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5)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5화(115/505)
115화 이대론…… 안 되겠는데 [2]
메탄올.
너무 무식한 말일 수도 있는데…….
메탄올이라고 하면 군인들이 술 못 먹게 하니까 그걸로 만들었다가 눈멀었다는 케이스만 떠올랐다.
망할.
“아, 메탄올?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닌데.”
“네? 정말요?”
해서 반쯤 포기하려고 했는데, 내 말을 들은…….
그러니까 메탄올로 뭘 어떻게 하면 될 거 같다는 말을 들은 리스턴 박사님이 날 이끌고 콘돔 공장으로 갔다.
그간 돈을 하도 많이 벌어서 그런가, 공장은 위치도 바뀌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무 만지던 화학자 아저씨의 차림새도 완전히 돌변한 지 오래였다.
휘황찬란한…… 양복에 멋들어진 모자까지 쓴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새끼…… 전에 비소 화합물 얘기했을 때도 저렇게 말했던 거 같은데……?’
하지만 나는 비소 때문에 한 방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눈빛을 읽어 낸 그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쏟아 냈다.
“아니, 진짜야! 메탄올 그거 백 년도 더 된 물질인데 뭘.”
“정말요?”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비소.”
비소로 매독 치료 좀 해 볼라고 했더니만 이 양반이 만들어 온 건 무색, 무향, 무취의 독뿐이었다.
미친놈이…….
약을 만들랬더니 비소의 독성을 거기서 더 끌어올려?
양심은 있는 사람이다 보니 내 말에 얼굴을 붉혔다.
“흠흠. 그건…… 하하! 그게 근데 말이 되나. 비소로 매독을 고친다니!”
아니, 이 양반아 실제로 그걸 썼었다니까?
물론 시대가 좀 다르긴 한데…….
그래 봐야 아주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라고.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고…….
“근데 메탄올은 얘기가 달라. 그거야 뭐…… 그냥 사면 되네.”
“아하. 그렇군요. 그럼 그걸 산화 시키는 건 가능합니까?”
“산화? 흐음. 산소에 노출시키면 되는 것이니 어려울 것도 없네. 근데…… 그거 독인데?”
“독이긴 하죠.”
“그래. 달리 쓸 일이 없어. 말은 내가 쉽게 하긴 했지만…… 그래서 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걸세. 이걸 근데 대체 왜 쓰려고 하는 건가?”
메탄올 하면 독성만 떠오르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화학자 아저씨도 어휴 하면서 내게 의문을 표했다.
사실 나라도 해서 그딴 물건 만지고 싶겠나?
당연히 아니지.
지금도 가끔 해부학 실습실에서 나던 그 포르말린 냄새가 떠오를 때가 있을 정도로……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이라구.
하지만…….
‘아니…… 시신을 훔치는 것도 모자라서 사람들을 죽인다잖아.’
내가 좀 불편한 거랑 저런 어마어마한 범죄를 치환할 수 있다면 응당 해야만 하지 않겠나?
물론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명확히 알려 줄 수 있다면 더 좋긴 할 텐데…….
그런 걸 말로 한다고 알아먹을 인간들이 아닌 게 문제였다.
“전에 누가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아서요. 아저씨랑 아는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메탄올 태운 물에 짐승을 박제하면 아예 안 썩는다고…….”
“흐음. 그래? 아저씨라면 우리 사장님 말하는 건가?”
“네.”
“하긴 인도에서 호랑이 사냥도 했다고 들었는데…… 박제하는 게 골치긴 하지?”
말도 안 되는 말일 터였다.
포르말린이라는 게 얼마나 독한데 호랑이 가죽이 버틸 리가 있나?
하지만 화학자는 콘돔 이후로 내 말이라면, 아니, 콘돔으로 큰돈을 벌고 난 후에는 내 말이라면 일단 믿고 보는 사람이 된 터라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래, 그럼. 내 구해 보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쓰레기를 돈 주고 산다는데…… 누구라도 들고 오겠지.”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진짜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메탄올을 구해 왔다.
아니, 심지어 산화까지 시켜서 들고 왔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고 했다.
구리를 가열한 다음에 메탄올하고 섞으니까 기체가 나왔고, 그걸 모으니까 이게 이 괴상한 냄새가 나는 액체…… 즉 포르말린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꽤 실력 있는 인간이지 싶었다.
“으윽.”
냄새…….
정말이지 코를 찌르는 냄새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거 발암물질인데…… 농도가 아무래도 더 진한 느낌인데?’
뭐랄까.
해부 실습실에서 나던 냄새가 그냥 아메리카노라면 이건 TOP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화학자 아저씨한테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양반이 적정한 농도를 알겠나?
그냥 만들라니까 만든 거겠지.
다행인 건 세상엔 물이라는 기특한 물질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걸 섞으면 농도가 희석된다구?
“이…… 괴상한 건 왜 들고 왔어?”
“아…… 미친. 밖에서도 미칠 거 같아.”
“내가 너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긴 한데…… 하. 이건.”
섞기 전에 일단 병원으로 들고 왔다.
그랬더니 사방에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일단 나랑 가까운 조지프와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 등이 그랬다.
“아무리 자네라도…… 이걸로 손 씻으라고 하면 죽일걸세.”
블런델도 마찬가지였고.
“가까이 오지 말게.”
리스턴이 제일 심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친놈들 같았다.
이거나 시신 썩는 냄새나…….
아니, 시신 썩는 냄새가 더 역하지 않나?
게다가 해부 실습실에는 쥐랑 파리랑 하여간 상상 가능한 온갖 해충들이 다 출몰하잖아.
이거 한 방이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아뇨, 이건 방부제입니다. 이걸로 손을 씻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방부제……?”
내 말에 제일 멀리 떨어져 있던 리스턴이 물었다.
해부 실습실에서는 마스크도 안 하는 양반이 지금은 코를 쥐어 싸고 있는 꼴이 우습지도 않았다.
“네, 시신을 방부 처리할 겁니다.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시신이 많이 필요한 이유가 뭡니까? 뭐만 하려고 하면 썩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걸로 된다고……?”
“뭐라도 해 봐야죠. 묘지 하나에서 2천 구가 사라진다는데…… 그런 끔찍한 범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이 시신 2천 구지…….
대략 5% 이상은 살아 있던 사람일 텐데, 그 말은 곧 100명 정도는 살해당했을 거란 얘기였다.
미친…….
진짜 끔찍한 일이지 않나?
그에 비하면 이 냄새는 차라리 향기롭단 표현마저 가능할 지경이었다.
“으음. 그거야 그런데…… 그렇긴 하지.”
“그래, 그건 옳은 말일세.”
리스턴과 블런델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공범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 아닌가.
아니, 이들 뿐만이 아니라 런던에 소재한 모든 의과 대학 교수가 그렇다고 봐도 좋았다.
다시 말해 이 시기 의과 대학은 전원 공범이라는 얘긴데…….
이게 그냥 넘어갈 만한 일인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넘어가도 좋은가?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개선을 해야 할 터였다.
차르륵.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적정한 농도, 즉 내 기억 속 냄새와 비슷한 수준의 냄새가 나는 농도를 찾기 위해 얻어 온 메탄올 산화물, 즉 포르말린을 물이 담긴 각각의 용기에 따로따로 부었다.
“으으.”
그때마다 역한 냄새가 아니, 코를 찌르는 날카로운 냄새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발암물질이라는 걸 몰라도, 이건 유해한 물질이라는 걸 모를 수 없을 만큼이나 나쁜 냄새였다.
사실 후각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위험한 신호를 발견하기 위함이니 뭐…….
‘시발…… 나는 사실 해부 공부할 필요도 없는데…….’
수술 연습을 위해서도 시신을 만지작거릴 이유가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왜냐?
나는 이제 해부도 수술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 새로운 수술이라고 해도, 어지간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그냥 해도 되거든.
게다가 이 시대에 나한테 수술 알려 줄 사람이 있겠나?
그저 내가 알고 있는 수술이나 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일 터였다.
“후우…….”
하여간, 나는 포르말린에서 포름알데하이드로 기화한 기체의 냄새, 즉 1급 발암물질의 냄새를 고작해야 천 마스크 하나만 달랑 걸친 채로 견디며 마침내 분류를 끝냈다.
바로 냄새를 맡는 건 의미가 없었다.
후각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 버려서 그랬다.
“휴…….”
좀 쉬어야 할 거 같아서 나와 있으려니, 블런델이 다가왔다.
역시나 나처럼 코를 싸쥐고서였는데 손에 이상한 걸 들고 있었다.
뭘까…… 저건.
무기인가?
냄새나게 해서 날 응징하려고……?
“청진기일세.”
“아.”
아니, 청진기였다.
플라스틱은커녕 제대로 된 고무 조형도 불가능한 시대에 컨셉만 미래의 컨셉을 따다 만들어서 그런가, 상당히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걸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환자도 의사도 상당히 자세에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았다.
“으음…….”
“어떤가?”
“좀 아프겠는데요?”
“아파? 아…… 여기? 그렇긴 하지. 귓구멍이 좀 아프긴 할 거 같네.”
오목한 철 덩어리에서 이어진, 얇다고 하기 어려운 관은 대략 20cm가량 이어지다가 둘로 갈라져 귀에 꽂기 좋게 한 번 더 꺾여 있었다.
다시 말해 귀에 철을 꽂아야 한다 이건데…….
저건 고무 뭉치라도 갖다 대면 해결될 거 같았다.
문제는 이게 이제 정말 제대로 들리는가 하는 건데…….
“내 소리를 들어 보게.”
“아니, 나부터!”
“학생들부터 나서겠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9세기는…….
그야말로 실험 정신이 미쳐 날뛰는 시기라는 점이었다.
생각해 보면 마취제 만들었다고 할 때 이 뽑는 것도 순순히 나서지 않았나.
기껏해야 웃통 까고 나서는 것 정도는 의과 대학 학생 아니라 그냥 길 가는 누구라도 자원할 수 있는, 실로 낭만 넘치는 시대였다.
나는 순식간에 내 계열로 분류되는 이들뿐만 아니라, 딱히 내 편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 이들에게까지 둘러싸일 수 있었다.
‘뭐…… 좋지.’
사람마다 다들 생긴 게 다르지 않던가?
가슴도 그렇지만 심장도 그렇거니와 폐조차 그랬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은 되게 잘 들리는데 어떤 사람은 잘 안 들릴 수 있다 이 말이었다.
물론 제일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건 아무래도 체형이겠지만…….
하여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확실히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살에 귀를 직접 대고 듣기도 했다.
“으음.”
청진기로 듣는 거에 비하면 좀 남사스러운 일이었지만, 역시나 낭만의 시대라서 그럴까.
다들 한번 인상 쓰고 말 뿐, 더 말을 붙이는 인간은 없었다.
‘확실히…… 훨씬 잘 들려. 물론 이것만으로는 완벽하다고 하긴 어렵긴 할 거야. 그래도…….’
결론적으로 소리는 훨씬 잘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뿐만 아니라, 호흡음도 그러했다.
그렇다고 심전도만큼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고무 패킹까지 달면 새어 나가는 소리를 더더욱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 개선의 여지도 있었다.
“좋군요. 좋아요.”
“다행이로구만. 마침 연락이 왔거든?”
“네?”
“경찰이네. 오늘 집행한다더군.”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