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96
096화
“오늘은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자고.”
“그럼 넌 그만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 한 번 부러진 후론 항상 비뚤어져 있잖아.”
“그럼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마시지 뭐.”
전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장 너머에 위치한 대회관.
아무것도 없이 널찍한 실내는, 마을의 거의 모든 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이었다. 때로는 여자와 아이들을 대피시키는 공간이기도 했다.
오늘은 축제를 위한 공간이었다.
“밤에 경계 서는 인원도 줄었겠다, 걱정들 말고 팍팍 드시오!”
“배가 부르면 저 역겨운 머리통을 좀 보고 있으라고. 속을 싹 비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사슴과 산양, 멧돼지 같은 온갖 종류의 고기들이 통째로 구워지고, 빵과 염장 고기, 직접 담근 술까지 창고를 열어 아낌없이 꺼냈다.
창대에 꿴 하얀 악마의 머리는, 모두가 볼 수 있게 회관 중앙에 세워 둔 채였다.
매일 밤 반복되던 악몽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소리 지르며 기쁨과 결속을 다졌다.
이안은 구석에서 묵묵히 고기와 술을 입에 넣었다.
주민들은 그와 샬롯이 대전사의 옆에 앉길 바랐지만, 이안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간만의 제대로 된 고기와 술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먹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들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
이안이 거절한 이유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눈치챈 건, 늘 함께하는 샬롯뿐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지?”
고기를 우물대던 이안이, 마주 앉은 샬롯을 바라보며 물었다.
샬롯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게 감사하려고 만들어진 자리인데,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군.”
“기쁠 것도 없지. 내가 원해서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니까. 물론, 나쁠 것도 없지만.”
술을 한 모금 들이켠 이안이, 샬롯의 옆에 앉은 아스켈을 눈에 담으며 덧붙였다.
“고기도 괜찮고, 술도 좋군. 기름이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야.”
“많이 드십시오. 부족하지 않게 제가 계속 채워 놓을게요.”
기특한 녀석.
샬롯과 눈빛을 교환하며 피식한 이안이 다시 고기를 입에 넣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소!”
벌떡 일어난 발레리가 잔을 들며 외친 건 그때였다.
대전사의 건배사에, 좌중이 고요해졌다.
“눈보라만큼이나 혹독한 시간을, 우리는 또다시 견디고 이겨 냈소. 카르하께서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거요. 하지만 이번 고난은, 그저 우리의 힘만으로 극복한 게 아니었지.”
덩치에 걸맞게 울림이 좋은 호탕한 목소리였다. 발레리가 나이에 비해 관록이 있어 보이는 건, 저 목소리와 수염의 영향이 컸다.
“산맥에서 내려온 마물 사냥꾼들. 우리는 저 외지인들에게 큰 빚을 졌소. 감사를 표하며, 건배사를 부탁드리겠소. 다들 잔을 드시오!”
주민들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잔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안에게 집중됐다.
잔을 든 이안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의뢰를 해결했을 뿐이오. 그런데도 이런 좋은 음식까지 대접해 주어 고맙소. 내게 빚진 건 없으니, 신경 쓰지들 마시오.”
이안이 잔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던 주민들이, 이윽고 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입에 가져갔다.
발레리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장내가 소란스러워지는 가운데, 문득 누군가가 일어섰다.
우르드였다.
잔을 들며 이안을 바라보던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하얀 악마를 죽인 마물 사냥꾼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있소.”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이안이 그를 돌아보았다.
“하시오.”
“앞의 강건한 전사들을 보시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돌아보시오.”
목소리와 웃음이 잦아들었다.
주민들을 돌아본 우르드가, 이윽고 다시 이안을 바라보았다.
“귀하가 없이도, 계속 마을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소?”
무슨 생각으로 묻는 거지. 찬물을 끼얹고 싶은 건가.
이안이 슬쩍 미간을 좁히는 찰나, 발레리의 웃음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축하의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 꺼내시는 거요, 우르드 영감? 설마 이런 자리에서 또,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겁쟁이 같은 말을 꺼내시려는 건-”
“그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오. 다만….”
이안의 목소리가 발레리의 말을 잘랐다. 발레리의 곧고 진한 눈썹이 꿈틀댔다.
“여긴 이미 마물들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이안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마을은 앞으로도 마물들의 표적이 될 것이오. 심지어 신성을 품은 성상까지 있으니, 더 그렇겠지. 약한 것들은 신성을 두려워하지만, 강한 것들은 증오하니까.”
이안이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것으로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회관이 어느새 고요해졌다.
몇몇의 표정에는 술과 음식으로 잠시 잊었던 불안이, 어떤 이들의 얼굴에는 옅은 분노가 스쳤다.
우르드가 발레리를 바라보았다.
“마을의 대전사께서는, 아직도 자치령의 장벽 안으로 이주할 생각이 없으신 거요?”
“여긴 우리들의 고향이오. 동시에 카르하의 위대한 전투가 벌어진 전자이었으며, 그의 성상이 세워진 곳이지. 북부의 아들이자 전사로 태어난 내가, 어떻게 고향을 버리겠소?”
“그로 인해 결국, 모두가 죽게 되더라도 말인가?”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게 태어나지 않았소, 영감. 두려운 자들은 당장 일어서 이 자리를 떠나시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 말리지 않겠소.”
발레리가 좌중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일어서는 자는 없었다. 지금 일어선다면 고향을 버린 겁쟁이로 낙인찍히게 될 터였다.
‘잔머리를 잘 굴리는 놈이군.’
생각하며, 이안은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궁금한 건 우르드의 의도였다.
저 노인네 역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리라는 걸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닐 텐데.
“대전사가 해야 할 판단을 아래로 미루다니, 비겁하시군. 무릇 대전사란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짊어져야 하는 법이오.”
우르드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안의 시선이 아스켈에게로 향했다.
무덤덤한 얼굴. 그러나 불안한 눈빛까지 감추지는 못한 채였다.
잠시 우르드를 응시하던 발레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짊어지고 있소, 영감. 내 결정이 그토록 불만스럽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시오.”
행동…?
이안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동시에 아스켈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우르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 전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뜻을 보여야 하는 법이지.”
그가 손에 든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발레리가 헛웃음을 흘렸다.
“거기서 멈추시는 게 좋소, 영감. 과거의 대전사에 대한 예우로 말씀드리건대, 나는 영감을 죽이고 싶지 않소.”
“……!”
그제야 이안의 시선이 우르드에게로 향했다.
그는 태연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과거의 대전사로서 말하건대,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지.”
발레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미소를 감추려 인상을 찌푸리는 것 같기도, 구겨지려는 인상을 미소로 풀어내려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밖으로 나오시게. 카르하가 보는 앞에서, 대전사의 권위에 도전할 것이니.”
담담하게 내뱉은 우르드가 몸을 돌렸다.
대전사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저 영감이….’
이안의 미간이 완전히 구겨졌다.
이제야 저 노인이 호언장담한 이유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으면 아스켈이 마을에 남을 이유도 사라진다 여긴 것이리라.
“경사스러운 날에 전사의 피를 흘리게 생겼군….”
읊조린 발레리가 일어섰다.
마을 주민들도 저마다 술잔을 손에 든 채 회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대전사와 우르드 영감이, 서로 싸우는 거냐?”
샬롯이 아스켈을 돌아보며 물었다.
가라앉은 눈빛만큼이나 낮은 목소리로, 아스켈이 대답했다.
“예. 패배를 인정하거나…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요.”
이안이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죽을 자리를 찾아야 한다더니. 개 같은 짓거릴 하는군. 영감.’
혀를 차며 잔을 내려놓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카르하의 성상 앞.
발레리가 먼저 기다리던 우르드와 마주 선 가운데.
“…….”
“…….”
뒤따라 나온 주민들이 거리를 둔 채 주위를 에워쌌다.
말리거나 저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전사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결투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으며 발레리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멈추시오, 영감. 영감 같은 늙은이를 이긴다 한들, 자랑스럽지도 영광스럽지도 않소.”
“전사는 내뱉은 말을 주워 담지 않는 법이지.”
우르드는 담담하게 대꾸하며 몸을 풀었다.
“무기는 들지 않겠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요.”
발레리의 말에 우르드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잔인하구나. 꼬마야.”
그의 외눈이 카르하의 성상을 돌아보았다.
“지켜보시오, 북부의 초인이여.”
솨아아아-
카르하의 대검 끝에서 옅은 신성이 번진 건 그 직후였다.
“오오… 카르하께서….”
“우르드 영감에게 축복이 내리는군….”
지켜보던 전사들이 탄성을 흘렸다.
주민들 역시 숨죽인 채 눈앞의 기적을 바라보았다.
“북부의 신은 친절하군. 늘 이렇게 지켜보는 것이냐?”
한구석, 삐딱하게 기대선 샬롯이 물었다.
그녀는 지금 일어나는 결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 옆에 주먹을 움켜쥔 채 우두커니 선 아스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원래는 검에 피가 맺히는 일도 드물었고, 이렇게 신성을 내리는 건 더 드물었습니다. 카르하께서 우리 영감님을 축복하다니….”
기쁘기보단, 오히려 야속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샬롯이 뭔가 말하려는 찰나.
타탓-!
우르드가 발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노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속도.
그의 뒤로 옅은 신성력이 만들어낸 붉은 궤적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삽시에 발레리의 코앞까지 돌진한 우르드가 주먹을 내뻗었다.
“……!”
발레리가 조금 놀란 듯 팔을 들었다.
빠악-!
노인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타격음. 뒤로 한 걸음 밀려난 발레리가 슬쩍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카르하께서 공정한 결투를 원하시나 보군.”
동시에 그가 주먹을 내뻗었다. 우르드가 피하지 않고 막아냈다. 노인의 앙상한 몸은 대전사의 주먹에도 튕겨 나가지 않았다.
퍼억-! 빠각! 콰직!
난타전이 이어졌다. 발레리는 빠르고 강했고, 카르하의 축복을 받은 우르드는 노련하며 단호했다.
빡! 빠각!
급소를 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바닥을 구르거나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두 전사의 몸에서 튄 피가 사방을 물들였다.
“…….”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안이, 마침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눈도 깜빡이지 않는 아스켈에게서 멈췄다.
설산의 얼음처럼 차갑고, 심연처럼 가라앉은 눈동자.
‘댁은 잘못 생각하셨소, 영감.’
그가 죽더라도, 아스켈은 마을을 떠나려 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끝끝내 남아, 언젠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이루려 할 터였다.
그리고 아마도 끝내 죽게 되리라.
복수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윽고 그의 시선이, 신성력이 아른거리는 성상으로 향했다.
‘방해하지 마라, 카르하.’
기묘한 감각이 뒤를 이었다.
한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하더니, 시야가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의식이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한복판으로 밀려들었다. 사방이 순식간에 선으로 뒤덮여 하얗게 변했다.
…방해하지 말라니까.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빛의 장막 너머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정확한 형태나 존재를 인지할 수는 없었다. 저 존재를 정확히 인지하려면, 새로운 종류의 감각 기관이 필요했다. 느껴지는 건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함 뿐.
물론, 이안은 저게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난 널 섬길 생각도, 네 대전사가 될 생각도 없다. 카르하.’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안은 그저 생각만 했다.
이게 제대로 전달될지 알 수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러니 날 죽일 거면 그렇게 하고, 여기 영원히 붙잡아 둘 거여도 그렇게 해. 그게 아니면 꺼져라. 다신 너랑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푸하, 저 너머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곧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쩌렁쩌렁한 울림이 사방을 뒤덮었다. 빛의 장막이 자글대는 파장처럼 떨렸다.
어이없게도, 웃음 소리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칼로 자른 것처럼, 의식이 현실로 되돌아왔다.
눈앞에 퀘스트 완료 창이 떠올랐다.
왼쪽 어깨와 팔뚝에 기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미간을 찌푸리는 이안의 뇌리로, 마지막 순간 파고든 목소리가 잔상처럼 메아리쳤다.
-마음대로 해라. 나도 그럴 거니까.
…진짜 제멋대로인 새끼네.
생각하며 창을 닫은 이안이, 혈투를 벌이고 있는 의뢰인을 바라보았다.
계약을 파기하러 갈 시간이었다.
***
‘제법이군, 늙은이.’
우르드의 주먹을 쳐 내며, 발레리가 눈을 빛냈다.
우르드는 생각보다 강한 상대였다.
하지만 위기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달가웠다.
덕분에 힘없는 노인을 때려죽였다는 말은, 듣지 않게 됐으니까.
신의 축복을 받은 노련한 전사의 도전을 이겨 낸, 강인한 대전사로 기억되리라.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으니까-’
쩍-!
우르드의 주먹을 팔뚝으로 막으면서, 발레리가 그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왼손과 왼눈이 없는 노인의 약점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쉭-
우르드가 손목까지밖에 없는 왼팔을 뻗은 건 그 직후였다.
주먹은 아니었으나, 그래서 오히려 더 좁은 범위에 충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비장의 한 수였다.
‘…예상을 못 했다면 말이지.’
발레리는 여유롭게 몸을 틀었다.
왼손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아껴 두고 있다는 건, 이미 싸움을 이어오면서 눈치채고 있었다.
노인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눈에 담으며, 발레리가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콰앙-!
우르드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벌어진 노인의 입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발레리는 멈추지 않았다.
쩌억-!
머리통만 한 주먹이 우르드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한 번. 다시 또 한 번.
‘잔인하다는 당신의 말이 맞소, 영감.’
발레리는 주먹을 내리치며 생각을 이어갔다.
‘영감을 이용해 확실히 보여 줄 거요. 내게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되는지.’
피를 토하는 우르드의 눈이 조금씩 풀렸다.
카르하의 신성력이, 발레리의 주먹질에 흩어지고 있었다.
콰앙-!
몇 번째인지 모를 주먹을 내리친 순간, 발레리는 이제 곧 이 노인에게 맺힌 신성이 완전히 사라지리란 걸 깨달았다.
더 힘껏 말아쥔 주먹이 위로 올라갔다.
“저게… 무슨…?”
“갑자기 어째서….”
주민들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번진 건 그때였다.
신경 쓰지 않고 주먹을 내리치려던 발레리는,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는 손아귀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
설산에서 온 마물 사냥꾼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릅뜬 발레리의 눈을 응시하며, 이안이 내뱉었다.
“가만히 둬도 곧 죽을 영감을, 그렇게도 미리 죽이고 싶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