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재림
데칸은 바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했다.
심장에 칼을 찔러넣고 자신을 번제물로 바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츠츠츠.
생명을 유지하던 마지막 마기가 상처 사이로 새어 나온다.
털썩.
땅바닥에 엎어진 데칸의 얼굴엔 만족의 미소가 가득했다.
가온을 위시한 도시의 초월자들이 현장에 도착한 건 모든 의식이 끝나고 난 이후였다.
“이런……늦었군요.”
현장을 확인한 토즈스가 눈살을찌푸렸다.
가온이 엎어진 데칸의 시체를 뒤집었다.
퍼석! 파스스──
숨이 끊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데칸의 시체가 약간의 충격에도 바스라진다.
가온은 말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을 살피던 레이나가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켜 봉인진을 공격했다.
콰아앙!
“소용없다. 가벼운 공격으로 깨트릴 수 있게 설계된 것도 아닌 데다 이제 와 부순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봉인진의 효과를 파악한 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칸은 이미 목적을 이루었다.”
“목적이라면?”
“자신을 희생해 마법진을 가동시켰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마법진으로 모였다.
우우웅──
봉인진은 음습한 기운을 흩뿌리며 옅은 공명음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
무언가 알아차린 것일까.
가온의 목소리가 떨린다.
원이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바흘-라의 봉인을 풀기 위해 설치된 마법진이다.”
원은 마법진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추가로 해석한 것들을 읊었다.
“총 다섯 개로 구성된 마법진이군. 빨아들인 기운을 모아 봉인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원은 데칸 옆에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케츨러를 흘끗 바라보았다.
“어쩐지 숨을 붙여 산 채로 잡아간다 싶더라니……제물로 바쳐진 모양이군.”
“그럼 정말…….”
“바흘-라가 오랜 봉인을 깨고 나타나게 되겠지.”
원은 씁쓸한 얼굴로 쉬이 믿지 못하는 레이나에게 대답했다.
“…….”
“…….”
침묵이 맴돌았다.
꽤 오랜 침묵을 깬 건, 가온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장 앞장서서 갈 길을 밝히는 길잡이처럼 말이다.
“할 수 있는 일? 그게 뭔데?”
“잔당처리.”
“아……!”
“아직 데칸과 말렉이 죽긴 했지만, 아직 1군단과 2군단의 병력은 여전해. 그들을 정리해야 해.”
“그렇지. 그들을 살려둬선 안 되지.”
“그렇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 다른 군단과 달리 1군단과 2군단 소속의 초월자는 하나가 아니니까.”
“그야 그렇겠지.”
“일단은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놈들도 데칸처럼 자신을 공양하는 건 막아야 해.”
“그래야지.”
지이잉.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일까.
세계수는 그들 앞에 포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원이 포털을 타고 공간을 넘었다.
뒤이어 토즈스가 공간을 건넜고, 그 다음으로 레이나가 포털 앞에 섰다.
포털 안으로 들어가려던 레이나가 멈칫, 움직이던 몸을 멈춰 세웠다.
“안 가?”
“아직. 회수해야 할 것이 있어.”
“회수?”
“틸리티.”
가온은 데칸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장 많은 양의 틸리티를 소유한 건 바흘-라였지만, 데칸 또한 많은 양의 틸리티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띄워놓고 마기를 이용해 쏘아내기도 하고, 입맛대로 골라 쥐기도 했던 무수한 병장기들.
그것들이 모두 틸리티를 타락시켜 만든 무구들이었던 것이다.
가온은 즉시 생명력을 피워 틸리티를 정화하기 시작했다.
정화작업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화해야 할 틸리티의 양이 방대했기 때문이다.
촤르륵───!
정화가 끝난 틸리티가 순차적으로 순백의 빛을 발하며 가온에게 날아가 붙기 시작했다.
가온은 마지막 틸리티까지 모두 정화를 끝낸 후에야 포털 안으로 몸을 옮겼다.
* * *
도시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대침공 이래로 공포의 존재였던 군단장들을 하나도 아니고 전부! 남김없이 소멸시킨 데에다.
무려 3개 군단 병력을 궤멸시키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성과.
그러니 이미 전쟁이 끝난 것처럼 굴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3군단과 5군단의 주둔지를 기습하며 도시 또한 많은 병력을 잃었지만, 그런 건 사람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승리!
오직 승리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지금껏 패배만 해왔기에.
승리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광란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전반적인 도시의 분위기와 아주 상반된 곳도 분명 있었다.
“아아. 케츨러 님…….”
“흑흑!”
“어찌 이런 참변을!!”
케츨러가 수장으로 있었던 테일러는 큰 비탄에 빠졌다.
후계를 정했다곤 하지만, 테일러는 여전히 케츨러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집단이었다.
테일러는 수인족이라는 기치 아래 모인 이들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종족은 제각각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바탕이 되는 동물이 달랐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케츨러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건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이들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복수!”
“피의 복수를!”
그들은 붉어진 눈시울로 복수를 불태웠다.
아직 남아있던 1, 2군단의 잔당을 처리하는 데에 가장 앞선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케츨러 님의 복수다!”
“죽어라!”
“죽어엇! 모두 죽어버렷!”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복수를 부르짖었다.
그 모습은 어쩌면 케츨러가 일평생을 바쳐 일군 테일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지도 몰랐다.
세부 종족의 차이를 뛰어넘어 수인족이라는 기치 아래 하나로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통일된 공동체 의식의 발화.
그러니 케츨러는 자신의 염원을 죽어서야 이루게 된 것이겠지.
어쨌든 1군단과 2군단의 주둔지 소거 작업도 큰 무리 없이 흘러갔다.
남아있던 초월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강신의 여파로 초월의 경지에 오른 켄트와 수면기를 끝낸 원이 합류로.
다섯이 된 도시의 초월자들에게 소멸을 맞이하고 말았다.
초월자를 처리하는 것을 끝으로 대륙에 남은 마왕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대륙 곳곳에 흩어졌던 마수들과 일부 마왕군들이 존재할 테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 * *
마왕군을 모두 처리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수백 년간, 대륙을 뒤덮었던 살점바닥과 마계의 식생들, 그리고 보랏빛 안개와 공기 중에 묻어나는 마기 같은 것들이 남아있었기 때문.
마왕군을 처리하는 것보다 오히려 환경을 정화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이 더 어렵고 지난한 일일지 몰랐다.
도시가 살아있던 모든 생존자가 모여들었어도 능히 수용 가능할 만큼 크다고는 하지만…….
대륙 전체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한 땅덩어리였다.
그렇게 오염된 지역을 모두 정화하는 일이 결코 쉬울 리가 없었다.
특히, 3군단 주둔지를 급습하는 과정에서 데칸과 말렉이 데려온 초월자와 초인 전력에 의해 사제들의 희생이 컸다.
그로 인해 정화 작업이 몇 배는 더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사업입니다. 이 정화작업은 제가 교황으로서 책임지고 진행하는 마지막 대업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단을 책임지는 교황은 이 정화작업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도시 내 다른 세력들도 교단을 따라 인력을 차출하고 물품을 보급하며 정화 사업을 도왔다.
대륙 내에 남은 잔당을 상대할 전력들과 정화를 전담할 사제들을 호위하기 위한 병력을 구성한 것이다.
지잉──
완벽하게 꾸려진 정화대는 세계수가 열어주는 포털을 타고 넘어가 대륙 곳곳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빠르고 가장 많은 영역을 소화하는 건 아무래도 켄트가 포함된 정화대였다.
많은 양의 성수와 함께 몇 날 며칠을 기도하며 신성주문을 외워야 하는 여타 사제들과 달리.
“「생츄어리Sanctuary」!”
성지의 힘을 소환할 수 있는 켄트에게 오염지대를 정화하는 일은 그리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인 덕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켄트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가 감당해야 하는 신성력의 소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시의 전력이 사후처리를 위해 대륙 곳곳으로 떠나는 이들의 얼굴엔 어떤 그늘도 없었다.
마왕군을 모두 퇴패시킴으로써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월자를 위시한 몇몇 일부는 알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최후의 전투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쿠구구구───
대륙 곳곳이 정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기분 나쁜 마기를 뿜어대는 공간이 있었다.
각 군단의 주둔지마다 존재하는 봉인진이 바로 그곳이었다.
원과 가온, 토즈스와 레이나.
대륙을 정화하러 떠난 켄트를 제외한 모든 초월자가 모여 봉인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곧……바흘-라의 봉인이 풀릴 거다.”
원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예정대로 흘러가겠죠?”
레이나가 물음에 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1사도였던 데칸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거기다 오랜 시간 투입된 힘도 만만치 않고. 바흘-라는 8할 이상의 힘을 소유한 채 부활에 성공하게 되겠지.”
“8할…….”
토즈스가 가만히 그 말을 되뇌었다.
쉽게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일까.
원이 말을 덧붙였다.
“바흘-라를 막기 위해 차원의 틈에 뛰어들었던 드래곤들이 남김 없이 죽었다. 그런 희생으로도 고작 1~2할 정도의 전력을 깎아내리는 게 다였어.”
“마리얌 여신은 그런 바흘-라를 상대로 겨우 봉인에 성공했던 것이고.”
토즈스는 가만히 침음을 삼켰다.
“으음…….”
말로만 들어선 도저히 승산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상황은 더 낫다.”
“마왕군이 전멸했기 때문인가요?”
레이나가 물었다.
“맞아. 바흘-라도 준비해둔 예비 병력이 있긴 하겠지만, 봉인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들을 불러들이는 건 불가능한 일일 거다.”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공간을 다루는 데에 특화된 힘을 가진 프레이야 여신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도 않을 테고.”
“승산은 있는 겁니까?”
이번엔 가온이 물었다.
“승산이라…….”
원은 가만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을 아꼈다.
“알고 있겠지만, 마리얌 여신은 바흘-라처럼 전투에 특화된 신이 아니다. 마리얌 여신의 역량은 내정에 쏠려 있지.”
“다양한 종족을 보살피고 세계가 더 융성해지게 만드는 거군요.”
“맞아. 그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직접적인 개입이 얼마나 적은지를 보면 알 수 있거든.”
대륙의 역사를 살펴보면 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바흘-라가 침공하기 전까지 마리얌은 대륙의 일에 직접 끼어들어 간섭하는 법이 없었다.
기껏해야 오라클을 통해 신탁을 내리는 정도였는데 그 또한 횟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세상을 융성하게 키워 그곳으로부터 풍부한 신성을 수급하는 방식을 취하는 신인 셈이다.
“하지만 바흘-라가 봉인된 동안, 마리얌 여신 또한 철지부심 준비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다는 말이군요.”
“마리얌 여신의 준비가 부디 철저하길 바라는 수밖에.”
쿠르릉!
원의 그 말과 함께 하늘이 시꺼멓게 물들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뿐만 아니라, 대륙 반대편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으음…….”
이에 내내 하늘을 바라보던 원이 침음을 삼켰다.
“바흘-라의 봉인이 풀린 모양이군.”
마왕이 재림하고 있었다.
꿀꺽.
저마다 긴장된 마음을 감추려 애써 마른침을 삼킬 때.
툭툭.
가온은 가볍게 손발을 털었다.
마치 거하게 몸을 쓰기 전 스트레칭 운동을 하듯이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원은 좀 더 직접적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만.”
“싸울 준비? 바흘-라와 싸운단 말이냐?”
원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지만, 가온은 너무나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하길 바란 여신의 준비가 바로 저거든요.”
가온이 바로 마리얌의 안배였으니 말이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