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50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60화(650/655)
#660화
미구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움직임을 멈추고 굳어진 건 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물들을 머금고 넘실대던 어둠조차, 한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해졌다.
솨아아아…
정말 시간이 멈춘 건 아니었다. 이 순간에도 야인 전사들의 전신에 번지는 붉은 아지랑이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쩌렁쩌렁한 포효가 적막을 깨뜨렸다.
“——!”
이번에는 마족의 포효였다.
하지만 성화가 위태롭게 흔들리지도, 일대의 불빛이 어둠에 떠밀리지도 않았다.
“……!”
그저 미구엘의 의식을 일깨울 뿐이었다. 참고 있던 숨을 헐떡이며, 미구엘이 뜨거운 포효가 터져 나왔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어둠 저 멀리. 이글대는 잔상을 남기며 달려오고 있는 붉은 빛이 그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졌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야인 전사들 사이에서 일갈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불티가 번지는 도끼를 치켜든 백인장, 아스켈의 외침이었다.
붉은 신성이 아른거리는 눈으로 전사들을 돌아보며, 그가 피 끓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우리들의 대전사께서 돌아오셨다-!”
“오오… 오오오오-!”
“북부의- 초인이여-!”
비로소 야인 전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전신에 맺힌 붉은 신성이 이글대며 번져 나갔다.
하지만 일대가 더 밝아진 건, 그들에게 투쟁의 가호가 내려서 만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성화도 더 크고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다시 주황색을 완전히 되찾은 상태였다.
그러나 미구엘의 시선은 화로 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루 엔테르여….”
나지막이 탄식하는 그의 시선은, 잔상을 남기며 가까워지는 붉은 빛의 뒤편을 훑고 있었다.
시차를 두고 뒤따르는 새하얀 백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어서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등에 불길이 일렁이는 덕분이었다.
말에 탄 기수가 머금은 성화였다.
그 뒤로 전신 판금 갑옷을 뒤집어쓴 기사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일렁였다.
“싸우자-! 대전사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투쟁-! 영원한 투쟁을!”
야인 전사들이 울부짖으며 달려나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마구엘의 눈에는 붉은 파도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무기에서 번지는 불티가 붉은 잔상과 어지럽게 뒤엉키며 반짝였다.
“북부의 초인을 위하여-!”
“카르하여-! 지켜보소서!”
지금까지와 달리,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야인 전사들의 뒷모습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어둠이 그들에게 밀려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로 우글대는 마물들의 형체가 설핏 드러났다.
키에에에엑-! 콰지직!
마물들의 괴성과 전사들의 포효. 뼈가 부서지고 가죽이 찢겨 나가는 소리가 일대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온 불티가 어둠을 눈부시게 수놓았다.
“——!”
뒤이어 공중에서 마족의 포효가 메아리쳤다.
미구엘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놈을 올려다보았다. 비명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진 건, 비단 성화의 가호 덕분만이 아니었다.
이글대는 여섯 개의 자주색 안광은, 저 멀리서 달려오는 붉은 궤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구엘 사제…!”
마차가 한차례 들썩이는 가운데, 뒤편에서 열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비로소 뒤를 돌아본 미구엘이 멈칫했다.
어느새 불씨 사제들이 전부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화로 좌우에 선 알렉과 몽거는, 식은땀이 범벅인 와중에도 감격한 얼굴들이었다. 그가 그렇듯, 저들도 달려오고 있는 백마를 발견한 것이리라.
“우리도 싸웁시다…!”
알렉이 격정이 몰아치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벌겋게 익어버린 그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껍질이 벗겨지며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시부럴, 그럽시다.”
그건 미구엘도 마찬가지였다.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사제들을 돌아본 그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뱉었다.
철컥- 철그럭…!
사제들이 일제히 양손을 움직였다. 오른손은 허리춤의 철퇴를 뽑아 들고, 왼손으로는 허리 뒤편에 비스듬하게 고정하고 있던 횃대를 꺼내 들었다.
뒤이어 횃대와 철퇴를 가슴 앞에 교차한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삿된 어둠을 불사르는….”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이여….”
입술만 달싹여 읊조리는 그들의 턱을 타고, 혈관이 달아오르듯 불그스름하게 일렁였다.
철퇴에 불티가 번지기 시작하고, 횃대 끝에 성화가 번지기 시작한 건 거의 동시였다.
뒤이어 반개하고 있던 눈을 뜬 그들이, 횃불을 치켜들며 몸을 돌렸다.
“루 엔테르여-!”
“타오르는 여신께 영광을!”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그들이 야인 전사 같은 일갈을 토해냈다. 그들이 합류하자, 붉은 군단 주위가 한층 더 밝아졌다.
키에에엑-! 캬아아아-
콰지직-! 빠각!
전투는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야인 전사들은 신중함과 노련함의 탈을 벗어버리고, 투쟁심과 열정에 몸을 맡긴 채 날뛰어대고 있었다.
“싸워라-!”
심지어 다쳐서 쉬고 있던 자들조차 남김없이 전장에 합류한 상태였다. 차라리 싸우다 죽어, 카르하의 전사가 되리라는 생각일 터였다.
“……!?”
그들을 돌아보며 허리 뒤편의 도끼를 움켜쥐던 미구엘이 순간 휘청댔다. 마차가 또 한 번 거칠게 들썩여서였다.
푸르륵…!
불티가 번지는 갈기를 넘실대며, 닐라가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당장 자신의 몸을 묶은 멍에를 풀어 달라는 듯 몸을 들썩이는 채였다. 여차하면 힘으로 끊어버릴 기세이기도 했다.
“안 돼…! 기다려! 절대 안 돼!”
그제야 다급하게 소리친 미구엘이 녀석 쪽으로 다가갔다. 허리를 숙인 그가 한쪽의 끌채에 이어진 끈의 고정을 풀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 건 그가 외팔이여서만이 아니라, 화상에서 회복 중인 손의 감각이 둔해서였다.
“—–!”
저 옆의 상공에서 마족의 불길한 포효가 터져나온 건 그때였다.
고개를 돌린 미구엘이 그대로 굳어졌다. 날개를 활짝 펼친 마족이, 어둠에 자줏빛 궤적을 남기며 강하하고 있어서였다.
콰아아아아-
심지어 미끄러지듯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기까지 했다. 포탄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전장을 훑듯이 휩쓸고 지나가려는 게 분명했다.
저 거대한 궤적에 휩쓸린다면, 제아무리 투쟁의 가호를 받는 야인 전사들이라도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 버릴 터였다.
“……!”
하지만 미구엘은 전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저 눈을 부릅뜬 채, 떨어지는 궤적의 옆을 돌아볼 뿐이었다.
콰드드득-! 콰직-!
어느새 붉은 궤적이 그 옆으로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안을 태운 채 질주하는 건, 전신에 육중한 마갑을 뒤집어쓴 흑마였다. 투구에 뿔처럼 돋은 칼날을 마구 휘두르면서, 앞을 가로막는 마물들을 들이받으며 질주하고 있었다.
크르렁-!
보라색 안광이 흉포하게 이글대고, 전신에 보라색 섞인 검은 연기를 안개처럼 뭉실뭉실 뿜어내고 있기까지 했다.
이안의 신성과 놈이 품은 혼돈이 중화되며 만들어지는 현상이라는 것까진, 미구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중요한 부분도 아니었다.
“형씨…!”
중요한 건, 이안이 녀석의 안장 위에 웅크리듯 올라앉은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뒤집어쓴 망토가 꼬리처럼 넘실대면서, 뒤편으로 이글대는 붉은 궤적을 기다랗게 남기는 채였다.
쿠확-
이안이 힘껏 안장을 박차며 도약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터져 나온 바람에 검보라색 안개가 자욱하게 밀려나고, 이안의 붉은 궤적이 불화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쒸에에엑-!
하지만 하강하는 마족을 막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놈과의 거리가 멀어서였다. 이안이 다급하게 몸을 날린 것도 그래서일 터였다.
콰아아아-
역시나. 날개를 뒤로 접은 마족이 한참 빠르게 이안의 앞을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미구엘의 눈이 더 커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쩌엉-! 콰장창창-!
마족의 몸이 별안간 땅으로 처박혔기 때문이다. 미구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놈의 등을 후려친 것처럼 보였다.
땅에 처박혔던 마족이 그대로 튀어 올랐다. 놈에게 짓눌려 터져 나간 마물들의 잔재가 함께 어지럽게 흩날리는 가운데.
콰과과과과-
붉은 궤적이 그사이를 뚫고 밀려 들어갔다. 언제 뽑아 들었는지 모를 기다란 대검을 한 손으로 치켜든 이안이었다.
끝부분이 앞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칼날에는, 루 솔라의 신성이 분명한 빛무리가 번지고 있었다.
튕겨 오르던 마족이 그 와중에도 몸을 쥐어짜듯 비틀며 그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콰지지지직-!
하지만 그보다, 대검의 칼날이 놈의 머리 중 하나에 틀어박히는 게 더 빨랐다.
빛무리를 머금은 칼날은 그리핀의 머리를 비스듬하게 가르며 목덜미 깊숙이까지 박혀 들었다.
쩌엉-!
대검의 칼날에서 무형의 폭발이 터져 나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그리핀의 머리가 산산이 조각나고 그 아래의 목덜미도 터지듯 찢겨 나갔다. 대검이 튕겨 나가듯 솟구쳤다. 딸려 나간 이안 역시 뒤로 날아갔다.
“—–!”
튕겨 나간 건 마족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휘두른 놈의 팔이, 허공에 기다란 손톱자국을 잔상처럼 새겼다.
콰드드드드-
마족이 나뒹굴면서 둔중한 진동이 땅을 울렸다. 하지만 미구엘의 시선은 망토 자락에 휩싸인 채 밀려나는 붉은 궤적을 좇고 있었다.
이안이 꿈틀대는 어둠 속으로 파묻히듯 사라졌다. 마족들 한복판으로 떨어졌다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었다.
콰과과과과-
빛무리 섞인 붉은 궤적이 원을 그리듯 휘몰아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찢겨 나간 마물들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오오오오오-!”
“북부의- 초인이여-!”
야인들의 포효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격렬하게 전투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저 너머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한 자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푸르륵…!
이어진 뜨거운 숨결에, 미구엘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에게 콧김을 뿜은 닐라가 몸을 들썩였다.
“아, 알았으니까 기다려 봐, 이 녀석아…! 절대로 부수면 안 돼! 그럼 우리가 밀고 가야 한다고…!”
허둥지둥 내뱉으며, 그가 마저 끈의 매듭을 풀었다. 일대가 한순간 대낮처럼 밝아진 건, 그가 반대편 끌채로 이동하기 위해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콰아앙-! 콰르르르르-
눈부신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번지는 주황색 불길에, 미구엘이 손을 들어 눈 앞을 가렸다. 뒤이어 그의 입이 설핏 벌어졌다.
잦아드는 폭발 너머로, 달려오는 백마와 기수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
성화가 아른거리는 두건 망토를 뒤집어쓴 기수를 눈에 담은 미구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째서인지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체구만으로도 사원장이 아니리라 확신하기에는 충분했다.
콰직-! 콰드득-!
게다가 그녀의 뒤편에는 메브가 타고 있기까지 했다. 그녀는 성화가 이글대는 양손 검을 휘둘러,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달려드는 마물들을 연신 베어 넘기고 있었다.
심호흡하듯 숨을 들이켠 미구엘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 찰나.
“——!”
마족의 포효가 전장의 소음을 뚫고 이어졌다. 지금까지와 달리 고통에 찬 비명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그럴 터였다. 땅에 주저앉은 채 비스듬하게 상반신을 일으키는 놈은, 세 개의 머리 중 하나가 날아간 상태였으니까.
목덜미 아래로 움푹 터져 나간 상처에서는 근섬유들이 촉수처럼 꿈틀대며 이어 붙고 있었지만. 사라진 머리는 전혀 재생되고 있지 않았다. 가능하더라도 제법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콰과과과-
그보다 미구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일어서려는 놈의 몸통 한복판으로 쇄도 하는 검은 궤적이었다.
이안의 흑마가 놈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몸을 옆으로 비틀어, 육중한 갑옷으로 덮인 옆구리를 앞으로 내미는 채였다.
그렇다고 해도 평범한 말이라면 내장이 터져 죽고 말겠지만.
쩌어엉-!
놈은 망설임 없이 마족의 복부에 포탄처럼 틀어박혔다.
자주색과 보라색 섞인 충격파가 번지고, 흑마가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포물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기까지 했다.
어쨌건, 마족이 다시 균형을 잃고 주저앉았다.
콰아아아-
뒤따라 날아들던 붉은 궤적이 마족의 지척에 다다를 시간을 벌기에도 충분했다.
망토를 꼬리처럼 흩날리며, 이안이 양손으로 움켜쥔 대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빛무리를 머금은 궤적이, 마족의 가운데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콰지지지직-
대검은 나뭇가지 같은 뿔들을 모조리 잘라내고, 그 아래의 순록을 닮은 머리까지 세로로 갈라버리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대로 목까지 멈추지 않고 파고든 칼날은, 두꺼운 빗장뼈를 반쯤 잘라내고서야 비로소 덜컥 멈춰 섰다.
자루를 움켜쥔 이안의 몸이 앞으로 쏠리고, 마족의 몸이 다시 뒤로 기울어졌다.
“—–!”
하지만 이번에도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간 것은 아니었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마족의 변이된 곰 같은 머리가 비명을 토해냈기 때문일 터였다. 그 안에 실린 혼돈의 파장이 주문을 흩어 버리는 것이리라.
쿠웅-!
그대로 이안을 씹어 버리려는 듯 고개를 내밀고 있기까지 했다.
이안이 자루를 놔버린 건, 놈의 쩍 벌어진 아가리가 코앞까지 가까워졌을 때였다. 그의 웅크린 몸이, 마족의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떨어졌다.
“미친…!?”
저도 모르게 탄식하던 미구엘이 굳어졌다. 마족이 아가리를 완전히 다물지 못해서였다.
쿠국…!
몸을 웅크린 이안이 놈의 위턱에 돋아난 이빨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굽히고 있던 두 다리를 천천히 펴면서, 양발로 아래턱을 밀어내고 있기까지 했다.
그의 전신에 맺힌 붉은 아지랑이가 더 격렬하게 이글대는 가운데.
꾸득… 꾸드드득…!
마족의 아가리가 반대로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턱이 빠지고 가죽이 찢겨 나가는 데도 멈추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