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47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57화(647/655)
#657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도 않는 것 같고.”
마차 뒤편으로 멀어지는 얼어붙은 나뭇가지들을 올려다보며 덧붙인 그녀가, 술병을 입에 물었다.
그녀가 독주를 삼키는 사이, 옆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금 덜 춥고, 덜 흔들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입니다.”
망토와 두건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누운 나세르였다.
테사이아가 뒤로 돌아앉아 있듯, 그 역시 머리를 마부석 쪽으로 향한 채였다. 술병을 입에서 뗀 테사이아가 낮은 실소를 흘렸다.
“사도였던 주제에 나약하긴.”
“또 가장 아픈 곳을 찌르시는군요.”
얼굴만 밖으로 드러낸 나세르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여전히 제 육신에 은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그때만큼 강건한 건 아닙니다. 원로.”
“그럼 여기서 궁상떨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던가.”
“부원장께서 주무시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덜컹대는데, 분명 부딪혀 깨우게 될 겁니다.”
나세르의 심드렁한 대답에 의외라는 듯한 미소를 지은 테사이아가, 술병을 그의 얼굴 위로 내밀었다.
“그럼 이거라도 마셔. 축복만큼 속이 따듯해질 테니까.”
“대신 정신이 혼미해지긴 합니다만….”
말과 달리 망토 사이로 손을 내밀어 술병을 받아 든 나세르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따듯한 차가 그립군요. 마지막으로 문명의 맛을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어진 한숨 섞인 목소리에, 테사이아는 코웃음만 흘리며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나뭇가지들을 올려다보았다.
그사이 독주를 한 모금 들이켠 나세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마차 뒤편을 내려다보았다.
“…하긴. 저 두 분이 가장 피곤하실지도 모르겠군요.”
마차 뒤를 따라 나란히 달리는 두 기수를 바라보는 채였다. 물론, 각자의 말에 탄 이안과 메브였다.
그의 손에서 술병을 낚아채며, 테사이아가 내뱉었다.
“너한텐 지금 저게, 고생하고 있는 거로 보여?”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달리는 말의 안장에 종일 앉아 있는 건, 그것만으로도 노동입니다.”
“함께 달리는 상대에 따라 놀이로 변할 때도 있는 거야.”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를 돌아보는 이안과 메브를 내려다보며 읊조린 테사이아가, 이내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난 아직도 저 무뚝뚝한 빨강 머리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술을 다시 들이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본 나세르가, 특유의 묘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혹시, 질투하시는 겁니까?”
“질투…?”
코웃음과 함께 술잔을 입에서 텐 테사이아가, 바람에 흩날리는 긴 은발을 쓸어 넘겼다.
“아무리 신의 사도라도, 원로 요정인 내가 인간에게….”
말을 멈춘 테사이아의 눈매가 꿈틀댔다. 불어오는 바람에 눈이 섞이기 시작한 것을 깨달아서였다.
“…….”
“…….”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작된 현상이었다. 서로를 일별한 둘의 고개가, 마차 정면 쪽으로 돌아갔다.
휘아아아아-
어둑어둑해지는 저 너머에서 눈 섞인 바람이 밀려들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떴던 테사이아의 시선이, 두건을 눌러쓰고 마부석에 앉은 뒤통수로 내려갔다.
“아직 눈보라가 칠 때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 털보?”
“예…? 아, 예…!”
화들짝 내뱉은 털보, 칼렙이 정면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덧붙였다.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아직 눈이 내리기에는 이른 시기-”
“그럼 이건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거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자른 테사이아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칼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이르긴 합니다만, 흉지 외곽에 접어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아마도 마경이 시작될 겁니다.”
“…싸움을 준비해야겠군요.”
눈을 가늘게 뜬 나세르가 내뱉었다. 내용과 달리 평소와 다름없는 태연한 말투였다.
“마경에 접어들면 마차를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칼렙의 목소리가 이어진 건, 테사이아가 술병의 마개를 닫는 때였다. 테사이아의 미간이 꿈틀댔다.
“뭐라고?”
“지금은 길을 따라 달리고 있습니다만, 광기의 근원을 제거하려면 저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뾰족해진 것을 느낀 듯 곧바로 내뱉은 칼렙이, 우측의 숲을 일별했다.
“저 안까지 마차를 몰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흐응… 그래…?”
고개를 주억거린 테사이아가, 묘한 기대감을 품은 눈으로 마차 뒤편을 돌아보았다.
“들었지, 이안? 길잡이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까?”
이안은 어느새 마차 뒤편 가까이 따라붙은 상태였다. 테사이아의 눈을 올려다본 그가, 턱을 까딱이고는 안장 위로 일어섰다.
쉬학-
눈보라가 몰아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균형을 잡은 그가, 곧바로 힘껏 도약했다. 모로는 물론 전혀 비틀대지 않았다.
터억-!
포물선을 그리며 가까워진 이안이, 망토 자락을 펄럭이며 마차 지붕에 착지했다. 살짝 구부렸던 무릎을 편 그가, 테사이아의 곁으로 다가서며 내뱉었다.
“저 안쪽까지 정찰을 돌았었나?”
“……!”
이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칼렙이, 뒤이어 고개를 치켜들었다.
“예, 대전사…! 봄까지만 해도 흉지가 이렇게까지 넓지는 않았습니다!”
테사이아나 나세르가 물었을 때와 달리, 두건을 젖히며 뒤를 돌아보는 채였다. 테사이아의 손에서 술병을 받아 드는 이안을 올려다보며, 그가 마차 우측을 가리켰다.
“수색병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저 안쪽 어딘가에 광기의 근원이 깃들어 있을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술병의 마개를 열었다. 눈보라 치는 어둠 너머를 응시한 그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며 덧붙였다.
“다음 마경은 어느 쪽이고?”
“길을 따라 정면으로 쭉 나아가도 다른 근원이 있긴 하겠습니다만…”
대답하며 한차례 주위를 돌아본 칼렙이, 이윽고 마차 좌전방 쪽을 가리켰다.
“야인 토벌대와 합류하려면 갈림길에서 저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겁니다.”
“임무를 잊지 않았군. 훌륭하네.”
술병을 입에서 떼며 내뱉은 이안이 턱을 까딱였다.
“마차는 안 버릴 거다. 속도 줄이고, 길을 따라가.”
“예…? 아, 예! 대전사!”
고개를 갸웃했던 칼렙이, 뒤이어 냉큼 대답했다. 그가 한 손으로 쥔 고삐를 당기자, 달리던 백마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다각- 다각-
물론 칼렙이 보기에는 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마경에 접어들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마물들의 공격을 받게 될 터였다.
“…그냥 지나치시려고요?”
이안이 술을 한 모금 더 마시는 사이, 나세르가 물었다. 술병을 입에서 뗀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차만 그냥 지나갈 거야. 나와 경만 안으로 들어가서 근원을 정화하고 돌아올 거다.”
“뭐라고…?”
“예?!”
그를 올려다보는 테사이아가 미간을 찌푸리는 가운데, 눈을 치켜뜬 칼렙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두 분만 저 안으로 들어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안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경악이 감돌고 있었다. 물론 대전사가 반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간인 그에게는 무모하게만 느껴지는 일이었다.
“둘이 아니에요. 셋이죠.”
마차 문이 열리면서 낭랑한 목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동시에 두건 망토를 단단하게 눌러쓴 루시페르 사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신께서 은총을 내리셨어요. 마경을 불태우라는 뜻이겠죠.”
지붕 위의 이안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주황색으로 빛났다.
“제가 가야, 언니의 검에 축복을 내릴 수도 있겠고요.”
“…사도를 위험에 몰아넣는 걸 참 좋아하는 분이시군.”
나지막이 혀를 차면서도, 허리를 숙인 이안이 손을 내밀었다.
루시페르가 그의 손을 맞잡고 지붕 위로 올라오는 사이, 칼렙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대전사. 저희도 대략적인 정보만 알고 있을 뿐, 근원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저 안쪽은 외곽과 달리-”
“공간이 왜곡되어 있겠지. 나도 알아.”
일어선 나세르가 루시페르에게 공간을 내어주듯 물러서는 가운데, 이안이 말을 받았다.
뒤이어 칼렙의 눈을 내려다본 그가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근원까지 가는 길을 단박에 찾을 수 있을 테니까.”
“……?”
칼렙의 미간이 꿈틀댔다. 이안이 술병의 마개를 닫으며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슬쩍 들어 올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칼렙은 그제야 그의 손목에 감긴 얇은 팔찌를 볼 수 있었다.
“……!”
그게 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스르륵 풀린 녀석이 이안의 손등으로 기어 올라간 덕분이었다. 불길한 보랏빛 안광으로 칼렙을 내려다본 뱀이 혀를 날름댔다.
“…그래서, 나는 빠지라고?”
미간을 좁힌 채 이안을 올려다보던 테사이아가 내뱉은 건 그때였다. 다시 오른팔을 늘어뜨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를 지킬 인원은 있어야지. 여기선, 청색 마법사인 네가 적격일 것 같은데.”
“아니… 그건 뭐, 사실이긴 하지만….”
테사이아가 콧잔등을 씰룩이며 웅얼댔다. 그녀에게 마개를 닫은 술병을 건넨 이안이 덧붙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대로 돌파해서 근원부터 없앨 거니까.”
테사이아가 입맛을 다시는 가운데, 이안의 시선을 받은 루시페르가 마차 오른쪽의 가장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제가 앞에 탈게요.”
어느새 마차 우측에 나란히 걷고 있던 메브가 고삐를 놓고 팔을 펼쳤다. 루시페르가 그녀의 품에 안기듯 뛰어내렸다.
“빨강 머리 눈이 돌아버리지 않게, 조심히 다녀와. 동생아.”
체념한 듯 그쪽을 내려다본 테사이아가 내뱉었다. 메브의 품에 안겨 안장 앞쪽에 자리 잡으며, 루시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따 뵐게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칼렙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나세르의 앞을 지나친 이안이 마차 좌측으로 뛰어내리고 있어서였다.
터억-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던 모로의 안장 위에 가볍게 착지한 그가, 망토를 펄럭이며 걸터앉았다. 이안이 그대로 마차를 앞지르며 내뱉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차 멈추지 말고, 길을 벗어나지도 마.”
“예, 대전사…!”
백마들의 앞을 지나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칼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또 한 번 고삐를 흔든 건 거의 동시였다.
크허엉…!
포효하듯 울부짖은 모로가 그대로 눈 덮인 숲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요, 언니!”
루시페르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그녀와 메브를 태운 백마, 셀림이 뒤따라 달려 나갔다.
하지만 칼렙의 시선은, 여전히 눈보라 사이를 뚫고 멀어지는 반신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대전사….”
그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번졌다.
습격해 온 마물을 퇴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건만. 모든 과정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지 않았는가.
심지어 붉은 기사와 백염의 성녀마저도 당연하다는 듯, 익숙하게 그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제일 재미있는 부분을 전부 놓치게 생겼네.”
뒤편에서 테사이아의 불퉁한 목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눈을 깜빡인 칼렙이 뒤를 돌아보는 사이, 어느새 다시 지붕에 걸터앉은 나세르가 미소 지었다.
“제일 위험한 부분이죠. 뭐, 덕분에 편하겠군요. 저 눈밭 위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안 말 못 들었어? 우리도 여기서 노는 게 아니라고. 짝귀.”
테사이아가 핀잔을 줬다. 말과 달리, 나세르와 마찬가지로 지붕에 주저앉는 채였다. 술병의 마개를 열고 있기까지 했다.
두건을 더 깊이 눌러쓰는 나세르의 미소가 짙어졌다.
“대마법사이신 원로께서 계시는데. 저 같은 종자가 나설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아첨하면 편해질 줄 아나 본데. 제대로 봤어, 짝귀. 넌 구경만 해. 뭐가 오건, 이 원로께서 다 막아줄 테니까.”
어깨를 으쓱인 테사이아의 시선이 칼렙에게로 돌아왔다.
“털보. 너도. 걱정하지 말고 길만 따라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정말, 이런 경험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칼렙이 감탄을 감추지 못한 채 내뱉었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테사이아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이미 근원의 위치를 찾았거든. 게다가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도 않아. 네가 길을 제대로 안내한 거야, 털보.”
태연하게 술을 들이켜는 그녀를 잠시 바라본 칼렙이 이내 덧붙였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안의 사역마가 신나게 알려주고 있거든.”
술병을 입에서 뗀 테사이아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지금 내 머릿속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면 깜짝 놀랄걸?”
“…….”
그 불길한 뱀을 말하는 것이리라. 칼렙이 미간을 좁힌 건, 그 뱀이 어떻게 떠들어댄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것까지 물을 수는 없었다.
퍼엉-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둠 저 너머에서, 불현듯 빛이 번쩍여서였다. 멈칫한 칼렙이 마차 우측을 돌아보았다.
펑- 퍼버버벙- 콰르르르-
저 멀리서 주황색 폭발이 연달아 이어진 건 거의 동시였다. 바로 잦아들지 않고 주위로 번지면서 어둠을 밝히는 채였다. 넘실대는 눈보라 사이로, 춤추는 것처럼 우글대는 수많은 그림자가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