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69
069화
“…….”
말발굽 소리만이 이어지는 고요함에, 이안은 새삼 말 많은 용병과 호기심 많은 소녀의 빈자리를 느꼈다.
아주 조금의 허전함.
하지만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았고, 남은 삶을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어갈 기회를 손에 넣었으니까.
자신과 계속 함께해 봐야, 싸우고 죽이는 기술만 늘어날 터였다.
끝내는 죽음이 기다릴 테고.
‘…혹은 그보다 더 나빠지거나.’
이런 여정을 이어나가는 건 그처럼 선택권이 없거나, 샬롯처럼 목숨 건 전투를 삶의 목표로 삼는 부류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 이제 잊자. 다시 만날 일이 없으면 그게 더 좋고.
또다시 같은 결론을 속으로 읊조리며, 이안은 시선을 돌렸다.
관도를 따라 이어진 황량한 전경.
그늘마다 얼어붙은 눈의 흔적들.
북부의 전형적인 날씨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몸속에 깃든 신성력 덕분이었다.
게임에서와 달리, 체르윈은 축복이 열흘가량 이어질 것이라 했다.
루 엔테르가 더 많은 신성을 내렸다고도 했으니, 어쩌면 더 오래 지속될지도 몰랐다.
‘…혼돈력을 조금씩 흘려 넣으면, 지속 시간이 더 늘어날지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가정.
하지만 이안은 축복이 끝나가는 시점에나 실험해 보기로 했다.
축복이 어그러져서, 아까운 혼돈력만 날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혼돈력이 회복되는 속도는 마력보다도 훨씬 더 느렸다.
혼돈의 파편을 더 키우거나 회복 속도를 빠르게 만들 필요성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능력치를 올려 높일 수 있는 마력량에는 한계가 명확했고, 범용성도 혼돈력이 더 뛰어났다.
공허의 힘이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어떻게든 계속 강해져야 하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능력치 분배도 더 망한 지금은 더더욱.
‘…방어력만큼은 확실히 올라갔지만.’
그가 새로 구비한 방어구들은, 대부분 사슬과 얇은 철판을 덧대 만든 것들이었다.
입어 본바, 가죽 방어구를 착용한 것과 움직임에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적어도 그가 마법사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코앞에서 마법을 부려도, 눈만 마주치지 않는다면 마법 무구나 유물을 가지고 있으리라 판단하리라.
‘…마을에서 바이저 달린 투구라도 하나 살 걸 그랬나.’
이러다 언젠간 전신 판금 갑옷을 걸치고 양손검을 들고 있을지도.
이안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치는 그때.
“…이안.”
그를 더 강하고 빠르게 만든 주범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이안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눈빛까지 감춘 것은 아니어서, 샬롯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 그게….”
이안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샬롯이 초조해하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종속되어 가는 과정인 것같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애초부터 빚을 지거나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인 것으로 보였다.
아마 수인족 특유의 자존심 때문일 터.
“그러고 보니, 식사 때가 지났군.”
내뱉은 이안이, 옆에 놓여 있던 육포 덩어리를 그녀에게 던졌다.
점원 말로는 곰 고기라는데, 사실은 쥐 고기였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맛을 가진 녀석이었다.
“더 필요하면 말해라.”
샬롯은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게 될 터였다. 당연히 평상시의 컨디션 관리 정도는 신경 써 줘야 했다.
그녀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면 귀찮고 피곤해지는 건 그였다.
“어… 아니, 음. 그래. 잘 먹겠다만.”
육포를 받아 든 샬롯이 당황한 듯 주절댔다.
이안의 미간이 결국 구겨졌다.
“또 뭐.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라. 답답하게 만들지 말고.”
“그…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언제쯤 야영지를 꾸려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내가… 마부로 살아 본 적은… 없어서….”
틈만 나면 잔소리를 해대던 미구엘의 빈자리를 그녀 역시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기본적인 걸 묻다니.
이안이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화로의 사원에서 받아 온 물건이었다.
마법이 담기지도, 축척이 정확하거나 자세한 물건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인근의 지리만큼은 알아볼 수 있게 그려져 있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바위가 솟은 갈림길이 나올 거다. 거기서 왼쪽으로 가. 야영은 때가 되면 말해 줄 테니, 귀찮게 하지 마라.”
“…그래. 알았다.”
샬롯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짤뚱해진 꼬리가 축 처져 있었다.
코웃음 친 이안이 다시 지도를 눈에 담았다.
화로의 사원에서 먼 북쪽. 장벽처럼 이어진 아히고른 산맥의 서쪽 끄트머리 너머에, 체르윈이 남긴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버려진 땅에서부터 이어진 얼음 숲의 위치였다.
그 주위와 내부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건, 물론 알려진 바가 없어서였다.
지도와 함께 두꺼운 역사책을 들이밀던 체르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귀하의 손에 새겨진 건 고대 북부 왕국 중 하나의 표식일 거예요. 다만, 고대 북부 왕국들의 문양은 국가뿐 아니라 통치자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특징이 있죠.
-그래서, 같은 건 찾았소?
-비슷한 건요.
그녀가 보여 준 건, 북부 거인 왕국의 문양이었다. 확실히 이안의 손에 새겨진 것과 비슷했다.
-거인 왕국의 정확한 이름은, 지금에 와선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거인 왕국의 마지막 여왕이 공허의 힘을 탐구한 초기의 권력자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로만 알려져 있죠. 불사의 군단과 불멸의 힘을 손에 넣으려 했다는데.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는, 말씀드릴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불사와 불멸이라. 전형적이군.
-그녀는 자신의 별궁에서 연구에 매진했다더군요. 그녀와 왕국의 최후에 대해선 기록이 모호해요. 혹자들은 아직도 아히고른 산맥 어딘가에, 불사의 거인 군단이 잠들어 있다고도 하더군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안은 게임에서, 산맥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고대 거인 왕국의 유적을 탐험한 적이 있었다.
지성과 기억을 잃고 잠들어 있는 거인 대장군과 그의 군단이 봉인된 곳이었다.
-이따금씩 산맥 인근에서 검은 벽의 광기를 머금고 되살아난 거인 전사가 발견되곤 하는 걸 보면, 아예 없는 말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말씀하신 숲은….
-산맥 옆으로 이어져 있는 거군. 이해했소. 어느 정도 거리가 있긴 하지만, 아예 동떨어지진 않았지.
-그 저주받은 숲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만. 귀하 덕분에 고대 거인 왕국과 관련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으리란 사실이 밝혀지게 된 셈입니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게임에서 겪어 보지 못한 건 물론이고, 공략글에서도 관련된 부분을 읽은 적이 없었다.
공략글을 필요한 부분만 훑어 댈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어야 했다는 부질없는 생각만 다시 한번 곱씹을 따름이었다.
‘…위치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할 수밖에.’
생각하며, 이안은 의자에 더 깊이 몸을 묻었다.
마찬가지로 이 적막한 평온 역시,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둬야 했다.
북부의 밤은 특히 혹독하기로 유명했으니까.
언제 어디서 평화를 깨뜨릴 무언가가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
“이런….”
샬롯이 어설프게 야영을 준비하는 사이, 문득 이안의 미간이 꿈틀댔다.
후, 입김 섞인 한숨을 내쉰 그가 왼손 손아귀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문양이 울리고 있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옅은 마력의 파장이 신호를 보내듯 번졌다.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경험을 통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준비 해라.”
이안이 내뱉은 말에,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세 번째 시도에 들어가던 샬롯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준비?”
“네가 좋아하는 걸 할 준비.”
대답한 이안이 손을 털었다.
그의 손끝에서 튀어나간 불꽃이, 단숨에 장작에 불을 붙였다.
잠시 허탈한 듯 모닥불을 응시하던 샬롯이, 이내 다시 홱 고개를 돌렸다.
“싸움? 싸움이 일어난다고?”
그녀의 주황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순간이 왔다는 듯한 얼굴.
이내 귀를 쫑긋댄 그녀가 어둠 너머를 돌아보았다.
“그렇군…! 온다…!”
“…벌써 느껴진다고?”
이안이 되묻자, 샬롯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놀랄 것 없다. 수인족의 감각은 대륙의 모든 종족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하니까. 게다가 난 유독 더 그런 편이지.”
“아, 그래.”
피식한 이안이 턱짓했다.
“마차 바퀴에 돌부터 잔뜩 괴어 놔라. 혼자 도망간 마차를 되찾으러 가고 싶지 않으면.”
“…아. 그렇군.”
샬롯이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이 이안이 시키는 걸 순순히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그사이, 이안은 이리저리 몸을 풀며 주위의 어둠을 돌아보았다.
아직 그의 눈에는 짙게 깔린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북부는 온갖 마물의 천국이었다.
북부 자치령의 백성들은 대부분 화로의 사원이나 트라벨가 같은 거점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미구엘의 말에 따르면, 검은 벽의 광기가 잠들어 있던 고대의 존재들도 죄다 일깨우면서, 가뜩이나 살기 힘든 동네가 더 위험해졌기 때문이랬다.
휘이이-
황량한 어둠 너머.
비척대며 기척을 드러내기 시작한 놈들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많았다.
마차 가장자리에 훌쩍 올라선 이안의 동공이 올빼미처럼 확장됐다.
누더기를 걸친 언데드들.
되살아난 고대 북부의 망자 군단일 터였다.
‘매일 밤 이러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검을 뽑아 든 이안은, 과거 메브가 그랬던 것처럼 검날 아랫부분을 움켜쥐고는 몸을 날렸다.
쉬하악-!
내달리는 발걸음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비척대던 해골 한 마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아겔 란에서 본 것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놈은 이안을 보자 방어 자세부터 취했다는 사실이었다.
꼭두각시에 불과한 언데드는 아니라는 의미.
다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퍼석-!
단죄의 검이 언데드의 낡아 빠진 검과 함께 두개골까지 박살 냈다.
그 안의 망령이 잠시 번쩍이다 흩어지는 사이, 이안은 이미 다음 언데드의 두개골을 후려치는 중이었다.
빠각-!
또 한 마리. 그리고 다음.
이안은 막힘 없이 언데드 병사들의 머리를 박살냈다.
콰직! 빠악-!
옆에서도 소란이 이어졌다.
득달같이 달려온 샬롯이 날뛰고 있었다.
쌍검을 움켜쥔 그녀는 자신의 야성이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되살아난 망자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전투 방식이었다.
기세는 더 흉험해졌지만, 훨씬 비효율적인 방식.
‘어그로는 확실히 끌겠군.’
하지만 장차 그녀가 맡게 될 역할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언데드 부대가 뼈 무더기로 되돌아가는 데에는 불과 십여 분이면 충분했다.
“…후.”
검을 되돌린 이안이 짧게 숨을 골랐다.
몸이 상쾌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미 이쪽 세계에 완전히 물들어 버린 게 분명했다.
손아귀의 울림은 어느새 잦아들었지만.
같은 현상이 반복되리라는 확실한 징조로 느껴졌다.
‘찾아오라고 해 놓고 마물들을 불러 모으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짓 아닌가?’
선택받은 자의 시련, 뭐 그딴 거라도 내리고 싶은 건가.
생각하며 모닥불 앞에 앉은 이안은, 샬롯이 아직도 어둠 속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전투 내내 이안을 힐끔댔고, 지금은 그가 쓰러뜨린 망자 사이를 돌며 두리번대고 있었다.
“뭐 하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샬롯이 모닥불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충격받은 듯한 눈빛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모닥불을 멍하니 응시하던 샬롯이, 문득 내뱉었다.
“어떻게 한 거지?”
“뭘.”
“어떻게 네가… 나보다 더 많은 마물을 쓰러뜨린 거지? 분명히 근접전만큼은 내 쪽이 조금 더….”
그거에 그렇게 충격받은 거라고?
이안은 눈썹을 슬쩍 치켜들었지만, 샬롯은 여전히 진지했다.
“어떻게…?”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이안이 내뱉었다.
“내가 볼 때 넌, 전사보다는 암살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뭐라고…? 나는 태생부터 전사였고, 지금도 전사다.”
샬롯이 자존심이 상한 듯 말했다.
뭐, 그러시다면야.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계속 그렇게 싸워라. 난 상관 없으니까.”
“…….”
***
샬롯은 밤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 날 밤에는 그 전날 같은 대규모 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주변을 맴돌다 찾아온 마물 몇 마리가 습격의 전부였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그다음 날, 언데드 부대의 습격이 있었다.
샬롯은 기다렸다는 듯 온 힘을 다해 날뛰었다.
“어째서…?”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고작 이안과 비슷한 정도의 공적을 올렸을 뿐이었다.
“대체 그런 걸 왜 신경 쓰는지 모르겠군.”
“…….”
이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그녀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싸움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말이 퍼져 버릴 때까지 쉬지 않아서 전진이 오히려 늦어지기도 했고, 야영지로 삼을 만한 위치를 제대로 찾아내지도 못했다. 여전히 모닥불 피우는 건 어려웠고, 심지어 육포조차 태워 먹기 일쑤였다.
그러니 꼬리의 반환을 정당하게 요구하려면, 전사로서라도 제 몫을 넘치게 해야 할 판이건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실수와 부채심만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의 야성이 더 빠른 속도로 꺼지고 있다는 것까진, 그녀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뿐.
그렇게 종일 한계까지 바짝 곤두선 그녀의 감각에 적당한 기회가 포착된 건,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
불침번을 서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던 샬롯의 귀가 문득 쫑긋댔다.
그녀의 시선이 마차 너머의 어둠으로 돌아갔다.
동공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확정되고,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한층 민감해진 그녀의 후각에 옅은 피 냄새가 스며들었다.
또 그 기척이 분명했다.
샬롯이 이 기척을 처음 느낀 건 사흘 전이었다.
처음은 지금보다 노골적이었다.
다급함과 두려움이 섞인 숨소리. 조금 더 짙은 패 냄새.
상처 입은 마물의 기척과도 흡사했고, 이내 사라져서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그 기척이 얼핏 느껴진 순간, 얘기가 달라졌다.
놈은 샬롯 조차 어렴풋이 느낄 거리까지만 다가왔다가, 이내 다시 사라졌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샬롯은 비로소 저 기척이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음을 확신했다.
놈이 왜 따라오다 멀어지는 건지는 뻔했다.
습격할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이쪽이 눈치챘으리란 생각 따윈 하지 않은 채로.
하긴. 이런 은밀한 기척을 느끼는 건, 수인 중에서도 그녀처럼 특출난 부류가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느껴지지 않나?”
“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묻는 이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샬롯의 입술이 송곳니가 드러나게 말려 올라갔다.
그가 눈치조차 채지 못한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다면, 그건 상당히 큰 공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잠시 다녀오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