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3화(113/505)
113화 죽었다는 것 [3]
이 양반들.
그러니까 19세기 의사 양반들이…….
내 기준으로 보면 진짜 대가리 빠가지만, 그게 어디 지적 능력이 딸려서 그렇겠나?
그냥 축적된 지식의 차이 때문일 뿐이었다.
난 이 사람들보다 거의 200년가량 더 쌓인 지식을 공부했잖아?
게다가 20세기 들어서 축적된 지식의 양이 그 전 인류의 역사 전체를 합쳐도 더 많다구.
21세기야 말할 것도 없고…….
“확실히…… 이렇게 하면 뭔가 좀 다르겠는데.”
“그래. 미세한 숨소리나 심장 소리를 듣고 판정할 수 있다면…… 이건 비단 이번에만 쓰고 버릴 것이 아닐세.”
둘은 내 말을 듣자마자 딱 이해해 버렸다.
귀의 형태를 모방한 물건을 만들어 소리를 증폭한다면, 의학에 있어 커다란 진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블런델은 과흥분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조기 매장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의뢰를 통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지?”
“주님의 은총이죠.”
“그놈의 은총이 왜 자네에게만 향한단 말인가.”
“저희 부모님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나라까지 버리고 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 거 치고는…… 신부님 수녀님 되려다가 자네를 낳았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갸륵하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내 들어 보니 조선이야말로 아주 발전한 나라 같은데 말일세.”
그…….
나중엔 장난 아니게 되긴 합니다만…….
지금은…….
지금도 어떻게 보면 장난이 아니긴 하지…….
‘안동 김씨 세도 정치가 딱 이때 아닌가?’
붕당으로 나라가 골로 가는가 싶더니, 거기서 더 막장으로 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시대.
1811년에 홍경래의 난도 터지고…….
좀 더 지나면 민란도 벌어지고…….
와.
진짜 엉망이네?
“그렇죠. 그러니까 주님이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죠.”
“그렇구만. 내 진짜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긴 한데…… 너무 멀어서 이거야 원. 그 먼 길을 오셨으니 대단하긴 하구만.”
뭐, 어찌 되었건 알 게 뭐란 말인가.
막말로 갈 거야?
여기서 조선이 얼마나 먼데.
증기 기관차 타고 가도 한참 걸릴 게 뻔했다.
거기에 더해서…….
가면 들어갈 수나 있나?
아직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아니겠지만, 그 전이라고 해서 조선이 개방적인 국가는 아니었잖아.
“기회가 되면 같이 가시죠.”
“그래, 그래.”
해서 나는 그냥 되는 대로 입을 털었다.
물론 계속 그 얘기만 하고 있을 수는 또 없는 노릇이었다.
이거 만들어야 될 거 아닌가.
어?
하루 이틀 걸리겠어, 이게?
얘네들 이상하게 기술력이 딸린다니까.
게다가 나도 솔직히 말해서 지금 기술력으로 이걸 어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
“자, 그럼 이 원리를 이용해서 만들어야 할 텐데…… 종이 좀.”
“어어. 여기.”
조지프가 종이를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방금 내 일장 연설을 듣고 나서 더더욱 나에 대한 존경심이 사무친 모양이었다.
원래도 내 말이라면 껌뻑 죽던 놈이니 뭐…… 무리는 아니었다.
하긴 방금 말은 시대를 좀 뛰어넘긴 했지 않았나?
그러면서도 그런 느낌은 없을 테니, 완전 천재 느낌이 딱 들 터였다.
“자, 일단…… 가슴에 닿는 부위를 이렇게 오목하게. 그리고 관을 이어서 소리를 더더욱 증폭시키면 좋겠죠.”
“그렇지. 이대로 라면 확실히 증폭이 될 거야. 근데 소리는 그럼 이렇게 듣나?”
리스턴이 귀를 관 끝에 대는 시늉을 했다.
말이 관이지 그림이어서 뭔가 좀 이상한 꼴이 되긴 했는데, 하여간 뭔 말인지 알아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 그래야지.”
“그렇네요.”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하하.”
그렇다고 저 꼴이 이상하게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거참…….
기껏 설명을 뒤지게 했는데 또 한쪽 귀만 대고 있네.
그럴 거면 다른 쪽 귀를 차폐해야 할 거 아냐…….
근데 그건 쉽겠어?
게다가…….
-요새는 한쪽 귀 난청만 있어도 학습 능력에 지장이 있다는 논문 나오더라.
내 절친.
학생 때부터 공부 엄청 잘해 가지고 모든 과 다 갈 수 있었는데, 본인이 한쪽 귀 난청이 있다는 이유로 이비인후과에 간…….
전설의 천재.
녀석이 해 준 말에 따르면 사람 귀가 괜히 두 쪽 있는 게 아니더라고.
하긴 그걸로 충분했으면 왜 굳이 청진기를 양쪽으로 듣게 만들었겠어.
“잠깐. 사람의 귀가 왜 두 개가 있을까요.”
해서 나는 또다시 주님이 괜히 달았을까 이론을 펼쳤다.
“주님이 이걸 왜 두 개 만들었을까요. 소리가 훨씬 잘 들려서이지 않을까요?”
부흥회 강사라도 된 것처럼, 또다시 두 팔을 붕붕 휘둘렀다.
그러자 리스턴과 블런델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였다.
“아, 그렇군.”
“하긴 주님이 괜히 그랬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여기를 이어 가지고, 양쪽 귀로 들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호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일세.”
호응은 좋았다.
당연한 말이었다.
이론적으로나 뭐로나 이건 너무 그럴싸하잖아.
“그럼 이대로 의뢰를 하지.”
“아는 야장이 있으세요?”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있지.”
“아…….”
내 말에 리스턴이 예의 그 리스턴 칼을 보여 주었다.
하긴…….
저 괴상한 칼을…….
그건 메스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거대했다…….
아니, 아무튼.
아무나 만들 수는 없었을 터였다.
일단 사람 팔다리를 저렇게 함부로 치는데 날이 안 상하고 남아 있는 거부터가 심상치 않은 실력이지 않나.
“아주 잘해. 매달 맞추고 있어.”
“매달이요?”
“요새 하도 자르니까. 거의 한…… 120개 자르면 날이 부러지거나 하더라고.”
“아…… 네…….”
한 달이 30일이니까 주일 쉰다고 쳐도 거의 매일 3, 4건은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몰아서 자르는 편이라 자르는 날에는 더 많은 팔다리를 자르긴 할 텐데…….
“가지. 아무래도 자네가 있어야 더 말이 잘 통할 거 같아.”
“나도, 나도 가겠네.”
“자네는 왜.”
“어허! 내가 이 런던에 관 종 다는 거 유행시킨 사람인데. 죽음 판정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내가 런던 제일이라고.”
“뭐……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됐나 싶긴 한데…….”
그거 때문에 기절한 무덤지기가 한둘이 아니지 않나?
리스턴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블런델을 내치진 않았다.
뭐가 되었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랬다.
더군다나, 블런델도 실습에 올 의사다 보니 남 일도 아주 아닌 거 같고…….
‘돈 같이 내겠구만…….’
내 눈에는 속내가 뻔히 보였지만, 블런델은 이상한 데서 순진한 면이 있어서 좋다고 따라왔다.
자연히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도 다 따라왔다.
“아, 맞다. 원장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자네, 곧 의사 자격에 대한 심의가 있을 거야. 형식적일 거 같으니 걱정은 말고.”
마차에 타려는데, 리스턴이 말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아직 의사는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야 다 닥터 평이라고 해 주지만 공식적인 건 아니지 않나.
‘뭐…… 그렇게 따지면 런던 밖에서 활동하는 의사 80%는 무면허 돌팔이긴 하지.’
아니, 무면허 돌팔이라는 말도 좀 이상했다.
면허가 있다고 해서 돌팔이가 아닌 게 아니니까.
아무튼, 이 시기 의사 면허는 확실히 어설픈 면이 있어서 주먹구구식으로 딸 수가 있었다.
당장 나만 해도 정규 과정을 다 거친 것도 아닌데 추천받으니까 바로 심의를 받을 수 있잖아.
“감사합니다.”
뭐가 되었건 잘된 일이었다.
면허가 있고 없고가 적어도 런던 안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꽤 영향을 끼치긴 할 테니.
“감사는 무슨. 자네가 의사가 안 되면 누가 의사가 되겠어.”
“그래도…… 아직 정식을 배운 지 1년도 안 되었는걸요.”
“하하! 얘들도 불만 전혀 없을걸. 그렇지?”
“네? 네넵!”
리스턴의 말에 학생들…… 그러니까 내 친구와 선배들이 군기 잡힌 얼굴로 답했다.
진짜 이상한 걸 물어봤어도 저럴 거 같긴 했지만…….
반대로 블런델이 물었어도 같은 답이 나오긴 했을 터였다.
이쯤 되면 내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테니까.
끼이익.
잡소리 섞어서 떠들다 보니 어느새 대장간이었다.
리스턴이 신임하는 사람답게, 대장장이는 눈부터가 매서웠다.
웃통 까고 쇠 두드리고 있는 폼이…… 뭐랄까.
마지막 장인이라는 느낌마저 주었다.
아니, 아직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기엔 무리가 좀 있었다.
증기 기관선이 뜨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까.
“오, 이번 달은 벌써 해 먹은 건가?”
“아, 아닙니다. 하하. 오늘은 좀 다른 걸 의뢰하려고 왔습니다.”
“다른 거……? 또 무슨 골치 아픈 걸 시켜 먹으려고. 일단 들어오게. 좀 덥긴 할 텐데, 앉을 데가 마땅치가 않아서.”
중년의 사내는 무서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호탕한 미소를 지을 줄 알았다.
리스턴 앞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다소 편안해진 얼굴로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딱 들어서자마자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와…….’
이런 건 21세기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신기한 마음에 구경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날 잡아끌었다.
“뭐 하나?”
“아, 처음이라서요.”
“구경은 이따 하도록 하고. 일로 오게.”
“아, 네.”
그만한 덩치가 끌면 끌려야지, 뭐.
별수 있겠나.
하여간 그렇게 끌려가고 보니, 대장장이 아저씨가 날 노려보았다.
뭐지 이 노란 애송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괜찮았다.
진짜 장인이라면 내 말을 알아먹을 테니.
“흐음…… 확실히. 그럴싸한데. 닥터 평, 닥터 평…… 자네가 하도 떠들길래 어떤 놈인가 했더니 어린놈이 대단하구만.”
“네. 요새는 제가 많이 배웁니다.”
“겸양이 지나치구만그래. 런던 최고의 외과 의사가 말이야. 하여간, 이건 만드는 재미가 있겠어. 이만한 두께로 관을 뚫으려면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겠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지, 그럼. 근데 당장 다음 주에 써야 된다고?”
“네.”
“망할.”
대장장이는 목을 이리저리 젖히다가, 이내 어깨를 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이거부터 만들어야겠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목숨 살려 준 값이라고 치게나.”
이제 보니 다리가 하나 무릎 아래로 없었다.
리스턴이 자른 모양이었다.
진짜 천지사방 다 돌아다니면서 자르고 있구나 싶었다.
“잘됐군.”
“덕분이네요.”
“근데 내 돈은 왜…….”
그렇게 의뢰를 맡기며 나오려는데, 주변이 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뭐야?”
“경찰……?”
런던 골목에 경찰이 뜨는 건 딱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사건 사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곳이지 않나?
“닥터 리스턴. 닥터 평.”
하지만 우리를 딱 노리고 오는 건 놀라 마땅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일이 좀 터져서…… 참고인으로 출석을 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참고인……?”
“네. 자세한 건 가면서. 골치 아픈 일이 터졌어요. 뭐,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건 없겠죠?”
“나쁜 놈 팬 거 말고는.”
“그럼…… 그럼 별문제 없긴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