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2)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2화(112/505)
112화 죽었다는 것 [2]
청진기.
의사가 환자의 숨소리 또는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물건하고 아주 친하진 않았다.
왜냐?
숨소리 아무리 잘 들어 봐야 흉부 엑스레이만큼 정확할 수는 없는데, 엑스레이가 막 엄청 비싼 건 아니잖아?
‘심장이야…… 애초에 청진이 진짜 어렵고……?’
더군다나 심장 쪽은 초음파의 개발로 인해 심장 내과 의사들조차 좀 의심된다 싶으면 초음파를 갖다 대지, 절대로 청진만으로 확진을 하진 않았다.
다시 말해 현대 의학에서만큼은 청진기로 더 이상 확진을 하진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런가?
딱히 청진기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었다.
허나…….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 보게.”
“그래. 조선에서 뭐가 없었나?”
“그러니까 말일세.”
눈앞에 있는 19세기 의사들을 보라.
의사 여럿이서 모여 가지고 이 환자가 대체 죽은 건지 산 건지 파악하기 위해 토론해야 하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얘기인가?
심전도 딱 찍으면 나오는 걸…….
우리는 그게 안 된다니까?
이런 와중에 청진기가 나오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비난을 마구 들어가면서 생각을 곰곰이 해 보니까…….
단지 죽음을 판정하는 데만 쓸 게 아니었다.
‘폐렴…… 심장…….’
이 시대에서 폐렴이 있다는 걸 진단해 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있어서 나쁠 거 같진 않았다.
나야 미래에서 왔고, 또 외과 의사로서의 재능이 있을 뿐이지만 이 시대에 사는 실험 정신 미쳐 돌아가는 의사들 중에 천재가 설마 하나도 없겠나?
뭐라도 해낼 수도 있었다.
“그…… 방법이 하나 있긴 있을 거 같은데요.”
“오!”
“역시, 자네는 뭔가 남다른 면이 있다니까.”
블런델은 순수히 기뻐했고, 리스턴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새끼…….
확실히 요새 좀 의심을 하고 있긴 한 거 같다.
‘그래도…… 대놓고 지적질 안 하는 거 보면 대강 넘어가려는 거 같지?’
리스턴이 문제 삼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오히려 좋았다.
자기도 가만히 있는데 남들이 난리 치면 바로 쉴드를 쳐 줄 거란 얘기가 되니까.
그렇다고 막 얘기를 꺼내긴 그래서, 천천히 생각에 생각을 거쳐 입을 열었다.
다행한 것은, 이 시대에도 벌써 선구자가 하나 있긴 하다는 점이었다.
아니, 이 시대가 아니라 고대에도 있었다.
“그리스 의학서를 보면…… 그 시대 의사들이 사람의 심장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속이 빈 나무를 이용했다는 얘기가 있죠.”
“어, 있지. 근데 그게 뭐…… 효과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새끼들.
이러니까 19세기가 야만의 시대라는 소리를 듣지.
실로 시건방진 언행 아닌가?
나는 블런델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증기 기관이 나왔으니 이렇게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가.’
얼마나 과거 사람들이 한심해 보이겠나.
이런 것도 못 만들고 노 젓고 다녔다고? 하면서 말이야.
아닌 게 아니라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또는 문화 대혁명이 있지 않나?
물론 마지막 것은 목적이 좀 다르다고 알고 있긴 한데…….
하여간 옛것이라고 하면 무조건 배척해야 할 것이라고 믿었던, 실로 오만했던 시대가 있는데 그게 하필 지금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유산 중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사람의 지능 자체는 고대랑 지금이랑 딱히 차이가 나지 않거든.
“잘 보세요.”
“어어. 뭐 하나! 왜 사람 얼굴을 끌어당겨!”
“잘 들어 보라고요. 들어 보면 알 거 아닙니까?”
“그, 그래도 이게.”
나는 일단 블런델의 머리를 잡아다가 내 가슴팍에 갔다 댔다.
나름 운동을 게을리 하는 건 아니긴 한데, 체형도 그렇거니와 먹는 게 부족하다 보니 청진에 최적화된 몸이 되어 버렸다.
“들려요?”
“들리네…….”
“제 심장 뛰는 소리 들리냐고요.”
“그…… 어째 좀 대사가 로맨틱하게 느껴지는데, 내 착각인가?”
“그렇게 말하니까 저도 그렇게 느껴지네요. 나중에 써먹어야지.”
“하아.”
블런델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귀를 쫑긋거리고 있긴 했다.
의사니까, 남의 심장 소리가 궁금하지 않겠나.
이건 본능이었다.
“어디 보자. 아, 그래.”
나는 그렇게 잠시 블런델을 두고 있다가, 그의 고개를 떼어 낸 후 옆에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그 종이를 동그랗게 말고서 내 가슴에 한쪽 끝을 댔다.
“이제 저 끝에 귀 대 봐요.”
“아,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잘 들립니까, 제 심장 소리가.”
“아, 글쎄 그따위 말을 하지…… 응?”
“크게 들리죠? 아까보다 확실히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죠?”
“조용히…….”
“아, 네.”
나는 블런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블런델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뗐다.
“음. 확실히…… 잘 들리는데?”
“그렇죠?”
“이 방법이 괜찮겠어.”
“아뇨.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건강한 성인이잖아요. 그러니 잘 들릴 수밖에요. 긴가민가한 상황에서는 딱히 이게 소용이 없을 겁니다.”
정확한 비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종이 말아서 대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연구실에 있어서 주변이 조용하잖아?
뚫려 있는 반대편 뒤로 들어갈 소음이 적다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방해가 될 터였다.
나야 외과 의사라 잘은 모르지만 친한 친구 중에 이비인후과 애가 있거든.
얘가 그러는데, 소리라는 게 이게 참 예민한 거더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걸로 들렸으면 산 채로 묻히는 사람들이 있었겠습니까?”
“하긴.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그렇네.”
“자네는 왜 이렇게 귀가 얇아?”
“그렇잖아.”
“그렇긴 해.”
블런델과 리스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또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가락이 있다 보니 기대가 여전히 담겨 있었다.
그래, 여기서 멈추면 좀 그렇지?
조선에서 온 명의 김태평이가 말이야.
과학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19세기에 종이 말아 가지고 쓰는 방법을 제시하면 얼마나 모양이 빠져.
“우리 귀를 보자고요.”
“귀를?”
“갑자기?”
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왜 이렇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많을까?
적어도 이 시대는 없을 거라고 내가 장담한다.
“이 귓바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괜히 이렇게 달아 뒀을까요?”
그냥 얘기하면 또…….
이 멤버들이야 괜찮겠지만 어디서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는 세상이지 않나.
이럴 때 쓰면 좋은 게 하나님 쉴드였다.
아직 다윈이 분탕 치기 전이라, 감히 창조론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말 하면 19세기에도 교수형 아니지, 화형이야.
“으음…….”
“괜한 일을 하셨을 리는 없지.”
“그렇죠. 그렇습니다!”
나는 마치 부흥회 강사라도 된 것처럼 팔을 이쪽저쪽으로 흔들었다.
솔직히 이런 고급 지식을 마구 털어 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이었는데, 다행히 사전 지식이 없이 나를 향한 호감만 가득한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었다.
“이게 소리를 모아 주는 형태일 겁니다.”
“소리를 모아?”
“소리는 그냥 공기 같은 것이지 않나?”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았다.
소리가 진동이라는 걸 대체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나.
게다가 그 진동 에너지가 귓바퀴에서, 귓구멍에서, 오목한 형태의 고막에서 또 뒤로 이어지는 이소골에서 증폭이 되었다가 달팽이관에서 비로소 전기 신호로 바뀐다는 건 이들이 납득하기엔 너무 어려운 지식이었다.
너무 앞선 지식인 동시에 어려워.
솔직히 나도 주워들은 게 다라 제대로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어.
존경합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들…….
“바람 타고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걸 모아 준다고 생각해 보시죠.”
“으음.”
“으으음.”
“이게 괜히 이렇게 생겼겠어요?”
“아아, 그래.”
“아무튼, 그래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나도 방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귀의 형태를 생각해 보니까 이게 결국, 청진기와 아주 유사했다.
청진기가 먼저 만들어졌을 리는 만무하니 따지고 보면 귀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한 거라고 보면 되었다.
“그 손을 이렇게 귀에 대고 펼치면 소리가 더 잘 들리지 않습니까? 소리를 모아 주는 것이죠.”
“아하, 그렇지.”
“그런 생각은 못 해봤네. 근데 맞구만.”
둘만 아니라,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세를 모아 말을 이어 나갔다.
“자 계속해서 하나님의 설계를 따라가 봅시다.”
누누이 말하지만, 부흥회 컨셉으로 가야 안전했다.
“이 귓구멍. 이건 또 왜 있을까요.”
“으음…….”
“역시 괜히 있진 않을 거 같긴 한데…….”
“동굴 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
“동굴을 언제 가나.”
아, 실수했다.
이 시기는 관광이라는 게 흔한 시기가 아니지 않나.
증기 기관이 나오긴 했는데, 그럼에도 여행이라는 건 대부분의 경우에서 고생과 같은 의미를 띄었다.
물론 귀족들이야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거나 심지어 아시아도 가긴 하는데…….
우리 모임에서는 그만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콜린이나 앨프리드도 그 정도는 아냐.
“저기 복도를 말한 건데 제가 잘못 말했네요.”
“복도?”
“네. 그…… 요로결석 수술방으로 이어지는 곳이요.”
“아, 거기가 동굴 같지.”
“거기 가면 목소리가 울리지 않았습니까?”
“어? 어어. 어……?”
한쪽이 막힌 길게 이어진 곳, 즉 맹관.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증폭이 되어서 그랬다.
실제로 우리 귓구멍에서 증폭되는 소리가 약 3배나 된다고 하니, 놀랍지 않나?
물론 지금 여기서 구체적인 숫자를 논할 수는 없다 보니, 그냥 넘어가야만 했다.
“귓구멍도 그렇죠. 이 관을 통과하면 소리가 커집니다. 아까 블런델 교수님이 경험한 게 바로 그러한 원리죠.”
“자네는 그런 걸 대체 어찌 아는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자네에게만 그런 은혜가.”
나도 모른다.
왜 내가 다시 살게 되었는지.
나만 다시…….
아니지?
역사가 이렇게 긴데 꼭 나뿐이라고 볼 수 있어?
지금 하는 거 보니까 도대체가 어떻게 21세기에 그리 발전한 시대가 왔는지 모르겠거든?
한 명씩 와 가지고 역사가 바뀌고 있는 거 아닐까?
“새벽 기도.”
“뭔…….”
“아무튼, 귀 해부를 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말이죠. 귓구멍 끝에는 고막이 있죠.”
“있긴 하지.”
고막…….
그것도 오목하게 생겼지 않나.
귓바퀴 축소판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것도 소리를 모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렇죠?”
“그렇네.”
“그럼 우리가 이 밖에다가 귀를 흉내 낸 물건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오목한 철판을 만들고요, 그 뒤에 관을 꽂고, 귀로 들으면요. 엄청 잘 들릴 거 같은데요?”
“허!”
“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