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4)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4화(114/505)
114화 이대론…… 안 되겠는데 [1]
경찰이라니…….
21세기에도 한 번도 경찰이랑 뭐가 엮인 적은…….
아, 아니다.
아동 학대 신고했다가 엮인 적이 있기는 한데, 그건 내가 신고자잖아.
“교수님……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응? 내가 뭘?”
“아니…….”
하지만 이번엔 뭔가 느낌이 달랐다.
그래도 경찰서장 어머니 다리 자른 것에 대한 예우인지 나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차는 태워 주었는데…….
주변을 기마경찰이 에워싸고 있다 보니 뭔가 대단한 범죄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나머지는 다 병원으로 돌아가고 나랑 리스턴 박사님만 끌려가는 중이었다.
앞에…….
정면엔 경찰이 앉아 있었다.
“뭐라도 했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끌려가는 거 아닐까요?”
“아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너무 강하게 부정하시니까…… 아까 뭐 사람 팼다면서요.”
“혼자 팼지. 자네까지 끌려갈 이유는 없지 않겠나?”
“아.”
“내 생각에는…… 흐으음…….”
리스턴이 눈알을 데구루루 굴렸다.
인상이 나쁜 것과는 별개로 음흉한 인간은 아닌데 이런 표정을 짓다니.
너무 불안하다…….
진짜 개불안해…….
“모르겠네.”
전혀 모를 거 같지 않은 얼굴로 있는 인간이 모른다고 하는데 뭘 더 물어볼까.
해서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자 앞에 있던 경찰이 입을 열었다.
마침 아까 내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일단, 닥터 피영. 감사합니다. 덕분에 범인 잡았습니다. 남편이더군.”
“아, 네. 다행입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참고인이에요.”
“어떤……?”
“으음.”
경찰은 조금 조심스럽다는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래 봐야 마차 안에 있는 데다가 주변도 소란스럽기 그지없어서 보이는 게 딱히 많지는 않았다.
딱히 저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얘긴데 경찰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큼큼 하고는 입을 열었다.
“갱단을 잡았어요.”
“네에.”
갱단?
갱단이랑 엮일 일이…….
의사가 그럴 일이 있나?
하면서 옆을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뭐. 왜 봐.”
“아뇨.”
나만 본 게 아니라, 경찰도 바라보았는데 나한테만 뭐라 그랬다.
역시 켕기는 게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경찰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한 갱단이 아니라 7개의 갱단을 일망타진했습니다. 우리 런던 경찰의 위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에.”
하여간, 경찰은 말을 이어 나갔다.
대체 이런 말을 왜 하는 건가 싶었다.
옆에 있는 이 인간은 몰라도 나는 정말이지 갱단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갱단 그거 우리말로 하면 조폭 아냐?
그게 왜…….
“이놈들의 죄명이 뭔지 아십니까?”
“모르죠.”
“도굴입니다.”
“도굴……?”
도굴……?
런던에 뭐 도굴할 만한 귀족이나 왕족들의 무덤이 있나?
있기는 있을 거 같긴 했다.
하여간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지 않나.
게다가 역사상 지금처럼 잘 살던 시기도 없었을 테니, 비교적 최근에 묻히는 무덤에는 어마어마한 부장품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대영제국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그걸 일개 갱단이 털 수가 있단 말인가?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닐 겁니다.”
내 얼굴이 알쏭달쏭해져만 가고 있으려니, 경찰이 이런 말을 하다가 이내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곤 따라오라고 손짓을 해서 나도 내렸다.
원래 말 잘 듣는 사람이거든.
어느 정도냐면 군의관 가서 표창장도 받고 내가 다 했어.
19세기 영국 경찰 말이라면 진짜 죽으라는 말만 아니면 다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이놈들이 도굴한 건 시신이에요.”
“시신……? 귀족의?”
“아뇨. 일반인들의 시신이죠?”
“그걸 왜……?”
내 말에 경찰은 그걸 네가 왜 모르냐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진짜 몰라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리스턴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야 알겠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너무 속 시원해 보여서 열받을 지경이었다.
“그놈들이 도굴해 온 시신을…… 우리도 샀을 가능성이…… 있겠군.”
“네?”
“네, 그렇습니다.”
아니, 아니.
나 빼고 대화 나누지 말라고!
내가 시신을 어디선가 사 오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았던 건 아냐.
하지만…….
업자랑 가족이랑 협의가 되어 있는 줄 알았지…….
도굴해 온 시신을 샀다고?
“교수님은 몰랐죠?”
“몰랐지.”
“네, 뭐.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그것도 충격인데 안으로 들어가서 이어지던 대화는 더 충격이었다.
이건 뭐…… 잘하자도 아니고.
경찰이 알아서 사건을 축소 시키고 있었다.
“문제는…… 이놈들뿐만이 아니라는 거죠. 갱단이 7개나 됩니다. 대장 격이나 주요 범죄자들은 다 교수형에 처하긴 할 텐데, 아마 더 있을 겁니다.”
경찰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시신 도굴이라니?
“저희가 혹시나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묻히는…… 별명이 불량배의 여드름이라는 공동묘지를 조사해 봤는데 묻힌 명단하고 실제 묻힌 시신하고 거의 2천 건가량이 차이가 납니다.”
“2천 건……?”
“네, 2천 구 이상의 시신이 사라졌어요. 그것도 작년에 한정된 일일 뿐입니다. 더 조사하면 더 나올 게 뻔한데, 솔직히 겁나서 못 건드리고 있습니다.”
“아니…… 그 정도로……? 그 정도로 많은 시신이 사라진다고?”
이번엔 리스턴도 좀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2천 구.
2천 구는 좀 너무하지 않나.
그것도 일 년에…….
“네. 근데 이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딱 하나의 공동묘지에 국한된 얘기죠. 런던 주변에서만 대체 몇 구의 시신이 거래되고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런던 소재의 의과 대학뿐만 아니라 작은 진료소 등지에서도 여기서 도굴한 시신을 쓰지 않은 곳은 없을 것 같은데…….”
“뭐…… 생각해 보면 모든 시신이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오진 않았을 거 같긴 한데.”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게 말입니다. 정말로 이렇게까지 많이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사람 몸이라는 게 이게…….”
경찰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도 처음엔 그랬거든.
특히 난 아예 해부학이 거의 다 완성된 상황에서 해부를 배우기 시작했고, 시신 한 구로 1년 내내 배울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 와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여전히 인체 해부의 많은 부분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데다가, 한 구로 최대한 오래 해 봐야 며칠이 고작이었다.
죄 썩어 버리는데 어쩌겠나.
‘사실……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지.’
내가 실습했던 시신은 전부 포르말린으로 방부 처리를 한 시신들이었는데, 이게 아무래도 진짜 인체하고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색도 그렇고 무엇보다 질감이 너무 딱딱해지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럼에도 인체 내부가 어찌 생겼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지만…….
특히 외과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촉각이 엄청 중요한 감각이라는 걸 이미 교수까지 해 본 나는 알고 있거든.
이 무식한 19세기의 의사들에게는 무한정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기세로 시신이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해부 환경이 더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아냐. 이건 아니지…… 이건…….’
최소한의 동의도 없이 훔쳐다가 쓰이고 있었다니.
망자에 대한 예우는 둘째치고서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사람이 사람에게 이래선 안 되는 법이었다.
“필요하긴 하네. 절대적인 차이가 있어. 게다가 마취의 개발로 앞으로는 배나 다른 부위에 대한 수술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해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단 말일세. 시행착오를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겪는 거보다는 죽은 이에게 겪어 보는 것이 압도적으로 좋지 않겠나?”
“그거……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이건 저주받을 짓이지 않습니까?”
“뭐…… 그 말엔 동의하네.”
“게다가 저희가 이렇게 잡아들였으니, 한동안은 공급이 확 줄 겁니다. 이제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죠. 뭔가 개선이 필요할 겁니다.”
“흐으음…….”
리스턴은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턱 밑을 쓸었다.
이 일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일단 당장 시신이 줄어든다면 이것도 큰일이었다.
왜냐?
확실히 해부를 해 봤냐 안 해 봤냐에 따라 지식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물론 책이나 이런 것들이 나와 있기는 한데, 딱 정해진 구도에서 2D 기반의 지식을 쌓는 것과 3D 기반의 지식을 쌓는 건 임상 의사에게 완전히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었다.
“어쩐다…….”
“일단 다음 주는 걱정 마십쇼.”
경찰은 그런 리스턴을 보다가,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구치소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도 적은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진짜 많았다.
꽉 차서 앉을 자리도 없을 지경이었다.
“죽을 놈들 천지니까.”
하.
우리는 경찰의 살벌한 말을 마지막으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발.
눈 마주쳤어.
죽을 만한 놈들이란 건 알았다.
왜냐?
단순히 시신만 도굴한 건 아닐 게 뻔하거든.
생각보다 조기 매장되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은데…….
그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저놈들이 살려 뒀겠나?
괜히 죄목에 살인까지 더해 준 것이 아니란 얘기였다.
“어쩐다?”
내 옆엔 나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심란해하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하긴…….
나야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 모두 쌓여 있는 상태라지만, 리스턴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상하지(上下肢)를 제외한 해부 지식은 일천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상하지에 대한 지식도 절단 외에 다른 수술을 해야 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많이 부족했다.
그러니 지금 리스턴의 고민은 교육이 아니라, 자기 앞날과도 연관이 있을 터였다.
-앞으론 수술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지 않겠나? 나도 급하다네.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의학에 진심이야, 이 양반.
하여간…….
나도 이 양반 정도는 아니겠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음울하긴 했다.
단지 지금까지 해부해 온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만은 아니었다.
앞으로…….
아니, 아니지.
나는 미래에서 왔잖아.
시신 기증만으로도 해부 실습이 가능해진 시대…….
‘그게 어떻게 가능해졌지?’
단순히 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많이 쌓여서 더 대강 배워도 돼서인가?
그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지.
3D 기반의 교재는 적어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없었단 말이야.
해부는 실습에서만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고, 그 부분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지도 않았다.
‘한 구로…… 오래 볼 수 있어서 그래. 썩지 않는…… 포르말린. 포르말린이 필요한데…….’
포르말린.
이걸 어떻게 만들더라.
“이봐, 평. 어…… 자네 또 뭔…… 뭐가 보이는 건가, 진짜.”
포름알데하이드!
그래, 이 발암물질을 물에 녹이면 포르말린이 된다.
그렇다면 포름알데하이드는…… 어떻게 만들지?
“진짜 보고 있구만…… 주님의 은총이라고 믿고 기다리겠네.”
나는 옆에서 뭔가 종알거리는 리스턴을 두고, 화학식을 떠올렸다.
수능 볼 때 화2 하길 잘했다, 진짜.
유기 화학 때 안 존 나도 칭찬해.
‘CH2O…… 메탄올이 산화되면서 만들어지지!’
근데 메탄올은 어케 만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