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65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665화(655/655)
#665화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거무스름하고 황량한 숲이 이어졌다.
“…눈을 뜨니 어두운 지하였어요. 세상의 틈새에 떨어졌었다고 하시더군요. 세상의 틈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발소리 사이로 조곤조곤 번지는 루시아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이안은 숲을 가르는 관도를 나아갔다. 술병을 입에 문 그의 시선이 먹구름 낀 하늘을 훑었다.
어느덧 완연한 겨울이었다. 머잖아 산맥에서 불어온 눈보라가 이 일대까지 하얗게 물들이게 되리라.
‘차라리 일찍 불어닥치는 게….’
생각하던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숨소리가 번져서였다. 멍에를 짊어진 채 나란히 걷고 있던 닐라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르륵…
여유 있어 보이는 건 깊은 숲의 백마가 옆에 함께 화로 마차를 끌고 있어서이리라. 오히려 이안을 걱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피곤한 거 아니니까 염려 마.”
술병을 입에서 뗀 이안이 말했다. 그가 도보로 이동 중인 건, 모로를 일행의 마차에 붙여서였다.
부상자들을 그쪽에 태우지 않았던가. 무리한 일정이기까지 하니, 백마들을 보조로 돌리고 모로의 힘까지 빌려야 했다.
“-유적 밖으로 나오니, 사막이 펼쳐지더군요. 옛 황금 사막과 붉은 사막의 경계이자 지금은 검은 사막이라 부르는, 모래의 바다였어요.”
이 와중에도 루시아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이안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행군 중인 야인 전사와 불씨 사제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
“…….”
하나같이 초췌한 몰골들인 건 당연했다. 최소한의 휴식만 취하며 마경을 연달아 토벌했을 뿐만 아니라, 급속 행군으로 돌아가고 있기까지 했으니까.
아무리 성화의 가호를 받고 있다 해도, 강건한 정예 전사들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실제로 불씨 사제들은 돌아가며 한 번씩은 쓰러졌을 정도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죠. 사막을 횡단할 수밖에.”
루시아가 이야기하도록 놔두는 것도 그래서였다. 적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다들 괴로움을 잊고 몰두하고 있었으니까.
“정말 엄청난 모험이라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반드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마차 지붕에 나란히 걸터앉은 테사이아와 나세르. 그리고 셀림의 안장에 앉아 그 옆을 따르는 메브도 그랬다. 저들은 이미 들은 이야기일 텐데도, 술을 홀짝이며 처음 듣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그렇게, 우리는 검은 사막으로 들어섰어요.”
물론 종일 떠들게 두는 건 아니었다. 일정에 맞춰 조절해야 했기 때문에, 루시아의 체력을 핑계로 시간을 제한한 것이다.
덕분에 전사들은 루시아가 입을 여는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며 행군의 고통을 묵묵히 견뎌냈다.
“슬슬 익숙하다 싶더니….”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 이야기를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았다.
화로 마차의 마부석에 앉은 미구엘이 혼잣말처럼 읊조리자, 이안이 그를 돌아보았다. 산적 같은 몰골이 된 미구엘은 저 앞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린 이안이 이내 읊조렸다. 오르막이 거의 끝나가면서, 앙상하게 솟은 나무들 저 너머로 장벽의 윗부분이 드러나고 있었다.
“저 위에 도착하면 잠시 멈춰야 할 것 같소.”
미구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안이 다시 돌아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 반대편 내리막에서 바로 길이 갈라져서 말이오.”
루시아와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을 한 모금 마신 이안이, 이윽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진짜 위험한 건, 모래 속에 숨은 마물들이 아니었어요. 모래 폭풍이었죠.”
“모래 폭풍…!”
“거기까지.”
낮은 탄성이 이어질 찰나, 이안이 내뱉었다.
“언덕 위에 도착하면 잠깐 쉴 거다.”
테사이아와 나세르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이안이 말을 맺었다.
“사제들은 떠날 채비를 하시오.”
“……!”
성화가 일렁이는 화로 너머에서 루시아가 홱 고개를 내밀었다.
눈을 치켜뜨며 이안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저 너머에 드러나고 있는 장벽 쪽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루시아가 눈을 질끈 감는 가운데, 미구엘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저기 말이오. 형씨. 그….”
“안 돼.”
이안이 말을 잘랐다. 멈칫한 미구엘이 입맛을 다셨다.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말이오….”
“안 꺼내도 돼.”
눈길도 주지 않고 덧붙인 이안이 술병을 다시 입에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미구엘은 호프 시까지 동행하지 않던가. 루시아와 사제들도 이대로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물으려는 것이리라.
“…알겠소.”
쩝 입맛을 다시며 대답한 미구엘이 이내 고삐를 당겼다. 오르막이 끝나고 있었다. 닐라가 선선히 속도를 줄이는 가운데, 이안은 반대편으로 드러나는 내리막을 눈에 담았다. 완만하게 이어진 내리막 중턱부터, 미구엘의 말대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다.
좌측으로 굽어진 길이 장벽으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잠시 휴식!”
“휴식….”
“여기서 떠나신다면… 그럼 남은 얘기는….”
이안이 멈춰서자, 뒤편에서 볼베르의 외침이 이어졌다. 야인 전사들이 저들끼리 속삭이며 주위로 흩어졌다. 길 가장자리의 나무 둥치에서 쉬려는 것이리라. 걱정과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훌쩍 뛰어내린 나세르가 달려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사제님.”
“어… 고맙수.”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 미구엘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와 인사를 나눌 시간을 주려는 것임을 눈치채서일 터였다.
화로 마차 뒤편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안은 모로와 백마의 멍에를 풀기 시작한 칼렙을 일별했다.
여기서부터 화로 마차는 깊은 숲의 백마들이 끌고 갈 예정이었다.
테사이아가 잠시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아쉬운 건 안다만, 나도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루시.”
그사이 루시아 곁으로 돌아간 미구엘이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두건을 벗은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이미 처음부터 그러기로 한 부분인걸요.”
우기진 않아서 다행이네.
이안이 생각하는 사이, 루시아가 마차 뒤로 훌쩍 뛰어내렸다. 메브가 벗은 투구를 겨드랑이 아래에 고정하며 다가오고 있어서였다.
그대로 달려간 루시아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조심하셔야 해요, 언니.”
“노력해 볼게. 너도, 사원에서 잘 지내고 있으렴. 안전하게.”
메브도 한쪽 팔로 루시아의 등을 감싸안았다. 서로가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니 더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으리라.
“사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모든 과업을 끝마치시면 꼭 들러 주셔야 해요.”
“노력해 볼게.”
메브가 대답하는 사이, 은발을 휘날리며 달려온 요정이 둘을 동시에 끌어안았다.
“걱정하지 마, 동생아. 이안은 몰라도 빨강 머리는, 내가 어떻게든 다시 사원으로 끌고 갈 테니까.”
“감사해요. 언니.”
테사이아가 미소 지으며 속삭이자, 루시아가 마주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계속 같이 다니고 싶은데, 너무 아쉽네. 그냥 지금에라도… 응. 이안 표정을 보니 안 될 것 같아.”
속삭이며 이안 쪽을 힐끔댄 테사이아가 말을 맺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을 뿐, 이안도 내심 고민하는 중이었다.
‘이대로 저 녀석을 계속 데리고 다니는 게, 내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결정이긴 한데.’
어쩌면 그게 불길한 예지를 어긋나게 할 방법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 몇 번이나 떠올렸던 생각이기도 했다.
물론, 이번에도 결론은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돌려보내는 게 맞아.’
루시아는 지금까지 너무 오랜 시간 위험한 여정을 이어오지 않았던가. 그녀는 사원의 미래도 짊어진 몸이었다. 사원장과 약속했듯,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순리였다.
‘어쩌면 그냥 이게 정답일지도 모르고.’
흑태자는 대교회에 원한이 있을 뿐, 화로의 사원까지 증오하는 건 아니지 않던가. 게다가 사원장인 체르윈과도 각별한 관계였던 것 같았다.
이대로 루시아와 미구엘을 계속 사원에 남겨 둔다면, 최악의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푸르륵-
옆에서 이어진 닐라의 숨소리에, 이안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다가온 닐라가 그의 팔뚝에 머리를 비볐다.
“저쪽으로 가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뒤따라 다가선 나세르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뒤편의 마차로 돌아갔다. 칼렙은 백마를 이끌고 화로 마차 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일행의 마차 앞에는 모로만이 남았다.
푸륵…
녀석은 조각상처럼 선 채 닐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마차를 끄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리라.
“어떻게 할까요, 나리…?”
물론 반응만 봐도, 닐라는 바라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애초에 닐라는 늘 모로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모로만 마차를 끌게 해. 이 녀석은, 내가 탈 테니까.”
이안이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닐라가 홱 고개를 들었다. 기쁜 듯 콧김을 뿜는 녀석을 돌아보며, 이안이 덧붙였다.
“모로를 묶고, 이 녀석한테는 안장을 얹어 줘.”
닐라가 바라고 있어서 내린 결정만은 아니었다. 지금 두 녀석을 붙여 두면 이동이 느려질 게 분명하지 않은가.
“예. 알겠습니다.”
풀썩 웃음 지으며 대답한 나세르가 몸을 돌렸다. 그사이 인사를 끝내고 다가온 루시아가 닐라의 목을 끌어안았다.
“다치지 않게 늘 조심해, 닐라.”
닐라가 부드럽게 머리를 비볐다. 녀석의 목덜미를 몇 차례 쓰다듬은 루시아가, 비로소 긴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
이안을 올려다보는 녹색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여러 감정이 밀려드는 듯한 눈빛. 아마 지금 녀석을 마주 보는 이안의 눈빛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였다.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안이 먼저 내뱉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루시.”
“이안 님…!”
루시아가 비로소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녀석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감사해요… 전부 다요. 이안 님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이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늘 무표정하던 애어른이 어느새 이렇게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것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윽고 녀석의 어깨에 팔을 감싸며 이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게다가 내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네가 그런 위험에 처할 일도 없었을 거고.”
“그럴 리가요… 그랬다면 전 이미 진작에 이 세상에 없었을….”
루시아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웅얼댔다. 팔에 힘을 주었던 이안이, 뒤이어 그녀의 정수리의 가면에 손을 얹었다.
“미구엘 말처럼, 울보가 다 됐구나.”
“지금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루시아의 속삭임에, 이안의 미소가 멈칫 굳어졌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다.
“그럴 리가. 또 만날 거다.”
“…정말요?”
“그래. 내가 떠나게 된다고 해도, 그 전에 반드시.”
루시아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테사이아가 들었을지도 몰랐지만, 사실 크게 상관없었다.
야인 전사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뿐이었으니까. 저들의 귀에 들어갔다간 승천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들을 떠들어댈 게 분명하지 않던가. 고개를 들어 눈물 맺힌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보며, 루시아가 속삭였다.
“약속하신 거예요.”
“그래. 예상보다 빨리 다시 보게 될지도 몰라. 언제 사원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까.”
이안이 그녀의 얼굴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덧붙였다.
“그땐 아마 원장이 직접 움직이시겠지만, 그래도 네 얼굴 정도는 볼 수 있겠지.”
“맞아요. 그렇게 될 거예요.”
루시아가 곧바로 대답했다. 어떻게든 그렇게 되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게 분명했다. 얼굴을 마저 닦아낸 이안이 미소지었다.
“그러니 잘 지내고 있어라.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럴게요. …모로와 나세르한테도 인사하고 와야겠어요.”
옆으로 고개를 까딱인 루시아가 마차 쪽으로 몸을 돌렸다. 뒤이어 일행과 인사를 나눈 사제들이 그의 앞으로 줄지어 늘어섰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자 대행.”
알렉이 대표로 가슴에 주먹을 얹으며 말했다. 다른 사제들도 주먹을 가슴에 얹으며 고개를 숙였다.
조금 후련한 얼굴들인 건, 드디어 급속 행군에서 해방되어서일 터였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원장을 잘 부탁드리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타오르는 여신의 은총이 늘 성자 대행을 가호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사제들이 몸을 돌렸다. 알렉은 마부석으로 향했고 둘은 마차 위로. 나머지 셋은 뒤편에 늘어섰다.
칼렙과 함께 백마들을 마차에 고정한 미구엘이 옷깃에 손을 탁탁 털며 다가온 건 거의 동시였다.
“형씨 말씀이 맞았소.”
“뭐가.”
“개수작 부리지 않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잖소.”
이안도 그제야 그를 따라 뒤편을 돌아보았다. 입을 우물거리며 걸터앉은 야인 전사들 사이. 나무 둥치에 기대선 채 루시아를 바라보고 있는 아스켈이 눈에 들어왔다.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오는 눈빛이었다.
“보다 보니까 좀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릴.
이안이 콧방귀를 흘리는 사이, 닐라가 그의 곁을 지나쳤다. 루시아와 나세르가 돌아오고 있어서였다.
나세르가 닐라의 등에 안장을 걸치는 사이.
“다 이야기해 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해요! 그래도 다들, 건강하셔야 해요!”
루시아가 야인 전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쉬고 있던 전사들이 우르르 일어서며 화답했다.
“아닙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백염의 성녀께 영원한 열정을!”
“열정을-!”
떠들썩한 함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루시아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그럼… 갈게요.”
“술 적당히 마셔라.”
이안이 앞을 지나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툭 덧붙였다. 루시아가 풀썩 웃음을 흘렸다.
“노력은 해 볼게요.”
한마디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 채였다.
…안 하겠다는 얘기구만. 내심 읊조리며, 이안은 사제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르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다각- 다각-
마차가 기다렸다는 듯 출발했다.
야인 전사들의 함성이 더 커졌다.
“조심히 가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꼭이요!”
가장 크게 소리치는 건, 물론 아스켈이었다. 앞에선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더니. 도끼까지 머리 위로 치켜들어 흔드는 채였다.
“또 봐! 동생아!”
테사이아도 머리 위로 치켜든 팔을 휘적대며 소리쳤다. 마차 후미에 선 루시아는 그들 모두를 돌아보며 열심히 팔을 흔들어 댔다.
“…….”
이안은 멀어지는 루시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쉬움과 허전함이 뒤늦게 밀려들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루시아와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던가. 함께 넘은 사선만 해도 한 손으로는 셀 수 없었다.
‘…익숙해져야 하겠지.’
하지만 그 사실이 어떤 심경의 변화를 만들어낸 건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불길한 예지를 현실로 만들지 않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할 뿐이었다.
“가 버렸네….”
내리막 너머로 이어진 갈림길로 접어든 마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가려졌다.
비로소 팔을 축 늘어뜨린 테사이아가 읊조리는 사이, 이안이 곁에 선 닐라의 안장에 훌쩍 올라탔다.
“그럼 이제, 우리도 가자.”
메브가 투구를 눌러쓰며 몸을 돌리고, 미구엘이 테사이아와 나세르의 곁으로 다가섰다.
“휴식 끝! 집합!”
볼베르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야인 전사들이 걸음을 옮기는 사이, 모로가 끄는 마차가 일행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출발하겠수.”
마부석, 칼렙의 옆에 올라탄 미구엘이 자연스럽게 고삐를 받아 들며 말했다. 모로는 앞을 지나치는 내내 닐라를 돌아보았다.
물론 닐라는 여전히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쳐 주지 않았다.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다각- 다각-
닐라가 마차가 완전히 지나치고서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가운데. 야인 전사들이 자연스럽게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제 이야기는 누가….”
“하필 가장 궁금한 곳에서….”
비단 아스켈만이 아니라, 다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성화와 함께 유능한 이야기꾼까지 사라져서일 터였다.
“…어쩔 수 없네.”
나세르와 함께 마차 지붕에 올라온 테사이아가 내뱉은 건, 내리막 길에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야인 전사 몇몇이 올려다보는 가운데, 테사이아가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부턴, 내가 이어받아서 말해 줄 수밖에.”
“……!”
“……!”
야인 전사들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그들의 급속 행군에 새로운 서광이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토벌대가 호프 시 인근에 다다른 건 그로부터 이틀 반나절이 더 지나서였다.
본래라면 나흘은 걸릴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