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81
081화
광분해 날뛰던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푸른 안광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뭐야, 왜들 이래?”
테사이아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퍼석-
언데드 하나의 두개골을 후려친 샬롯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슨 상관이지? 그냥 다 처리하기나-”
끼- 아아아악-
끄오오오오-
언데드들이 절규하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덜그럭대는 뼈 소리가 사방에서 이어졌다.
빠각!
잠시 고개를 갸웃한 샬롯은, 곧바로 다시 놈들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다시 달려든 건 그 직후였다.
하지만 놈들의 움직임은 광분했다기보단 혼란에 휩쓸려 발광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샬롯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건 테사이아도 마찬가지였다.
콰직-! 빠각!
난폭할 뿐 별것 아니던 놈들은, 움직임까지 어설퍼진 후로는 더더욱 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언데드들이 뼈 더미로 되돌아갔다.
남은 건 불과 서너 마리.
퍼석!
한 놈은 샬롯의 주먹에 머리가 박살 났다.
빠각-!
또 한 놈은 달려든 테사이아의 양손에 두개골이 으스러졌다.
그사이 샬롯이 다른 한 놈을 더 박살 냈고.
빠각-
마지막 놈은, 뒤통수를 뚫고 파고든 단검에 푹 고개를 떨궜다.
파스스-
안광이 증발하고 뼈만 남은 몸이 우수수 허물어졌다.
샬롯과 테사이아는 이미 놈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선, 단검을 던진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생들 했다.”
폐허의 전경을 돌아본 이안이 내뱉었다.
테사이아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고생은 이안이 가장 많이 한 것 같은걸.”
이안은 전투가 위험하고 격렬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눈이 섞여 진흙처럼 변한 흙이 온몸에 범벅이었고, 머리는 산발. 입가에는 피가 찐득하게 늘어 붙은 데다, 각반은 찢겨 나가 덜렁댔다. 그 아래로 드러난 두툼한 내복은 핏물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건 그렇지.”
절뚝대며 걸음을 옮기던 그가, 이내 샬롯을 돌아보았다.
“난 쉴 거다. 테사가 내 곁으로 오지 못하게 해. 피를 많이 흘렸으니, 참기 힘들 거야.”
샬롯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테사이아는 이미 이안의 허벅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의 여파가 남은 번들대는 붉은 눈에 갈증과 욕망이 뒤엉켰다.
꾹, 샬롯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그녀는, 손을 들어 그대로 테사이아의 얼굴을 후려쳤다.
빠악-!
“아악!”
튕겨 나가 바닥을 구른 테사이아가, 성난 짐승처럼 자세를 잡으며 샬롯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야? 미쳤니?”
“한 번만 더 이안을 보면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송곳니를 전부 뽑아 주지. 다시 자랄 때마다 계속.”
“이건 그냥 어쩔 수 없는 현상이거든? 네가 게으름을 피워서 힘을 너무 많이 썼단 말이야! 쥐라도 한 마리 잡아 주고 지랄하든가!”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둘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모닥불로 걸어간 이안은, 모포를 꺼내 펼쳤다.
“…….”
그는 모포 안으로 기어 들어가, 곧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안! 이 짐승이 한 짓은 절대로 그냥… 이안?”
“…?!”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쓰던 뱀파이어와 수인이, 뒤늦게 그를 돌아보며 눈을 치켜떴다.
그가 기절하듯 잠든 것임을 깨달은 둘의 얼굴에 안도가 스친 것도 잠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샬롯이, 이안의 모포를 등지고 앉아 테사이아를 노려보았다.
올 테면 와 보라는 눈빛.
손에 쥔 검을 까딱이는 채였다.
“그렇게 안 봐도, 어떻게 할 생각 같은 거 없거든?”
콧방귀를 뀐 테사이아가 몸을 돌렸다. 샬롯이 덧붙였다.
“어딜 가는 거지?”
“쥐 잡으러 간다. 버리고 가지 않을 테니까, 조용히 주인님이나 지키고 있으렴. 야옹아.”
“…….”
비로소 폐허가 된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눈송이들만이, 소리 없이 마을을 감싸 안았다.
***
악몽의 잔재는 빠르게 흩어졌다.
지끈거리는 두통. 약간의 현기증과 무기력함을 느끼며, 이안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
다음 순간, 그는 그 모든 불편에도 불구하고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머리가 모포 옆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두개골 위에 피부만 씌워 놓은 것 같은 끔찍한 몰골.
텅 빈 눈구멍 너머의 어둠과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
거인의 머리통을 잠시 내려다본 이안이, 이윽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신 이런 짓을 하지 못하게 못 박아 둬야겠다고 속으로 읊조리며, 이안은 머리통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단죄의 검이 놓여 있었다.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샬롯이나 테사이아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심지어 반쯤 부서진 커다란 두개골도 그 옆에 있었다.
어제 그가 죽인 관문을 지키는 자의 잔해였다.
‘무슨 트로피처럼 전시해 뒀군.’
현실감을 단숨에 돌아오게 만들기엔 충분한 광경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이안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한참은 잔 것 같은데도 여전히 기운이 전혀 없었다. 두통과 현기증.
몸속이 텅 빈 것처럼 공허했다.
마력 탈진 증상이었다.
게임 캐릭터였을 시절의 자신에게 새삼스러운 미안함이 들었다.
툭하면 마력을 죄다 갈아 넣고 마력 탈진 상태에 빠뜨렸었으니까.
이런 줄도 모르고, 비실댄다고 욕만 했었다니.
‘…그 업보까지 돌려받는 건지도.’
생각하며 고개를 든 이안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지붕과 모닥불이 있는 야영지 건물의 경계선 너머, 새하얗게 변한 마을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기절한 후로도 한참 더 눈이 내린 모양이었다.
아직 하늘에 구름이 덮여 있어 녹지 않은 건지, 이제 여기까지 설원 지역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밤이 되면 느낌이 또 다르겠지만.
어쨌든 당장은 상념이 싹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광경이었다.
“어머. 잘 잤어, 이안?”
테사이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늑대 로브를 푹 눌러쓴 그녀가, 양손에 장작으로 쓸 나뭇가지들을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잤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한나절쯤?”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온 테사이아가, 모닥불 옆에 나뭇가지를 우르르 떨어뜨렸다.
가지 몇 개를 다시 집어 들어 눈을 털고 마구잡이로 부러뜨리는 그녀를 보며 이안이 피식댔다.
“용케도 기운을 회복했군. 내 피도 안 빨았고 말야.”
“정말 군침이 돌긴 했지만, 잘 참았어. 대신 마을을 뒤져서 쥐를 몇 마리 먹었지.”
“샬롯이 감시를 잘했나 보군.”
“네 충실한 야옹이는 물론 해 뜰 때까지 잠도 안 자고 감시했지만. 그게 아니어도 참았을 거야. 잘못하면 네가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얹은 테사이아가 그 옆에 앉았다.
“어쨌든, 난 네 부탁을 훌륭하게 완수했어. 이안.”
그녀가 뽐내듯 양팔을 들었다.
이안은 그제야 그녀 등 뒤의 마차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마른 풀을 질겅대는 말들은, 아주 평온해 보이는 상태였다.
“그래. 고생했다.”
테사이아의 눈이 순간 커졌다.
이내 그녀가 활짝 미소 지었다.
“정말 그렇게 말해 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역시 그렇지?”
낮이라 그런지, 뱀파이어보단 그저 요정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딴에는 노력하고 있다, 이거지.
피식한 이안이 덧붙였다.
“샬롯은?”
“뭘 좀 잡아 오겠다던데. 모르겠어, 알아서 오겠지. 네 야옹이니까.”
“…그렇군.”
사냥이라도 가나 건가? 설마 또 마물을 들고 오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이안은 옆의 짐가방에서 수통과 육포를 꺼냈다.
상당히 좋은 가죽 부대 수통이었는데, 이것도 닝글로슬에서 의뢰의 보수로 받은 물건이었다.
테사이아가 나른한 얼굴로 짐가방에 기대 누웠다.
물로 입을 축이고 육포를 뜯어 입에 넣은 이안이, 말없이 턱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려면 입맛이 없어도 먹어 둬야 했다.
지난밤의 기억이 절로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슬슬 조금씩 빡세지기 시작하네.’
이안은 간만에 게임일 때부터 이어져 온 자신의 고질적인 약점을 실감했다.
소위 말해 압도적 한 방의 부재.
온갖 잡다한 스킬을 익히고, 능력치를 괴상하게 분배한 결과였다.
초반부. 한 번 해 본 경험. 그때는 없었던 동료나 자원 등 여러 요소가 더해져, 지금까진 어찌어찌 잘해 내고 있지만.
결국은 그래 봐야 망캐. 잘 쳐 줘야 잡캐였다.
관문을 지키는 자를 죽이려 쏟아부은 마법이 몇 개인지. 화력을 높이기 위해 마력을 더 많이 갈아 넣는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쨌건 관문을 지키는 자는 상대할 만한 위험이었고. 게임과 비교해서도 훨씬 수월하게 잡아냈다.
레벨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때는 몇 번이나 죽어 가며 재도전한 끝에 아슬아슬하게 죽였었으니까.
게다가 아직도 남은 포인트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냥 아끼지 말고 다 써야 하나.’
잠시 갈등한 이안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통장에 여윳돈을 남겨 두듯. 능력치와 스킬 포인트는 항상 어느 정도 여유를 둬야 했다.
공허로 빨려들어 가거나 샬롯 같은 예상 못 한 강적을 만났을 때처럼, 급하게 능력치를 올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야 했으니까.
웬만하면 지능과 정신력 이외의 능력치는 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예상 못 한 위기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또 그래야 하리라.
스킬도 그랬다. 그가 가진 것들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저항력이나 전투력을 가진 적이 언제 튀어나오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스킬 트리를 조금씩 넓혀가야 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속성의 스킬을 다 익히기로 한 이상 더더욱.
당장은 화력은 적색, 수비는 청색, 공수 보조는 회색, 비전은 다용도로 컨셉을 잡고 사용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회색의 화력이라든가 청색의 보조. 어쩌면 거의 올리지 않고 방치한 갈색이 필요한 순간도 생길지 몰랐다.
‘외길만 걸었으면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인데.’
이미 주워 담기엔 너무 많이 엎질러졌지.
짧게 혀를 찬 이안이 씹고 있던 육포 조각을 삼켰다.
물론 검술도 포기할 수 없었다.
어이없게도, 갈수록 실력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스콜드를 상대할 때도 그랬고.
관문을 지키는 자와 싸움을 시작한 순간에도 놈의 대검을 흘려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시도하진 않았지만.
어쨌건, 육탄전은 앞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분야였다.
이미 투자한 자원이 너무 많았다.
다른 클래스들과 달리 물리 공격과 관련된 스킬은 공용 스킬을 제외하곤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지금까지 그랬듯 실전을 통해 계속 실력을 쌓아나가야 할 터였다.
네임드를 넘어 보스급 적을 상대로도 계속 먹힐 수 있을 만큼.
‘신경 쓸 거 많아서 참 좋네.’
속으로 비아냥대며 육포를 다시 집어 든 그때, 발걸음 소리가 성큼성큼 가까워졌다.
“일어나 있었군, 이안.”
샬롯이었다. 어깨에 웬 암사슴을 짊어진.
“정말 사냥을 나간 거였군.”
이안이 육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눈밭 위에 목이 꺾인 사슴을 툭 떨어뜨린 샬롯이 덤덤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피를 제법 흘렸으니까. 신선한 고기를 먹어야 회복이 빠른 법이다.”
이안의 표정이 묘해졌다.
“뜻밖이군. 둘다 날 이렇게 극진하게 보살필 줄은 몰랐는데.”
“당연한 일이다. 네가 가장 강한 마물을 죽였으니까. 네가 싸운 흔적들을 봤다. 어떻게 싸운 건지 알 수도 없더군.”
“그래서 샬롯, 내 껀?”
테사이아가 끼어들었다. 인상을 찌푸린 샬롯이, 허리에 매달아 둔 걸 던졌다.
“귀여운 토끼네.”
가볍게 받아든 테사이아가 미소 지었다. 이안이 흘깃 보니, 토끼는 심지어 아직 살아 있었다.
말 그대로 숨만 붙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밤까지 잘 살려 둬라.”
“당연하지. 아직 살아 있을 때 먹어야 그나마 먹을 만하다구. 죽은 뒤에 시간이 좀 지난 건, 솔직히 말해서 끔찍한 맛이야.”
테사이아가 부드러운 손길로 토끼를 쓰다듬었다.
그사이, 단검을 뽑아 든 샬롯은 사슴을 해체하고 있었다.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듯,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분리하고 관절과 근육을 따라 토막 내는 일련의 과정이 아주 빠르고 매끄러웠다.
“피를 빼진 않겠다. 그게 네가 회복하는 데 더 좋을 테니까.”
“그런 건 사냥꾼 마음이지. 요리는 엉망이어도 해체는 잘하는군.”
“부족에서부터 익힌 기술이다. 수인은 자식에게 가장 먼저 사냥부터 가르치지. 그걸 다루는 법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선 이안이,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 이리저리 줄로 묶었다.
고기를 얹을 틀이 뚝딱 만들어졌다.
샬롯이 단검으로 허벅지 살을 크게 도려내 나뭇가지에 뀄다. 내장도 하나 뀄는데, 간이었다.
“회복에 가장 좋은 것들이다.”
곧 불 위에 얹은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건너편에 앉은 샬롯은 심장과 고기를 생으로 씹어먹었다.
익힌 음식만 먹는 줄 알았더니, 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생충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몸속에서 다 소화될 거다.”
“…글쎄다.”
이안은 고기와 내장 모두 바싹 익혀 먹었다.
간도 되어 있지 않고 누린내도 꽤 났지만, 그래도 충분히 먹을 만했다. 짐가방 어딘가에 보수로 받은 암염 통이 있지만, 굳이 꺼내려 하지 않았다.
보존 식량에 비하면 이 누린내조차 호사였다.
“고기가 꽤 남았는데, 마차에 싣고 가겠느냐?”
“좋은 생각이군. 날이 이래서 금방 상하지도 않을 테니, 실어 둬라.”
“알겠다. 그럼 하루 더 쉬고 출발할 건가?”
“아니. 준비해서 바로 출발하지. 이동하면서 쉬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