라가도록 하겠소.”
“예.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성의 시종들을 부리십시오. 성자 대행의 말씀이라면 기꺼이 따를 겁니다.”
선선히 대답한 데클란이 파엘과 보르를 일별했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시오. 나는 잠시 이곳에 남아, 단주가 준 선물을 확인해야겠군.”
“예. 그럼, 내일 오전에 다시 뵙겠습니다. 전하.”
공손하게 대답하며, 파엘이 슬쩍 눈짓을 보냈다. 몸을 돌린 보르가 상자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따라오시오.”
그사이 나지막이 덧붙인 이안이 몸을 돌렸다. 테사이아가 문을 열고, 바깥에 서 있던 시종장과 반투르인 소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성자 대행의 방으로 가자. 샤힌.”
“네.”
테사이아의 말에 공손하게 대답한 소년이 몸을 돌렸다.
이안과 테사이아가 나란히 복도를 나아가는 가운데, 보르를 대동한 파엘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물론, 데클란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였다.
“…….”
걸음을 옮기며, 파엘은 비로소 이안의 모습을 차근히 훑어보았다. 그의 눈에 새삼스러운 이채가 번졌다.
‘몇 년이나 벽 너머에서 지내셨는데….’
검은 벽 너머는 거대한 마경이라고들 예상하지 않던가.
하지만 지금 정복을 걸친 채 걸음을 옮기는 성자 대행은, 그가 기억하던 모습에서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오가신 것 같던데.”
이안이 툭 내뱉은 건 그때였다. 화들짝 눈을 끔뻑인 파엘이 되물었다.
“예…?”
“오른델 말이오.”
이안이 뒤를 돌아보며 덧붙이자, 그제야 파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능하면 일 년에 두 번. 어렵더라도 가을이 오기 전에 한 번은 반드시 들릅니다. 올해 같은 경우엔, 지금이 그 한 번이고요.”
“그래서 전하께서 곧 오시리라 확신하고 계셨던 거군….”
“그러셨을 겁니다. 변방 깊숙이 들어와 오른델을 가장 먼저 들르고 돌아가는 길에 다른 도시를 거치는 방식이라, 일정의 오차가 거의 없는 편이니까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안을 바라보며, 파엘이 차분하게 첨언했다.
테사이아가 슬쩍 그를 돌아본 건 그때였다.
“아주 위험할 것 같은데요. 안전한 길이 있는 건가요?”
“자주 오가야만 알 수 있긴 합니다만. 지역마다 주기적으로 마물을 정리하는 길이 존재합니다. 거기서 범죄를 저지르는 간 큰 인간은 없습니다. 물론 때때로 마물들이 출몰하긴 합니다만….”
뒤따르는 보르를 일별한 그가 덧붙였다.
“저희 상단 경호병들의 역량은 아주 뛰어납니다. 중앙의 상단을 통틀어 마물과의 전투 경험이 가장 풍부할 겁니다. 그만큼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고요.”
“안전한 길이 있긴 하단 거군요.”
“고맙게 됐군.”
테사이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가운데, 이안이 툭 덧붙였다.
파엘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그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필립과의 약속으로 시작된 상행이잖소. 한 번으로 그칠 수도 있었을 텐데, 계속해 오셨군. 나도 그 덕을 봤고.”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파엘이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안이 나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계단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그가 덧붙였다.
“물론, 그만큼의 이문이 남아서이기도 합니다.”
“변방 왕국들이 그다지 부유할 것 같진 않은데.”
“대신 다른 값나가는 것들이 있지요.”
“그렇군….”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자연스럽게 그의 뒤로 따라붙은 파엘이 덧붙였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되신 겁니까? 내해를 건너셨을 텐데, 제국이 아니라 변방에 계시다니요.”
“…내해를 건너려다 문제가 좀 생겼었소. 부득이하게 흑해로 나와 변방에 상륙할 수밖에 없었지.”
이안의 덤덤한 대답에, 파엘이 비로소 낮은 침음을 흘렸다.
“내해가 봉쇄되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벽 너머의 괴물들이 건너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요.”
“그 이상이죠. 대마족이 건너왔으니까. 권속들과 함께.”
덧붙인 건 테사이아였다. 눈을 치켜뜬 파엘을 돌아보며, 그녀가 거만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물론, 이제는 주인 잃은 권속들만 남았겠지만요.”
“……!?”
계단을 헛디딘 파엘이 비틀댔다. 그의 허리를 붙잡은 보르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대전사께서 무찌르신 거군요.”
놀라긴커녕, 당연히 그랬으리라 여기는 듯한 말투였다. 테사이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파엘이 다시 계단을 오르며 덧붙였다.
“그럼 정말, 대마족들이 벽 너머에 여전히 살아있는 겁니까…?!”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이안이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멈칫한 파엘이 이내 고개를 숙였다.
“…예. 성자 대행.”
“조급해할 것 없어요, 단주. 메브 경이 돌아올 때까지, 이제 쉬기만 할 예정이니까.”
테사이아가 타이르듯 덧붙였다. 그녀를 돌아본 파엘이 문득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하신 질문의 대답을 드리지 않았군요.”
“……?”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부 명문가의 원로로 자리매김하셨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지요. 늦었지만 축하드리겠습니다, 원로. 눈이 다 나으신 것도 말입니다.”
파엘이 고개를 숙였다. 옆으로 이어진 통로로 들어서며, 테사이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기억해 주시니 기쁘군요. 덕분에, 옛 추억도 떠오르고요.”
“샬롯 경의 소식도 늘 궁금했습니다만. 잘 지내고 계십니까?”
“물론이죠. 수인들을 이끄는, 남부 밀림의 대전사가 되었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뒤따라 복도로 접어들며 파엘이 마주 미소 지었다.
샤힌이 저만치로 앞서가는 가운데 테사이아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파엘을 돌아보았다.
“반가운 소식이 더 있어요.”
“어떤….”
“연맹 소속의 등대 상단이요.”
“……! 그들을, 만나셨습니까?”
파엘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테사이아가 이안을 일별하며 말을 이었다.
“무사해요. 지금쯤 에레노스에서 물자를 정리하고, 내해의 혼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바닷길이 언제 다시 열릴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고요.”
“정말 반가운 소식이군요. 안 그래도 내심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말입니다.”
파엘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도와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원로.”
“휘장으로 갚는 게 어때요? 듣자 하니 나는 자격이 충분하다던데.”
테사이아가 눈을 빛내며 묻자, 그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내부 회의를 거치긴 해야겠습니다만. 원로라면 충분히 황금 휘장을 가지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샤힌이 복도 저 너머의 나무문을 연 건 그때였다. 문을 잡고 선 녀석이 일행을 돌아보는 가운데, 이안이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요.”
덧붙인 테사이아가 그를 따라가는 가운데, 파엘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췄다.
“오셨어요…!”
“다, 다녀오셨습니까!”
이안이 열린 문 앞에 서자, 안에서 목소리들이 번져 나왔기 때문이다. 장내를 한차례 돌아본 이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뱉었다.
“내 방에 죄다 모여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우리 방이 제일 넓잖아요. 그래서 초대했어요.”
파엘이 천천히 다가가는 가운데, 안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생하셨어요. 일정을 끝내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 기다리고 있었고요.”
“손님이 오셨다는 이야기까진 못 들었나 보네.”
“손님… 이요?”
“루시, 너도 아는 얼굴일 거야.”
내뱉으며 파엘을 돌아본 이안이, 고개를 까딱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파엘의 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장내로 들어섰다. 어둑어둑해지는 창밖과 곳곳에 촛불이 일렁이는 실내. 그리고 술병과 술잔이 놓인 커다란 원형 식탁에 둘러앉은 이안 일행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옆의 벽면에 기대앉은 오크까지 눈에 담으며 멈춰 선 파엘이, 깍듯하게 무릎을 굽혔다.
“저는 육각 연맹의 일원이자 방주 상단의 단주인 파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안으로 들어선 샤힌이 문을 닫았다. 테사이아가 술잔과 안주가 놓인 식탁 쪽으로 느긋하게 다가가는 가운데, 파엘을 돌아본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루시는 이미 아시겠지.”
“물론입니다. 이렇게 무사히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루시페르 사제님.”
“저도 반가워요. 단주. 여기서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붉은 머리의 여사제가 빙긋 미소 지었다. 이안이 그렇듯, 그녀 역시 그다지 달라진 부분이 없어 보였다. 그저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을 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살짝 옆으로 향했다.
“이름이 보르였던가요? 보르도요.”
옆에 선 보르가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파엘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화로의 사원에서도 아주 기뻐하겠군요. 혹, 두 분이 돌아오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가장 먼저 알게 됐을 거예요. 타오르는 여신께서 도와주셨거든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럼 설마, 설원에도…?”
파엘의 시선을 받은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비슷하다고 하겠소. 인사부터 마저 나눕시다. 건너편의 저분은, 챔버스 자작의 차남이신 시몬 도련님이오.”
“…챔버스 가의 자제님이셨군요.”
루시페르의 건너편에 선 잘생긴 금발 머리 청년을 돌아보며, 파엘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각하는 언젠가 한 번은 뵙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도련님을 먼저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단주. 원하신다면 아버님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매끄럽게 미소 지은 시몬이 말을 이었다.
“유능하고 정직하기로 소문난 육각 연맹의 맹주께서 만남을 청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단박에 약속을 잡으실 겁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하군요. 그렇다면, 초면에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별말씀을. 이쪽은 내 기사와 시종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시몬이 덧붙인 말에, 옆에 앉은 브레넌과 에드워드가 슬쩍 그를 돌아보았다. 아랫사람들에게 존중을 받는 자는 아닌 것 같았다.
낮게 코웃음 친 이안이 벽 쪽을 가리킨 건 그때였다.
“저쪽은 무카파. …소니에르 가문의, 잉그리드 영애께서 보내셨지.”
“……!”
그제야 눈을 빛낸 파엘이 회색 오크를 돌아보았다. 잉그리드는 세라스 황녀의 가명이 아니던가.
무카파가 오른 주먹을 가슴에 얹으며 입을 열었다.
“발디트의 아들. 바나티르의 무카파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단주.”
“황야에서 가장 고귀한 전사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애께서 말씀하신 안배가 경이었나 봅니다.”
파엘이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안이 내뱉었다.
“역시. 내가 남부에 있다는 소식은 영애께 전해 들으신 거였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