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21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21화(621/655)
#621화
혼돈의 파장이 섞인 날카로운 포효가 터져 나왔다.
어지간한 생명체들은 들은 것만으로도 공포와 혼란에 빠질 소리였지만, 물론 용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콰과과과-
하지만 이안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내달렸다.
어차피 역천룡의 관심을 끌어, 저 말뚝까지 백금룡에게 박아넣지 않게 하려는 목적일 뿐이었다.
-기어코 먼저 죽고 싶은 것이냐…?
성공적으로 먹힌 게 분명했다.
내달리는 와중에도 다시금 피의 칼날을 시전하는 그를 내려다보며, 역천룡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너를 산채로 씹어 먹어, 내 사도들의 넋을 기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네 상대는 나다! 라크마흐…!
눈을 부릅뜬 백금룡이 다시 놈을 올려다보며 내뱉었다.
…평소엔 눈치 빠른 양반이.
내심 혀를 차며, 이안은 완성된 피의 칼날들을 쏘아 보냈다.
이번에도 역천룡의 손등을 향해서였다.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으니 더 거슬릴 게 분명했다.
카드드득- 퍼버벙!
손등에 틀어박힌 붉은 빗금들이 피보라를 일으켰지만, 역천룡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안의 길게 찢어진 눈이 슬며시 일그러질 찰나.
-여기서 네 대행자의 최후를 지켜봐라, 아르케아스…
역천룡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안의 눈이 다시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백금룡의 반응이, 오히려 그부터 상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 준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르케아스의 안광이 끓어올랐다.
-라크마흐…!
하지만 역천룡은 이미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놈은 백금룡의 날개를 찍어 누른 자신의 날개를 뽑아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돌아와라…! 나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
아르케아스가 바둥대며 소리쳤다. 앞발로 가슴을 관통한 말뚝을 움켜쥐는 채였다.
하지만 그의 가슴을 관통한 말뚝은 가늘게 떨릴 뿐 뽑혀 나오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몇 걸음을 물러난 라크마흐가, 이안 쪽으로 몸을 돌리며 그대로 말뚝을 내리쳤다.
쿠아아아아-
비스듬한 궤적을 따라, 푸른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질주하던 이안이 힘껏 땅을 박찬 건 거의 동시였다.
쿠화악-!
한순간 터질 듯 부풀었던 그의 몸이 포탄처럼 치솟았다. 순식간에 십여 미터를 솟구친 그의 등 뒤로, 줄지어 돋아난 촉수들이 날개처럼 활짝 펼쳐졌다.
촉수 끝에는 새의 부리 같은 이빨들이 비죽비죽 돋아난 채였다.
콰르르르르르르-
창염의 물결이 그의 발아래를 휩쓸며 지나쳤다. 한순간이지만 푸른 불길의 바다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 열기만으로도 보라색 전신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이안은 발아래 펼쳐진 불길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고오오오…
그의 시선은 저 너머, 말뚝을 내리친 채 상반신을 구부린 역천룡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날개처럼 펼치고 있던 촉수들을 일제히 뒤로 내뻗은 건, 불길의 궤적이 완전히 지나간 직후였다.
쒸하악-!
활강하던 그의 전신이 화살처럼 뿜어져 나갔다. 손아귀에 간신히 움켜쥔 용의 뼈를 뒤로 치켜들고, 왼쪽 어깨와 팔뚝을 구부려 앞세운 채였다.
역천룡이 한쪽 날개로 몸을 감싼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콰지직-!
이안이 그 한복판에 틀어박혔다. 피막보다는 가죽이라 불러야 할 날개 한복판이 움푹 파이고, 주위로 이글대는 열기가 분출됐다.
날개 표면도 뜨거웠지만, 이안은 열기는 물론이고 충격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착용한 각종 보구들의 효과를 여전히 받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쿠드득…!
어느새 그의 보라색 피부는, 섬유질이 아니라 가시 돋친 외골격처럼 딱딱하게 경화되어 있었으니까.
지저의 갑피. 사막의 대마족, 야나르 타쉬의 혼돈을 흡수한 결과물이었다.
-굴레를 벗어버린 용기는 가상하다만…
날개 너머로 라크마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금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여유로운 말투였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미약하기 짝이 없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놈의 날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날개를 휘둘러 이안을 날려버리려는 게 분명했다.
쿠화아아-
하지만 날개가 호선을 그리고 있을 때, 이안은 이미 역천룡의 날개 위로 쏜살같이 치솟는 중이었다.
쒸아아-
그의 뒤편으로 기다란 촉수들이 잔뜩 늘어져 너풀댔다.
역천룡의 날개 표면에 박혔다가, 새총처럼 이안의 몸을 위로 날려버린 것이다.
콰르르르르-
날갯짓을 따라, 푸른 불길이 섞인 열풍이 소용돌이치며 뿜어져 나갔다. 다행히도 이안은 그 돌개바람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 나가는 그의 앞에는 어느새, 뒤틀린 뿔들이 왕관처럼 돋아난 역천룡의 머리가 있었다. 놈의 눈동자가 돌아오는 사이, 이안의 시선이 그 아래를 훑었다.
‘조금 높게 뛰었네.’
기다란 빗장뼈와 비늘 하나 없이 매끈한 거무죽죽한 가죽. 그 아래로 날개와 함께 옆으로 휘두른 길게 변이된 앞발과 그다지 큰 변화 없는 몸통이 이어졌다.
이안의 시선은 저 아래, 이글대는 푸른 불길을 머금은 구멍에 다다르고서야 멈춰 섰다.
-우리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겠는걸.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융합된 상태에서는 여전히, 그의 특성을 고스란히 공유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어쨌건 정확한 의견이었다. 저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게 이안의 목표였으니까.
-적어도 잽싸긴 하구나…
역천룡의 목소리가 느릿느릿 뇌리로 파고들었다. 이안만큼은 아니라도, 놈의 의식 역시 가속화된 상태인 게 분명했다.
콰과과과-
옆으로 내뻗은 오른팔을 치켜드는 것이 이안의 시야 한구석으로 들어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놈의 몸으로 떨어져 내리는 이안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
오른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이안이 날카로운 포효를 토해냈다.
이중 치열과 두 갈래로 나뉜 굵은 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채였다. 동시에 머리 위로 치켜든 갈비뼈의 검게 탄 표면에, 보랏빛의 혼돈이 균열을 새기며 치솟았다.
촉수들이 일제히 대각선 위로 뻗어 나가며 그의 추락을 가속하는 가운데.
쒸하아아악-!
왼손으로도 뼈를 움켜쥔 이안이, 그대로 양팔을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
비교적 작은 것을 들고 왔는데도, 용의 뼈는 마족화 한 이안의 키보다 더 길었다.
하지만 그것을 휘두르는 이안은 아무런 어색함도 느끼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 키만 한 대검을 휘둘러 대지 않았던가.
카가가가가가각-!
보랏빛 궤적이 역천룡의 빗장뼈 위로 떨어져 내렸다.
혼돈을 가득 머금은 용의 뼈는, 검게 탄 상태로도 곧바로 부러지지 않았다.
대신 정말 검이라도 된 것처럼 역천룡의 가죽을 가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푸른색과 보라색의 불티가 궤적 좌우로 눈부시게 튀어 올랐다.
물론 끝까지 이어진 건 아니었다.
콰지지직-!
끝내 버티지 못하고, 뼈가 산산이 조각나며 튀어 올랐다.
줄지어 이어진 우측 갈비뼈 한복판쯤이었다. 이안의 몸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구부러지는 가운데, 등 뒤의 촉수들이 일제히 뻗어 나왔다.
콰드득- 콰득-!
촉수들이 역천룡의 가죽에 박혀 들었다. 촉수 끝에 발톱처럼 돋아난 이빨들 덕분이었다.
심해의 이빨. 바다의 대마족, 부키키아의 혼돈을 흡수하고 손에 넣은 새로운 능력이었다.
카드드드드득-
역천룡의 가죽을 할퀴듯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촉수들이 이안의 몸을 끌어당겼다.
반도 남지 않은 용의 뼈를 여전히 손에 쥔 채, 이안이 선선히 역천룡의 몸으로 달라붙었다.
이빨들은 그저 그의 몸을 지탱해주고 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 와중에도 살점과 혼돈 일부를 삼키고 있었고, 촉수를 통해 그의 몸속으로 운반했다.
물론, 이안은 그런 과정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보인다…!’
왼손의 손톱과 발톱까지 몸이 박아넣은 그는, 암벽에서 미끄러지듯 내려가며 저 아래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푸른 열기가 번지는, 멍치 아래의 구멍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오…
역천룡의 감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낮은 탄성이 번지는 가운데, 이안은 울퉁불퉁한 가죽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속도가 줄어드는 건, 물론 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럼 어디, 이것도 한번 피해 보아라.
이어진 목소리에, 이안은 비로소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역천룡이 단 한순간도 자신의 움직임을 놓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놈은 고개를 슬쩍 기울인 채, 한 쭉 눈으로 그를 정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시발….’
그리고 그 안광은 섬뜩하게 빛나며 이글대고 있었다.
흩날리며 잦아드는 불티들 너머로, 푸른 불길이 이글대며 치솟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저건 안 돼. 튀자고, 친구.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동시에 촉수들이 일제히 뻗어 나가며 이안의 몸을 떠밀었다. 녀석이 내린 명령이 분명했다.
콰르르르르-
이안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갈 찰나, 새파랗게 이글대는 불길이 역천룡의 몸을 뒤덮었다.
열기와 푸른 불길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가운데, 이안이 양팔을 교차해 얼굴 앞을 가렸다.
육감의 경고에 따른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콰아아아-!
다음 순간, 역천룡의 상반신에 흘러내린 불길이 충격파와 함께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이안의 전신을 뒤덮을 뿐 아니라, 더 높이 날려버리기에도 충분했다.
‘앗 뜨거…!’
이안의 눈매가 절로 일그러졌다.
전신이 펄펄 끓는 것 같았다. 물론 창염은 그의 육체를 구성한 혼돈을 불태우며 잦아들었고, 아직은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콰르르르르-
허공을 수놓으며 뿜어져 나온 새파란 궤적이, 그를 따라잡을 듯 밀려들고 있었으니까.
역천룡이 어느새 치켜든 말뚝을 비스듬하게 내리친 것이다.
-이런, 이건 못 피하겠는데.
요그가 속삭임과 동시에, 이안은 촉수들을 꽃봉오리처럼 둥글게 말아 몸을 가렸다.
촉수를 비롯한 전신이 가시가 돋친 채 굳어진 건 거의 동시였다.
부키키아를 상대하면서 배운 활용법이었다. 이글대는 푸른 궤적이 그 위를 뒤덮은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콰르르르르- 콰장창창창-!
휩쓸려 튕겨 나간 이안이, 푸른 불덩이가 되어 뼈 무더기 사이로 처박혔다. 용의 뼈들이 마구 튀어 오르고, 그의 전신을 뒤덮으며 허물어졌다.
-이안-!
아르케아스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물론 이안은 죽지도, 정신을 잃은 상태도 아니었다.
‘무슨 볼링공이 된 기분이네.’
전신을 감싼 촉수들을 일제히 거둬들인 그가, 온몸을 펼치듯 휘두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를 짓누르고 있던 뼈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솨아아아아-
자욱한 연기에 휩싸인 채, 이안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움푹 파인 것처럼 이어진 뼈 더미 너머로, 말뚝을 늘어뜨린 역천룡의 모습이 펼쳐졌다.
사실상 처음 놈에게 달려가기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거리까지 되돌아온 것이다.
쿠드드득…
옆으로 뻗어 나간 촉수들이, 적당한 크기의 갈비뼈를 찾아 칭칭 말았다. 동시에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저건 약점이 아니라 함정 같은데.
…그러게.
이안은 속으로만 읊조렸다. 역천룡의 상반신에 길게 새겨진, 그가 만들어낸 상처를 응시하는 채였다.
뼈를 자르기는커녕 근육조차 전부 갈라버리지 못한 흔적이었다.
심지어 구멍에는 근처까지도 가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육체를 구성하는 혼돈을 엄청나게 소모해 버린 상태였다.
-남은 기회는 많아야 두 번이야. 그 이후부턴, 융합을 유지할 수 없을 거야.
요그가 덧붙이는 사이, 라크마흐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번져 나갔다.
-바로 다시 달려들 줄 알았건만…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은 모양이지…?
쇳가루를 잔뜩 삼킨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꺼워하는 듯한 말투이기도 했다.
여유가 넘치시네, 새끼.
생각하며 두 가닥의 혀로 이빨을 훑은 이안이, 옆으로 손을 뻗어 촉수가 끌고 온 새로운 뼈를 움켜쥐었다.
-그만…!
아르케아스의 일갈이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 멈칫한 이안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물러나거라, 이안…! 죽을 것이야…!
말뚝에 꿰뚫린 채 드러누운 백금룡은, 흉악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안의 죽 찢어진 한쪽 입꼬리가 조금 더 말려 올라갔다.
나도 그러고는 싶소만. 그가 내심 읊조리는 사이, 라크마흐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참으로 눈물겹군… 그래… 좋아…. 또 한 번 네게 기회를 주마… 백금룡의 대행자야…
이안을 내려다보는 그의 안광이 불길하게 일렁였다.
-지금이라도 나를 섬기거라. 네 그 본모습을 감출 수 있도록 도와주마. 그리고, 네 주인의 목숨도 부지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헛소리… 하지 마라…!
아르케아스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말뚝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을 들썩이는 채였다.
물론 역천룡은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양심 없고 뻔뻔한 새끼네….’
그는 역천룡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삼키는 중이었다.
자신을 섬기던 사도들의 영혼을 흡수해 버리는 것을 불과 조금 전에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 주제에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여대다니.
-설마, 저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건 아니지?
요그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연히 아니지. 내심 대꾸하며 무릎을 구부린 이안이, 다음 순간 힘차게 땅을 박찼다.
콰르르르르-
앞에 걸리는 뼈들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뒤편으로는 뼈 더미를 허물어뜨리는 채였다.
-이안…!
역천룡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 짓는 가운데, 아르케아스가 탄식을 흘렸다.
질주를 시작한 와중에도, 이안은 그를 슬쩍 일별했다. 도망치라는 말은 진심이었을 터였다.
라크마흐와 달리 그는, 이안이 이미 혼돈과 융합한 적이 있으며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던가.
이안을 만류한 것 역시 역천룡에게 죽게 될 것만이 아니라, 또다시 혼돈에 잡아먹히게 될 것까지 염려해서일 터였다.
‘나 말고, 댁 걱정이나 하시오.’
생각하며, 이안이 슬쩍 웃음 지었다. 아르케아스가 그의 표정을 알아봤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다시 역천룡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저놈은 정말 그를 탐내고 있었다. 아직은 죽일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고, 도전할 기회도 두 번은 더 남아 있었다.
도주를 고려하는 건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리라.
-그래… 꺾기 힘든 꽃일수록 가치가 있는 법이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내뱉던 역천룡이,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아르케아스의 전신에 혼돈이 끌어 오르는 것을 눈치채서일 터였다.
말뚝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그는 개의치 않고 혼돈을 뿜어내고 있었다.
“—–!”
뒤이어 고통 섞인 일갈과 함께, 백금룡이 혼돈의 파장을 뿜어냈다. 섬뜩한 뇌전이 뒤엉킨 보랏빛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터져 나왔다. 역천룡이 왼쪽 날개를 펼쳐 몸을 감쌌다.
콰치치치칫-!
파장에 섞인 뇌전이 그의 날개를 휩쓸고 지나쳤다.
하지만 질주하는 이안은 멈추지도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백금룡의 혼돈이 자신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믿음은 보답받았다.
정확히는 그 이상이었다.
콰아아아- 파치치칫…!
혼돈의 파장과 뇌전이 전신을 훑고 간 순간, 이안의 눈매가 꿈틀댔다. 소모되었던 혼돈이 삽시에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껴서였다.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그래… 그 비늘이, 마력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