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02)
검은 머리 영국 의사-102화(102/505)
102화 돈 들어온다, 돈! [1]
돈을 쓰기로 했으니…… 이제 어떻게 벌지 논의를 해 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순서가 좀 거꾸로 된 거 같지만.
어쩌겠어?
내 마음이 이런 것을.
19세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되었노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사실 대한민국에 있을 때도 뭐 딱히 그렇게 경제관념이 투철하지는 않았거든.
‘돈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냥 시간이 압도적으로 없어서 그랬지.’
일단 많은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었다.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 펠로우.
교수도 초봉만 따지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는데, 그전에는 어떻겠나.
투자니 뭐니 하는 개념을 배울 필요가 없었더랬다.
“그래서…… 이제야 진행 상황을 물을 마음이 생긴 거구나.”
다급한 태도로 찾아온 나를, 아저씨, 그러니까 앨프리드의 아버지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 콘돔이라는 거…….
완전 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사업이지 않나.
지분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10%라니.
미쳤나 싶었다.
아이디어는 줬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아들 생명을 두 번이나 살려 준 사람이 아니었으면 뒤통수라도 쳤을 테지만…… 그랬다가는 주님께서 날 가만히 두지 않으실 테지.”
아, 그렇군.
저기에 아들 목숨값도 끼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뭐, 많기는 해도 지나칠 정도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간, 이번 사교 모임 시즌에 이걸 공짜로 좀 풀었네.”
“아……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되긴. 모르긴 해도 이번 사교 모임 시즌이 역대급으로 행복한 시즌이었을걸세. 생각해 보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여든 청춘 남녀가 하룻밤 충동에 의해 사랑을 나눴는데 애는 생기지 않는다라…… 거참.”
아저씨는 나도 한 10년만 젊었더라면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앨프리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끝을 흐렸다.
하다못해 20년 전이라고 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10년 전이면 결혼한 유부남 정도가 아니라 애가 넷이나 딸린 유부남이잖아!
“하여간! 난리가 났어! 이거…… 당장 팔라고 난리가 났다 이 말일세.”
“오. 그럼 당장 가게를 열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아니. 아직 그럴 필요가 없네. 주문이 그냥 들어오는데 뭐 하러 가게를 차리나.”
“네에?”
“이미 특허는 신청했네. 신청하지 않는다 해도 원료도 모르는 것들이 이걸 따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진 않지만…… 하여간, 그랬다구.”
“아, 네네. 그건 알겠는데.”
“잠시 얘기가 딴 데로 샜구만그래. 자, 일단 이거.”
아저씨는 말을 하다 말고 탁자 밑을 뒤적거리더니 꾸러미를 올려다 놓았다.
은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은화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이만큼이나 버신 거예요?”
이 정도면 투자비 정도는 곧 뽑을 거 같은데?
계약이…….
일단 투자비 털고 나면 10%씩 떼 주기로 했으니까…….
드르륵.
행복 회로를 잔뜩 돌리고 있으려니, 아저씨가 그 은화들을 내게 밀어 주었다.
“응?”
“이만큼이나 벌다니? 이건 자네 몫이야.”
“네? 아니, 벌써…… 투자비를 뽑았다고요? 아니, 그보다…… 이게 10%……?”
“부르는 게 값이야. 생각해 보게. 거기 모임에 가는 놈들 중에는 물론 그, 누구야. 블런델. 그래, 그 양반처럼 결혼 잘해서 팔자 한번 고쳐 보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부자일세. 그것도 제 손으로는 땡전 한 푼 벌어 본 적 없는 진짜 부자들이 많지.”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앨프리드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딱히 분해 보이진 않았다.
왜냐?
이 시대에 부자가 되는 가장 흔하고,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상속이니까.
그렇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부자였다.
특히 대영제국의 귀족들은 더더욱 그랬다.
아무것도 안 해도 라임 주스에 힘입어 괴혈병을 극복한 무적의 로열 네이비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룩하고, 세계 각지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부를 갈퀴로 쓸어 담고 있지 않나.
물론 그 과정에서 앨프리드의 아버지처럼 신흥 부자도 나오긴 하지만…….
이 아저씨조차 자신이 벌어들이는 돈 중 거의 대부분을 투자비와 보호비 명목으로 귀족들에게 갖다 바치고 있었다.
“그 부자들의 관심사가 뭐겠나? 돈? 아니지. 돈은 그냥 거저 주어지는 거야. 힘? 힘 또한 거저 받았지. 앞으로 점점 강해질 일만 있어. 여자도…… 사실 돈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겠지만 양갓집 규수는 무리지.”
“으음.”
살짝궁 듣기 불편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1세기 의식을 여전히 탑재하고 있는 내게는 이런 얘기가 좀 그렇다구?
그 전에 모쏠이기도 했고.
물론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딱히 말리지 않아서도 그랬다.
애초에 콘돔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이런 거야 뭐…… 피할 수 없는 어떤 것 아니겠나?
“애라도 생겨 보게. 결혼이야, 무조건. 그렇지 않고서야 런던 사교계에서 매장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네네. 그렇죠.”
바람.
불륜.
런던 사교계에 이런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 비하면…….
진짜 동물의 왕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덕관념이 떨어졌다.
대부분이 매주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라 회개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가…….
‘그렇더라도…… 남의 집 귀한…… 결혼도 안 한 딸을 건드리고 입 닦는 건 미친 짓이지.’
유부남이 유부녀를 만나는 건 괜찮았다.
이게 맞나 싶은데…… 괜찮다더라고.
심지어 첩을 두는 놈들도 많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서민층과 불장난을 해도 된다고 하고…….
이쯤 되면 사교 모임에서 만나는 게 뭐 그리 아쉬울까 싶은데, 원래 안 된다고 하면 더 안달이 나는 게 사람이라지 않나.
“근데 안 생기지 않나. 이건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기적의 물건일세. 아무리 비싸게 불러도 사더라고? 이거 하나에 얼마일 거 같나? 심지어 은화 한 닢을 주겠다는 놈들도 있네!”
은화 한 닢이라.
눈 돌아갈 가격이긴 했다.
상인인 아저씨는 물론이거니와…….
별 상관없는 내게도 그랬다.
돈이 있어서 나쁠 게 없지 않나.
특히 이 시대에…… 난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사실 피임 목적도 있지만 성병 예방 목적도 커서…… 서민들에게 더 중요할 텐데요…… 너무 비싸면 그게 조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래의 목적까지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뭐 아주 훌륭한 도덕군자 나으리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이 시대가 내 눈높이에서 볼 때 너무 비참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여기가 대영제국임에도 그랬다.
왜 공산주의가 나왔는지 알겠다니까?
마르크스라고 해 봐야 이제 겨우 12살? 13살이나 되었겠지만, 아마 어린놈이 봐도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 터였다.
“흐음…… 뭐……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알겠지만…… 보게나.”
아저씨는 그런 내 앞에서 은화를 흔들어 제꼈다.
영롱…….
영롱하긴 하다.
정신이 나갈 거 같어.
“네네.”
“이게 막 들어온다고. 딱히 내가 뭘 하는 게 아닌데 들어와. 아, 그때 공짜로 풀자는 말도 자네가 했지. 그때는 미쳤나 했는데 하하!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아저씨는 계속 은화를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나도 이 런던의 비참한 세태를 그저 외면할 생각은 없네. 당장 나도 저들과 같은 처지에서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나?”
음.
저기 그렇다고 보기엔…….
노동자들보다는 처지가 훨씬 나았던 거 같은데요?
지주 출신이 저런 얘기 나가서 하면 아마 돌아오기 전에 맞아 뒤질 거 같은데…….
“그렇죠! 그러문입죠.”
“그래. 하지만 당장 그럴 필요가 있겠나. 들어 보니, 매독조차 자네의 그…… 썩은 빵 먹으면 낫는다는 말이 있던데.”
“아, 그거요.”
낫기는 하지.
잘 들으면 낫는다, 정말로.
하지만 그 후로 몇 번 더 써 보니까 이게 약간 러시안룰렛 같은 느낌이 있었다.
뒤질 거 같으면 먹여야겠지만 애초에 예방하는 게 최고라는 얘기였다.
그러기 위해선…….
콘돔이 필수였다.
이 시대에서는.
“그게 완전하지는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죠!”
“어어, 그래. 하지만 말일세. 아직은 우리 공장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질 않아서 말이야. 돈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야 해.”
“으음.”
그거랑 사업 얘기는 또 별개의 것이긴 했다.
내가 아예 잘 모르는 얘기이기도 했고.
쌩 구라일 수도 있지만…….
구라 좀 치면 또 어때.
얹혀사는 주제에 삐딱하게 나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때를 좀 미루는 건 어떤가. 일단 파리 쪽이랑 타진을 하고 있는데…… 알겠지만, 프랑스 놈들이 좀 문란한가. 프랑스병의 장본인들 아닌가. 놈들에게 이 단가 그대로 넘긴다면…… 대체 돈을 얼마나 벌겠나!”
“음, 프랑스.”
이건 또 좀 구미가 당기긴 했다.
나는 이게 밈인 줄 알았는데, 프랑스 귀족님네들이 장난이 아니긴 한가 보더라고.
거의 뭐…… 개야.
물론 영국인들이 프랑스 놈들을 아니, 프랑스 사람들을 너무 미워해서 내게 들어오는 말이 다 그렇고 그렇긴 하겠지만…….
어쩌겠나.
나도 영국인인 것을.
“그렇죠. 프랑스 놈들이 문란하죠.”
“그래, 그렇다니까! 우리는 시즌에만 이렇다고 하면 그네들은 사시사철 발정기일세.”
살짝 선을 넘는 거 같지만, 여기 없잖아.
뒷담화에 있어 자유로움이 있다는 말이었다.
“맞죠.”
“이렇게 하세나. 어차피 이게 대량 생산이 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좀 걸릴 거야. 6개월 정도 걸린다고 치고, 그 기간에는 이 가격으로 팔겠네. 많이 나오게 되면 그때 가격을 내리도록 하지.”
“네. 뭐 사업은 아저씨가 알아서 해 주세요. 저는 사실 이만큼이나 돈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뭘. 프랑스 놈들이 본격적으로 사게 되면 몇 배는 나올 건데.”
“기대하겠습니다.”
그래.
나중에라도 풀면 되지.
어차피 나 아니었으면 이런 게 지금 나왔겠나?
대승적으로 생각하면 진짜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이미 살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내가 뭐 이 돈 받아서 호의호식하겠나?
안 할 건 아니지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없었다.
‘누가 날 여기로 다시 보냈건 간에…….’
신이라 부르는 존재가 보냈을 텐데, 그렇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 이유가 설마하니 인류 멸망시키라는 건 아닐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쁜 짓 잘할 놈들을 보냈겠지.
할 줄 아는 거라곤 사람 살리는 거밖에 없는 의사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지.’
어쩐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하늘에서 날벼락과 함께 떼끼 놈 하면서 날 다시 데려갈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애초에 내가 여길 온 거 자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적당히 좋은 일을 해야지. 끌려가는 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