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8화(118/505)
118화 죽음의 확인 [3]
“저 사람…… 움직이는 게 장난이 아닌데?”
“그니까 뭔가…… 좀…… 되게 전문적인데.”
“리스턴 박사님이 더 유명하지 않으신가?”
“지금 뭐 하셔.”
“독약 먹이고 있어.”
“아.”
웅성대는 소리가 바람결 따라 들려오고 있었다.
나에 관한 얘기인 거 같기는 한데, 정작 나는 하도 바쁘게 움직이느라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
“아, 네.”
한둘도 아니고…….
런던 바닥에 이렇게 죽어 마땅한 놈들이 많다니.
맞기는 한데…….
어?
한 번에 열을 보내?
주님…….
오늘은 길이 좀 막힐 거 같은데…….
‘아, 어차피 다들 지옥으로 갈 거라 신경 안 쓰시려나.’
이런 생각도 뒤로 치워 버린 채, 나는 다음 타자를 눈앞에 두었다.
확실히…….
험한 일로 벌어먹고 살던 분이라 그런가 인상부터가 남달랐다.
리스턴 박사가 무서운 느낌이라면 이 사람은 진짜 위험하다고 해야 할까?
리스턴 박사는 화가 나면 때릴 거라는 게 예상이 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그냥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단 인상이었다.
아마 실제로도 그랬을 터였다.
‘동공 반사…… 없…… 응? 있잖아. 이런 미친.’
인상에 홀려서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봤는데, 그래도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눈을 꽉 감겼다가 다시 뜨게 했거든?
그랬더니 동공이 딱 수축하는 게 보여.
아니…….
비소를 먹었는데 살아?
그것도 원래 비소보다도 더 독성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여기 잠시.”
“네. 왜 그러시죠?”
“아직 살아 있어요.”
하여간…….
나는 경관을 불러다 놓고 말했다.
경관이야 못 봤겠지만, 나는 계속 이 얼굴 무섭게 생긴 양반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단 말을 할 때 움찔하는 걸 보고야 말았다.
“네? 죽은 거 아닙니까?”
“아뇨. 아니에요.”
“차가운데…….”
그러니까…….
그런 불확실한 증거로 사람 함부로 죽었다고 판단하지 말라고…….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어? 갱단 두목 사형당하면 부하 놈들이 시체 안치실 가 가지고 들고 가는 거 아냐.
명목상은 지들끼리 예를 갖추네 어쩌네지만, 실제로는 되살아나길 기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근처 갱단 두목 별명이 예수님이더라니까?
잡혀 죽기 전보다 어째 명성이 더 올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쁜 짓을 하고 있다구.
“아뇨. 살았어요. 숨소리도 들리고. 자, 들어 보시죠.”
“제가 들어도 됩니까?”
“네. 이게 무슨 마법은 아니니까요.”
“어…… 오. 오…… 진짜…… 진짜 들립니다!”
경관은 호들갑을 떨면서 서장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알렸다.
사실 호들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확실히…… 동공 반사에 대한 개념을 모르고, 또 청진기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건 죽었다고 했을 거 같았다.
“어째요?”
“어쩌긴요. 또 먹여야죠. 이봐, 일어나!”
“아.”
사형 집행도 오늘 처음 보는데, 재집행까지 보게 될 줄이야.
휴우.
저것까지는 보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로 갔다.
들리는 소리만 봐도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지 뻔히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찰싹찰싹 뺨도 때리고, 입 강제로 벌려다가 쑤셔 넣고 있을 터였다.
의식을 차릴 수 있을까?
그렇진 않을 거 같았다.
하여간, 그렇게…….
다소 끔찍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마침내 열 명의 사형수가 다 죽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야…… 종종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 물론입죠.”
보람?
보람이야 차고 넘쳤다.
일단 산 사람에게 해부를 안 해도 되니까 좋고.
권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찰서장님한테 빚을 지웠으니 이것도 좋았다.
“그럼 극장으로 가시죠.”
물론 극장에서 해부를 시연하게 된 것은…….
상당히 별로긴 했는데, 리스턴의 말을 떠올려 보면 이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지 않겠나?
무엇보다 이 시대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자기 최면이라도 걸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포르말린에…… 음…… 그건 이따가 해야겠군.’
극장 아니라 우리들끼리만 할 거면 바로 절여 볼까 했는데,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무리 같았다.
긁어 부스럼이 될 거 같잖아?
해서 극장으로 갔다.
“아니…… 여기서요?”
대형 극장이라고 해 봐야 그냥 영화관만 한 곳을 생각했더니만…….
일단 간판에 로열이 붙어 있었다.
21세기야 대충 있어 보이기 위해 로열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었지만, 대영제국이 다스리는 19세기에 로열이란 말 그대로 ‘왕립’을 뜻했다.
그러니까 왕궁이 소유한 곳이라, 이 말이었다.
“그래,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마침 빅토리아 공주께서 해부에 관심이 많으시다더군. 하하 너무 긴장하지 말게. 말이 공주지, 소탈하신 분이야.”
“아…… 아?”
빅토리아?
빅토리아 공주요?
하필 이 시기에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공주라고 하면 딱 한 명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지 않나.
‘유럽의 할머니……?’
지금도 대영제국은 어마어마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빅토리아 시대 하면 또 이게 어마어마한 시대 아닌가.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지금 왕의 직통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뭐 영국 왕실 계보를 달달 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제 와 고민한다고 해서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머지않아 이 대영제국의 여왕이 되실 분이 내 해부를 구경하는 것도 모자라 친히 극장까지 내주셨다는 점이었다.
‘잘하자…… 태평아…… 존나 잘하자…….’
이렇게 되면…….
원래부터 잘할 생각이었지만, 더더욱 잘해야 하지 않겠나.
“너무 긴장하지 말고. 어차피 보이는 곳에 계시지도 않을 거야.”
“아, 네네.”
리스턴은 후우 하고 심호흡을 내쉬고 있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긴장이라……?’
빅토리아 여왕…….
무서운 사람이지.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 양반이 여왕에 오를 때조차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았거든?
그게 적어도 1830년대 중후반이었으니까 지금은 10대 초반일 거란 말이지?
해부를 재밌어 한다고 해도, 막상 해부 들어가면 아마 제대로 보기 어려울 터였다.
게다가 난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 실시간 수술 중계)도 여러 번 해 본 몸이라 이 말이야.
기라성 같은 교수들을 앞에 두고 수술을 했다구.
‘그런 거 하면 더 이상한 일이지.’
하여간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이름도 멋진데, 안도 멋졌다.
확실히 전 세계 부가 런던으로 다 몰리는 시대답다고 해야 할까?
착.
착.
거기에 더해 아무래도 공주님이 오신다고 해서 그런가, 시신 늘어놓는 작업조차 각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눈 깜짝할 새에 제일 높은 단상 위에 내가 해부할 시신이 놓이고, 나머지 시신들이 그 밑에 놓였다.
어지간한 극장이라면 이거 다 늘어놓기에 좁았을 텐데 오페라 하우스다 보니 공간이 널찍했다.
거기에 더해 관중석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는데 1층에서 뒤로 쭉 늘어선 자리는 벌써 꽉 찬 지 오래였다.
지금 보니 그냥 아까 거기 있던 사람들 다 따라온 거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높으신 분들도 왔구만.”
“높으신……?”
“왕족만 오겠나? 귀족들도 오지. 저기 찰스 그레이 백작께서도 오셨군그래.”
“총리요?”
와…….
총리까지?
이건 좀 그렇지.
나도 모르게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해부가 훌륭한 구경거리인 시대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이 지경일 줄은 몰라서 그랬다.
미친놈들 아냐?
“어, 그래. 긴장되나?”
“아, 아뇨.”
“혹시 그럼 말하게. 여기 술 있어.”
“아니, 아닙니다…….”
내 떨림을 오해한 리스턴이 냄새만 마셔도 취할 거 같은 술을 보여 주었다.
그냥 술도 아니고 독주인데 저걸 마실 수는 없었다.
차라리 좀 떨면서 하는 게 낫지…….
게다가…….
확실히 난 프로가 맞긴 한 모양이었다.
막상 시신을 앞에 두고 보니, 애초에 다른 이유긴 했어도 맹렬히 두근거리던 심장이 금세 가라앉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그와 동시에 성대도 안정화되어서, 수많은 군중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군중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귀족들과 왕족들이 뒤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평소와 정확히 같은 목소리로 입을 뗄 수 있었다.
“저는 리스턴 박사님 밑에서 의학을 배우고 있는 태평 김이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목의 해부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서두를 뗀 후,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언제나 그러하듯 내 충실한 조수이자 친우로 서 있던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다가왔다.
콜린은 메스를 건네주었다.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결과 이제는 진짜 제법 쓸 만한 메스가 되어 있었다.
“흠…… 장갑을 끼고 하는군그래.”
“맨손으로 하는 것보다 있어 보이는데?”
“태피영 킴? 어디서 온 거야? 인도는 아닌 거 같은데? 중국인가?”
“아니, 조선에서 왔다던데. 거기 원장이 꽤 훌륭한 인재라고 자랑했었네.”
“하. 동양 놈이 잘해 봤자지.”
“뭐…… 일부 재주 있는 이들도 있지 않나?”
1층은 조용했다.
이런 구경거리가 드물어서 그렇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2층에서 지금 떠들어 대고 있는 높으신 작자들 때문이기도 할 터였다.
중세처럼 마음에 안 든다고 매질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지만…….
밉보여서 좋을 게 없기는 21세기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자. 일단 절개는 우측 귓불에서 시작해 아래로 쭉 긋습니다.”
여하간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뒤에 있는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해부와 수술법을 가르쳐 줘야 하지 않겠나.
리스턴이야 내가 벌써 여러 번 알려 줘서 대충 할 줄 안다지만 나머지는 전혀, 정말 전혀 개념이 없었다.
목 안이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만 알 뿐…….
어떻게 박리를 해야 하는지도 몰라.
“깊이는 첫 번째로 갈리는 얇은 근육층만 자를 정도로 해 주세요. 사람마다 정확한 깊이는 다를 겁니다. 그러니 일단 한 번에 째지…… 아니, 거기. 거긴…… 의사 맞아요?”
해서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내 꺼 쭉 갈라놓고 사방 돌면서 알려 줘야 했다.
“의사 맞는데.”
“아, 케인이구나…… 하. 이렇게 호탕하게 하면 어쩝니까. 목인데.”
“배는 이래도 되던데.”
“아니, 아니라니까요? 수술을 이렇게 하면 안 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레이어 바이 레이어로 갈라 들어가야 한다는, 극히 기본적인 사안조차 아직 모르는 시대라 그랬다.
애초에 이렇게 세밀한 수술을 하기엔 의사들에게 특히 외과 의사들에게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서 그랬을 터였다.
마취가 본격적으로 가능해진 게 올해잖아.
그것도 일부 병원에서만 쓰고 있고…….
‘시발놈들…….’
그런 생각으로 참고 있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짜 개판이야, 이거.
“자, 잘 봐요. 모르겠으면 와서 보라고.”
“으음.”
“배우러 왔으면 봐요! 얼굴 노란 걸로 편견 갖지 말고! 리스턴 박사님하고 개인적으로 면담할 거야?”
“아, 아닐세.”
그나마 다행인 건 리스턴 박사가 여기 있단 점이었다.
거의 무슨 전가의 보도야.
협박이 안 통하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