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54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64화(654/655)
#664화
이안의 한쪽 눈썹이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그에게 보이는 모로의 옆얼굴은 아주 진지했다.
동시에 아주 조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칼날 뿔이 닐라에게 닿기라도 할까 염려하는 것처럼.
‘이게 대체 뭔….’
녀석에게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닐라의 몸 역시 뻣뻣하게 굳어져 있긴 마찬가지였다.
아마 녀석도 지금 이안만큼 황당한 것이리라. 하지만 모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닐라에게 자신의 뺨을 비벼댔다. 그르릉, 하는 낮고 굵은 숨소리를 토해내기까지 하는 채였다.
사아아아…
축 늘어져 있던 닐라의 갈기가 넘실대면서 주황빛 불티를 머금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이안이나 루시아와 달리 미간을 슬쩍 찌푸리고 있던 미구엘의 눈매가 더 일그러졌다.
“시부럴, 물러납시다…!”
팔짱 낀 이안은 물론이고, 오른팔로 루시아의 어깨까지 감싸안고는 뒤로 물러나는 채였다.
이안은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닐라가 목을 반대편으로 휙 젖히고 있었으니까.
쒸에엑- 빠악-!
뒤이어 목을 채찍처럼 휘두른 닐라가, 자신의 머리로 모로의 옆머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불티가 눈부시게 터져 나오고, 모로의 머리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몸 전체가 회전하듯 떠밀릴 정도였다.
흩날리는 불티 사이로 주황색 안광을 이글대는 닐라의 전신이 드러났다.
푸히힝…!
분노한 듯 눈을 부라리면서도, 녀석은 무릎을 구부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휘청대며 밀려나는 모로의 옆구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쿠확-!
닐라가 굽히고 있던 다리를 내뻗으며 앞으로 뿜어져 나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흩날리는 불티의 궤적이, 검은 갑주를 두른 모로의 옆구리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쩌엉-!
모로의 몸이 옆으로 휘며 튕겨 나갔다. 고개를 치켜들어 녀석을 완전히 떨쳐버린 닐라가, 네 발을 땅에 박아 넣듯 뻗으며 멈춰 섰다.
콰장창창창-
모로가 요란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시끌벅적하던 일대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입을 설핏 벌린 루시아와 이안은 물론이고, 야인 전사들도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이안은 미구엘의 팔을 털어내며 소리칠 준비를 했다. 모로의 성격상 성난 황소처럼 닐라에게 달려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예상과 달리, 모로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킬 따름이었다.
녀석은 가볍게 고개를 털어 머리와 갈기의 흙먼지를 털어내고는 다시 닐라 쪽을 돌아보았다. 보라색으로 물들긴커녕 화도 나지 않은 듯한 눈빛이었다.
‘저 성질 더러운 놈이 왜….’
훨씬 더 조심스럽게 닐라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모로를 바라보며, 이안은 슬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옆에서 미구엘이 낮은 실소를 터뜨린 건 그때였다.
“형씨 말은 좀 다를 줄 알았더니… 수놈들은 다 저렇게 되는 건가…?”
그를 돌아보는 이안의 눈매가 비로소 일그러졌다. 덕분에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가정을 떠올리게 되어서였다.
“그러니까… 모로가….”
그보다 먼저 입을 연 건 루시아였다.
“닐라에게 반하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인간 식으로 말하자면 뭐, 그런 셈이지.”
그녀가 더듬더듬 물은 말에, 미구엘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이안은 한차례 입술만 달싹였다. 드물게도 말문이 막힌 것이다.
“저 녀석에게 신성이 깃든 걸 알게 되고 나서, 원장이 짝을 지어주려고 했었소. 자식도 명마가 나올 테니 말이오.”
루시아와 그를 차례로 돌아보며 내뱉은 미구엘이, 슬쩍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위대한 분의 과업을 수행하고 돌아오니, 진작에 준비를 끝내 두셨더군. 북부의 혈통 좋은 명마들을 죄 데려나 놓은 거요. 닐라가 짝을 고르게 하려고 말이오.”
“그… 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루시아가 입술만 달싹여 물었다. 조금은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기도 했다. 미구엘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되긴. 죄다 얻어터졌지. 죽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어. 지금 생각하면 뭐, 저 녀석이 그러지 않게 힘 조절을 잘한 거지만. 어쨌건, 달려들던 놈들이 나중엔 눈도 못 마주치고 도망 다니더군.”
“루 엔테르 맙소사….”
루시아가 안도인지 경악인지 모를 탄성을 흘렸다. 다시 모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미구엘이 덧붙였다.
“확실한 건, 저 녀석을 처음 본 수말은 죄다 넋이 나가 버린다는 거요. 홀려 버리는 것 같더라니까. 지금 저 녀석처럼.”
비로소 이안의 입가에 헛웃음이 번졌다.
“그러니까 닐라가 엄청난 미인이란 얘기군….”
“우리가 보기에도 그렇잖소? 말들에게는 뭐, 그보다 더하겠지.”
그 순간 또 한 번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번졌다. 뒷발로 선 닐라가 앞발로 모로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휘청 튕겨 나간 모로가 주르륵 밀려나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놈은, 어지간히 얻어터지지 않고선 포기하지 않을 것 같지만.”
미구엘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안은 멈춰서는 모로를 돌아보았다. 골이 띵 한 듯 머리를 흔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화가 난 것과는 거리가 먼 반응이었다.
‘서로 죽이려 들 걸 걱정했더니…’
이안의 입가에 또 한 번 헛웃음이 스쳤다. 성수와 마수의 만남이니 더더욱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모로가 일방적으로 구애하게 되리라는 건 더더욱.
“멈춰. 모로.”
어쨌건 저대로 계속 두들겨 맞게 둘 수는 없었다.
“닐라. 너도 그만해.”
모로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건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닐라에게 얻어맞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자칫 애먼 야인들이 휘말리게 될 수도 있었다.
“과연… 대전사를 태우는 말은 남다르군….”
“마족에게도 달려들던 거 못 봤냐? 저 검은 녀석도 성수인 게 분명해.”
물론 다시 하던 일을 이어가기 시작한 야인들은, 진귀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눈을 빛내며 녀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푸르륵….
어쨌건 명령대로 멈춰선 모로는, 아쉬운 듯 콧김을 뿜어댔다. 여전히 닐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눈길도 주지 않고 몸을 돌린 닐라는 이안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다각- 다각-
안광이 잦아들고, 갈기에 넘실대던 불티도 잦아들었다. 머리를 철퇴처럼 휘둘러 댔는데도, 볼에 쓸린 듯한 작은 생채기가 생긴 게 전부였다.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미구엘의 웃음 섞인 핀잔에 콧김을 뿜으면서도, 닐라가 슬며시 이안 쪽으로 머리를 기울였다. 뒤늦게 혼이라도 날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뭐, 우려했던 일은 없어서 다행이네요. 조금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되긴 하지만요.”
손을 뻗어 녀석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루시아가 내뱉었다. 닐라의 콧잔등을 어루만지며,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인사 나눴으니 됐다.”
“토벌이 끝날 때까진, 이 녀석을 계속 빌려도 되겠소…? 화로를 끌어야 해서 말이오.”
미구엘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일행의 마차를 끄는 백마들을 떠올리면서도,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남는 술 있나?”
당분간은 모로와 떨어뜨려 두는 좋을 것 같아서였다. 닐라의 옆구리를 두드리며 미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소.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보시다시피 이 녀석이 내 말을 잘 안 들어서 말이오.”
이안과 루시아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던 닐라가, 그제야 못 이긴 척 몸을 돌렸다. 미구엘이 녀석에게 손짓하며 마차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너머로 우두커니 선 모로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녀석은 여전히 닐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성화가 이글대는 화로가 놓여 있건만, 열기가 느껴지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거의 눈이 멀었네….”
이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읊조렸다. 여러모로 보기 드문 광경인 건 분명했다.
“전 모로를 응원하게 되네요.”
루시아가 나지막이 내뱉은 건 그때였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이안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이루어지기 어려울 걸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다가갔잖아요. 포기하지도 않을 것 같고요.”
“…….”
이안의 한쪽 눈매가 슬며시 가늘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인 루시아가, 뭔가를 느낀 듯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돌아왔네요.”
이안도 뒤를 돌아보았다. 화로 근처에 모여 앉아 사제들과 입씨름 중인 부상자들 저 너머,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백마를 탄 기사가 손에 든 횃불의 불빛이었다. 그 옆으로 이두 마차의 모습이 설핏 드러났다.
“전 모로에게 가 볼게요. 위로해 줘야겠어요. 뭐라도 좀 먹이고요.”
루시아가 덧붙였다. 녀석을 돌아본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데로 데리고 가서 먹여. 괜히 이상한 설화 같은 게 더 생기지 않게.”
“그럴게요. 어차피 언젠간 다들 알게 될 것 같지만요.”
싱긋 미소 지은 루시아가 걸음을 옮겼다. 모로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하는 채였다.
…하여간, 되바라진 녀석.
멀어지는 루시아를 돌아보며, 이안이 비로소 낮은 웃음을 흘렸다.
하긴. 토벌이 끝나면 헤어질 예정이지 않은가. 그전에 어떻게든 한 번 더 뜻을 전하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너희를 잃지 않을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거든.’
내심 읊조린 이안의 시선이 주위로 돌아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야인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일부는 마물 시체들을 치우고 있었고, 일부는 부러진 나무를 옮기거나 옮겨온 나무를 쪼개고 있었다.
화르륵-
그리고 성화가 일렁이는 횃불을 든 사제 하나가 가장자리부터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장작더미에 횃불을 가져다 대고 기도문을 읊조리면 성화가 옮겨붙는 것이다.
‘저게 강행군을 가능하게 해주는 거군.’
설원의 추위를 밀어내는 건 물론, 피로와 상처를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이안의 눈매가 문득 꿈틀댔다.
콰직-! 콰직-
시야 한구석에 거슬리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어서였다. 마족의 시체 위에 야인 전사 몇이 올라가 있었다.
“제대로 쳐, 인마. 지쳤냐?”
“똑바로 당기기나 하쇼! 이거, 가죽이 말도 안 되게 질기단 말이오…! 대체 대전사께선 이런 걸 어떻게 맨손으로…!”
“그러니 반신이시지. 나와 봐, 인마. 내가 할 테니까.”
몇은 마족의 앞발을 끌어당기고, 한 명이 도끼를 내리치고 있었다. 발톱을 뜯어내려는 것 같았다. 상황을 주도하는 건, 지금 도끼를 쥐어들고 있는 볼베르가 분명했다.
이안의 눈매가 슬며시 일그러질 찰나.
“좀 늦었수. 흐흐.”
미구엘이 허겁지겁 달려오며 내뱉었다. 손에 든 가죽 수통을 앞으로 내미는 채였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그가 뒤편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한 손으로 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라서 말이오.”
다시 멍에를 짊어진 닐라가 이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안과 눈이 마주친 녀석이 비로소 자리에 배를 깔고 걸터앉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통의 마개를 연 이안이 독주가 든 수통을 입에 물었다.
“저 자식이 아직도…?”
이내 이어진 미구엘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이안은 술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부라린 미구엘은 저만치에 선 아스켈을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의 시선은 저 너머, 모로의 곁에 선 루시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잔소리를 하더니….’
이안의 한쪽 입매가 슬며시 비틀렸다. 정작 루시아는 아스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아서였다.
“안 되겠수. 조만간 따끔하게 한 소리 해야지. 어딜 감히….”
“놔둬.”
“…응?”
이안이 술병을 입에서 떼며 내뱉은 말에, 미구엘이 귀를 의심하듯 그를 돌아보았다. 이안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다고 마음이 사라지나. 어차피 지켜보기만 할 것 같은데. 그냥 두자고.”
“진심이시오…? 허어….”
낮은 탄식을 흘린 미구엘이, 이내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셨다.
“형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래도 헛수작질을 하면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오. 이건 어쩔 수 없수.”
“그러던가.”
그럴 녀석은 아니긴 하지만.
내심 덧붙이면서도,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구엘이 루시아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지 않던가.
“아, 오시는군.”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던 미구엘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안도 술을 한 모금 더 마시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각- 다각-
성화 횃불을 든 메브와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부석에 앉은 칼렙은 바짝 얼어붙은 채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주위에 가득한 마물들 때문인지, 저만치에 널브러진 마족 시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리 주십시오, 나리…!”
후다닥 달려간 미구엘이 손을 뻗었다. 그에게 횃불을 건네준 메브가 훌쩍 안장에서 뛰어 내렸다.
움켜쥔 것만으로도 불을 꺼버린 미구엘이, 뒤이어 셀림의 고삐를 쥐었다. 사제가 된 지 몇 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아주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고생하셨소. 길을 잃지 않으셔서 다행이군.”
다가오는 메브를 바라보며 이안이 턱을 까딱였다. 투구를 벗어버린 메브가 고개를 털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미소 지었다.
“너야말로, 이안.”
“…….”
이안은 성화의 불빛을 머금은 메브의 얼굴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가오던 메브가 머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지금 내 몰골이, 그렇게 엉망이야?”
“…그럴 리가. 드시겠소?”
낮게 웃은 이안이 수통을 내밀었다. 메브가 선선히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미구엘의 인도에 따라 화로 뒤편으로 이동하던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린 건 거의 동시였다.
“이제야 안 춥네. 냄새까지 지워주면 참 좋을 텐데.”
테사이아가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오며 내뱉었다. 두건을 벗어 은발과 흰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였다. 화로 옆에 모여 앉아 있던 부상자들과 사제들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집중됐다.
“오랜만이야, 의수. 여전히 못생겼네. 그쪽들도 반가워요.”
미구엘에게 손 인사를 건넨 테사이아가 그들 앞을 태연하게 지나치며 덧붙였다. 설원에 들어서면서 멋대로 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시체가 잔뜩이네. 야인들도 많고. 역시, 아주 열악해.”
흥얼거리듯 읊조리며 다가온 테사이아가 이안을 마주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안, 이제 슬슬 돌아가 보는 게 어때? 이만하면 충분히 즐긴 것 같은데 말이야.”
“글쎄….”
이안이 슬쩍 메브와 눈빛을 교환하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됐다-!”
저 옆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이안의 표정을 보고 눈썹을 꿈틀대던 테사이아가 시선을 돌렸다.
마족의 시신을 밟고 선 볼베르가, 칼날처럼 크고 기다란 발톱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
“대전사의 귀환을 기념할 전리품이다! 카르하께 바치자고-!”
“오오오- 오오-!”
“북부의 반신이여-!”
무기를 치켜든 야인 전사들이 또 한 번 소리를 내질렀다. 테사이아가 비웃듯 입매를 삐뚜름하게 말아 올리며 읊조렸다.
“하나도 안 변했네. 멍청해 보이는 것도, 힘이 남아도는 것도.”
“…그러게.”
마찬가지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안이 싸늘하게 덧붙였다.
“저 녀석들의 한계가 어디일지, 제대로 한 번 확인해 봐야겠는걸.”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테사이아의 미소가 굳어지는 가운데, 뒤편에서 미구엘의 더듬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계를… 왜…?”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거든.”
내뱉으며 그를 돌아본 이안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남은 흉지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정리해 보자고.”
“…….”
미구엘의 입이 설핏 벌어졌다.
이안은 알지 못했지만, 급속 행군의 악몽 같은 기억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 토벌은, 실제로도 그때 못지않게 쉴 틈 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