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24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24화(624/655)
#624화
콰지지지지직-!
푸른 불꽃과 자색 뇌전이 눈부시게 뒤섞이며 터져 나오고, 엄청난 충격이 이안의 전신을 휩쓸었다.
‘시발…!’
혼돈과 융합하지 않았다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다.
촉수들까지 동원해 몸을 고정하지 않았더라면 날아가 버렸을 터였다. 저도 모르게 혼돈을 뿜어내며, 이안은 몸을 웅크렸다.
“—–!”
위에서 역천룡의 비명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이안의 고개가 절로 비늘 안장 너머의 위쪽으로 향했다.
상체가 앞으로 꺾인 역천룡이 머리를 내저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새파란 안광과 이글대는 열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아가리.
콰아아아-
심지어 속도가 조금 줄었을 뿐, 백금룡은 놈을 아직도 밀어붙이고 있었다. 직접 충돌했으니 충격이 작지 않으련만.
심지어 날개 뒤편으로 혼돈이 더해진 보라색 마력 날개까지 뻗어 나와 추진력을 더하고 있었다.
역천룡의 몸통에서 뇌전과 불꽃이 연신 번쩍였다.
-무모하구나…!
새파란 안광이 끓어오른 건 그때였다. 역천룡의 뿔과 날개 위로 창염이 타오르고, 양팔이 위로 치솟았다.
-고작 이 정도로… 나를 제압하려 하다니…!
이안의 좌우로, 이글대는 푸른 궤적이 떨어져 내렸다. 역천룡이 양팔을 백금룡의 날개에 내리찍은 것이다.
콰과과과과과-!
날개에서 뇌전과 불꽃이 폭발하듯 치솟으며 뒤엉켰다.
백금룡이 추락하지 않은 건 마력 날개 덕분일 터였다. 좌우에서 연달아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이안의 자세가 더 낮아졌다.
쿠드드드드드-
어느새 역천룡의 전신에서 번지는 진동이 그에게도 전해졌다.
두 발을 땅에 디딘 게 분명했다. 백금룡의 억눌린 포효가 이어지고, 그의 전신에 맺힌 보랏빛이 한층 더 짙어졌다. 날개를 짓누르는 양팔에 맺힌 창염도 마찬가지였다.
-곧 떨어지겠는걸.
요그가 태연하게 속삭였다. 폭발과 진동에 적응한 모양이었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은 채, 손에 쥔 용의 뼈를 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괴물들의 싸움에 끼어들어야 할 순간이 멀지 않았으니까.
‘이대로면, 어차피 이 양반이 불리할 테고.’
백금룡은 추진력을 잃고 있었다. 게다가 역천룡에게 짓눌리고 있는 날개 한복판은, 뇌전을 뿜어내는 와중에도 조금씩 타들어 갔다. 아마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리라.
콰르르르-
어느새 역천룡의 뒤편으로는 용의 뼈들이 치솟고 있었다. 무덤 가장자리까지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벽면까지 밀어붙이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용의 뼈들이 역천룡의 뒤로 점점 쌓이고 있었다.
이안이 안장에서 왼손을 뽑아 든 건 그때였다.
콰드득-
그는 동시에 두 쌍의 촉수를 내뻗어, 비늘 안장에 단단하게 고정했다. 나머지 촉수들은 전부 뽑아버리는 채였다.
쿠드드득-
품에 안은 용의 뼈를 창처럼 양손으로 고쳐 쥐며, 이안이 빠르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안장 모서리에 고정한 두 쌍의 촉수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한계까지 뒷걸음질 친 이안이 몸을 뒤로 기울였다.
저 너머, 흉흉해 보이는 역천룡의 머리를 응시한 것도 잠시.
쿠- 확-!
팽팽하게 당겨진 촉수들이 새총처럼 그의 몸을 끌어당겼다. 이안이 포탄처럼 뿜어져 나갔다.
으르렁대며 백금룡을 내려다보던 역천룡의 눈동자가, 한 박자 늦게 그에게로 돌아왔다.
-네놈…?!
허를 찔린 듯한 경악성이 이어졌다. 역시나, 이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몸을 활처럼 휜 채 머리 위로 치켜든 용의 뼈에 혼돈을 밀어 넣으며, 이안은 새파랗게 이글대는 안광을 마주 보았다.
‘너도 타후므리트처럼 반응해 주면 좋겠는데.’
내심 읊조린 이안이, 머리 위로 치켜든 용의 뼈를 힘껏 내리쳤다.
역천룡의 새파란 안광 한복판으로 보랏빛 궤적이 틀어박혔다.
꽈지지지지직-!
변이되어 거대해진 눈알을 터뜨려 버리며, 용의 뼈가 눈구멍 깊숙이 박혀 들었다.
한순간 역천룡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지고, 이안은 손을 놓지 않고 뼈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그의 전신이 용의 옆 머리에 충돌한 순간, 비로소 역천룡의 아가리가 벌어졌다.
“——–!”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발작하듯 머리를 뒤흔드는 채였다.
격렬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요그가 키득대는 웃음을 흘렸다.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인데.
치명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아픈 건 원래 이런 게 더한 법이거든.
촉수들을 뻗어 몸을 고정하며, 이안이 내심 대꾸했다. 발톱까지 역천룡의 눈두덩이에 박아 넣어 자세를 다잡는 채였다.
꾸드드득…!
뼈를 움켜쥔 양손에는 여전히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다. 눈구멍 안쪽에서 밀어내는 듯한 압력이 느껴지고 있어서였다.
역천룡이 고개를 휘저어 대는데도, 그는 악착같이 손을 놓지 않았다.
-이놈…! 떨어져라!
역천룡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번졌다. 이안을 떨쳐내는 것을 포기한 듯 움직임을 멈추는 채였다.
콰르르-
대신, 뿔에 이글대는 창염이 더 격렬해졌다. 불길을 얼굴에 뒤집어쓰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것보다, 백금룡이 불쑥 머리를 치켜드는 게 더 빨랐다.
-……!
역천룡의 팔을 떨쳐내듯 날개를 펄럭인 그가, 그대로 놈의 복부에 두 발을 내뻗었다.
콰지지직-!
뇌전이 번쩍이고, 날카로운 발톱들이 역천룡의 검은 복부를 움켜쥐듯 파고들었다. 역천룡이 또 한 번 고개를 치켜들었다.
“—–!”
비명과 함께, 뿔에 이글대던 창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놈의 옆머리에 매달려 있던 이안이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백금룡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였다.
-고맙구나, 이안.
내뱉은 아르케아스가, 그대로 입을 쩍 벌려 역천룡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푸른 불티와 열기. 그리고 뇌전이 번쩍이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이어, 역천룡의 몸이 뒤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바닥에 넘어진 건 아니었다.
콰드드드드-
놈에게 밀려나며 솟아오른 뼈들이, 어느새 언덕처럼 비스듬하게 몸을 떠받치고 있었다.
하지만 백금룡은 상관없다는 듯 날개를 접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펄럭이는 역천룡의 날개 한복판을 내리찍어 고정했다.
“—–!”
역천룡이 분노한 일갈을 토해내며 양팔을 내뻗었다. 백금룡을 떨쳐내려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백금룡 역시 양팔을 마주 휘둘러 놈의 손길을 떨쳐냈다.
실랑이는 길지 않았다. 역천룡의 검푸른 손아귀가 백금룡의 손목을 움켜쥔 것이다.
콰치치치치칫-
손아귀에서 푸른 불길이. 그리고 붙잡힌 손목에서 보랏빛 섬광이 번쩍였다. 매캐한 탄내. 일종의 교착 상태였다.
물론, 용들의 싸움은 이런 방식으로는 결판이 나지 않는 법이었다.
-이제 피하거라, 이안! 위험해…!
여전히 역천룡의 목덜미를 깨문 채, 아르케아스가 소리쳤다.
곧 다시 혼돈과 마력을 퍼부어대는 육탄전이 이어질 터였다.
하지만 이안은 그냥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꾸드드득…!
균열이 번지는 용의 뼈를 움켜쥔 그의 시선은, 힘겨루기 중인 두 용의 팔뚝 너머를 훑고 있었다.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는 데다 열기와 섬광이 이글대고 있었지만, 어쨌건 공간은 충분했다.
쿠확-!
판단을 끝냄과 동시에, 이안이 몸을 날렸다. 촉수들을 일제히 내뻗으며 쏜살같이 역천룡의 몸으로 떨어져 내리는 채였다.
-이안…?!
백금룡이 눈을 치켜뜨며 경악성을 토했다. 하지만 역천룡의 가슴팍에 착지한 이안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콰과과과과-
그저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듯 질주하며, 역천룡의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주시할 뿐이었다.
백금룡이 충돌한 여파인 듯, 구멍 주위는 움푹 함몰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 아래에서 푸르스름하게 이글대는 열기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
-꽤 따듯해 보이는데… 어디 한번, 버텨 보자고.
요그가 속삭였다. 이미 날카롭게 찢어진 입꼬리를 더 말아 올리며, 이안이 힘껏 땅을 박찼다.
쿠화악-!
열기를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구멍이 삽시에 가까워졌다. 그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너비였다.
촉수들이 연달아 아래로 뻗어 나갔다.
카드드득-
구멍 주위로 마구 틀어박힌 촉수들이, 이안의 몸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구멍이 가까워졌다. 이글대는 열기 역시 선명해졌지만, 이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촤르르륵-
뒤따라 들어온 촉수들이, 열기에서 보호하듯 그의 몸을 감쌌다. 동시에 꿈틀대며 그를 안으로 인도하고 있기도 했다.
이안은 등까지 이어진 구멍 내부가 딱딱하게 경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 말뚝에 박혀 있어서인지 변이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둘 다인지도 몰랐다.
-네 이놈…! 감히…?
라크마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안의 의도를 이제 확실히 눈치챈 모양이었다.
쿠르르- 쿠웅-!
하지만 놈의 상대는 이안만이 아니었다. 백금룡에게 공격당한 듯 놈의 몸이 들썩대고, 둔중한 충격이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이안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쿠구…! 쿠구…!
그는 촉수를 타고 전해지는 맥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라크마흐의 심장 소리였다. 전신의 혼돈이 공명하는 가운데, 요그가 불현듯 속삭였다.
-이 위쪽 같은데.
이안도 같은 생각이었다. 동시에 움직임을 멈춘 촉수들이, 동시에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안의 몸이 구멍 한복판에 고정됐다. 푸르스름한 열기가 혈관처럼 일렁이는 내부가 드러났다.
사아아아…
이안이 독수리의 발톱처럼 오므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의 양손은 불길한 암녹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불결한 손톱.
콰직-!
그의 양손이 그대로 갑피같이 단단한 구멍의 표면에 틀어박혔다.
뜨겁고 딱딱했지만, 그의 손에 닿은 순간 조금씩 부패하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완전히 녹기를 기다리지 않고, 좌우로 힘껏 찢어발겼다.
“——!”
따끔했던지, 역천룡이 일갈을 토해냈다. 동시에 가죽 표면에 맺힌 푸른 빛이 짙어지고, 내부가 더 뜨거워졌다. 이안의 전신은 이미 타르처럼 조금씩 부글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이 움직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꽈지지직-! 뿌드득!
가죽을 완전히 찢어버린 이안은 그 안의 근막까지 마구잡이로 찢어발겼다. 몸을 고정한 촉수 중 몇 개를 뽑아 그 안으로 쑤셔 넣기까지 했다.
우지직-! 까득- 까드득-!
촉수들이 근육을 마구 찢어발기며 헤집어 대고, 끝에 달린 이빨들은 쉬지 않고 앞에 걸리는 것들을 씹어 삼켰다. 이 와중에도 촉수를 통해 삼킨 살점과 혼돈이 흘러들고 있었다.
‘이젠 이 느낌도 적응이 됐네.’
소모 값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었지만, 어쨌건 조금이라도 더 이 열기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줄 터였다. 근육을 마구 찢어발기며, 이안이 역천룡의 가슴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지저분하고 비열한… 벌레 같은 짓을…!
역천룡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분노 사이로 어렴풋한 두려움이 스며 있기도 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마족이 자신의 가슴 속을 헤집으며 심장으로 다가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다른 용과 싸우는 중이기까지 하지 않은가.
콰르르르르- 쿠우웅-!
역천룡의 몸이 이리저리 들썩이고, 크고 작은 폭음과 진동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힘겨루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물론, 이안 역시 쉴 새 없이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찢어발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냥의 시간은 물론, 분노한 야성까지 활성화한 채였다.
철퍽…!
그러던 한순간, 앞을 가로막는 두꺼운 막을 찢어낸 이안이 멈칫했다. 그 너머로 거인의 두개골 같은 거대한 뼈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균열처럼 이어진 틈으로 푸른 빛이 아른거렸다.
쿠구…! 쿠구…!
심장 소리는 그 너머에서 번지고 있었다. 몸을 막 너머로 밀어 넣으며, 이안은 거대한 뼈 구체를 눈에 담았다.
용의 심장은 몇 겹의 뼈와 마법으로 보호된다지 않던가. 타후므리트를 죽일 때는 백금룡이 부숴버렸던, 심장을 감싼 뼈이리라.
주위를 감싼 막 너머로 푸르스름하게 일렁이는 덩어리들은 다른 내장들이리라.
-엄청나군… 저 안의 힘을 전부 흡수하면, 신격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몰라.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저 너머에서 전해지는 힘을 느낀 게 분명했다.
-물론, 그전에 우리가 먼저 혼돈에 잡아먹히게 되겠지만 말이야.
그럴 생각도 없거든.
촉수를 내뻗어 몸을 고정하며, 이안이 내심 혀를 찼다.
당장 중요한 건, 뼈 구체 위로 푸르스름한 진언이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쿠구- 쿠구-
심장 박동이 더 선명해지고, 일대의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게 라크마흐가 자신의 심장을 지키는 방식이리라.
‘하긴. 뭐든 익혀 버리면 그만이겠지.’
생각하며, 이안은 촉수를 움직여 뼈로 다가갔다. 불결한 손톱을 다시금 활성화한 채였다.
카드드득-! 콰지직-!
심장을 감싼 뼈 위로 손톱과 주먹, 그리고 촉수들이 연달아 틀어박혔다. 하지만 뼈에는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카가각-!
심해의 이빨도 피의 칼날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표면의 푸른 진언만 일렁일 따름이었다. 보호 마법이리라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구. 이러다 우리가 먼저 다 타버리겠어. 그냥 이건 타락한 잔소리꾼에게 맡기고, 우린 나머지 내장들을 다 찢어버리는 게 어때? 혼돈도 좀 삼키고 말이야.
이윽고 요그가 속삭였다. 빈말이 아닐 터였다. 이 순간에도 그의 몸에서는 보랏빛 아지랑이가 번지고 있었으니까.
꽤 합리적인 제안이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장이나 썰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친구.
이윽고 이안이 움직임을 멈추자, 요그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두 갈래 혀를 날름댄 이안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얼굴을 움켜쥐었다.
-설마, 가면을 벗으려고?
요그가 그제야 놀란 듯 내뱉었다.
…그래. 속으로만 대꾸하며, 이안이 손아귀에 힘을 줬다.
저 진언과 용의 뼈를 자르는 데에는 아무래도 용의 무구가 더 유용할 것 같아서였다.
물론 이 열기나 퇴로 확보 같은 문제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이미 몇 가지 대응책을 급조해 둔 상태였다.
-잠깐만… 친구.
요그가 끼어든 건, 이안의 손톱이 안면을 파고들기 시작한 직후였다.
-그러지 말고, 내게 이 몸을 잠시 넘겨주는 게 어때? 그러면 잠깐 정도는, 우리가 분리되고서도 이 융합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멈칫한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녀석이 재빨리 덧붙였다.
-다른 생각은 없어. 게다가 안 될지도 모른다고. 한번 해보자는 것뿐이지.
…밑져야 본전이라는 거지.
이윽고 내심 읊조린 이안이 손을 늘어뜨렸다. 간섭하듯 선명해지는 요그의 의식을 밀어내지도 않는 채였다.
카드득…!
뻗어 나간 촉수들이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몸이 더 떠오르는 가운데, 그의 양손이 자신의 복부로 향했다.
꽈드득…!
날카로운 손톱 끝이 복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요그가 배를 가르듯 양팔을 벌렸다. 이안의 의식이 몸속으로 쑥 빨려 들어간 건 바로 그때였다.
“……!”
삽시에 감각이 되돌아왔다.
이안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는 서늘하고 끈적한 보랏빛 어둠 속에 웅크린 채였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꽈지직…!
머리 위에서 섬뜩한 소리가 이어졌다. 요그가 여전히 자신의 몸을 반으로 찢고 있었다.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뜨거우니까, 조심하라고.
…이게 정말 될 줄이야.
내심 읊조리면서도, 이안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몸속에는 여전히 용의 마력이 가득했다. 전신에 걸친 장비들도 그대로였다.
오른손을 움직여 허리춤으로 가져간 그가, 뒤이어 검 자루를 움켜쥐며 힘껏 상반신을 일으켰다.
꾸드득… 푸확-!
이안의 상반신이, 고치를 뚫고 나오듯 융합체의 복부 밖으로 솟아올랐다. 이글대는 바깥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는 어느새 푸른 마력이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쉬하악-!
그가 왼손을 내뻗은 다음 순간, 주위로 냉기 파장이 터져 나왔다.
용의 마력으로 증폭된 채로도 공기를 미지근하게 만드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끈적임을 떨치듯 일어서며, 이안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검집에서 빠져나온 순간부터 번지기 시작한 진언이, 샛노란 마력의 칼날이 되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