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6
066화
“으으….”
미구엘이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미구엘…? 미구엘! 정신이 들어요?!”
루시의 외침이 이어졌다.
미구엘이 힘겹게 눈을 떴다.
루시의 얼굴을 바라본 그의 얼굴에, 이윽고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여기가 저승은 아니구만.”
“아니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이안이 그의 곁에 주저앉았다.
미구엘의 미소가 짙어졌다.
부르튼 입술이 갈라지면서 피가 맺혔다.
“형씨를 봤는데. 그것도 꿈이 아니었나 보군.”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마라. 네 꿈에 내가 왜 나와?”
혀를 찬 이안이 그의 이마에 손등을 얹었다.
미구엘이 이 와중에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열은 별로 없군.”
“…좋은 의미인 거죠?”
루시가 물었다.
이안이 어깨를 까딱였다.
“이놈의 상처가 감염되지 않은 것 같단 얘기지.”
“흐흐… 죽을 거면 진작 죽지 않았겠소.”
“주둥이 놀리는 거 보니, 살 만한가 보네.”
“이 정도야 뭐…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소?”
“한나절 좀 넘게. 루시한테 고마워해라. 그 녀석이 널 살렸으니까.”
이안이 일어섰다.
미구엘의 시선이 루시에게로 향했다.
“고맙다. 안 도망가 줘서.”
“원래는 미구엘이 가는 거였다면 서요. 고마워하지 마요.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무슨 소리냐. 다 나 마음 편하자고 한 결정인데. 그런데….”
마른 혀로 입술을 축인 그가 말을 이었다.
“왜 내 몸을 묶어 둔 거냐?”
“춥지 말라고 덮어 둔 거예요.”
“이건 거의 결박한 수준인데.”
루시가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표정 변화에 놀란 듯 눈을 끔뻑인 미구엘이, 이내 마주 미소 지었다.
“내가 준 부적은, 너 가져라. 언제 쓸 일 있을지 모르니까.”
“아니에요. 이건 미구엘이….”
“주접 그만들 떨고 앉아라. 먹어야 하니까.”
되돌아온 이안이 말을 잘랐다.
그의 손에는 작은 냄비가 들려 있었다. 리우렐가의 시녀가 챙겨 줬지만, 여정 내내 한 번도 쓴 적 없던 물건이었다.
그 안에서 고소한 냄새가 번졌다.
“제가 먹일게요.”
“그래라.”
루시가 냄비를 받아드는 사이, 미구엘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한 공터. 사방에 그대로 널브러진 숯덩이가 된 시신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전부 다 꿈이 아니었군.”
읊조린 미구엘이 왼팔을 들었다.
팔꿈치 아래로 절반이 비어 있었다.
“이것도 꿈이 아니고.”
“애석하게도.”
이안이 내뱉었다.
미구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신기한 걸 하나 알려 드리겠소. 분명히 손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군. 있지도 않은 손이 욱신거려.”
덤덤하게 내뱉은 그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제 활은 못 쓰겠소.”
“…미안해요, 미구엘.”
대답은 루시에게서 나왔다.
그녀가 어느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미구엘이 당황한 듯 고개를 저었다.
“네가 미안할 건 아니다. 거, 별거 아니야. 세상에 외팔이가 어디 한둘인가. 난 그냥 손만 하나 없는 거니까, 엄밀히 말해선 외팔이도 아니고. 응? 안 그렇소, 형씨?”
“그래. 우는 건 좋은데, 그건 먹이면서 울어라.”
이안이 턱짓했다.
루시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냄비 안에 담긴 스튜를 한 스푼 떠서 미구엘의 입에 가져갔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워서, 미구엘은 물론 이안도 피식댔다.
결국 루시도 웃음을 지어 버리고는, 열심히 미구엘의 입에 스튜를 떠넣었다.
꽤나 따스한 광경이었다. 저주받은 숲 한복판, 타죽은 시체들 사이만 아니었다면.
“맛이 예술인데. 형씨, 요리도 할 줄 아셨소?”
“그냥 있는 거 다 넣고 불려서 끓인 거다.”
“진작 이렇게 먹을 걸 그랬소. 흐흐….”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웃음 짓던 미구엘이, 문득 덧붙였다.
“고맙수. 살려 줘서.”
“…….”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슬슬 주접이 도를 넘고 있었다.
“형씨가 치료해 주신 거잖소.”
“입 닫아. 네가 빨리 회복되어야 떠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며칠씩 묵게 하면 그냥 죽여서 파묻고 갈 거다.”
“이 정도는 반나절이면 너끈해질 거요. 그나저나….”
이젠 거의 뼈대만 남은 마차를 돌아본 미구엘이 덧붙였다.
“이동은 어떻게 하실 거요? 걸어가긴 쉽지 않을 텐데.”
“걱정 마라. 방법이 생길 테니까.”
“……?”
미구엘이 그 말의 뜻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두 시간쯤 지나서였다.
다각- 다각-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검은 마차를 발견한 것이다.
“추적자가 더 있소…!”
“진정해라. 저게 우리가 타고 갈 마차니까.”
“……?!?!”
***
검은 마차가 공터 앞에 멈췄다.
말없이 짐칸으로 넘어간 샬롯이 마차 밖으로 뭔가를 연달아 집어 던졌다.
“…….”
전부 사람의 머리였다.
천칭 상단의 경호병과 고용인들.
“읍… 으읍…!”
뒤이어, 그녀가 눈과 입을 가리고 사지를 결박한 남자를 집어 던지듯 마차 밖으로 밀어냈다.
샬롯이 그를 질질 끌고 이안 앞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는 미구엘과 루시를 일별한 그녀가 내뱉었다.
“약속대로… 했다.”
“약속이라니.”
코웃음 친 이안이 덧붙였다.
“명령이겠지.”
“……!”
샬롯이 이안을 노려봤다.
상단 놈들을 죽이면서 어느 정도 지난밤의 충격에서 벗어난 모양.
하지만 날 선 눈빛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안과 시선을 교환한 지 불과 몇 초 만에, 샬롯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제기랄… 그래… 명령대로.”
이안은 축 늘어진 그녀의 꼬리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꼬리는 반도 남지 않았고, 끝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이윽고 이안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중년인에게로 돌아갔다.
왜소한 체구. 몸 곳곳에 험하게 다뤄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안은 그의 눈을 가린 천과 입에 쑤셔 박은 천을 빼냈다.
남자가 샬롯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샤, 샬롯…! 왜 배신한 것이냐! 왜?”
오, 첫 마디가 이거라니.
한쪽 눈썹을 치켜든 이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샬롯에게로 향했다.
“혹시, 연인 관계였나?”
“무슨 개소…! …절대 아니다.”
반사적으로 내뱉다 움찔한 샬롯이 덧붙였다.
그녀가 경멸하듯 중년인을 내려다보았다.
“난 이런 나약하고 음습한 인간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어. 오히려 혐오하지.”
“……!”
그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샬롯이 싸늘하게 덧붙였다.
“네가 날 어떻게 보는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비에르. 통탄할 일이 많군. 널 내 손으로 죽이지도 못하다니.”
“샤… 샬롯….”
하비에르가 탄식했다.
이안이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지금이 사랑싸움이나 할 때는 아닐 텐데. 하비에르.”
“이안…! 이안 호프…!”
그제야 눈을 치켜뜬 하비에르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살려 주게! 돌려보내 준다면 더는 자네 일에 관여하지 않겠네! 아니, 상단의 이름으로 보상금도 주겠네!”
“이제야 좀 상식적인 대답이 나오는군. 너도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지, 진심일세…!”
“그래서, 여기서 일어난 일은 상단에 얼마나 알렸지?”
“그, 그게……!”
하비에르의 눈에 갈등이 스쳤다.
어떻게 대답해야 살 수 있을지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애석하게도, 이안은 어떤 대답을 내놓건 살려 줄 생각이 없었지만.
“네 이름까진 알리지 않았다. 이 음흉한 놈은, 혹시 상단의 다른 단주가 공을 가로채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샬롯이 대답을 가로챘다.
하비에르의 얼굴에 또 한 번 배신감이 번졌다.
“아, 그래. 좋아. 그럼 너랑 더 대화할 필요도 없겠군.”
“…….”
“사실, 누가 알게 된들 믿지도 않겠지. 나 같은 일개 납치범이 어떻게 천칭 상단의 정예를 모조리 죽이겠어.”
“나, 나는 강철 금고에 보관 중인 돈이 아주 많아! 내 개인적인 돈이라 상단과도 관계없지! 살려만 준다면 전부 주겠네! 보관 중인 금화가 천 개가 넘어!”
“그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인데.”
이안의 시선이 하비에르의 결박된 손으로 향했다.
그가 중지에 끼워진 굵은 반지를 억지로 뽑아냈다.
“이게 그 열쇠인가?”
“……!”
하비에르의 눈이 커졌다. 너 같은 촌놈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눈빛.
이안이 미소 지었다.
“이 돈은, 내가 나중에 제국에 가게 되면 유용하게 써 주지.”
“그, 그건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그래도 기꺼이 내주겠지. 다만, 수수료를 삼 할이나 받아 가겠지만. 내 말이 틀렸나?”
“…….”
하비에르가 굳어졌다. 반지를 보란 듯 흔들어 보인 이안이, 샬롯을 돌아보았다.
“네가 이자를 처리해라.”
“……!”
“애도 있으니 안 보이는 곳에서 끝내.”
눈이 커진 것도 잠시.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녀가 하비에르를 내려다보았다.
하비에르가 침을 삼켰다.
“샤, 샬롯. 잠깐만, 내 말을-”
샬롯이 꽥꽥대는 하비에르의 얼굴을 움켜쥐고는 질질 끌고 갔다.
은근히 단순한 녀석이군.
생각하며, 이안은 홀가분하게 몸을 돌렸다.
이제 그들을 쫓는 추적자들은 전부 처리한 셈이었다.
더는 아무도 그들을 쫓지 않으리라.
‘일종의… 성과급도 챙겼고.’
이안은 반지를 아공간에 넣었다.
금화 천 개 이상이라니. 수수료를 떼더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제도에 가면 돈방석에 앉겠군.’
생각하며 모닥불 앞으로 돌아온 이안이, 자신을 바라보는 미구엘과 루시의 시선에 미간을 좁혔다.
“뭐.”
“저 수인, 어떻게 된 거요? 형씨를 죽이려던 거 아녔소?”
“그랬지. 그리고 내가 이겼다.”
그 과정에서 추가 능력치 포인트를 엄청나게 썼지만.
이안은 짧게 입맛을 다셨다.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어쨌든 또다시 망캐의 길로 몇 걸음 더 깊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힘이 강할 터였다. 이러다 정신력 다음으로 높은 능력치가 지능이 아니라 힘이 될지도 몰랐다.
힘보다 낮을 뿐, 민첩성도 만만치는 않았고.
“싸워서 이긴다고 명령을 따르게 되면, 형씨는 지금쯤 군단을 거느리고 있으실 것 같소만….”
“저러는 건 꼬리를 잘라서다.”
“꼬… 리요?”
루시가 되물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인은 자신의 꼬리를 자른 자에게 복종하게 돼. 지워지지 않는 두려움이 영혼에 새겨지지.”
“…그럼, 계속 함께 다니게 된다는 건가요?”
루시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안은 꺼림칙한 표정인 미구엘을 돌아보았다.
“그냥 죽이길 바라나?”
“엉…?”
“내가 저걸 살려둔 건, 단지 저게 더 큰 고통을 주리라 생각해서일 뿐이야. 겸사겸사, 후환도 제거하고. 다 끝났으니 묻는 거다.”
이안의 담담한 시선에, 오히려 미구엘이 당황했다.
이안이 진심으로 묻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는 천칭 상단의 추적자들에게 손을 잃었으니까.
자신이 그러라고 말한다면, 이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저 수인을 죽여 주리라.
이윽고 미구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복수는 여기 루시가 다 해줬소. 그리고 저 수인 빼곤 전부 죽었잖소? 형씨 명령에 복종한다면야, 뭐. 다만 신경 쓰이는 건 있소.”
어깨를 으쓱인 그가 덧붙였다.
“형씨를 두려워한다면, 그냥 도망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오. 평생 형씨를 안 마주치면 그만인 거잖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대답한 건 샬롯이었다.
마차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모닥불 앞으로 다가왔다.
방금 튄 피가 그녀의 얼굴 털을 타고 흘러내렸다.
“잘린 꼬리를 두고 도망치는 건 수인의 가장 큰 수치다. 그런 건 더 이상 수인이라 할 수도 없지.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내뱉으며 모닥불 옆에 선 그녀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꼬리가 잘린 수인은, 꼬리를 되찾거나 꼬리를 자른 자를 섬길 수밖에 없지. …이 비밀을 아는 인간은, 이제 많지 않은데.”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모양.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거기까진 몰랐다. 덕분에 알게 됐군.”
“뭐라고…?”
샬롯의 얼굴에 충격이 번졌다.
“다 알고 내 꼬리를 자른 게 아니란 말이냐?”
“그게 수인에게 최악의 형벌이란 것만 알았지. 덕분에 네 꼬리의 가치가 더 올라갔군.”
“그럴 수가….”
“그런 의미에서, 여기 이 둘에게 허튼짓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그 순간 네 꼬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이안이 샬롯의 망연자실한 눈을 마주 보았다.
“물론, 나한테서 도망치지도 못할 거고.”
“제기랄….”
샬롯이 가르릉대는 숨소리를 냈다.
그런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미구엘이, 이윽고 헛웃음을 지었다.
“재미있고만, 이젠 예비 마족까지 동행하게 되다니.”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나는 루 솔라를 섬긴다…!”
샬롯이 으르렁댔다.
예비 마족은 수인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선입견이었다.
그들이 본래 섬기던 신을, 인간들의 신이 공허의 변방으로 유폐시켰기 때문이다.
포악하며 잔인한 신이라는 이유였다.
인간과 대적하다 몰락한 종족의 흔한 말로이기도 했다.
인간과 같은 신을 섬기는 다른 종족들과 달리, 수인은 아직도 공허에 갇힌 신을 섬긴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물론 이안이 알기로도, 그게 아예 헛소문인 건 아니었다.
“어디다 이를 드러내는 거지? 송곳니 다 뽑히고 싶냐?”
“…….”
잠깐의 긴장감은 이안의 한마디에 바로 끝이 났다.
시선을 돌린 샬롯이 이안의 뒤편에 주저앉았다.
루시와 시선을 교환한 미구엘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동안 별의별 꼴을 다 본 덕인지, 벌써 적응을 끝낸 모양이었다.
“그럼… 슬슬 다시 출발할 준비만 하면 되겠소.”
이윽고 미구엘이 덧붙였다.
이안이 그를 턱짓했다.
“너만 괜찮아지면.”
“그러니까, 갑시다.”
“벌써 가자고?”
“팔이 잘린 거지 다리가 잘린 건 아니잖소. 몸이 좀 쑤시긴 한데,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오.”
끙, 침음하며 일어선 미구엘이 이내 덧붙였다.
“충분할 것 같소. 마차는 한 손으로도 몰 수 있으니까, 갑시다. 여기서 또 밤을 보낼 순 없잖소.”
“하루만 더 쉬어요. 이제 쫓아오는 사람들도 없잖아요. 그러다 상처가 덧나면, 그게 더 큰 일이라고요.”
루시가 반대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가다가 송장 치울 순 없지.”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그러니까, 넌 뒤에 타서 길잡이나 해라.”
“엥? 그럼 마차는 누가 몰고?”
이안이 대답 대신 샬롯을 돌아보았다.
샬롯이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나보고, 마부를 하란 말이냐?”
“정확히 알아들었군. 길잡이는 미구엘이니까, 이놈이 가라는 대로 마차를 몰아라.”
“…….”
샬롯의 시선이 미구엘에게로 향했다.
미구엘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잘해 보자고. 이름이, 샬롯이랬나?”
“이런… 젠장할….”
귀를 부르르 떤 샬롯이, 이윽고 벌떡 일어나 마차로 향했다.
제국 상단의 상단주 직속 호위병에서 마부로 전락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일행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차 때깔 한 번 죽이는군. 하다못해 마차조차 제국제가 더 좋다니. 기가 막힌 일 아니오?”
검은 마차의 짐칸.
피 묻은 바닥에 모포를 깔고, 그 위에 로브와 망토를 덮은 채 편안하게 기댄 미구엘이 웃음 지었다.
하비에르가 앉던 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앉은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편하긴 하군.”
어깨에 기댄 루시를 확인한 미구엘이 이안과 눈빛을 교환하고는 미소 지었다.
“출발해도 될 것 같은데? 다시 관도로 나갈 거니까, 말 머리부터 돌리라고. 샬롯.”
“…….”
대답 대신 낮게 그르렁댄 샬롯이 고삐를 후려쳤다.
마차가 잿빛 숲을 가로질렀다.
그 후로 더 이상의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려진 땅을 건넌 일행은, 무사히 북부 외곽 지역으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