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83
083화
계곡에 쌓인 눈은 의외로 그다지 두껍지 않았다. 바퀴에 두른 사슬 고리가 효과가 있는지, 마차는 미끄러지거나 바퀴가 빠지는 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과 오르막. 거기다 산맥 인근을 따라 곡선을 그리고 있어, 이 계곡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외부에선 절대 저 안을 볼 수 없게 일부러 감춰 둔 것 같네.’
이런 인위적인 느낌은,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 세계는 게임이었고, 온갖 작위적인 장치들이 뒤섞여 있으니까. 이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게임이 현실이 될 수 있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땅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앞뒤는 오히려 가라앉는 경우도 많으니까. 산과 산 사이에 이런 구불구불한 계곡과 저지대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예 억지는….’
…내가 이런 걸 어디서 보고 기억하는 거지.
피식한 이안이 잡념을 떨쳤다.
어쨌건, 이제는 계곡 내부에서도 밖을 볼 수 없었다.
좌우로 솟아 이어진 산기슭이, 이 너머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라고 미리부터 알려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숲이군.”
내리막을 지나 이어진 오르막의 끝에 도달한 순간, 샬롯이 내뱉었다.
“신기하네. 마법 같아.”
테사이아의 탄성이 이어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다가, 갑자기 계곡이 끝나면서 숲이 나타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안은 그걸 가능하게 한 지형적 특수성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그저, 계곡 끝부터 시작된 잿빛의 숲에 멈춰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군.’
하얗게 덮인 눈과 그 위로 앙상하게 솟은 나무들.
귀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적막함까지.
환영 속에서 본 숲의 전경 그대로였다.
“…진짜 뭔가 마법이 깃든 숲 같아, 이안. 기분이 이상해.”
숲을 응시하던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이안도 그녀의 말에 내심 동의했다.
“마차는 두고 가야 할 것 같다, 이안.”
나무들의 간격을 가늠한 샬롯이 말했다.
이안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진입 전에 정비는 필요하니까. 겸사겸사 모닥불도 피워라.”
숲과 계곡 사이엔 경계선처럼 꽁꽁 언 개울이 있었다.
샬롯이 그 앞에 마차를 세웠다.
나뭇가지를 꺾으러 계곡으로 달려간 테사이아가 이내 소리쳤다.
“이안! 여기 뭔가 있어!”
“……?”
짐가방을 챙기던 이안이 그녀의 손짓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여기 봐. 뭔가 적힌 돌이 있어.”
뽐내듯 말한 테사이아가 나무 아래의 눈을 파헤쳤다.
반쯤 튀어나와 있던 비석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오래된 듯 낡아 보였지만, 표면에 새겨진 글자만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뒤따라온 샬롯이 미간을 좁혔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처음 보는 문자인데.”
“그러게. 혹시 알아보겠어, 이안?”
테사이아가 고개를 돌렸다. 비석을 응시하던 이안이 내뱉었다.
“대충은.”
“역시. 이안은 알아볼 줄 알았어. 전에 그 유령 거인이 하는 말도 알아듣는 걸 봤거든. 그래서, 뭐라고 적혀 있는 건데?”
샬롯도 궁금한 듯 그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이안이 말했다.
“이건 경고문이다. 여기서부턴 용의 권역이라는군. 이름도 쓰여 있는데… 이건 못 알아보겠어.”
“용…? 용이라고?”
샬롯의 눈이 커졌다.
테사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숲에 용이 있단 얘기야? 어쩐지, 느낌이 안 좋더라. 당장 나가자, 이안.”
샬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었다더니. 용이 뭔지는 아나 보군.”
“그러게…? 듣자마자 그냥 무시무시하다는 생각부터 들었어.”
테사이아가 얼떨떨하게 읊조리는 가운데, 샬롯이 이안을 돌아봤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상대가, 설마 용인 것이냐? 만약 그렇다면 내 생에 가장 영광스러운 전투가 되겠군.”
“애석하게도 그렇진 않을 거다.”
아마도.
뒷말을 삼킨 이안이 턱을 긁적였다. 그가 알기로, 대륙에 남은 용은 단 두 마리였다. 나머지는 오래전에 흑해 너머로 이주했다고 했다.
둘 중 한 마리에게 직접 들은 말이었고, 현실이 된 지금도 달라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다른 한 놈하고는 싸웠었지. 그것도 그놈의 둥지에서. 오래 산 용은 둥지가 여럿이라고는 하지만….’
이안의 시선이 황량한 숲으로 향했다.
두 용 모두, 이런 곳에 굳이 둥지를 만들어 뒀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전부야? 여기 적힌 글자들은 그것보단 길어 보이는데.”
“대충, 허락받지 않은 자가 발을 들이면 살아서 나가지 못할 거란 내용이다.”
“왜 대충이야?”
“전부 읽을 수는 없었으니까.”
“…아.”
“친절한 용이군. 침입자를 위한 글귀까지 남기다니.”
샬롯이 콧방귀를 뀌었다. 용과 싸울 수 없다는 게 어지간히 아쉬운 모양이었다.
진짜 용을 마주하면 생각이 좀 달라지겠지만.
“미리 겁을 먹고 돌아가길 바란 건지도 모르지.”
심드렁하게 말한 이안이, 테사이아에게 장작을 가져오라 덧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마차에서 짐가방을 내리는 사이, 돌아온 테사이아가 땔감을 우르르 떨어뜨리며 말했다.
“정말 저걸 보고도 들어갈 셈이야? 저 안에 있는 게 뭐건, 결국 용과 관련된 존재란 얘기잖아.”
“이왕이면 보물도 있으면 좋겠군.”
테사이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살아나가지 못할 거라는데, 보물이 무슨 소용이야?”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다. 난 초대를 받고 여기 온 거야. 거기다 우린 이미 저 숲에 한 번 발을 들인 적도 있다.”
“응…? 언제?”
“버려진 땅에서.”
테사이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안이 말들을 마차에서 분리 중인 샬롯을 돌아보았다.
“나랑 저 녀석이 싸웠던 숲.”
“아, 거기. 기억나. 그런데….”
테사이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거긴 여기서 엄청 멀잖아. 이 숲이 그렇게까지 크다고?”
“아마도.”
이안은 심드렁하게 잿빛 숲을 돌아보았다.
이 안에 도사린 게 뭐건, 권역 근처에서만 힘을 쓸 수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숲을 계속 넓혀간 것이리라.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를 찾아 불러들이기 위해서.
‘그놈이나 그 망령 거인 놈이나, 알아먹지 못할 소리만 해 댔지만….’
자세한 사연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 숲에 도사린 놈도 상당한 경험치를 주리란 것과 퀘스트의 보상이 스킬 포인트라는 사실이었다.
이 보상 하나만으로도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래… 내가 뭐라고 말해도 달라질 건 없단 거네.”
테사이아가 체념한 듯 읊조렸다.
그녀가 모아 놓은 땔감에 불덩이를 던져 불을 피운 이안이, 다가오는 샬롯과 테사이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난 날 불러들인 놈과 싸우게 될 거다. 그 과정에서 너희 둘까지 신경 쓰지는 못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희 둘은 서로를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해라. 하던 대로.”
“이 귀쟁이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지 모르겠군.”
“있을걸. 지금까지 그랬듯이.”
테사이아의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 샬롯이 머리에 쓴 모자를 벗었다.
이안이 그녀의 머리를 문득 바라보는 가운데, 테사이아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털이 길었네, 야옹아.”
샬롯의 귀 사이 한복판. 정수리부터 뒷목으로 이어지는 털이 눈에 띄게 길게 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샬롯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건 갈기다. 수인의 우월한 체질을 증명하는 변화지. 몸이 추위에 적응하고 있는 거야.”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목덜미와 손목 근처에도 털이 풍성하게 길어지고 있었다.
“다 자라면 만지는 맛이 날 것 같은데. 수인은 원래 다 그래?”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샬롯이 어깨를 까딱였다.
“아마도. 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군. 나도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로 이렇게 갈기가 자란 건 처음이다.”
“다 자라면 쓰다듬게 해 줘.”
“그러고 나서 네 손목을 잘라 버려도 된다면.”
“그러지 뭐, 붙이면 그만이거든? 아픈 거야 참을 수 있어. 약속했다, 야옹아.”
놀리듯 미소 지은 테사이아가 일어섰다.
이안의 시선에 그녀가 덧붙였다.
“토끼라도 찾아볼게. 그냥 들어가는 건 불안해서.”
“그 몸으로?”
“괜찮아. 해가 가려져서 그런가. 몸 상태가 나쁘지 않거든.”
“한 시간 안에 돌아와라.”
고개를 끄덕인 테사이아가 휑하니 멀어졌다.
저거, 저대로 튀는 건 아니겠지.
잠시 생각한 이안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 도망쳐 봐야, 그녀가 갈 곳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끝내 또 다른 심판자에게 붙잡히게 되리라.
그런다면 언젠가 루 사드에서 다시 만나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땐,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겠지.’
그것도 나쁜 결말은 아니었다. 슬슬 저 녀석에게 정이 붙기 시작한 지금은 더더욱.
옆에서 쇳소리가 이어졌다.
샬롯이 육포를 입에 문 채 자신의 쌍검을 숫돌에 갈고 있었다.
이안은 그녀의 모습을 새삼 눈에 담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화려하고 깔끔한 상단 경호병의 모습은 이미 오간 데 없었다. 야전에서 오래 구른 능숙한 수인 용병만이 존재할 뿐.
장착한 장비들이 전체적으로 누더기로 변했다는 것도, 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에 한몫했다.
“샬롯.”
“응?”
“네 마법 무구, 아직도 주문을 쓸 수 있는 상태냐?”
“흉갑과 전투화에 새겨진 주문은 아직 무사하다. 하지만 마석이 없군.”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아공간에서 봉인함을 꺼냈다.
그 안에 굴러다니는 마석을 집어 든 그가 샬롯에게 던졌다.
“이걸 써라. 마력이 가득하진 않으니까, 아껴 써야 할 거다.”
“…사양하지 않겠다.”
샬롯이 마석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안이 지켜본바, 그녀는 수비적인 측면에 약점이 있었다.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제압할 방법도 없었다. 그런 약점들을 보완해 주는 게, 그녀가 가진 마법 무구의 역할이었다.
그러니 예전만 하진 않더라도, 없는 것보단 나으리라.
“아, 그래. 이것도 있었군.”
이어 이안이 꺼낸 것은 톱날이 돋은 것 같은 형태의 기형 검이었다.
샬롯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건… 카일이 쓰던 비늘 검이군.”
“그래. 그놈의 유품이지.”
이안이 손잡이의 한 부분을 움켜쥐었다.
화륵, 검날을 타고 번진 불길이 이내 흩어졌다.
“당장 쓸 수 있는 건 이 주문 하나뿐이지만.”
“…건방진 놈이었다. 자신이 검의 달인이라 생각해서 단련을 게을리했지.”
애도하는 기색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그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차라리 네가 쓰는 게 더 가치 있을 것이다, 이안.”
“네가 쓸 생각은 없고?”
“전혀.”
그렇다면야.
비늘 검을 다시 아공간에 넣은 이안은, 짐가방에서 보존 식량과 붕대, 간이 침낭 따위를 하나씩 꺼내 봉인함에 차곡차곡 넣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대비는 해 둬야 했다.
“…뭐야, 그걸 계속 가지고 다니고 있었어?”
테사이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손에 토끼 한 마리를 움켜쥔 그녀가 질색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물건을 보관하기 편하더군.”
이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샬롯의 시선에, 그가 어깨를 까딱이며 덧붙였다.
“이 녀석이 갇혀 있던 상자다. 용병들에게 붙잡혀 있던 걸 내가 구했었지.”
“그때도 말했지만,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어. 그 머저리들은 널 만나지 않았어도, 분명히 다른 헛짓을 했을 거라고.”
이제 와선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봉인함까지 아공간에 돌려놓은 이안이, 샬롯이 풀어 둔 말들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함께한 말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놈들이었다.
“저 녀석들을 풀어 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힘들 거다. 계곡을 나간다 해도, 머잖아 마물들의 먹잇감이 되겠지.”
“그럼 그냥 타고 들어가는 게 낫겠군. 저 안에서 죽더라도, 원수는 갚아 줄 수 있을 테니까.”
“…….”
샬롯이 괴상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마물 인간 할 것 없이 수틀리면 목부터 날리고 보는 이안이, 고작 말의 복수를 운운하는 것이 이상해 보인 모양이었다.
훌쩍 말 안장에 올라탄 이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준비 끝나면 타라. 바로 들어갈 거니까.”
***
숲은 고요했다.
짐승 소리는 물론이고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모든 게 얼어붙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다각, 다각-
적막을 깨뜨리는 건 두 마리 전마의 발굽 소리. 그리고 녀석들의 겁먹은 숨소리뿐이었다.
“…이상해.”
샬롯의 뒤에 탄 테사이아가 문득 내뱉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밖이 안 보여.”
이안도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그들이 들어선 계곡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기다란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나무줄기 중간중간 새겨진 눈동자 모양의 자국들이 그들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왜 둘 다 아무 말도 안 해?”
덤덤한 얼굴의 샬롯과 이안을 번갈아 본 테사이아가 이윽고 물었다.
샬롯이 콧방귀를 뀌었다.
“말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
“…궁금하잖아.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고대 마법인가?”
“시작은 그랬을지도.”
대꾸한 건 이안이었다.
그가 다시 앞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숲은, 마경이다.”
“마경…?”
“그래. 그게 아니면 네가 벌써 그 모습이 될 리 없겠지.”
“……!”
테사이아가 그제야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잠시 입가를 씰룩대자,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돋아났다.
“아직 밤이 아닐 텐데…?”
먹구름 자욱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도, 어느새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안이 태연하게 말했다.
“여긴 세상의 법칙을 뒤틀어 버릴 정도로 타락한 땅인 거다. 너 같은 마족에겐 오히려 천국 같겠지.”
“어쩐지. 갑자기 기운이 난다 싶었어.”
읊조린 그녀가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토끼를 집어 들어 단숨에 깨물었다. 전투를 준비하는 건지, 치미는 어두운 욕망을 가라앉히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뭐가 됐건, 여기 있는 놈이 타락해 버렸다는 건 확실하군.’
생각하며, 이안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이정표도 없는 숲이지만, 그는 자신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손아귀의 문양이 계속 울리고 있었으니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잦아드는 울림이었다.
이것도 게임의 시스템이 나름의 현실성을 갖춘 것이리라.
‘…이러는 걸 보면, 게임에선 퀘스트 없인 들어올 수도 없는 장소였을지도.’
이안은 착실하게, 그러나 방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손아귀의 울림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울림 이상의 변화가 느껴진 건, 그렇게 몇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음…?”
이안이 문득 손을 내려다본 순간.
겁에 질린 숨소리를 내던 말이 멋대로 멈춰 섰다.
테사이아와 샬롯이 탄 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안은 고삐를 후려치지 않았다.
손아귀의 문양이 강렬하게 공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구구구-
지축이 울리기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
이안의 눈이 커졌다.
지하로 통하는 거대한 동굴이, 말 그대로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