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01)
검은 머리 영국 의사-101화(101/505)
101화 폭풍의 언덕……? [5]
후원은 후원이고…….
그러려면 일단 살려 놔야 하지 않겠어?
해서 나는 흐뭇하게 에밀리가 쓴 글귀 살피는 것을 멈추었다.
“넌 이런 애가 쓴 글을 뭐 그렇게 진지하게 보냐?”
“그러게. 애초에 글이라고는 의학 서적밖에 안 보지 않아?”
“저는 어릴 때 얘가 문맹인 줄 알았다니까요? 책이라고는 안 보니까.”
“그랬어? 그런 주제에…… 보니까 문장도 어렵게 꼬아 쓰는 거 같은데 말이야. 딱 겉멋 든 사춘기 여자애 수준 아니냐?”
무식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십 년 남았으려나……?
우리 에밀리 브론테 양이 불멸의 명작을 내는 게?
‘아…… 근데 2권인가 팔렸다고 했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평을 들었다.
죽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명작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 새끼들이 진가를 알아볼 일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구만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일단 에밀리를 깨웠다.
“으, 으으음.”
애는 애였다.
아니, 미친개한테 물려서 입원했는데…….
심지어 일반적인 병실도 아니고 사방에 리스턴 칼이 버전별로 놓여 있는 병실이잖아.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잘 자다니.
“일어났니?”
“아…… 네.”
“아픈 건 좀 어때.”
애는 애라는 생각은 상처를 보면서도 떠올릴 수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았음에도, 내가 정리를 기깔나게 하기는 한 덕도 있겠지만 하여간 아까보다는 좀 나아 보였다.
감염만 피하면 된다, 감염만.
“아…… 아파요.”
그렇다고 통증이 어디 가겠나.
물렸는데 뭐…… 어쩌겠어.
아까 보니까 작지도 않더만.
나는 잠시 병원 뒤뜰 어디메에 묶여 있을 개를 떠올렸다.
‘넌 이제 곧 뒤졌다…….’
리스턴 형님이 팔다리 할당량만 다 자르고 오면 목이 잘리겠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단칼에 죽을 거라는 점이었다.
미친개긴 하지만 하여간, 눈앞에서 토막이 나니까 마음이 좋지만은 않더라고.
“그렇지. 그건 그렇고…… 광견병이라는 병, 알고 있지?”
“아, 알죠…….”
광견병.
증상이 어떤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지금 이 시점에서 별로 없을 터였다.
하지만 병 이름만은 유명하기 짝이 없었다.
왜냐?
일단 떠돌이 개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다가, 길거리 위생이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보니 미친개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안전불감증 중증에 달한 시민의식까지…….
개물림 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인데, 심지어 치료법도 없으니 걸리면 죄 죽어 나가기에 그랬다.
“그거 치료를 위해서 너가 뭘 먹어야 해.”
“먹……어요? 지지는 게 아니라요?”
“지지면…… 야, 어떤 꼴이 되는지 말 좀 해 봐.”
나는 뒤에 놓인 트레이 위에 있는 개 쪼가리 중에 그나마 열두 살 소녀의 취향에 맞는 게 있을까 싶어서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간을 끌어야 하니, 조지프의 옆구리를 푹 찔렀고 조지프는 자판기라도 된 듯 입을 놀렸다.
“어…… 장난 아니야. 저기 아저씨 전날 물렸거든? 근데 그 아저씨는 인두로 지져 버렸어.”
“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 그래서. 지금 죽을 똥 살 똥 해. 아휴…… 생각해 보니까, 개 물린 데다가 화상까지 입힌 거라 좋을 수가 없겠더라고.”
“아…….”
“아무튼, 이 아저…… 이 선생님이 주는 약을 먹어 볼까?”
물론 그리 오래 털 수는 없었다.
조지프는 순식간에 밑천이 털려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자른 조각 중에 하트 모양이 된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하트가 무슨 의미가 있나?’
속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최소한 주는 내 마음이라도 안심이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자, 이거야.”
“으음.”
당연하겠지만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겠지.
이게…….
딱 봐도 그렇게 먹고 싶어 보이진 않거든?
‘근데 니들은 왜 환호했냐?’
조지프, 앨프리드.
이 새끼들은 병 고치는 거 아니더라도 먹을 거 같던데…….
나는 그게 또 우리 19세기의 만연한 풍조인 줄 알았지?
실제로 아저씨도 가끔 이상한 거 먹었거든.
쇠불알이라든지…… 하는 거 말이야.
앨프리드네 아버지도 그런 거 같고.
‘그냥 이 새끼들이 이상한 걸로 치고.’
인터넷이 없으니 제대로 된 통계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어? 이상한 상식을 탑재할 뻔했어?
“이게 이상해 보이겠지만…… 뭐라고 할까. 그래.”
나는 숙달된 의사다.
비대한 자의식에 의해 하는 말이 아니라…….
전생에 내가 정말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지 아는가?
남들 다 하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는데, 하여간에 21세기에서도 선진국으로 그중에서도 의료는 앞에서 세야 빠른 수준인 대한민국에서 교수 하는 게 쉽겠나?
덕분에 나는 환자 보는 스킬이 좋았다.
그냥 기술 얘기가 아니라…… 라포를 잘 쌓는다, 이 말이었다.
“우리 몸에 나쁜 놈들이 들어오려고 한다 치자고.”
“강간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 아니! 아니! 이게 대체 무슨.”
“그럼 뭐예요.”
“은유…… 은유법이야. 시신에도 그렇고, 개의 이빨에도 그렇고 나쁜 놈들이 있다고.”
“아하.”
역시 폭풍의 언덕이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매운맛 치정 복수극을 쓴 사람이라 그런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단어 선택이…… 매웠다.
숙맥인 태평이는 이런 거 무섭다구.
“그런 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돼. 싸워야겠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런 게 있을 거야. 없었다면, 여기 있는 선생님도 죽었을걸.”
“왜 남의 목숨 가지고…….”
“그때 시신 해부하다가 찔렸을 때, 솔직히 죽었을 거 같지 않아요? 나 없었으면?”
“음…… 그야…… 그렇지. 그랬을 거야. 근데 그건 치료해서 산 거 아닌가?”
“아니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닌 거 같아요. 안에서도 싸우는 힘이 있었을 거야. 나는 그걸 도와준 것이고.”
“너무 새로운 이론 아닌가 싶지만…… 뭐, 네 환자 보는 데 하는 말이니 네 자유겠지.”
와!
이 파격적인 풍조!
네 환자니 네 마음대로 하라는 이…….
내게는 잘된 일이지만 바로 이 때문에 돌팔이가 판치는 거라는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네, 재밌는 이론이네요. 그래서요?”
하여간, 우리 똑똑한 에밀리는 눈을 반짝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는 이론이라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겠나?
항원 항체라는 개념이 등장하려면 100년도 더 남았는걸.
“이걸 먹으면 너가 광견병을 일으킬 나쁜 놈과 싸우는 힘이 더 강해질 거야.”
“오…… 그걸 어찌 알아요?”
“내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왔는데 말이지.”
“좃선……?”
“그…… 조선.”
“좃선.”
“어, 그래.”
일부러 그러나.
한국말을 알 리가 없으니 그럴 리는 없을 터였다.
애초에 대문호가 이런 상스러운 말을 할 리가 없잖아?
나는 애써 좋게 좋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 이런 사례를 겪었단다.”
“흐으음…….”
“어찌 생각하니.”
“논리의 비약이 있는 거 같긴 하지만…… 이거 먹은 사람이 건강하게 잘 살았다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 비슷한 사례에서 마취제랑 진통제도 만들었고요.”
“어…… 그렇지. 근데 그건 누가 말해 줬어?”
“바이킹 전사 같은 무서운 아저씨가요.”
“아, 리스턴.”
그 아저씨가…….
그래, 나는 정말로 좋게 보고 계시지.
너무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내 말에 신빙성이 생기지 않니.”
“네, 뭐…… 그럼 주세요.”
“그래.”
거기에 더해 에밀리가 역시나 대문호라는 명성에 걸맞게 머리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아까 그 아저씨는 코 막고, 입 막고, 팔까지 붙들어 매고 나서야 먹일 수 있었는데…….
꿀꺽.
그에 비해 에밀리는 얌전히 먹잖아.
“물! 물!”
아, 물은 찾네.
하긴 이게 맛이 있을 턱이 없어 보이긴 했다.
세상에, 연수라니…….
이걸 먹겠나.
“어, 여기.”
“후우…… 이거 매일 먹어야 해요?”
“아니, 한 번만 먹으면 돼. 상처 치료는 계속해야 하고.”
“네에…… 그건 다행이네요.”
그럼에도 필요하다면 매일 먹을 생각이 있던 모양이었다.
야만의 시대에 한 줄기 광명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시대와 관계없이 빛이 나는구만그래.
“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그제야 에밀리가 잠에 들기 전과 달라진 노트 뭉치의 모양새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에밀리는 떨떠름한 얼굴로 노트를 보다가 이내 물었다.
“이거…… 이거 혹시 누가 봤어요?”
“어, 내가.”
“왜……! 이거 정말 조악한……!”
조악하다고?
그런 애가 이런 문장을 써?
그런 소설을 써?
겸양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보니, 애가 진심이었다.
왜 그런고 하니, 사실 깊은 고민 따위는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하긴…… 여기 19세기 영국이지.’
가난한 집 애가 일 나가는 대신 책 보고 글 끼적이고 있으면…….
나라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여자애가……?
이 병원만 봐도 간호사는 여자가 하는 게 원칙으로 자리하고 있잖아.
어쩌면 조선인으로 태어난 것과 비슷한 인생 난이도일는지도 몰랐다.
나야 인생 2회차인 데다가 미래에서 왔으니 훨씬 쉬운데도 혼자서는 길거리도 못 나다니지 않나?
“조악하다니.”
“네?”
내가 지금 이따위 말을 감히 주억거리는 것이 미래의 대문호 에밀리 브론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 눈에 비치는 에밀리가 그저 열두 살 난 에밀리로만 보일 따름이었다.
그래도 몇 년 더 먼저 태어난, 속에 든 알맹이는 수십 년 앞선 내가 위로 몇 마디쯤은 해 줘도 되지 않을까?
“잘 쓰던데. 특히 나는 이 문장이 좋았어.”
“어…… 정말…… 정말이에요?”
“그럼. 나 거짓말 못 해.”
“으음…….”
“그리고 이 이름은 뭐야? 아는 이름이 아닌데…… 혹시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 아닌가?”
얘기하다 보니 살짝 주책이다 싶을 만큼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나 진짜 폭풍의 언덕 팬이라구!
책이라고 해 봐야 몇 개 안 읽어서 더 그렇긴 한데…….
하여간 에밀리 브론테를 치료하는 것도 영광이지만, 그녀와 감히 책에 관해 얘기하는 건…… 이건 광영(光榮)이라고 해야 할까…….
“히스클리프요? 음…… 있긴 한데…… 아직은 얼기설기예요.”
“그거 꼭 써 봐.”
“하지만 전 돈을 벌어야 해요. 언니도 그렇고요.”
고작해야 열두 살이 돈은 무슨 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19세기 영국에서 어린아이들은 그저 훌륭한 노동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아직도 일을 안 시켰다는 게 대단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젠 괜찮을 터였다.
“내가 약속할게. 올해가 가기 전에 후원해 줄게.”
“네에……?”
“으응……?”
“넌 내 돈이나…….”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에밀리는 물론이고 조지프와 특히 앨프리드의 눈이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