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41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51화(641/655)
#651화
휘이이이-
언덕 위에서 불어온 바람이, 비스듬하게 능선을 오르는 마차를 훑고 지나갔다.
다각- 다각-
늑대 털가죽을 뒤집어쓴 백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관도를 나아갔지만. 마찬가지로 털가죽으로 만든 두건 망토를 뒤집어쓴 나세르는 목을 움츠렸다.
“확실히, 점점 더 추워지는군요.”
읊조린 그가 마차 옆, 모로에 탄 이안을 돌아보았다. 일행들과 달리, 이안과 모로는 방한 장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불사자의 두건 망토로 몸을 반쯤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이미, 중앙의 한겨울과 비슷한 것 같지만 말입니다.”
“축복까지 받고 온 놈이 엄살은.”
이안이 낮은 코웃음을 흘렸다.
관도 좌측으로 펼쳐진 앙상하고 음산한 검은 숲을 응시하던 그가, 이내 손에 든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렇게까지 치안이 좋아졌을 줄은 몰랐는데….’
여전히 마물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단, 이 숲이 장벽 근방이어서는 아닐 터였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일행은 마물을 마주친 적이 거의 없었다.
밤마다 숲의 어둠을 배회하던 망자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북부가 내부 청소를 말끔하게 끝냈거나, 아직 어딘가에 남은 마경이 마물을 빨아들인 것이리라.
물론, 둘 다일지도 몰랐다.
“그건 사실이긴 합니다만….”
대꾸하는 나세르의 미소는 평소와 달리 씁쓸했다.
“추운 건 딱 질색이라서 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짝귀.”
마차 안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번졌다. 풀 냄새 섞인 연기와 함께 좌측 창문 밖으로 손을 내민 테사이아가, 궐련의 재를 털며 말을 이었다.
“흡혈귀였던 때가 떠오르거든. 한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늘 이런 느낌이었어.”
“참 힘드셨겠습니다. 원로.”
나세르가 태연하게 화답했다. 테사이아가 다시 궐련을 입에 물며 미소 지었다.
“그래. 네가 섬기던 원탁 의회가 날 그것들에게 넘긴 덕분이지.”
나세르의 미소가 멈칫 굳어지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이내 입맛을 다신 그가 입을 열었다.
“여러모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저는 정말로-”
“알아. 몰랐던 거. 어쨌든, 뭐.”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내뱉은 테사이아가, 창문 너머로 이안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야. 어쨌든 이렇게 살아남아서, 원로까지 됐으니까. 이안 덕분이지.”
이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테사이아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였다. 궐련의 연기를 뿜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던 테사이아가, 이윽고 입꼬리를 조금 더 말아 올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나만 이안 덕분에 살아남은 게 아니네. 안 그래, 빨강 머리…?”
그녀가 우측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털가죽으로 만든 망토를 두른 채 묵묵히 나아가고 있던 메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살아남고 복수에 성공한 건 이안 덕분이지.”
“…굳이 따지자면 저도 그렇군요. 나리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덕분에 이 자리에 있으니까요.”
메브의 시선을 받은 나세르가 덧붙이는 가운데, 테사이아의 맞은편에 앉은 루시아가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쩌면 저도 그런 걸지도 몰라요. 본래 제가 팔려 가게 되었을 가문을 두고, 음험한 소문이 도는 모양이더라고요.”
“어머. 그래…?”
테사이아가 그녀를 마주 보며 물었다. 그녀가 내민 궐련으로 손을 뻗으며,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대륙 각지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불러들인다더군요. 하지만 들어간 아이들은, 가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루시아가 멈칫한 건, 궐련이 손가락 사이에서 스르륵 빠져나가 창문 밖으로 날아가서였다.
검지와 중지로 가까워진 궐련을 붙잡으며, 이안이 내뱉었다.
“그 소문은 또 언제 들었냐.”
“이번에요. 예전에 혹시 언젠가 또 저를 붙잡으러 오지 않을까 싶어서, 원장을 통해 중앙의 정보상에 의뢰를 넣었었거든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도, 루시아가 대답했다.
“제가 실종된 사이에 도착한 서신들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라르무트는, 여러모로 수상해요.”
궐련을 입에 문 이안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잘 안다고 속으로만 읊조리는 채였다.
“그럼 전부 이안 덕분에 산 거네. 뭐,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지. 북부만 해도 봐. 화로의 사원도, 이안이 동생을 데려다준 덕분에 재기한 거잖아.”
그가 궐련의 연기를 들이마시는 사이, 테사이아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야인들을 이주시킨 것도 이안이지. 그것도 딱, 그 망자 군단의 이동 경로에 있던 가장 큰 부족을 말이야. 게다가 벨리움에서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비로소 미간을 설핏 찌푸린 이안이 말을 잘랐다.
궐련의 연기를 뿜으며, 그가 테사이아를 돌아보았다.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말해.”
“뭐… 대륙은 그렇다 쳐도, 이 정도면 북부 정도는 네가 손에 넣어도 문제없지 않겠냐 이거지.”
테사이아가 보란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며칠 잠잠하다 싶더니. 생각하며 낮게 혀를 찬 이안이 내뱉었다.
“그 얘긴 그만하기로 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서 말야. 북부는 커다란 병기고나 다름없잖아?”
어깨를 으쓱인 테사이아가 동의를 구하듯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여길 손에 넣으면, 우리 세력이 더 강해질 거라고. 안 그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세르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과 눈이 마주친 그가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원장께서 먼저 그 말씀을 꺼내신 건, 그 무엇보다 의미가 큽니다. 대공의 정통성을 입증할 가장 큰 지지 세력 중 하나가 등을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만하거라, 나세르.”
메브가 낮고 엄중한 말투로 내뱉었지만, 나세르는 꿋꿋이 말을 끝마쳤다.
“군단 사령관 몇 명 만 등을 돌려도, 대공의 지배력은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맞아요. 원장은 진심이셨어요.”
루시아의 목소리가 곧바로 이어졌다. 이안의 코에서 한숨 섞인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그는 체르윈과 나눈 대화를 일행에게 전하지 않았다. 일행들이 알게 된 건, 체르윈이 밤중에 따로 루시아를 불러 말을 전해서였다.
“이안 님만 결심을 굳히신다면 언제라도 돕겠다고 하셨으니까요.”
“…북부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황명이 없다면 반란에 불과해.”
이윽고 이안이 내뱉은 말에, 테사이아가 낮은 코웃음을 흘렸다.
“전쟁이 시작되면,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걸?”
“내가 써. 대공이 헛짓을 벌이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 거야. 아무리 내가 거슬려도, 내 지지를 거부할 만큼 멍청하진 않겠지.”
“뭐…?”
“뭐라고요?!”
이안이 덧붙인 말에, 테사이아와 나세르가 거의 동시에 눈을 치켜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루시아는 물론, 묵묵히 듣고만 있던 메브도 마찬가지였다.
테사이아가 곧이어 내뱉었다.
“그자가 야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알면서도, 먼저 손을 내밀 거라고?”
“그래. 전쟁이 코앞이니까.”
이안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알력 다툼 따위로 북부를 분열시킬 생각은 없었다.
북부의 상황을 정리한 뒤에, 최대한 빨리 최고 레벨을 달성하는 쪽이 훨씬 더 건설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불길한 예지를 피할 가장 확실한 방법 같았으니까.
그 대머리와 손을 잡는 건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였다.
“게다가 난 영토를 다스리는 방법도 몰라. 대신해줄 사람도 없는데, 일이나 배우면서 북부에 발이 묶여 있을 생각은 없어.”
말을 멈추고 궐련의 연기를 들이마신 이안이 테사이아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당장은 하던 작자가 계속하게 두는 게 최선이야.”
“아니… 하지만….”
“싸움이 없어서 심심한 건 알아. 테사. 하지만 이 문제는 그만 포기해.”
말을 자른 이안이 의념으로 궐련을 테사이아에게 되돌려보냈다.
빙글 돌린 궐련을 그녀의 입에 물려주면서, 이안이 말을 맺었다.
“머잖아 싫어도 싸워야 할 순간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궐련을 입에 문 테사이아가 대답 없이 연기를 들이마셨다. 콧잔등만 씰룩대는 채였다. 신경도 쓰지 않고 루시아를 돌아본 이안이 덧붙였다.
“넌 사원을 지키면서 밀린 공부에나 집중하고. 그러기로 약속했잖아. 위험한 모험은 충분히 했어.”
“…네.”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 루시아가, 손에 든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안은 이미 마차 지붕 너머로 메브를 돌아보고 있었다.
“…….”
다른 이들과 달리, 그녀는 염려하지 말라는 듯 빙긋 미소 지을 뿐이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이안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세르에게로 향했다.
“넌 네 할 일이나 준비해.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눈을 끔뻑인 나세르가, 이안을 따라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연갈색 눈이 커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
어느새 마차는 능선을 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저 너머에 높다랗게 솟은 회백색 장벽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게 바로 그… 북부 장벽이군요….”
황무지처럼 변하는 저 너머에서부터 먼 바위산 능선까지 이어진 장벽을 돌아보며, 나세르가 감탄하듯 읊조렸다.
“실제로는 처음 보나 보지?”
이안이 내뱉었다. 그의 시선은 장벽 한복판. 벽면에 기댄 것처럼 솟은 관문 요새와 그 주위를 둘러싼 성벽을 훑고 있었다.
나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군요….”
마차 문이 벌컥 열린 건 거의 동시였다.
“하여간. 꼭 이렇게 중앙에서 곱게 자란 티를 낸다니까.”
내뱉으며 상반신을 내밀고 선 테사이아가, 열린 문 위에 양팔을 걸쳤다. 놀란 듯 투레질하는 모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였다.
장벽을 빤히 눈에 담은 테사이아가 옆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처음 보는 요새인데. 여기가 몇 번 요새랬지, 이안?”
어느새 다시 술병을 입에 문 이안이 어깨만 으쓱였다. 저 요새의 이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원장이 말했듯, 설원의 흉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들이 닝글로슬이 아닌 이 관문 요새를 지나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주둔 중인 병력이 그리 많지는 않네.”
메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녀는 나세르와 마찬가지로 감탄하는 눈빛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장벽 위와 요새를 훑어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지금도 충분히 많은 것 같은데. 이젠 거인 왕국이 부활할 일도 없는데 말이야.”
궐련을 입에 문 채 내뱉은 테사이아가 눈을 슬며시 가늘게 떴다.
“야인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감시 중인 건가?”
“그것도 목적이긴 하겠습니다만. 어쨌건, 설원에서 내려오는 마물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죠.”
대꾸한 건 나세르였다.
해자도 없이 솟은 네모반듯한 성벽과 장벽과 마찬가지로 투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요새를 바라보며, 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게다가 요새와 성벽은 방치되면 낡아지는 법입니다. 경계와 순찰 근무를 서는 것만으로도, 군 기강을 확립하는 효과도 있겠고요.”
“흉지가 밀집된 방향을 물어봐 줘. 루시.”
이안이 열린 문 너머를 돌아보며 말한 건 그때였다.
마부석 쪽 간이 창문으로 장벽을 보고 있던 루시아가 돌아보는 가운데, 그가 덧붙였다.
“길잡이 하나 데려갈 수 있으면 더 좋고.”
“…네. 말해볼게요.”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일단 그녀의 신분으로 관문을 통과할 계획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귀찮아지지 않기 위한 습관적인 결정이었다. 물론, 이완의 귀환 소식이 사원장이 알리는 것보다 빠르게 대공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섞여 있었다.
“곧 저쪽에서도 우리를 발견할 것 같은데. 들어들 가 있어.”
이내 이안이 내뱉었다. 궐련을 입에 문 테사이아가 선선히 다시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창문 사이로 루시아에게 궐련을 내미는 모습이 설핏 보였다.
‘하여간….’
혀를 차면서도, 이안이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의 시선을 받은 메브 역시 두건을 덮어쓰고 안면 가리개를 내려 얼굴을 가렸다.
“목이 잠기는군요.”
이안에게 받은 술병으로 목을 축인 나세르가, 낮게 헛기침했다.
그다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녀석이 지금 일행의 입이었다.
다각- 다각-
장벽의 반도 되지 않는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가 점점 가까워졌다.
관도에서 이어진 출입구는 열려 있었다. 이쪽으로 적이 접근하는 일은 좀처럼 없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성가퀴 너머로 듬성듬성 선 쇠뇌를 든 병사들 역시, 그저 통행 확인을 위해 배치된 인원들일 터였다.
“정지-!”
성벽 위에서 우렁찬 외침이 번진 건, 일행의 마차가 적당히 가까워진 때였다. 나세르가 고삐를 당겨 멈춰 서는 가운데, 관문 조장의 외침이 이어졌다.
“성문을 넘으려면 먼저 신분을 밝히시오!”
엄중하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관문을 오간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들은 대로, 야인을 제외한 이들의 통행은 여전히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다.
“마차 안에는 화로의 사원의 부원장이자 타오르는 여신의 사도이신 루시페르 애쉬 리우렐 사제님과 남부 요정 가문의 귀빈이 타고 계십니다!”
허리를 곧추세운 나세르가 외쳤다. 두건을 벗고 관문 조장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채였다. 강철 투구를 눌러쓴 관문 조장의 눈매가 슬며시 좁아졌다.
“루시페르…?”
이안은 그가 읊조리는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다. 쇠뇌를 든 경비병 몇몇도 눈을 부릅뜨며 서로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두건 아래, 이안의 눈매가 슬며시 가늘어졌다.
‘루시가 누구인지 아는 거군….’
하긴. 루시아는 그와 함께 검은 벽을 넘지 않았던가. 그 소식이 북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는 건 이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신분을 증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윽고 관문 조장이 물었다. 의문이 섞이긴 했지만, 어쨌건 한층 더 정중해진 목소리였다.
“사원에서 받아온 증명서가 여기 있습니다!”
나세르가 망토 사이에서 잘 접힌 양피지를 꺼내 머리 위로 들었다. 화로의 사원에서 받아온, 루시아의 새로운 신분증명서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직접 내려가 확인하겠습니다!”
소리친 관문 조장이 몸을 돌렸다. 병사 몇이 그의 뒤를 따라 성벽 너머로 사라졌다.
“…기강이 해이하진 않군요.”
나세르가 마부석 옆으로 내리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이안은 낮은 콧방귀로 대신 대답했다.
그가 보기엔 정말 루시아가 맞는지 직접 확인하려는 의도 같았기 때문이다. 상인 같은 자들은 성문 아래에서 증명서를 펼쳐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었으리라.
철컥- 철컥-
곧 열린 성문 너머에서 관문 조장이 달려 나왔다. 뒤편으로 쇠뇌를 던 병사 몇을 대동한 채였다.
코를 가리는 강철 투구를 눌러쓴 병사들은 꽤 훈련이 잘된 상태 같았다. 이안과 메브를 돌아보는 눈빛들이 서늘했다.
“증명서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병사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늘어서는 가운데, 멈춰선 관문 조장이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나세르가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쇠뇌를 든 채 모로를 훑어보던 병사의 시선이 이안에게 고정된 건 그때였다. 눈을 가늘게 뜬 병사가 갸웃거리던 고개를 옆으로 슬쩍 기울였다.
두건 아래, 이안의 눈매가 설핏 꿈틀댔다.
“여기 있습니다.”
그사이, 나세르가 증명서를 관문 조장에게 건넸다. 관문 조장이 양피지를 펼치려는 찰나.
“허억…!”
병사가 급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눈을 치켜뜨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이안의 눈매가 조금 더 일그러지는 가운데, 멈칫한 관문 대장이 그를 돌아보았다.
“왜. 뭔가 문제라도 있나?”
“그, 그…!”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진 병사가 아랫입술만 달싹댔다. 손에 든 쇠뇌를 축 늘어뜨리고, 시선은 여전히 이안에게 고정한 채였다.
투구 아래, 관문 조장의 눈매가 뾰족해졌다.
“그, 뭐? 똑바로 말해!”
“그, 그분입니다…!”
비로소 내뱉은 병사가, 손에 든 쇠뇌를 땅에 떨어뜨렸다. 이어 그대로 땅에 두 무릎을 꿇으며, 그가 소리쳤다.
“북부의 위대한 초인…! 천둥과 번개의 대전사가 돌아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