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0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00화(100/505)
100화 폭풍의 언덕……? [4]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도 어지간하면 모양을 좀 바꿔 주고 싶었다구.
심지어 원형 그대로 내민 것도 아니었다.
잘랐다구?
나름.
“사…… 살려 줘!”
여기서 더 가루로 낼까 싶은 생각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어째?
바삭바삭 말랐다지만 안에 잘 만져 보면 물이 있긴 있거든?
그 물이라는 게 진짜 물이겠나?
뇌척수액이고, 약독화된 광견병 바이러스가 있을 터였다.
헌데 가루로 내다가 이게 망가지기라도 하면 이 환자는 그냥 맛대가리 없는 개 연수 쪼가리 하나 먹는 것뿐이 더 되겠나 싶어서 이렇게 줬다.
“살려 주려고 이러는 거잖아요.”
“어제도! 어제도 이 개새끼들아! 니들이 그런 말 하면서 팔 지졌어!”
“어, 음. 그건.”
그래, 그랬겠지?
아마 나보다 더한 확신을 갖고 그랬을 거다.
그 새끼, 이름도 모를 새끼는 19세기 의사 그 자체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이 말입니다.
비록 댁을 완력으로 붙잡아 두고 입을 벌리면서 뭔가 쑤셔 넣으려 하고 있지만…….
이건 다르단 말입니다.
“이건 달라요!”
“지랄…… 읍. 으읍!”
별로 먹히진 않았다.
아주 그냥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네.
이거 먹으면 산다니까…….
‘사나?’
아닐 수도 있긴 했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고…….
약독화가 충분히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사람이 뭔 치료를 받아도 이것보다 살아날 가능성을 높여 줄 치료는 없지 않겠나.
“코 잡아.”
“응.”
그런 생각으로 환자의 코를 붙잡아 숨을 못 쉬게 만들고, 벌려진 입 안에 연수 조각을 욱여넣었다.
그러곤 삼킬 때까지 입도 틀어막았다.
숨 막히면 죽을 테니 별수 있나.
삼켜야지.
게다가 이번 거 뱉어 낸다고 해서 끝인 것도 아니었다.
왜냐?
개가 꽤 크더라고.
연수가 되게 커……?
“읍. 으읍.”
환자도 그걸 느꼈는지, 줄줄이 남아 있는 조각들을 보다가 이내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동시에 입 안에 들어간 걸 삼켰다.
‘좋아.’
이걸 매일 세 번씩 먹일 작정이라면 진짜 큰일일 텐데…….
다행히 이 연수 조각은 일종의 약독화 백신이지 않나.
면역 기관을 교육해서 제대로 된 항체를 만들게 하기 위함이니만큼, 딱 한 번이면 족했다.
어쩌다 보니까 매독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단 한 번만 먹으면 되는 치료가 되었는데…….
‘운이 좋군.’
이건 진짜 운이라고밖에는 말 못 하겠다.
세상에 이렇게 단발성 내과 치료만 있으면 다들 내과 하지 않았겠나?
실제 내과 치료는 이런 식의 치료가 아니라 지리한 치료라는 걸 감안하면 난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긴 한 번 더 살게 된 시점에서 이미 행운아라고 해도 좋겠지.
“으…… 으윽. 이런 걸…… 차라리 그냥 집에서 죽을걸.”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히 얼굴에 미소가 아로새겨지고야 말았는데, 그 미소가 환자에게는 좀 다른 뜻으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뭔가 막 내 뜻을 안 좋은 쪽으로 곡해하는 거 같아.
죽으라고 살리려고 노력 중인데 차라리 죽겠다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뭐 방금 개 연수 쪼가리 먹은 입장에서 보면 뭐든 이상하게 생각하게 될 거 같긴 하지만.
“이제 끝났습니다.”
“인생은 끝났어.”
“그런 게 아니라, 치료가 끝났다고요. 나머지는 상처 보면서 지켜봅시다.”
“어어.”
“아니, 아프게 안 해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의 팔을 돌아보았다.
위팔은 다시 봐도 정말이지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걸…….
여기다 대고 인두로 지질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중세 시대라고 해도 이런 짓은 안 했을 거 같은데…….
‘뭐…… 매독 무서워서 씻지도 않는 놈들이 태반이니…….’
목욕탕에서 매독이 걸린다는 이상한 괴소문 때문이라고 들었다.
뭐 진짜 극히 낮은 확률로 걸릴 수 있기야 한데…….
그렇다고 아무도 안 씻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내 장담하건대 안 씻어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물…… 한 번 더 씻자고.”
“응. 근데 아파하시던데.”
“아까보다는 나을 거야.”
“그럴…… 그런가?”
“그렇지.”
그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나는 한 번 더 꼼꼼히 환자의 환부를 씻어 냈다.
이거 때문에 웃음 가스를 이용한 마취를 하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라 그냥 했다.
다행히 이 시기 사람들은 고통을 아주 잘 참는 편이라 몸을 꿈틀거릴지언정 기절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 살갗이 뜯겨 나가는 일은 없으니…….
“으…… 으아아악!”
“이건 진짜 참아야 해요. 어쩔 수가 없어.”
“차…… 차라리……!”
“죽여 달라고요? 안 되지. 이렇게까지 하는데 죽는 건 안 될 일입니다.”
“무슨…… 이 새끼 미친놈이지? 그렇지?”
말은 그렇게 했는데, 결론적으로 살짝 뜯어내기는 해야 했다.
왜냐?
미친놈이 지지고 나서 비쩍 마른 붕대인지 나발인지를 감아 두는 바람에 붕대 조각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이게 말이 좋아 조각이지 다른 말로 하면 이물질이지 않나?
그것도 빈말로도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의…….
아주 훌륭한 감염원이 피부라는 보호막이 사라져 버린 화상에 눌어붙었단 뜻이었고, 이는 동시에 이를 방치하면 광견병 아니라 다른 감염으로 죽게 될 거란 얘기가 되었다.
‘대체 언제가 되어야 이 무지몽매한 새끼들에게 세상엔 세균이라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핀셋으로 실 하나하나 제거하다 보니까 화가 치밀어 막.
남들 눈에는 이게 그냥 실로 보일 것이고 뭐 하러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거야?
“야, 이걸 다 제거할 필요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 옆에 있는 두 놈처럼.
그나마 내 덕에 무언가 세상은 깨끗한 게 더 좋을 거란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을 놈들인데도 이러니, 다른 놈들이야 말 다 했지.
허나 내 눈에는 이게 실이 아니라 세균 배지로 보일 뿐이었다.
실제로 외상 환자에서 방치된 옷가지 등이 어떤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말 그대로 절대로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후우…….”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진짜 오래 걸렸다.
와…….
이게 진짜 오래 걸리네.
천이라는 게 개판이라서 더 했다.
산업 혁명이네 어쩌네 하더니만 왜 이렇게 제품이 후져, 이거.
그냥 직직 찢어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안에 틀어박힌 실까지 후줄근해서 더 그랬다.
확실히 의학이 발전한다는 건 딱 의학만 딱 떼어 놓고 가능한 게 아니라, 다른 산업도 덩달아 발전해야 가능한 모양이었다.
“흐아아아…….”
당연하지만 고통을 수반했던 술기이니만큼, 나보다는 환자가 더 힘들긴 했을 터였다.
그는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어 뒤로 넘어가 있었다.
좋은 일은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항체라는 게…….
그러니까 백신 맞고 획득하는 면역력이라는 게 그냥 맞는다고 턱턱 생기는 건 아니거든.
숙주…… 맞은 사람의 상태가 대단히 중요했다.
‘단백질…… 충분하게 먹었을 리가 없고.’
서양 식문화라고 하면 고기부터 떠올릴 테고, 나 또한 그렇긴 했는데…….
생각보다 이 시기 런던에서 고기 먹고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감자랑 절인 생선 쪼가리나 먹으면 만족할 지경이라고 하면 믿겠나?
믿어야 했다.
사실 그것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거든.
‘잠…… 잠은 잘 자겠네.’
잘 먹고 잘 자야 면역력을 획득할 텐데…….
이거야 뭐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당장 내가 쓸 돈도 태반이 앨프리드 선배나 조지프네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마당에 환자를 어떻게 먹이나.
‘콘돔은 그거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블런델을 위시한 우리 문란한 파티의 주인공들이 이번 사교의 계절을 지내고 나야 알 수 있긴 할 터였다.
결과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잘되겠지.
당연한 거 아닌가?
콘돔에 대한 효용성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다면 21세기에 그 휘황찬란한 콘돔 자판기가 어찌 존재했겠나.
“자, 그럼 쉬십쇼.”
“가…… 빨리 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말린 뇌, 연수 조각을 트레이에 담아 두고서였는데 당연하게도 다음으로 내가 향한 곳은 리스턴 박사의 연구실이었다.
다시 말해 에밀리 브론테가 있는 곳이란 얘긴데…….
끼이익.
밖에서 똑똑 노크를 해 봤는데, 답이 없어서 안으로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애가 눈을 감고 있었다.
“시벌?”
죽었나?
하고 달려들었더니 그게 아니라 그냥 잠이 든 모양이었다.
하긴 광견병이 무서운 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진행이 빠른 건 아니란 말이지.
목 주변을 물린 것도 아니고…….
물린 지 하루도 안 돼서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으음?”
아니, 아프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멀쩡한 모양이었다.
옆에 놓인 노트들을 보니 꽤나 많이 끼적거린 흔적이 있었다.
“애가 낙서한 걸 뭘 그리 보나.”
“그보다…… 이거 리스턴 교수님 종이 아닌가? 그걸 이렇게 낭비하다니.”
뭘 모르는…….
정말이지 무식한 놈들이 대문호의 글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고 있었다.
‘병신들…… 이 양반이 앞으로 인류 문학사에 남길 거대한 족적을 모르니까 이러지.’
물론 나도 이름을 몰랐다면 그냥 무시했을 터였다.
나라고 해서 뭐 문학적인 소양이 대단한 건 아니었으니까.
-히스클리프.
그런 나의 상념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글귀가 있었다.
히스클리프.
<폭풍의 언덕>…….
불멸의 명작의 주인공.
“허…….”
이때 벌써 그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던 건가?
대체 이걸 천재라고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굴 천재라고 불러야 하는 거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에밀리가 끄적여 놓은 글귀들을 모조리 탐독한 후였다.
익숙한 문장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디선가 읽어 본 듯한 문장도 있었다.
-그따위 책은 집어치우고 일거리를 찾아봐. 항상 내 눈에 거슬리는 죗값을 하란 말이야.
이거…….
분명 책에서도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야 그냥 책으로 읽은 거다 보니, 별 느낌이 없었다.
아니, 그냥 잘 쓰네 정도?
하지만 이 자리에 누워 쌕쌕 잠들어 있는…….
어떻게 봐도 귀하게 크고 있다는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에 비해 가난의 흔적은 여기저기 짙게 배어 있는 작은 아이를 보고 있다 보니…….
동시에 이 시대가 가난한 이에게, 그중에서 아이에게 또 여자아이에게 얼마나 혹독한지 몸소 체험했다 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 친구를 좀 도와준다면…….’
안 그래도 콘돔 판 돈으로 호의호식할 생각을 하면 좀 찜찜했더랬다.
뭔가 좀 그렇단 말이야?
그런데 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남을 소설을 남긴 위인을 마주하고 보니 어디선가 한 줄기 광명이 서리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그래. 책을 봐도…… 집에서 눈칫밥 안 얻어먹어도 되게 해 주자고. 그럼 대체 얼마나 더 많은 글을 쓰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