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1)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1화(111/505)
111화 죽었다는 것 [1]
21세기에서 죽음이라는 건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무언가였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건 다 알지만…….
언젠가 죽는다는 거지, 적어도 30대에 불과했던 내겐 저 멀리 있었다고.
물론 나는 그 와중에 뇌종양도 걸리고, 트럭에 치여 죽긴 했는데.
‘여긴 다르지…….’
이 시대의 죽음은 늘 곁에 있는 무엇이었다.
나이와 관계없이 갑자기 가 버린다니까?
그렇다면…….
사형시키는 것도 쉽지 않겠나?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교수님.”
“응.”
리스턴은 늘 그렇듯 천하태평이었다.
사람 팔다리 자르는 게 업인 주제에…….
게다가 지금 시신 양도받기로 한 주제에…….
‘후우.’
물론 여기서 이따위 생각이나 하는 건 낭비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다들 무심하잖아?
뭔가…….
도덕관념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무리도 아닌 것이, 당장 100년, 200년 전으로만 가도 찐 야만의 시대잖아.
“그…… 사형수들을 어떻게 죽인다는 걸까요?”
“알아서 하겠지.”
“그…… 알아서 했는데, 안 죽어서 오면 어째요?”
“응? 뭔 소리…… 아. 음. 그건 확실히 문제가 있겠군, 그래.”
다행한 것은, 리스턴이 뭐가 되었건 간에 의사는 의사란 점이었다.
의사의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다 뭐 이런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저런 사례를 여러 번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병원에서 죽었다고 판명 난 환자조차 나중에 보니 잉 그게 아니었네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잘못 말한 게 아니라, 진짜로 많았다.
근데 사형수는 오죽하겠어.
“블런델을 부르지.”
“아, 네.”
교수형에 처하면 무조건 죽을 거 같지?
진짜 놀랍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툭 하는 순간 목 힘으로 버티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목뼈가 부러지질 않고 그냥 밧줄에 졸려서 피가 머리로 가지 않는 상황에서 혼절만 한 채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사형장에서 그게 뭐 혼절한 건지 죽은 건지 알겠나…….
-살려 줘…….
그걸 그냥 냅다 관에다 넣고, 묻을 자리 날 때까지 대기했다.
그럼 어떻게 되겠나.
사형수였다는 걸 다 아는 상황에서 근처를 지나는데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려.
아니면 막 관을 박박 긁거나…….
쿵쿵 두드려.
얼마나 무서워.
게다가 그 근처를 지키고 선 사람들은 주로 사형을 집행했던 사람들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혼절했네! 살려 주게!
담 약한 사람이건 강한 사람이건 간에 간혹 기절해서 병원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 그쯤 되었으면 의사 중 누구라도 가서 사태 파악에 나섰어야 할 텐데 놀랍게도 관심을 보였던 사람은 단 하나, 블런델뿐이었다.
-산 사람이 묻힐 뻔했다는 얘기 아닌가……?
-어차피 죽일 놈인데 벌 더 받는 셈 치면 되지 않소?
혼비백산해서 달려간 그가 들었다던 말은, 진짜로 말문이 턱 막힐 만한 말이었다.
세상에…….
생매장도 벌이라 치자고?
사람이 사람한테 해도 되는 짓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짓이 있는 법인데…….
물론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뿐이었고 정작 블런델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더랬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죽고 나서 묻히는 게 맞나…… 싶어서요.
-시민들? 죄 없는 시민들……? 아, 그건 안 될 일이지.
나쁜 방향으로 빵 튄 건 다행히 아니어서, 경찰 그리고 죽고 나서 묻히고 싶은 일부 귀족들의 협조하에 블런델은 이런저런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그 와중에 나온 것이 관에 종 다는 것이었는데 사실상 실패였고.
‘흐음.’
나는 리스턴의 말에 블런델을 찾아가면서 그 일을 떠올렸다.
종 울려서 팠더니만 부패한 시신이 가스가 차서 종을 울렸던 그 사건…….
내가 진짜 외과 의사로 살면서 별의별 끔찍한 꼴은 다 봤다고 생각하는데…….
그날은 잊을 수가 없어.
“교수님.”
“오, 자네 왔나. 어쩐 일인가.”
안에 들어갔더니, 블런델은 손에 묻은 피를 수건으로 닦아 내고 있었다.
물로라도 닦지…….
그리고 저 피가 왜 묻었을까…….
자세히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좋지 못한 결론에만 도달할 거 같아서 나는 고개를 털었다.
“그, 리스턴 교수님이 상의 드릴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리스턴이? 왜? 팔다리 자를 건 아닐 것이고…….”
“그것이.”
자초지종을 말하는 동안 블런델의 표정은 그야말로 극적으로 변했다.
“아니…….”
“어찌…….”
“자네들 미쳤나? 사형수 시신을…… 허.”
일단 경찰서 가서 시신 내놓으라고 했던 것부터 해서 살인 현장에 갔던 일, 근데 안 죽어서 살린 일, 거기에 더해 사형수 시신을 삥땅 치게 된 일…….
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런 반응이 과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러한 고로. 죽고 나서 병원으로 와야 하거든요.”
“그렇긴 하지.”
“죽음을 판정해야 하는데, 도움을 좀 주시죠.”
“그게 되면 내가 종이나 만들고 있겠나.”
“그걸로 돈 좀 버신 걸로 아는데, 뭐 다른 진척은 없었어요?”
“없네. 너무 어려워. 지금 같아서는 그냥 시신 안치실에 썩을 때까지 두다가 묻는 게 최선일세.”
“하아.”
시신 안치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안실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봐야 했다.
거기는 일단 썩지 않게 온도를 설정해 두잖아.
여기는 그런 거 없고, 그냥 뒀다.
진짜로 눈앞에서 사람이 썩는다니까?
그게 그냥 보기에 끔찍하기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위험한 일이라는 게 문제였다.
‘전염병 큰 거 한번 올 때 됐다…….’
파리만 꼬이는 게 아니라 쥐도 꼬인다니까?
그게 다 어디로 가겠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균 퍼뜨리겠지.
아무튼, 그건 그거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당면한 과제였다.
“아무튼, 가세. 머리를 모아 보면 좀 낫겠지.”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자네가 날 찾았다니까 기쁘기도 하고 말이야.”
“아, 네. 전문가 아니십니까.”
“엄밀히 말하면 산부인과가 내 전문 분야긴 한데…… 뭐, 아무튼.”
나는 블런델과 강의실로 돌아왔다.
안에는 리스턴뿐만 아니라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도 있었다.
다들 이번 실습에 집도까지는 아니어도 참관까지는 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내가 얘네는 따로 키워야 된다고 적극 주장을 한 덕이었다.
“와서 살아 있으면…… 여기서 죽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도 생각해 봄 직한 방법이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되게 무서운 소리를 꺼냈다.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말려야 할 리스턴은 자신의 리스턴 칼을 매만지면 끄덕이고 있었고.
그러지 마, 시발놈들아.
의사 아니라 나쁜 짓 하는 아저씨들 같잖아.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의사가 사람을 죽인다니!”
다행히 블런델은 제정신이었다.
“죽이는 건 경찰이 해야지. 같이 한 명 데려오세.”
아니…….
19세기 기준으로 그랬다.
미친놈들이…….
실습실에서 사람 죽이고, 거기서 바로 실습을 하자고?
니들 발상이나 윌리엄 버크, 헤어 형제의 발상이나 뭐가 다르냐…….
“좀 찜찜해하지 않을까요?”
그때 우리의 희망 앨프리드가 입을 열었다.
“뭐가?”
반응이 딱히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이제 앨프리드도 리스턴과 하루 이틀 다닌 게 아니다 보니 굴하지 않고 입을 놀릴 수 있었다.
“실습 오시는 분들 중에 귀족 출신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가뜩이나 에든버러 사건 때문에 민감하실 거고…… 혼자 오시는 것도 아닐 텐데…… 거기서 죽이는 건 좀.”
“아…… 귀족들이 있지. 하긴, 우리 귀족 나으리들은 보통 혼자 안 오지. 민망할 수 있겠어.”
사람 죽인다는데 고작해야 민망한 것이 문제가 되나 싶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거기서 죽이는 건 안 되는 것으로 의견이 모여졌다.
당연한 일인데 이런 것도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사실이 한심스럽지만 어쩌겠나.
어쩌겠어, 19세긴데.
“그럼, 역시 거기서 죽음을 판정해야겠군.”
“으음.”
“흐으음.”
“뾰족한 수가 없겠나? 블런델 자네는 어때.”
“으음.”
그 시대의 한계를 방금의 대화만큼 잘 보여 주는 것도 없을 거 같았다.
교수가 둘에 의대생이 넷이나 모였는데 사람 죽음 판정하는 데 자신 있는 놈이 하나도 없어.
심지어 그중 한 교수는 숫제 전문간데도 그랬다.
“하나…… 묘안이 있기는 한데.”
오?
아닌가?
아까는 없다고 했지만, 약간의 진보는 있었던 건가?
하긴, 19세기면 그래도 이제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는 와중은 되지 않나.
내가 와서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심어 주고 있으니 약간 더 시대의 시계가 빨리 돌기 시작했을 수도 있고…….
“내가 최근에 이런 걸 하나 샀네.”
블런델은 내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동시에 가방에서 무언가 삐죽한 것을 빼내었다.
뭐지 하고 보니까 칼이었다.
아니, 송곳인가?
“바늘일세.”
아, 바늘.
그러고 보니까 안에 구멍이 있다.
그렇다고 하기엔…….
-그건 바늘이라 하기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무겁고, 그리고 조잡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송곳이었다.
아니, 아니지.
잠깐 딴생각이 났는데, 하여간.
들어 보기라도 해야지.
“이걸로 심장을 푹 찌르는 걸세.”
“응? 뭐라고 했나.”
“생각해 보게. 아직 살아 있으면 심장이 뛰지 않겠나?”
“그건…… 그렇지.”
“그럼 여기에 난 구멍을 통해 피가 쭉 나올걸세. 안 나오면 죽은 것이고. 나오면 산 것이지.”
“그 정도면 나오다가도 죽겠는데?”
“사형수니까 하는 말이야. 일반인에게는 도저히 쓰기 어려운 방법이지.”
“아하. 이건 묘안인데.”
묘안……인가?
확인 사살이 될 거 같긴 했다.
저걸로 푹 찌르면…… 죽지.
어떻게 살겠어.
말이 바늘이지 송곳인데.
“근데 그 사형장에 사형수 가족들은 안 오나?”
“오긴 하지. 시신은 인도하지 않기로 얘기가 됐어. 모두 흉악범이거든. 대신 우리 병원 측에서 돈을 줄 거야. 돈이야 뭐, 실습 오는 사람들이 낼 테니.”
돈 주니까 됐다, 라고 하기엔 송곳 생긴 게 너무 흉악했다.
찔렀는데 미동도 없으면야 뭐…….
그냥 넘어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거기서 왈칵 피가 나온다면……?
-법적으로 사형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허가받은 인원뿐이네.
야만의 시대에 별소리 다 하네 싶을 수도 있는데, 나름 영국은 사적 제제를 금하고 있는 나라였다.
뭔 말인고 하니 개인적인 복수를 금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것도 신분에 따라 약간 다르게 적용이 될 수는 있긴 한데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일반적인 신분을 넘어서는 건 콜린뿐이었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죽이면 그건 안 될 일일세.”
“그 사람들보고 찌르라고 하면 되잖아?”
“심장 말고 다른 델 찌르면 어쩌려고?”
“아. 이거야 원.”
“그보다 온건한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블런델은 송곳을 매만지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덩달아 그의 시선을 따라 나를 보게 되었다.
‘왜…… 나……?’
나는 외과 의사란 말이야.
칼로 째는 걸 잘하지 이런 건…….
아니, 잠깐만.
아니지.
뭔가 수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청진기…… 그게 만들기 아주 어렵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