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62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62화(652/655)
#662화
“으억-!”
그대로 휘청 떠밀린 미구엘이,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인상을 찌푸리는 와중에도, 그는 두건이 벗겨진 루시아의 정수리부터 내려다보았다. 그의 가죽 흉갑에 얼굴로 충돌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앓는 소리를 내지도, 그를 안은 팔을 풀지도 않았다.
“미구엘… 보고 싶었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오히려 더 힘껏 그를 끌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으며 읊조릴 뿐이었다. 목소리가 축축한 건 착각이 아니리라.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미구엘이 녀석의 등을 감싸안았다.
“나도 보고 싶었다, 루시.”
“미구엘…!”
루시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거의 대성통곡이나 다름없었다.
“뭘 또… 울기까지….”
나지막이 핀잔하는 것과 달리, 그녀의 등을 살살 토닥이는 미구엘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자빠지면서 지저분해진 소매가 루시아의 망토에 닿지 않게 조심하는 채였다.
“대전사를- 위하여-!”
“썩 꺼져라! 이 버러지들아!”
이 와중에도 크고 작은 고함과 소란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미구엘은 더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근처에 마구 널브러져 있는 토막 나고 불탄 마물 시체들과 점점 축축해지고 있는 엉덩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루시아의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다 울었냐?”
이윽고 숨소리가 잦아들자, 미구엘이 물었다. 루시아가 여전히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진정하려는 듯 숨을 고르는 채였다. 얼굴에 흐른 눈물을 손바닥으로 휙 훔친 미구엘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럼 이제, 못생긴 얼굴 좀 보자.”
“…지금은 정말 못생겼을 거예요.”
말과 달리, 선선히 안고 있던 팔을 푼 루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물론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바로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루시아가 가면을 정수리로 밀어 올리는 사이, 미구엘이 덧붙였다.
“새로운 취미라도 생긴 거냐?”
“요정 친구의 선물이에요. 생명수를 깎아 만든 보물이죠.”
“그래…? 보물을 선물해 주다니. 너도 흔치 않은 귀쟁이 친구를 뒀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구엘은 드러난 루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신성이 아른거렸지만,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미구엘의 눈을 올려다보며 코를 삼킨 루시아가 미소 지었다.
“엉망진창이죠?”
“생각한 만큼 최악은 아니야.”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미구엘이 손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그래도 차기 성녀께서 돌아오셨는데. 지저분한 얼굴이면 쓰나.”
변명하듯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은 채였다. 대답 대신 슬쩍 미소 지으며, 루시아가 그의 손길에 얼굴을 맡겼다. 미구엘이 손을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루시. 나만 늙었군.”
“벽 안에선 시간이 느리게 흐르거든요. 정말, 미구엘은 수염이 조금 하얗게 변했네요”
미구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속 썩을 일이 많았으니 폭삭 늙을 수밖에.”
“…미안해요. 이제 속 썩이지 않을게요.”
멈칫한 루시아가 내뱉었다.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을 깨달은 미구엘이 화들짝 덧붙였다.
“노, 농담한 거야. 농담. 요 녀석아. 뚝 그쳐. 기껏 닦은 얼굴을 다시 엉망으로 만들 거냐?”
손가락으로 루시아의 턱을 올려 고개를 들게 만드는 채였다. 루시아가 울음을 참으려는 듯 입을 꾹 앙다무는 가운데, 그가 말을 이었다.
“못 본 사이에 울보가 다 됐군. 체통을 지키셔야지, 응? 어디 무서워서 농담도 못 하게 생겼구먼. 참나.”
그의 푸념에 루시아의 입꼬리가 꿈틀댔다. 일부러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본 미구엘이 턱을 까딱였다.
“눈물 쏙 들어갔지?”
“…네.”
“그럼 일어나자. 엉덩이가 너무 축축해. 다른 작자들이 보면 오해 사기 딱 좋은 상태라고.”
결국, 웃음을 터뜨린 루시아가 일어섰다. 그녀가 뻗은 손을 붙잡은 미구엘이, 불현듯 덧붙였다.
“사원은, 들렀다 온 거지?”
목소리에 불안함이 묻어 나오는 것을 감추지 못한 채였다. 그의 속내를 짐작한 듯 더 짙게 미소 지은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하지 마세요. 원장께 허락도 받고 온 거니까.”
“거, 다행이네. …물론 네가 그냥 무작정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만.”
머쓱하게 덧붙이며 일어선 미구엘이,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이글대는 불길과 마물 시체가 즐비한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으라고!”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으면 방심하지 마!”
꺼질 듯 잦아드는 붉은 신성을 머금은 야인 전사들이, 일대를 어슬렁대며 무기를 휘둘러댔다.
횃불을 치켜든 사제들은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저들만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각- 다각-
반대편에서 발굽 소리도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엉덩이를 털며, 미구엘이 고개를 돌렸다.
다가오고 있는 백마, 셀림이 선명해졌다. 그 위에 앉은 전신 판금의 기사 역시.
양손 검을 등의 검집으로 회수하는 메브를 바라보며, 미구엘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나리.”
“오랜만입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사제님.”
고삐를 당기며 멈춰선 메브가, 안면 가리개를 올려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미구엘의 한쪽 눈매가 꿈틀댔다.
“왜 갑자기 예의를 차리고 그러십니까, 어색하게. 하던 대로 하시죠.”
“…그럴까?”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린 메브가 대답했다. 뒤이어 다가오는 사제들 쪽을 돌아보고 있는 루시아를 일별한 그녀가 덧붙였다.
“토벌이 끝나면, 루시는 바로 사원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알아둬.”
루시아가 말을 바꾸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리라. 루시아가 입맛을 다시는 가운데, 미구엘이 보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제들을 죄다 딸려 보낼 겁니다.”
“훌륭하네.”
주위에서 크고 작은 탄성이 번진 건, 메브가 고개를 끄덕인 직후였다.
“루 엔테르여, 감사합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군요…!”
모여들고 있는 사제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진작부터 미소 짓고 있던 루시아가 화답했다.
“다들 오랜만이에요. 다시 보니 좋네요.”
“기다리다 재가 되어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어쨌든,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여기서 뵐 줄은 몰랐지만요.”
알렉을 비롯한 사제들이 속속 덧붙였다. 루시아는 그들 하나하나와 껴안으며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잠시 흐뭇하게 지켜본 미구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가 흉지를 토벌하는 것을 알고 계셨어도, 이렇게 찾아내기는 쉽지 않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고개를 돌린 그가 메브를 올려다보았다.
“흉지를 가로지르신 겁니까?”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메브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구엘이 낮은 탄성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셋이서 흉지에 들어오시다니. 대교회의 정화대도 이러진 못할 겁니다.”
“우리가 전부가 아니야. 세 명이 더 있어.”
“아하… 뭐, 여섯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긴 합니다만. 무튼….”
어깨를 으쓱인 미구엘이, 뒤이어 턱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한 명은 나세르, 그 친구겠고…. 혹시, 원로와 샬롯도 함께 오신 겁니까?”
메브가 고개를 저었다.
“테사이아만. 한 명은 장벽 요새에서 지원받은 길잡이야.”
“그랬군요. 뭐 어쨌건, 원로가 함께 오셨다니 여러모로 든든-”
덧붙이던 미구엘이 말을 멈췄다. 어둠 저 너머에서 둔중한 울림이 번지더니, 뒤이어 땅이 흔들리기 시작해서였다. 야인 전사들과 사제들도 자세를 낮추며 균형을 잡았다.
“이안이 근원을 정화했네.”
메브의 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구엘은 고개만 주억거렸지만, 사제들은 눈을 치켜뜨며 그녀를 돌아보고 있었다.
“초인께서 그래서 말을 몰고 떠나셨던 겁니까…?”
“루 엔테르여…! 북부의 초인께 영원한 열정과 영광을…!”
“…반신.”
메브가 내뱉은 건 그때였다. 사제들의 목소리가 칼로 자른 듯 끊어지는 가운데, 그녀가 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전사께선 초인을 넘어 반신의 반열에 오르셨으니. 사제들께선 유념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반신…!”
“오… 오오…! 북부에 또 이런 축복받을 일이…!”
굳어졌던 사제들이, 이내 저마다 탄성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엄정한 여신의 사도가 한 말이니 의심의 여지도 없을 터였다.
“루 엔테르여… 시부럴… 짐작은 했지만, 정말 그렇게 되신 거군….”
미구엘도 감탄을 터뜨렸다. 루시아가 그를 돌아본 건 그때였다.
“예상하고 계셨어요?”
“마족을 어린애 다루듯이 하는데, 모를 리가 있겠냐? 조만간 카르하와 주먹다짐이라도 하시겠군.”
선선히 대답하면서도, 미구엘이 슬쩍 눈매를 꿈틀댔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것과 달리, 메브의 눈빛이 마냥 기뻐 보이지 않아서였다.
물론, 그녀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지만. 한때나마 가까이에서 섬겼던 미구엘은, 그 미묘한 차이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물을 틈은 없었다.
“나는 마차로 돌아가야겠어.”
메브가 태연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어서였다.
“예정된 시간을 한참 넘겼으니, 지금쯤 걱정하고 있을 거야. 여기서 기다려 줘. 일행들을 데리고 돌아올 테니까.”
그녀의 시선을 받은 미구엘이,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가지고 가십시오…!”
알렉이 성화 횃불을 치켜들며 달려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잦아들던 성화는, 루시아가 손을 내뻗자 다시 활활 타올랐다.
“고맙습니다.”
횃불을 받아든 메브가 고삐를 당겼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루시아가 염려 말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는 가운데, 말 머리를 돌린 그녀가 달려 나갔다. 발굽 소리와 함께, 이글대는 횃불의 궤적이 멀어졌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군. 우리도 갑시다.”
이윽고 고개를 돌리며 내뱉은 미구엘이, 덩그러니 남은 화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루시아가 그의 옆으로 따라붙고, 사제들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주위를 에워쌌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루시아가 조금 머쓱하게 읊조렸다. 미구엘이 걸음을 옮기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이해해라. 우린 널 몇 년이나 잃었었다고.”
“…네.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그 꼴을 두 번은 못 봐.”
대꾸하며, 미구엘은 일대를 차근히 돌아보았다. 뒷정리를 거의 다 끝낸 듯, 야인 전사들이 하나둘씩 화로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을 감싸던 붉은 신성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지만.
“대전사를 위하여-!”
“북부의- 초인이여-!”
흥분과 기쁨까지 사라진 건 아닌 것 같았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고함이 번지고, 서로를 돌아보며 웃음을 터뜨려 댔다.
“북부의 반신께 영광을-!”
걸음을 옮기던 알렉 사제가 불쑥 소리친 건 그때였다. 물론,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반신…?!”
“대전사께서, 반신이 되셨다고!?”
전장 곳곳에서 크고 작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몇은 충격을 받은 듯 덜컥 멈춰서기까지 했다.
곧 북부의 반신을 찬양하는 함성이 떠들썩하게 이어졌다.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로로 다가가던 루시아가, 이윽고 활짝 미소 지었다.
“닐라…!”
마차의 끌채 사이에 주저앉아 있는 백마를 발견한 것이다. 갈기를 축 늘어뜨린 채 앉아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루시아를 돌아보았다.
‘…단단히 풀이 죽었네.’
생각하며 미구엘이 입맛을 다시는 사이, 단박에 달려간 루시아가 녀석의 목을 끌어안았다.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 더 크고 멋져졌구나…! 잘 지냈어? 응?”
닐라가 대답하듯 푸르르, 콧김을 뿜었다. 루시아의 목덜미에 처연하게 머리를 기대는 채였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아니면, 다리라도 삔 거야?”
비로소 이상함을 느낀 듯, 루시아가 안고 있던 팔을 풀며 물었다. 물론, 닐라는 콧소리만 낼 뿐이었다. 녀석을 이리저리 돌아본 루시아의 시선이 다시 미구엘 쪽으로 돌아왔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건지 아세요?”
“…글쎄.”
닐라를 일별한 미구엘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뱉었다.
“지금은 그냥 시간을 주는 게 최선일 것 같다만.”
“……?”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뭐라 더 덧붙이지는 않는 채였다. 말을 꺼내 봐야 닐라의 마음만 더 아프게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닐라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던가. 미구엘은 저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발굽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대전사께서 반신이 되시고, 백염의 성녀께서도 정말 돌아오시다니…. 겹경사로군….”
“카르하와 루 엔테르께서 가호하신 거겠지. 어쩌면 두 분이, 천상의 새로운 주인이 되실지도 몰라.”
그 사이, 뒤편에서 떠들썩한 목소리들이 가까워졌다. 야인 전사들이었다. 닐라의 목덜미를 쓰다듬던 루시아의 시선이 미구엘의 뒤편으로 향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사제님….”
뒤에서 이어진 나지막한 목소리에, 미간을 꿈틀댄 미구엘이 고개를 돌렸다.
“…….”
덩치 좋은 젊은 전사가 도끼를 늘어뜨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떨리는 눈으로 루시아를 응시하고 있기도 했다. 체액과 재로 범벅인 얼굴에 기쁨과 감격을 감추지 못한 채였다.
미구엘의 미간이 좁아지는 사이.
“…설마, 아스켈?”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던 루시아가 내뱉었다. 백인장, 아스켈의 얼굴에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번졌다.
“예. 사제… 아니. 성녀.”
“루 엔테르 맙소사…!”
탄성을 터뜨린 루시아도 활짝 미소 지었다.
“못 알아볼 뻔했어요! 이렇게 멋지게 변하다니…!”
“성녀께선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여전히… 아주…”
루시아를 바라보는 아스켈의 눈빛은 어느새 조금 다른 의미로 떨리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고 있던 미구엘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거, 성녀님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리겠군.”
“…아.”
그제야 멈칫한 아스켈이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루시아가 의아한 듯 돌아봤지만, 미구엘은 모른 척 눈을 부라렸다.
“눈깔 간수 잘하쇼. 대전사 앞에선 특히. 알겠소?”
“…예. 사제님.”
몇 마디 더 덧붙이려던 미구엘이,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야인 전사들도 같은 방향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저 너머에서 가까워지는 발굽 소리를 들어서일 터였다. 고요해진 어둠 사이에, 보라색 안광이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
“…….”
붉게 이글대는 신성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들 저 안광이 이안이 탄 흑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닐라의 숨소리만이 침묵을 깨뜨리는 가운데, 가까워지던 안광이 휙 방향을 틀었다.
콰과과과-
몸을 돌린 채 미끄러지듯 멈춰 서는 흑마의 모습이, 어둠을 뚫고 흐릿하게 드러났다.
의도적으로 성화의 불빛이 간신히 닿는 곳에 멈춘 것이었지만. 미구엘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의문을 떠올린 자도 없을 터였다.
“…….”
다들 흑마의 안장에 망토를 펄럭이며 앉은 북부의 반신에게 시선을 빼앗긴 상태였으니까.
이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미구엘의 입매가 문득 슬쩍 말려 올라간 건, 그가 떨떠름 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서였다.
‘루시아만 그대로인 게 아니구만.’
이안이 딱 질색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절그럭-
이윽고 짧은 한숨을 내쉰 이안이 안장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흑마를 등지고 서며 다시금 일대를 눈에 담은 그가, 이윽고 내뱉었다.
“보다시피, 돌아왔다.”
야인 전사들이 참고 있던 함성을 터뜨리게 만드는 건,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