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30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30화(630/655)
#630화
이안은 첫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자신이 늪지대의 남쪽 외곽에 소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숲에서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 소굴로 변한 판자촌 일대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범죄자나 환자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은, 저주받은 밀림의 반대편인 남쪽과 아겔 란으로 이어지는 동쪽에 주로 모여 있었다.
‘이제 보니 판석도 그렇고, 귀쟁이 들이 그 근처 숲을 비워 둔 것도 그렇고….’
숲 어딘가에 용의 별장이라도 있었던 건가.
새삼스럽게 읊조리며, 이안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주받은 밀림이라 불리는 고대 요정의 숲은, 늪지대 서쪽부터 북쪽으로 이어졌다.
그가 외곽을 벗어나, 늪지대를 가로지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철퍽… 스스슷…
뒤편에서 번지는 기분 나쁜 소리에도, 이안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늪에서 기어 나온 것들이 그가 토막 낸 망자들에게 다가가는 소리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즐거운 시간이 되겠는걸.
요그의 웃음 섞인 속삭임이 그의 예상을 확신으로 바꿔줬다.
늪지대에 일어난 변화는, 이안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래도 썩은 웅덩이처럼 고여 있던 늪들은 더 넓고 위험해졌다.
변이된 수초들이 떠다니고 정체 모를 괴물들이 헤엄쳐 다녔다.
중독과 질병을 유발할 게 분명한 악취 섞인 물안개는 덤이었다.
그 주위로도 팔뚝만 한 거머리나, 숙주가 된 망자들이 기어다녔다.
물론, 늪에서 떨어진 곳에도 변이된 마물들과 마수화 된 벌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전형적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이안은 순조롭게 늪지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비단 그가 마경의 환경에 익숙해졌으며, 그런데도 방심하지 않은 덕분인 것만은 아니었다.
-저 안쪽 어딘가에 혼돈을 제대로 품은 놈이 있는 것 같아. 아주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나.
이안을 거슬리게 하는 와중에도, 요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덕분에 기습을 당할 일도, 무심결에 마경에 발을 들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너는 그냥 지나치겠지. 물론.
잘 아네.
속으로만 대꾸하며, 이안은 품에서 꺼낸 육포 조각을 입에 넣었다.
늪지대의 마물들이 경험치를 주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조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예전에 정말 크게 데였나 보네.
요그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육포를 우물대며,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크게 데이긴 했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저주받은 밀림은 발만 들여도 죽는 곳이 아니었다. 변이되어 가는 나무들이 경고판처럼 한참을 이어졌으니까.
그걸 무시하고 계속 들어가야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나무들과 미친 요정들. 그리고 놈들이 키우는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들이 아니야.”
이안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그때의 그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나오지 않았던가.
밀림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저주의 근원이 되는 마경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긴 했다. 만약 우연히라도 마경에 다다랐다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어쨌건, 목적지를 발견할 때까지 저주받은 밀림을 배회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긴… 그래. 세상에 균열이 일어난 거니까. 하지만 말이야, 친구. 이렇게 오랜 시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태는 아닐 거야.
요그가 속내를 짐작한 듯 속삭였다. 이안이 육포를 한 조각 더 입에 넣으며 읊조렸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는 거지.”
늪지대에도 광기와 혼돈이 스미지 않았는가. 게다가 검은 벽이 무너진 여파가 대륙 전체로 번지기까지 했다. 균열에도 뭔가 영향을 끼쳤을 확률이 높았다. 균열이 만들어낸 마경과 마경을 감싸고 있는 밀림의 저주도 마찬가지이리라.
“미리 힘 뺄 생각 없으니까. 미련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이안이 우물대며 말을 맺자, 요그가 수긍하듯 웃음 지었다.
-욕심을 버리는 게 쉽지 않아서 말이야…. 네 말대로 균열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도, 그게 무조건 나쁜 일인 건 아니야. 친구.
이안은 콧방귀만 뀌었을 뿐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그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그만큼 내가 균열의 위치를 찾아내기는 쉬워질 테니까.
이안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예상외로 꽤 설득력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반응이 만족스러운 듯, 요그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나만 믿으라고. 물론, 걱정하진 않아도 돼. 최선을 다해서-
“걱정 안 해.”
말을 자른 이안이, 턱을 까딱이며 덧붙였다.
“믿으니까, 열심히 해 봐.”
평소와 달리,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안이 늪 외곽을 완전히 벗어나고 나서야,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그래. 그러지.
감동한 척은. 내심 콧방귀를 흘리면서도, 이안은 칙칙한 풀숲과 낮게 깔린 안개 사이를 나아갔다.
예전처럼 밀림 근처에만 안개가 서린 게 아니어서,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직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인간의 생명력이란…
조용해졌던 요그가 다시 속삭인 건,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어딘가에 숨은 생존자의 냄새를 맡은 것이리라.
늪지대의 모든 주민이 목숨을 잃은 건 아니었다. 아주 드물지만, 생존자가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이안의 기척을 느끼면 숨거나 도망치기에 바빴다.
“새삼스럽긴.”
검은 땅에도 사람이 사는데.
이안이 심드렁하게 읊조렸다.
어쨌건 생존자들이 도망치는 건 그에게도 달가운 일이었다. 다가온다면 죽여야 할 테니까.
그들이 대부분 인간쓰레기여서가 아니라, 순수한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커서였다. 깨닫지 못했을 뿐, 이미 광기에 물들고 있으리라.
-꽤 여럿이라 한 말이야.
이어진 속삭임에, 이안의 눈매가 슬쩍 꿈틀댔다. 주위를 돌아보던 그가, 이윽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아, 그래… 이제 상황이 역전된 거군.”
주위에 깔린 안개의 질감이 조금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나무들의 형태가 조금씩 뒤틀리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아서였다.
줄기의 무늬나 나뭇가지의 형상이, 망령을 떠올리게 했다. 저주받은 밀림 인근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듯, 늪지대의 마물들은 여전히 밀림 근처로는 접근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늪지대의 생존자들에게는 일종의 울타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리라. 물론, 광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예상대로, 숲의 저주도 더 심해진 거고.”
나지막이 덧붙이며, 이안이 멈춰 섰다. 흑검을 검집으로 되돌리고, 왼쪽 견갑으로 손을 가져가는 채였다.
-그렇다니 기대되긴 하는데… 그건, 왜 벗는 거야?
웃음 짓던 요그가 이내 물었다.
양쪽 견갑을 다 분리해 아공간에 넣은 이안이, 흉갑의 고정쇠를 억지로 풀며 대꾸했다.
“그래야 몸이 가벼울 테니까.”
살아 움직이는 나무들과 요정 추적자들이 득시글대는 밀림을 가로질러야 하지 않던가.
아무리 능력치가 높아졌다고 해도, 육중한 장비들을 걸치고 종일 달릴 수는 없었다. 심지어 추가 효과들이 모조리 사라진 쇳덩이들이 아닌가.
-아, 죄다 죽이면서 갈 생각이었던 게 아니군.
요그가 그제야 읊조렸다. 벗은 흉갑을 아공간에 넣으며, 이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나 혼자 밀림을 전부 상대해?”
어떤 의미에선 강대한 하나의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터였다.
흑검과 창백한 벼락의 단검이 고정된 허리띠를 분리한 이안이, 각반을 벗기 시작하며 덧붙였다.
“그냥, 불장난만 하면서 지나갈 거야.”
…본의 아니게 성대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안이 내심 덧붙이는 사이, 요그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그건 마음에 드는 계획이네. 아주 위험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각반에 이어 무릎 보호대까지 벗어 아공간에 넣은 이안이, 허리띠를 집어 들며 자세를 바로 했다.
아직 몸에 걸친 장비는 사슬 장화. 그리고 왼손의 판금 장갑과 팔목 보호대가 전부였다.
“혼자니까 가능한 짓이지.”
허리띠를 얇은 천 옷 위에 고정한 이안이, 비로소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장비를 거의 다 벗어버린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확실히 더 가벼웠다.
“…….”
물론 그의 눈빛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주위의 나무들은 점점 더 빽빽해지고, 불길하게 뒤틀리는 중이었으니까. 안개 깔린 칙칙한 어둠이 그의 전신을 뒤덮어 갔다.
좋지 않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에는 충분한 광경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이안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
숲의 어둠 너머에서 날카로운 괴성이 메아리치기 시작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막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였다.
“…예상보다 빠른데.”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이안이 읊조렸다. 정신 나간 늪지 요정들이 내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놈들은 살아 움직이는 나무 위를 내달리면서, 화살과 단검을 쏴댔다. 그리고 나서는 저런 괴성을 내지르며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숲에서 도망쳐 나온 뒤에도, 한동안 악몽으로 등장하던 광경이었다.
‘확실히, 그때만큼 두렵진 않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이윽고 이안이 내심 읊조렸다.
혹시 트라우마라도 남은 게 아닐까 내심 염려했건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그보다 끔찍한 기억이 잔뜩 덧씌워지지 않았던가. 정신력 수치 역시, 용과 마주해도 멀쩡할 만큼 높아졌고.
-호오… 제법 많은데.
요그가 속삭이는 가운데, 이안의 눈동자에 불그스름한 마력이 감돌았다.
곳곳에서 메아리치는 비명은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경험으로 놈들이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차하면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어 주며 달릴 생각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안은 성큼성큼 숲의 어둠을 가로질렀다.
“……?”
그의 한쪽 눈매가 슬며시 일그러진 건 십여 분쯤이 더 지나서였다.
어느새 주위의 어둠이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변이된 나무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채찍처럼 날아들지도, 뾰족한 아가리가 돋아난 열매가 떨어져 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곳곳에서 꿈틀대기만 할 뿐이었다.
“—–!”
“—-!”
늪지 요정들의 비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작 날붙이가 날아들거나 짐승처럼 달려들었어도 이상하지 않건만. 그저 주위를 어지럽게 맴돌 뿐이었다.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비로소 묘하게 치켜 올라갈 찰나.
-이거, 불장난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친구.
요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말투였다.
“그러게.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정말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풀릴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이안이 내심 말을 맺었다.
밀림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어서였다.
퀘스트 때문인지, 그가 백마법사의 뒤를 이을 자격을 갖췄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어느 쪽이건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불을 질러도 저렇게 조용할지, 궁금하지 않아, 친구?
이어진 은근한 속삭임에, 이안이 곧바로 코웃음을 흘렸다.
“전혀. 네 역할에나 집중해.”
이 밀림은 마경으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 과정에 순탄해진 건 물론 좋은 일이었지만, 방심하기에 한참은 일렀다.
-내가 기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너무 다른데….
탄식하면서도, 요그가 못 이긴 척 머리를 치켜들었다.
-어쨌든, 저쪽에서 뭔가 느껴지는 것 같아. 아주 희미하지만… 일단, 가보자고.
…난 아직 전혀 모르겠는데.
내심 읊조리면서도, 이안은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선선히 걸음을 옮겼다. 끝없이 펼쳐진 밀림의 어둠이, 불길하게 꿈틀대며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