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0화(110/505)
110화 얼떨결에 [4]
“보십쇼.”
나는 내가 봐도 귀신같이 꿰맨 상처를 보여 주었다.
아무리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술이고 또 아무나 막 들어오는 곳이라지만 수술 장면을 제대로 보진 못했을 거 아닌가.
경관은 강의실 자리가 아니라 뒤에 있었으니 완전 처음 보는 일일 터였다.
“허어.”
약간 이미 살았나 싶은 수준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잘하긴 했어.
물론 저런다고 살아나는 건 아니긴 한데…….
하여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환자는 재우고 정보만 주는 것이지 않나?
해서 나는 입을 부리나케 놀려 대기 시작했다.
“보시면 이 너비가 그렇게 좁지가 않아요.”
“으음. 그렇구만. 이 정도면…….”
“4cm…… 아니지. 손가락 세 개 정도?”
“응응. 자꾸 조선 말을 쓰는구만. 아무튼, 손가락 세 개지. 그래서? 이건 그냥 보면 아는 거 아닌가?”
보면 알아서 아까 그렇게 오리무중입네 어쩌네 했냐?
아니, 생각하니까 개열받잖아?
첨에 환자 죽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지금처럼 환자에게 묻는 거 말고는 방도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건 결국, 범인 잡을 의지가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억측도 아닌 것이…….
‘하긴…… 미제 사건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했지.’
첨에 리스턴에게 미제 사건 얘기 들었을 때는 그럼 대체 경찰이 왜 있나 싶었더랬다.
물론 폭력 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거나 높으신 분들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또 꽤 탁월한 위력을 발휘한다곤 하는데…….
이래서 셜록 홈즈가 나왔구나 싶더라니까?
대중들이 얼마나 범인 잡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찼으면 그게 나와서 대히트를 쳤겠나.
“네에, 그러문입죠. 근데 안을 들여다보니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가질 못했습니다.”
물론 난 공권력에 한에서는 강약약강의 전형이라 속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나중에 출세하고 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글쎄.
요원한 일 아니겠어?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짧은 칼 아닌가?”
“이만한 너비를 가진 짧은 칼이 흔하던가요.”
“아…… 그것도 그렇구만.”
“적어도 이 정도는 되겠죠.”
나는 내 손바닥을 쭉 펴서 길이를 보여 주었다.
그러곤 그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배 옆에 갖다 댔다.
끝까지 들어갔으면, 환자는 죽었다.
20cm가량의 칼이 들어가면 보통은 죽어.
물론 살집이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면 또 모를 일인데, 런던의 노동자 중에 살집이 대단한 사람이 있겠어?
맨 이상한 밥이나 먹는 데다가 노동은 고된데.
“아하…… 그럼……?”
“다 못 찌른 겁니다. 초짜예요. 칼을 다뤄 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얘기죠. 게다가 상처가 사실 두 갠데…… 이쪽은 그냥 가죽만 베었습니다.”
“가죽이라 함은……?”
“뱃가죽이죠. 기껏해야 한 마디 정도도 못 들어갔어요.”
“아하. 그렇군. 확실히 일리가 있는 분석일세.”
경관은 진짜로 감탄한 얼굴이 되었다.
이런 거에 놀라선 안 될 텐데…….
걱정이 되었다.
‘절대…… 야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아야지.’
아닌 게 아니라, 런던에는 어째 점점 더 부랑자가 늘어만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말이 부랑자지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건 강도로 돌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 시대는 진짜 그랬어.
아니, 농부도 이놈 돈 좀 있겠다 싶으면 으슥한 곳에서 슥 해 버린다니까!
어쩌면 리스턴이 요새 돈 팡팡 쓰고 다니는 것도 수술장에서가 아니라 다른 데서 팔다리 잘라서일 수도…….
‘아니, 이건 아니지.’
나는 경찰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 아래 지하실로 처박히는 바람에 날아가 버렸던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서, 환자의 발을 가리켰다.
“여기……? 맞나?”
아예 볼 생각도 안 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이거야 뭐…….
나도 그랬다.
처음 외상 환자 볼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
“네. 상대가 칼 들고 쫓아오는데 난 맨손이라고 생각해 보십쇼. 그럼 처음엔 뭘 하겠습니까?”
“도망쳐야지. 아?”
“그래요. 도망가야죠. 그럼 그 주변 보셔서 아시겠지만…… 구정물이 가득한 곳인데…… 다리로 엄청 뭐가 튀어도 튀지 않았겠습니까?”
내 말에 딱 그 거리에서부터 뛰어온 앨프리드와 콜린이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엉망진창이었다.
경관도 잠깐 뛰었는지 뭐가 튀긴 했는데, 가죽 장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에 타격은 거의 없었다.
“근데 깨끗하군, 그래. 이건…….”
“밖에서 범인이 쫓아온 게 아니란 거죠. 이 환자는 집에 있다가 당한 겁니다.”
“허어. 그렇구만그래!”
박 형사였나.
하도 외상센터에서 마주치다 보니까, 환자 정신 차릴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만한 기회가 있었더랬다.
의사가 환자 안 보고 잡담이나 나눴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데…….
시간이 1분 1초도 안 나는 건 아니었다.
시간 단위로는 절대 안 나서 어딜 못 나가서 문제였지.
‘고맙다…… 나 여기서는 형사는 아니더라도 탐정은 할 수 있겠어.’
그 양반도 나랑 비슷한 처지였기에 그랬을 텐데…….
“그리고 손을 보십쇼.”
“이번엔 손을?”
배운 게 꽤나 있었다.
“네. 손도 깨끗하죠?”
“그렇지 않겠나?”
“아니죠. 다시 생각해 보세요. 모르는 미친놈이 칼 들고 오는데, 맨손입니다. 도망도 못 쳐요. 집이거나 막다른 구석이라. 그럼 어쩌겠습니까?”
“으음…… 어어! 당신 미쳤소?”
경관이 내 말에도 으음 하면서 꾸물거리고 있자, 옆에 있던 리스턴이 자기 칼로 경관을 내리치는 듯한 시늉을 했다.
당연히 맨칼은 아니고 칼집에 들어가 있긴 했지만…….
경관뿐만 아니라, 그냥 이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이 새끼가 미쳤나? 하는 얼굴이 되었다.
착각이겠지만 환자도 눈 떴다 감은 거 같아.
“지금 손 올리고 있구만.”
물론 리스턴은 이런 종류의 시선 집중에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이게 또 도움이 되긴 했다.
“네. 손을 올리셨죠? 본능적으로 방어를 하게 되어 있어요.”
“아…… 그럼.”
“그런다고 찌를 놈이 이렇게 멈추진 않았을 테니…… 손에 상처가 나야 정상이죠.”
“근데 깨끗하지 않나. 뭐지? 자기가 찔렀나?”
와.
이번엔 좀 위험했다.
너무 멍청한 소리를 하니까…….
진짜로 때릴 뻔했어.
상식적으로 자기가 찔렀으면 흉기가 그 자리에 있었겠지!
그리고 우리네야 옆 나라 일본에서 자꾸 할복이네 뭐네 하니까 배 찌르는 걸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진짜 맨정신으로는 못 해 먹을 짓이었다.
“그…… 그럼 칼을 쥐고 있거나 근처에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손을 씻은 것도 아닐 텐데 이렇게 깨끗할 수도 없었겠죠.”
“아하.”
“아는 사람이 갑자기 푹 찔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방어를 못 했을 수 있겠죠.”
“아…… 아는 사람……?”
“네. 아는 사람.”
“이렇게요.”
나는 칼 대신 손가락으로 경관과 대화 도중에 배를 푹 찔렀다.
예상했던 대로 전혀 무방비 상태로 찔렸고, 경관은 자신의 배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공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다가 박수를 쳤다.
“그렇구만! 지인이 범인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그래! 좋아! 이러면 잡을 수 있겠지! 잘했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경찰은 하하 웃으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그런 경찰을 보면서 다시 한번 혼자 나다니진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환자를 보려는데, 리스턴이 입을 열었다.
손가락을 환자의 코에 댄 채였다.
“숨을 잘 쉬는군그래. 수고했네. 자네는 진짜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잘 가르쳐 주신 까닭이죠.”
“가르쳐 주지 않은 걸 어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요즘 가끔 나를 보면 짓는 예의 그 의문스러운 표정이 슬쩍 지나가고, 리스턴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약간 염려가 되는 얼굴이었다.
왜 그러나 싶었다.
“이렇게 살렸으니 잘된 일이긴 한데. 시신은 어디서 구해 온단 말인가?”
“아.”
그렇지.
우리 사람 살리러 간 게 아니라…….
시신을 구하러 간 것이었지.
물론 그 시신 구해서 다른 외과 의사들 가르쳐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데 목적이 있기야 했지만…….
아무튼 간에 지금 당장은 시신이 필요했다.
“그…… 시신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까?”
“응?”
그렇게 근심 어린 눈동자를 서로 맞교환하고 있으려니, 방금 뛰쳐나간 경관 말고 환자 상태 보려고 남아 있던 경관이 말을 걸어왔다.
딱 봐도 직급이 더 낮아 보이긴 했지만, 하여간 경관의 말이니 들어 둠 직하지 않겠나 싶었다.
“시신이요?”
“네. 시신이라면…… 무고한 희생자만 있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술 좋아하는지 코가 좀 빨간데, 그래서 더 의심쩍어.
이 시대에 제정신 아닌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뭔 소린가?”
빙빙 에둘러 말하는 거 싫어하는 리스턴이 역시나 먼저 나섰다.
가뜩이나 덩치도 크고 무섭게 생겼는데, 아까는 심지어 칼을 휘두르지 않았나?
암만 경찰이라 해도 감히 리스턴이 하는 말을 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네. 죄수들이 있죠.”
“죄수……? 아니……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여기서 죽이겠다고 말하는 게 아닐세.”
그러다 보니까 살짝 성급하게 나갔는데, 이걸 받을 만큼 리스턴이 쓰레기냐?
그건 아니었다.
“아니, 아니. 그런 말씀이 아니고요. 그…… 사형수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
“많이들 죽어 나갑니다.”
“열 구는 필요한데, 그만큼이나 죽나?”
“어…… 언제까지요?”
“다음 주.”
“아.”
다음 주요?
나는 봤다.
경관의 입을.
그래, 많기는 해?
아무리 사형수가 많기로서니…….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네?”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좀 땡겨서 하면 되죠.”
“땡긴다니…… 그건 좀. 더 살 수 있는 사람을 미리 죽인다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죽일 놈들입니다. 다들 살인범이고, 강간범인걸요.”
“그럼 또 얘기가 달라지죠.”
모든 살인범이 다 죽어 마땅하다는 건 아니었다.
근데 내가 이번에 경찰들 하는 걸 보니까…….
이 와중에 잡히기까지 했어?
몇 번 했단 얘기…… 아닐까?
막말로 CCTV가 있나 블랙박스가 있나.
목격자 찾기도 더럽게 어려운 것이 다들 자기 살길 찾기 바빠서 협조도 안 했다.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게 협조해도 해 주는 게 없었다.
보복이나 안 당하면 다행인 수준?
“그러니까요.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일정을 알려 드릴 테니까. 그때 현장에서 가져가시죠.”
그래.
그렇지.
죽어 마땅한 놈들이야.
하지만 현장에…….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지. 근데 그…… 방식을 좀 바꿀 수 있겠나?”
“방식이요?”
“시신이 필요한 게 수술 연습 때문에 그러는 건데, 목이 다치면 안 되네.”
“아…… 그럼 교수형이 안 되는군요?”
“그래.”
“어…… 그건 제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박사님께는 워낙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뭐든 협조를 할 겁니다. 오늘도 그렇고요.”
경관의 말에 리스턴은 껄껄 웃었다.
나?
나는…….
‘그럼 대체 어떻게 사형을 시킨다는 거지…….’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