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7)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7화(117/505)
117화 죽음의 확인 [2]
“아…… 바로 해부를 한다고?”
“그럼…….”
“뭐…….”
“근데 그건 구경을 못 하잖아!”
“이건 무효다!”
“극장에서 해라!”
리스턴의 말에 군중들은 일견 수긍하는 듯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조용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정신이 혼미해지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극장……? 극장이라고 했냐?’
해부를 무슨 극장에서 하나 싶었지만…….
놀랍게도 이 시기 해부는 일종의…… 뭐라고 해야 하나?
쇼?
쇼라고 하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긴 할 텐데, 진짜로 그랬다.
작년에 교수형에 처해진 윌리엄 버크.
그 인간이 어떻게 됐나?
‘판결문이 워낙 충격적이라 잊히지가 않네.’
내 머리가 좋은 편이지만 포토 메모리 수준은 아니다 보니 전문을 기억하는 건 아니고, 마지막 문장만 떠올랐다.
-네 몸은 공개적으로 해부하여 해부 실습에 이용하고, 후대가 너의 악행을 기억하도록 너의 뼈대를 보존할 것이다.
이게 진짜 말로만 한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해부를 했더랬다.
이 시기 공개적이라는 건 언론에 공개한다는 게 아니라 광장이나 극장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럼 이게 엄청 드문 경우냐?
그것도 아니었다.
아예 해부학 극장이 있을 정도라니까?
이름이…… 뭐더라?
아, 그래, 파도바?
“극장이라니…….”
“이보게, 평. 좋은 기회야.”
“네?”
“아까 봐서 알겠지만…… 아직도 자네 이름을 보통 사람들은 모른다네. 이래서야 되겠나? 자네야말로 내가 아는 누구보다 위대한 의사인데.”
“그렇지만…… 극장…….”
“평. 자네 해부 자신 있지 않나?”
자신이라…….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그렇지 않겠나?
난 21세기에서도 해부학을 통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미 실제 사람에게 수술을 숱하게 하던 외과 전문의라고.
21세기에 의사들 다 앉혀 놓고 해도 잘할 자신이 있다 이 말이었다.
근데 19세기?
“자신 있죠.”
“그래. 자네가 이상한 데서 죄의식을 느낀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음.”
이상한 데서가 아니라 당연한 거긴 한데…….
여기서 뭐 설득될 만한 위인은 아니지 않나?
해서 잠자코 있었다.
일단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리스턴의 말빨이 이들에게는 아주 잘 먹히지 않던가.
뭐가 되었건 간에 나는 딴 데서 온 이방인이니 현지인 말을 듣는 게 옳을 터였다.
“하지만 실력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겠나?”
“으음. 없겠죠? 아무래도?”
“그래. 안타깝지만 자네 피부색 때문에라도 색안경을 끼고 볼 놈들이 많아. 당장 우리 병원만 해도…… 돈에 미친 원장이나 블런델 정도 말고는 자네를 탐탁지 않게 보는 이들이 훨씬 많다네. 자네가 잘한다는 걸 알아도 이상하게 소문낼 놈들이 많을 거라는 얘기야. 하지만 군중들이 알고 있다면, 어쩌겠나.”
이 양반 혀가 이렇게까지 매끄러웠나 싶을 정도로 청산유수였다.
게다가 진심이 느껴졌다.
하긴.
이 양반이 진짜로 나를 아끼긴 하지 않나.
비록 가끔 우악스러운 행동을 보여서 그렇긴 한데…….
블런델은 때리는 데 반해 나는 때리진 않으니 그것만 봐도 이 인간이 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자네가 나서서 말하게.”
“제가요?”
“자네가 해야지?”
“음.”
“자네 입 잘 털잖아. 해 보게.”
“으으음.”
얼떨결에 군중 앞에 서게 됐다.
한숨이 절로 나오긴 하지만…….
그래, 내가 또 막상 털려고 하면 잘하지.
백날천날 학회에서 발표한 게 바로 이 몸이란 말씀.
“안녕하십니까, 닥터 평입니다. 원래는…… 의사들만 모시고 진행을 하려 했습니다만…… 어차피, 제가 어떤 수술을 가르치기 위한 해부 실습이었던 만큼 극장에서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와아아아아!”
“정의를!”
“해부!”
내 말에 일단 와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나 좋아하네.
하하.
이 새끼들.
극장에서 해부한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이란 말인가.
아무튼, 해야 할 말이 있기는 했으니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해부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던 만큼…… 단상 위에 다른 의사분들도 올라올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꽤 커다란 극장이 필요할 텐데…… 이게 가능할는지……?”
내가 스타가 된다?
좋다 이거다.
근데 그건 사실…….
나한테는 그게 그렇게 급한 건 아니란 말이지?
언젠가는 될 거란 말이야.
그렇다면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바로 수술을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거다.
‘지금 분위기상 이거 안 해 주면 뒤질 거 같은데…… 서장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
해서 말을 하다 말고 서장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장은 마음이 진짜 편해 보였다.
우리한테 공을 던졌으니까?
그런데 어쩌나?
극장 섭외는 좀 해 주셔야겠는데?
“어…….”
그렇게 갑자기 공을 받게 된 서장은 당혹스러워 보였다.
“극장 잡아라!”
“잡아!”
“어떻게든 잡아라!”
방금 속으로 욕한 거 같은데?
근데 뭐 어쩌겠어?
욕해 봐야 뭐…….
“그…….”
“경찰서장은 극장을 잡아라!”
“이 새끼들아! 잡아라!”
“잡아!”
어?
너 안 받으면 죽게 생겼어.
알지?
여기 진짜…….
치안 안 좋은 거?
설마하니 경찰서장쯤 되는 사람이 혼자 런던 뒷골목 걸어갈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머지않은 미래 안에 해부 실습실에서 보게 될 거 같은데.
“제, 제가 책임지고 잡겠습니다. 극장…… 가장 큰 곳으로…….”
“와아아아아아!”
“경찰서장 만세에에에에!”
“와아아아아아!”
“정의를!”
그걸 모를 리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일단 받았다.
경찰서장쯤 되는 사람이니까 괜찮은 데를 잡아 주겠지?
“자…… 그럼…… 형을 집행하겠습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럼…… 가져와.”
“네!”
하여간 경찰서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독을 요청하자 경관들이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고, 군중들은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사람이 죽어 나갈 판이지 않나?
제아무리 야만스러운 19세기라 해도 잠시 숙연해지는 것이 당연…….
“죽여라!”
“죽여!”
아, 아니구나.
그냥 더 크게 소리 지르려고 숨을 골랐네, 이 사람들.
진짜로 사형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인 모양인데…….
‘마인드 컨트롤…… 심기일전하자…….’
저 사람들이 저런다고 나도 덩달아 흔들릴 필요는 없지 않겠나.
게다가 지금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
‘이 사람들은…… 어차피 해부하게 되면 100% 확인 사살이 될 거라 여기고 있을 거야.’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해부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한데, 놀랍게도 사례가 없는 건 또 아니었다.
그걸 뭐라고 하더라…….
그래, 생체해부.
현대 해부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필로스.
고대 시대 사형 방법의 하나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해부를 시행했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당시로서는 절대로 알 방법이 없을 신경의 존재, 심지어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구분마저 가능했다고 들었다.
악마의 지식이라는 미명하에 사장되긴 했지만 현대 의학이 자리 잡으면서 재조명되었던 인물인데…….
‘그런 걸 내가 할 수는 없잖아?’
어?
아니,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고…….
‘반드시 확인을 제대로 한다…….’
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려니, 수상한 약물들이 단상 위에 사지가 의자에 결박된 채로 앉아 있던 시신 도굴꾼들 중에서도 수괴로 꼽힌 이들에게로 배달이 되었다.
“입 벌려!”
“으읍.”
“누가 좀! 이 새끼 왜 이렇게 힘이…… 어, 교수님.”
“으아아악!”
마시면 어찌 되는지 뻔한 상황에서 순순히 입을 열 놈이 몇이나 되겠나.
다 포기하고 있던 놈하고 아까 리스턴 박사에게 머리채 잡혔던 놈 말고는 죄다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는 놈은 없었다.
특히 리스턴 박사님이 직접 나선 애들은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의사가 독을 저렇게 강제로 처넣어도 되나 싶긴 했지만…….
-난 정말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해부를 하는 거야. 근데 범죄와 엮였다니 참을 수 없군.
아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 또 이해는 갔다.
우악스러워서 그렇지 찐 의사긴 하지 않나.
모욕당했다는 생각이 클 터였다.
나야 아무리 누가 모욕을 한다고 해도 직접 독을 먹일 생각은 못 하겠지만…….
“으, 으으윽.”
하여간, 마신 놈들이 하나하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곤 토악질을 해 대거나 설사를 해 댔다.
왜 그러냐면 비소를 먹어서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화학자한테 매독 치료제 의뢰했다가 나온 실패작 중 그 사람 피셜 제일 독한 놈을 먹였다.
그러니까…… 안 그래도 과량 복용하면 죽게 되는 무색무취의 독 비소를 더 강하게 개량한 독을 먹였다, 이 말이었다.
“가까이 가지 마십쇼. 독이 섞여 있을 겁니다.”
“아, 네.”
그중 하나가 벌써 눈을 까뒤집길래 죽었나 싶어서 걸음을 옮길락 말락 했더니 경관 하나가 나서서 말렸다.
생각해 보니까 그렇긴 했다.
인턴 때 음독으로 응급실 실려 온 환자한테 맨몸으로 다가가려고 했다가 뒤지게 혼난 기억도 있었다.
“일단 닦아 내고…… 보시죠. 어차피 저희가 닦다가 깨어나면 또 먹일 겁니다.”
“아…… 네.”
경관의 말에 나는 일단 잠자코 있기로 했다.
너무 무섭잖아.
반드시 죽일 거라는 의지가 느껴져.
명색이 의사고 전생과 현생 모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살아온 내게는 그야말로 끔찍한 순간이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바로 토하거나 기절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나도 많이 적응이 되기는 한 모양이었다.
“자, 이놈부터.”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말이니까 이렇게 조용한 것이지 사실 군중들은 아까부터 지금까지 내내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놈들 하나하나에 주어진 혐의가 최소 100구 이상의 시신 도굴 및 밀거래이니…….
진짜로 죽어 마땅한 중범죄자들이긴 했다.
“음.”
나는 그렇게 숨을 거둔 것처럼 보이는 한 명에게 다가갔다.
암만 봐도 그냥 간 거 같긴 했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해서 근긴장도부터 살폈다.
억지로 숨을 참고 있다면 숨소리를 숨길 수 있겠지만 이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법이었다.
뭔가 참는 데에도 힘이 들어가는 법이거든.
‘저절로 숨이 약해진 상황이라면야 얘기가 다르겠지만…….’
만져 보니 그런 거 같진 않았다.
이런저런 자극을 줘도 미동조차 없었다.
신기하게 딱 시신 앞에 서니까 예전에 배웠던 것들이 절로 떠오르면서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동공을 확인하고, 근긴장도를 보고, 호흡을 살피고…….
마지막엔 청진기도 가져다 댔다.
‘흠…….’
아무래도 원래 쓰던 것보다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직접 귀 대고 듣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귀를 흉내 내 만든 물건이니만큼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증폭이 되어서 그랬다.
“죽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이대로 두고 이름을 옆에서 불러 보세요.”
“이름을……?”
“사람이 죽을 때 제일 마지막으로 남는 게 청각인데…… 이를 통한 자극에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아, 네!”
난 그저 자연스레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스턴이나 경관들 그리고 군중들이 보기엔 달랐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점차 소란이 잦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