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06)
검은 머리 영국 의사-106화(106/505)
106화 자전거라는 물건 [3]
“지금 목소리는 안 나올 겁니다.”
얼마 후, 그러니까 다음 날 환자는 눈을 떴다.
그사이에 얼굴이 팅팅 부어 버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뼈 앞부분이 안 부서진 게 다행일 정도로 크게 다쳤잖아.
그 와중에 코뼈는 좀 나간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내가 코뼈를 맞춰 본 적은 없었다.
‘괜히 그거 하다가…… 가뜩이나 두개골 바닥뼈가 온전치 않을 가능성이 큰데…… 거기 건드렸다가 사고라도 치면…….’
죽는 거보다는 조금 낮고 삐뚤어진 코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애초에 얼굴로 먹고사시던 분은 아닌 거 같으니까…….
21세기였다면야 바로 이비인후과 콜하고 채찍질을 해 대겠지만 여기선 나 말고 다른 놈들은 기껏해야 돌팔이뿐이라 환자분이 타협하는 게 맞았다.
-쉭.
그런 생각을 하며 환자를 최대한 애정 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동안, 환자는 최선을 다해 말을 하려 애썼다.
그래 봐야 나오는 건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라 바람 소리뿐이었다.
왜냐.
내가 구멍을 뚫었잖아.
내쉬는 숨이고 들이쉬는 숨이고 성대 밑으로 통하고 있다고.
“목소리 안 나와요. 괜찮습니다. 이건 일시적…….”
-쉬시시식!
이게 눈으로 욕하는 건가?
“하하. 진짜 안 나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옆에 있던 리스턴이 웃었다.
웃지 마…….
놀리는 거 같잖아.
-쉬이익.
그래도 괜찮긴 한 모양이었다.
하긴 리스턴을 상대로…… 화가 나겠나.
그럴 수 있다면, 정말이지 비범한 인간일 터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지셨어요. 넘어진 게 기억이 나신다면 눈을 한 번 깜빡여 주세요. 기억 안 나면 두 번.”
“깜빡여요. 말로 할 때.”
이게…….
진짜 환자와의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그냥 소통이라는 게 어려운 시대지 않나.
부부끼리도 말 안 하고 사는 이들이 태반이라는데 뭐 어쩌겠어.
해서 나 혼자 있을 땐 정말 어려움이 많은데, 리스턴이 있으면 얘기가 많이 달랐다.
“기억이 안 나시는군…… 혀는 아파요?”
“아프겠지. 아프다고 하시네. 아닌가?”
“두 번째 깜빡인 건 눈물 때문인 거 같아요.”
“답답하네…… 말 언제 할 수 있지?”
“저걸 막아야 하는데…….”
“막지 그래.”
“아니…… 저게 숨구멍이잖아요. 딱 봐도 혀가 지금 너무 부어 가지고…… 당장은 어려워요.”
“이게 시간이 지난다고 가라앉으려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이 말이었다.
물론 더 원활하게 하려면야 말을 할 수 있어야겠지만, 지금은 목 안쪽이 꽉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구멍 안 뚫어 놨으면 당장 어제 죽었어.
-쉬이익.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환자는 답답한지 연신 바람 새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얼굴에 감사함이 전혀 느껴지질 않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 상태를 살폈다.
‘일단 주여…… 밤사이에 돌아가시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애꿎은 내가 신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걸 이 사람은 알고 있을까?
‘뒤로…… 뇌척수액 새는 거 같은데…… 하, 이런 시발.’
시발.
감사 기도 취소.
이게 뭐냐고.
손도 댈 수 없는 부위에 저거 뭐냐고.
‘그래도…… 기다려 보면 좋아질 수도 있겠……지?’
나는 다년간 훈련받은 포커페이스로 무장한 채 입을 열었다.
“일단…… 환자분 계속 이렇게 누워 계시죠.”
“이유가 있나? 모름지기 잠은 바로 누워서 자야 하는 법일세.”
존나 우겨서 환자를 일단 30도가량 세워 놨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워지는 침대 따위는 먹고 뒤질래도 없는 세상이라…….
기껏해야 베개나 뒤에 놓아 준 게 다였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환자가 워낙에 많이 다쳐서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저렇게만 해 놔도 해 놓은 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환자는 다행이라고 여기지 않겠지만…….
“등불 비쳐 보시면 환자 코 뒤로 뭐가 자꾸 넘어오지 않습니까?”
“콧물이지.”
그보다 더 큰 산은 리스턴 아니, 이 시기 의사들이었다.
코에서 나올 수 있는 건 콧물 아니면 피밖에 없다고 믿은 이…… 무식한 놈들…….
실은 우리 뇌가 뇌척수액이라는 액체에 두둥실 떠 있는데, 머리 바닥뼈 즉 코 천장뼈가 부러지면 그 뇌척수액이 새어 나올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하겠지…….
그러니 그 골절이 미약한 경우엔 그냥 이렇게 압력이 너무 가해지지 않게 두면 저절로 붙을 수 있다는 걸 대체 어떻게 이해하겠나.
“피도 있긴 하죠.”
“어제에 비하면 거의 멎었네. 게다가 혀가 부어서 숨도 못 쉰다며. 앞으로 나오겠지.”
때문에 나는 이 답답한 대화를 좀 더 이어 가야만 했다.
“그…… 옳지.”
“옳지? 이유를 지금 떠올리나?”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서 답답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어렵기까지 했다.
“혀가 부었잖아요. 높은 데 있어야 부기가 좀 더 아래로 내려가죠.”
“흐음…… 방금 떠올렸다기엔 그럴싸한데.”
그럴싸하긴…….
그게 맞으니까 그럴싸하지…….
물론 그 이유에서 저렇게 해 두는 건 아니지만, 사람 몸도 당연히 중력의 영향을 받으니 부기는 빠지기 마련이었다.
대개는 다리 쪽 부상이 있을 때 저리하지만 지금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럴싸한 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저거 빼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야 말도 하고요.”
“하긴 그렇네. 영 불편해. 숨 못 쉬어서 죽는 환자들 살리는 데는 정말 좋은 방법이겠지만…… 흐음.”
“그래도 이번 모임에서 다른 외과 의사들에게 가르치는 거 고려해 보세요. 저런 방법이 또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말 못 하고 사는 것이 그냥 죽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리스턴은 턱 밑을 쓸어 넘겼다.
내가 처음 볼 때만 해도 고민에 잠기거나 하면 앞머리를 쓸어 올렸었는데…….
“여길 왜 보나.”
“아니, 아닙니다.”
마취제 때문에 수술이 팍 늘어서 그런가 어쩐가…….
진짜로 갑자기 훅 빠져 버렸어.
“그…… 보지 말게…….”
“네네.”
리스턴은 축 늘어진 얼굴이 된 채, 다시 한번 턱 밑을 긁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까 뭔 소리 했더라?”
별 의미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빠진 머리의 위력은 과연 어마어마했다.
아니, 이러다 맞아 뒤지겠어.
“기관 절개술이요.”
“아아, 그래. 그거……. 으음. 그래, 좋지. 이건 의미가 있는 술식일세.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라…….
내가 워낙 잘해서 그렇게 보일 뿐, 막상 하려면 그렇게 쉽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객관적으로 어려운 수술이라기보다는 시술에 가깝고 실제로 그냥 둘둘 돌리면 구멍 뚫리는 기계도 나와서 간단한 케이스는 내과에서도 할 수 있게 되기는 했는데…….
그건 21세기 얘기잖아.
“네, 그래도 사고 치면 환자가 죽잖아요. 그렇게 좋은 모양새로 죽지도 못할 거고요.”
“그것도 그렇구만.”
리스턴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마 빠진 머리…… 아니, 어제 내 수술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 터였다.
그 상태로 살렸으니 망정이지 죽었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광경일 터였다.
“그러니까 가르칠 때 제대로 해야 합니다.”
“흐음…… 그렇지. 그냥 강의실에서 할 수는 없겠어.”
“그럼……?”
“해부실에서 해야겠지.”
환자는 이 상태로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더 해 줄 수 있는 게 당장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뭘 더 하려고 한다면…….
그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죽어.
‘에밀리도…… 괜찮고.’
이 환자 외에 에밀리도 상태는 좋았다.
지지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는지 국소 감염 소견도 없고, 뇌 조각 덕에 광견병의 징후조차 없었다.
오죽했으면 벌써 퇴원하고 외래로 온 게 두 번째겠어.
사실 오늘 온 건 내가 말도 안 하고 돈을 보냈더니 놀라서 온 게 더 컸다.
-괜찮아. 글 써. 글. 생활비 걱정 말고.
정말이지 콘돔 만만세다.
프랑스 만세고.
이거 덕에 에밀리 브론테 후원하고도 돈이 막 남아돌잖아.
“기왕 말 나온 김에 갈까요.”
“아, 그래. 상태를 좀 보자고. 다음 주라 시간이 있긴 한데…… 최근에 오히려 해부를 못 해서 그런가. 회전율도 모르겠네.”
회전율이라는 말을…… 시신에 써?
난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리스턴을 바라보았지만, 이 비자발적 변발 아저씨는 전혀 느끼는 바가 없는지 뻔뻔스레 말을 이어 나갔다.
“아, 그리고. 그 자전거 타는 사람 투구 쓰게 하자는 말 말일세.”
“아, 네네. 그거. 그것만 써도 넘어질 때 죽는 사람이 줄 겁니다.”
“내 생각에도…… 그건 당연한 얘기 같네.”
다행히도 의미 있는 말이긴 했다.
게다가 헬멧에 대해서는 19세기 인류도 나름 경험이 있었다.
자전거는 타고 다닌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말은 오래 타지 않았나.
심지어 말은 되게 비싼 동물이다 보니, 특히 레저를 위해서는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경찰서장에게 얘기를 전달했네. 뭐…… 그런다고 다 쓸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안 하는 거보다는 낫겠지.”
“네네.”
할 수 있다면 자전거 다 금지해 버리고 싶지만…….
다치는 거 무섭다고 이만큼이나 효율 좋은 이동 수단을 서민들에게서 뺏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난 어디까지나 동양인 의사일 뿐 여왕님도 아니었다.
아마 여왕님도 그건 못 할 거 같긴 했다.
먼 훗날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날 화가 지망생 콧수염 정도나 시도해 봄 직하지 않을까?
끼이익.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부실이었다.
리스턴과는 달리 나는 최근에도 비교적 들락날락했더랬다.
왜냐?
“어, 왔어?”
“평이 왔구나.”
“이것 좀 도와줘.”
우리의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 등의 제자들이 있어서 그랬다.
말이 친구지 백날천날 일방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으면 그게 스승과 제자지 뭐.
“어, 근데 잠깐만.”
“아앗! 교수님!”
“히이익.”
“살려 주십쇼.”
내가 먼저 들어가고, 리스턴이 들어와서 그런가 택배 받는 애들처럼 입구로 뛰어오던 애들이 우르르 뒤로 흩어졌다.
불 켜진 부엌에 바 선생 흩어지듯 그렇게.
“뭐야.”
“아뇨. 애들이 열심히 하네요.”
“음…… 진도가…… 얘들 셋만 빠른데?”
“제가 좀 편애하는 편입니다.”
“장차 교수 될 사람이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
“교수 되면 편애하지 않을 거니 괜찮지 않을까요? 게다가…….”
“하긴. 나도 알고 있네.”
첨엔 괜찮았던 놈들도 내가 너무 잘해서 그런가. 노란 원숭이 소리를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뒤에선 열과 성을 다해 하기 시작했더랬다.
그 결과 파벌이 좀 나뉘었는데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 이렇게 셋이 내게 충성하는 무리, 그냥 그런 무리가 또 한 댓 명 나머지는…….
“죽고 싶으면 뭔들 못해.”
“아니, 교수가 죽인다는 말을 그렇게.”
“말 들으면 안 죽일 거니 괜찮지 않나? 자네나 나나 다를 게 없지.”
“그…….”
상당히 다릅니다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리스턴은 슥 하고 해부 실습실을 돌더니 불만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신이 너무 적군. 어디서 구해 와야겠는데.”
이건 아무리 친한 나라고 해도 좀 무서웠다.
“그리고…….”
“투구 쓰라는 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