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04)
검은 머리 영국 의사-104화(104/505)
104화 자전거라는 물건 [1]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돈 벌다가 병원에 오니까 딱 한숨이 나오네.
딱히 일하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랬으면 전생에도 의사는 안 했지…….
그냥 옆에 있는 놈들 일하는 거 보면 한숨이 막 나온다.
“그…… 손 씻기는 안 하세요?”
“손? 산부인과에서만 씻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리고 난 오늘 해부도 안 했으니 상관없네.”
상식적으로 새꺄.
상관이 없겠냐?
너가 보는 환자들 중에도 어?
블런델이 죽인…… 아니, 이제는 손 씻으니까 블런델 환자 중에 돌아가신 분이랑 아예 똑같은 양상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래도 손은 좀 씻으면 안 됩니까?”
“아니, 싫은데. 냄새도 나고…… 손도 아프고. 치료에 불리해지네.”
블런델의 병동, 그러니까 산부인과 병동을 중심으로 손 씻기가 일상화된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오래라고 해 봐야 불과 몇 달 지났을 뿐이긴 하지만…….
그쪽에서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사망률의 변화가 있었다.
속절없이 산욕열로…… 그러니까 21세기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질환으로 죽어 가던 사람들이 멀쩡히 살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걸 그럼 다른 놈들이 모르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씻기가 널리 퍼지진 못하고 있었다.
뭘 모르면 겸손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일진대 이 새끼들은 아예 아는 게 없어서 그런가 되려 거만하기가…….
“이보게, 평.”
그때 리스턴 박사님이 날 불렀다.
딱히 말 안 듣는 놈에게 손 씻으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왜 그러는지는 알고 있었다.
“네.”
“손 씻기에 대한 자네 생각은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저에 대한 소문이 돈다, 이 말이죠?”
“그래. 미친놈이란 소문이 있어.”
“아니…… 환자 보기 전에 손 씻으라는 게 어떻게 미친놈 소리까지 들을 일입니까?”
“물로만 씻으라고 해도 싫어할 사람이 태반인데, 염화석회인지 나발인지로 닦으라고 하니까 그렇지.”
리스턴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내가 응급실에 진짜 겨우 구비해 둔 염화석회를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저게 좀 독해 보이긴 했다.
아니, 독하지…….
“씻으면 매독에 걸린다는 속설을 믿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세, 우선 그렇다고.”
“의사가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성병이라는 걸 누가 모른다고.”
“그러니까 그 개념이라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무언가 독소를 주입한다면 그게 왜 꼭…… 응?”
“그…….”
하.
세균 언제 발견했지?
아니, 누가 발견했지?
멱살 잡아 와서 돈 주고 싶다.
지금부터 이것만 하라고.
“하여간 손은 씻어야죠. 손 씻는 병동과 그렇지 않은 병동의 사망률 차이가 명백히 나는걸요.”
“그게 다 우연이라고 믿는 놈들이 너무 많아.”
“우연이라뇨…….”
“아니겠지만, 그렇게 믿는다는데 어쩌겠나.”
“하아.”
“아무튼, 싫다는 사람한테 너무 그러지 말게. 내가 있으니 당장 뭐라 하진 못하겠지만 말이야. 뭐가 되었건 자네는…….”
“네, 유념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소수자지.
아니, 소수라는 말조차 과한 말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병원에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니까.
조선인이 아니라 동양인이다.
아마 범위를 런던 전체로 넓힌다 해도 몇 없을 게 분명했다.
있긴 할 텐데…… 이놈들 기준에서 동양인이지 아마 인도 사람일 거야.
‘하아…….’
그런 내가 지랄했다가 혹 진짜로 물리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진짜로 큰일 날 수 있었다.
‘나중에…… 내 병원 생기면…… 그때 지랄하자.’
해서 나는 좀 더 뒤로 미뤄 두기로 하고 한숨이나 쉬어 댔다.
“자…… 다치셨네?”
그 와중에도 나랑 실랑이를 벌이던 놈은 손도 안 씻은 채 환자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뺏어 오고 싶어서 몸이 움찔했지만 그런 나를 리스턴이 막았다.
후우…….
그래, 참아야지.
한 번 더 한숨을 쉬려는데, 놈이 인두를 꺼내 들었다.
“여기 피는 이렇게 하면 멈추지.”
“저…… 저것도요?”
왜 이 새끼들은 치료를 하라는데 자꾸 고문을 하려는 걸까?
아니, 상식적으로 피 나는 곳을 왜 지지냐고.
전에 그 아저씨 보고서도 저러나?
“으음.”
리스턴도 당시 개 물린 아저씨가 어찌 되는지 두 눈 똑똑히 바라본 바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 사람은 죽진 않았다.
하지만 경과가 그리 좋지도 않았다.
광견병은 어떻게 넘어간 거 같았다.
말린 연수가 엄청 효과가 있더라고?
-으…… 팔이…… 팔이 너무…….
하지만 팔의 그 상처가 회복되는 일은 없었다.
가뜩이나 지저분한 개 이빨에 다쳐 놨는데 그걸 지져서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놨잖아.
피부라는 1차 방어막, 그러면서도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 소실된 환자는 속절없이 감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랐지. 그러지 않았으면 죽었을걸세.”
“네, 그렇죠. 광견병이 아니라 지져서 그렇게 된 겁니다.”
“하하. 자네는 확신을 갖고 말하지만…… 나는 반신반의하고 있다네. 머리 쪽으로 증상이 생길 수도 있고 팔로도 생길 수 있는 거 아닌가?”
리스턴만 아니었으면 저 웃는 얼굴을 후려쳤을 텐데.
내가 겁이 많아서 다행인 줄 아쇼.
“하여간…… 안 지진 우리 에밀리 양은 멀쩡히 회복되어서 가지 않았습니까?”
“운이 좋았지.”
“그래요, 운이…… 아니, 네?”
“운이 좋았던 거지. 생각해 보게. 말린 뇌 먹고 살아났는데 그게 운이 좋은 거지 아니겠나.”
와…….
이걸 이렇게?
내가 진짜로 겁이 많아서 다행인 거다, 너…….
“으, 으아아악!”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기어코 저 돌팔이 놈은 인두로 환자의 팔을 지졌다.
개물림 상처도 아니고, 그냥 어디 쓸린 상처 같은데 저 지랄이라니.
딱 봐도 지가 만든 상처가 더 커 보일 텐데…….
아예 자각이라는 게 없나 싶었다.
그럼에도 나설 수 없다는 현실은 비참했다.
뭐가 되었건 리스턴의 말대로 난 소수에 불과한 사람이었고, 더군다나 근거도 부족했다.
적어도 통계학적인 사고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이 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여, 여기 좀!”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만, 딱 봐도 엉망이 된 환자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부축을 받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인두 들고 있던 놈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안 되지.
그렇게는 안 되지.
저 새끼가 보면 일단 또 지지고 볼 텐데!
“이것까지 절 막진 않을 거죠?”
“어? 어어. 뭐, 그렇지. 가세. 혹시 팔다리 하나쯤 잘라야 될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런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질 말라고.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하여간 나는 응급실에서 노닐던 가락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뭐 하는 거야!”
“아, 미안합니다.”
“이 새끼가! 살 태워 먹고 미안?”
“하하, 미안합니다, 미안해.”
“웃어?”
인두 든 놈은 인두를 얻다 둘까 하다가 다른 환자의 등짝을 살짝 태워 먹는 바람에 한참 뒤처졌다.
위험한 물건을 들고 있을 땐…… 의료진에게는 주로 메스가 될 텐데, 그걸 아래로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불로 달군 인두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자각조차 없을 수도 있었다.
“네?”
“어쩌다 이렇게 다쳤냐고요!”
내 말에 환자도 보호자인지 친구인지 모를 사람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이럴 때마다 현대 의학이란 결국, 모든 학문이 발전하면서 그 견인 효과로 발전해 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의사들은 그 흔한 문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환자들은 아예 의학의 편린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아! 그러니까!”
말이나 통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있거든.
“자전거! 자전거 타다가!”
“아.”
자전거…….
응급실 의사들이 싫어하는 물건 중 오토바이와 더불어 양대 산맥 되시겠다.
최근 들어 전동 킥보드가 가파르게 부상하면서 삼대 천왕이 될락말락하는데, 아직까지는 자전거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어쩐지…… 이가…….’
왜?
자전거로 된통 다치는 건 보통 바퀴가, 턱이 되었건 홀이 되었건 간에 걸리면서 앞으로 넘어질 때거든?
이게…….
앞으로 고꾸라지면 얼굴부터 떨어지게 돼 있다.
보통은 손으로 바닥을 짚거나 하여간 뭔가 해서 얼굴과 머리를 보호해 줘야 할 텐데…….
자전거 탈 때는 손잡이를 잡잖아.
헬멧이라도 쓰고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이 시대에 머리에 뭔가 쓰는 물건이 있다면 투구 아니면 가발 혹은 멋들어진 모자밖에 없으니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이리로!”
아무튼, 나는 환자를 끌고 침대로 향했다.
더럽다는 말조차 아까울 만큼 엉망이 된 시트가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 나는 어엿한 19세기 의사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위로 올려놓고는 환자를 살폈다.
여기서 살폈다 함은 단순히 환자를 내려다봤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동공 반사는…… 아직 있어. 확대되긴 했지만…… 이건 그냥 충격…… 때문이 아닐까?’
몰래 눈에 빛을 비춰 보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는 등불로 상처 비추기 전에 눈알에 비추면 되니까.
애초에 이 사람들은 동공 반사라는 게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눈앞에서 대놓고 해도 아무것도 몰랐다.
“아.”
하여간 본격적으로 다친 곳을 보니, 진짜 엉망이었다.
“환자분!”
“아까부터 말을 안 해요!”
보호자가 거의 울면서 말했다.
죽은 줄 알아서일 터였다.
실제로 거의 죽긴 했다.
넘어질 때 입을 벌리고 있었는지, 혀가 절반가량 찢겨 있었다.
이것만 해도 큰 부상인데, 문제는 이 혀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송 원칙이고 나발이고 없이 끌고 온 덕에 죄 목 뒤로 흘러 넘어갔다는 점이었다.
숨 구멍이 막혔다 이 말이었다.
“칼!”
“칼?”
“그래, 칼!”
기관 삽관이 가능하면 하겠지만…….
그 비슷한 기구도 나오지 못한 상황 아닌가.
만들라면야 철로 만들어 볼 수는 있을 거 같은데…….
‘그거 꽂으면 사람이 정말 죽고 싶어지겠지…….’
아닌 게 아니라 구역 반사 때문에 재워야 할 텐데, 현재 기술로 그렇게 오랜 시간 재울 수 있는 약은 아편뿐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아편으로 그렇게 오래 재우면 영원히 자게 되는 편이었고.
지이익.
나는 옆에 선 리스턴의 칼을 거의 빼앗다시피 한 채로 환자의 목을 세로로 그었다.
시간이 있다면 가로로 그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구조대원이 데리고 온 거면 언제부터 이랬는지 알 수 있을 테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말 그대로 일반인이잖아.
무조건 오래되었다고 가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허어. 이러다 죽겠네.”
“일단 조용!”
“알겠네. 근데 자네가 자꾸 이래서 미친놈이란 소문이…… 어어. 노려보지 말고. 칼 들고 사람을 그렇게.”
이미 늦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리스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환자에게 집중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저 미친놈…… 리스턴에게 감히.”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중간중간 이상한 말이 들리긴 했지만, 한 귀로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