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1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19화(119/505)
119화 해부학 강의 [1]
리스턴 박사를 무기로 휘두르고 나서야 뚱한 얼굴로, 더 나아가서는 지멋대로 칼을 휘두르려고 했던 놈들이 통제하에 들어왔다.
사실 블런델 교수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이 양반이…….
치명률이 50%에 가까운, 돌팔이라는 말도 아까운 산부인과의 악마 블런델이 나름 런던에서 알아주는 산부인과 의사이지 않나.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진짜로 이상한 일인데…….
하여간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닥터 평이 머리가 진짜 좋다네.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환자 숨 못 쉬는 경우가 좀 많은가? 실제로 우리 병원에서 이 수술을 이용해서 환자를 살린 케이스가 꽤 있다고.”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내가 허튼소리 하는 거 본 적 있나?”
“아, 아닙니다. 교수님.”
저런 말이 막 통할 정도의 명성이 있다, 이 말이었다.
솔직히 21세기 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블런델이 하는 소리 중에 허튼소리가 아닌 게 거의 없을 지경이긴 한데…….
뭐가 되었건 지금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디…… 옳지. 그래요. 그래. 다들 U자 모양이 되게 절개를 넣었군요. 일부 너무 깊이 들어가신 분이 있는데, 그분들은 제가 별도의 지시를 하기 전에는 일단 계셔 봐요.”
“알겠네.”
어떻게든 U자 형태의 절개선을 넣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우측 귀에서 쭉 내려오다가 쇄골 가운데 위에서 돌아 반대편 귓불까지 그어 주는 절개였다.
말로만 들으면 이게 큰가 싶겠지만 한번 그어 보면 느낌이 올 터였다.
일반적인 수술을 할 때는 절대 이렇게까지 긋진 않겠다는 느낌이.
물론 일반적이지 않은 수술을 할 때는 긋기도 했다.
가령 후두암이라 전절제술을 한다든지 할 때?
‘그런 수술을…… 이번 생에도 할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모르겠어.
“자, 제가 말한 깊이대로 절개를 한 분들은 일단 넓적한 기구를 꺼내 보세요. 아니, 넓적한 칼 말고! 저는 장갑을 껴서 손가락으로 할 겁니다. 그래, 칼 손잡이로…… 손잡이로 하세요. 그런…… 그런 손잡이는 말고요. 뭐야, 사람 죽이러 왔어? 칼이 왜 이렇게…… 아, 리스턴 박사님이시구나. 교수님은 장갑 꼈잖아요. 손가락으로…… 와 손 큰 거 봐. 아무튼, 그걸로.”
그런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다른 과학 기술들이 줄줄이 발전이 되어야 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역시나 양질의 강의였다.
그리고 난 이런 일에 자신이 있었다.
한두 번 가르쳐 본 게 아니라고.
게다가…….
오히려 포르말린이 없어서 지금 이게 더 하기가 쉽단 말이지?
“자, 이걸…… 살짝 절개된 면을 들어 올리면서 지금 보이죠? 사이에 찌이익 소리 내면서 늘어나는 조직들? 그 사이에 넣어요. 그럼 투두둑 끊어지면서 벌어질 겁니다.”
“허…….”
“오…….”
“이게…….”
특히 이런 박리 같은 건 포르말린 처리를 하면 아예 불가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수술실에서 가르칠 수 있는 거다, 이건데.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진짜로 묘기로 보일 게 뻔했다.
분명 사람 살인데 레이어가 갈라지는 광경이지 않나.
칼로 인위적으로 자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으로 툭툭 밀어서 가르는 건, 당연하지만 이 시기 사람들에게는 신분에 관계없이 신기하게만 보일 터였다.
“와…….”
“저도 신기하네요, 이건.”
“흐음…… 마법 같군그래.”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높으신 곳에 계신 분들.
그러니까 양측 사이드에 놓인 완전히 다른 모양의 좌석에 계신 분들의 입에서 방금 경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말이지.
‘후후후.’
교양이니 격식이니 하는 것들에 단단히 얽매여 있는 사람들까지 저 모양이니 일반 서민들은 어떻겠나.
두려움에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윗분들까지 저러고 있으니 고삐가 풀린 느낌이었다.
“미쳤네.”
“허어…….”
“아니, 저게 어떻게 되지?”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죽죽 박리를 해 냈다.
맨날 하던 건 아니긴 한데…….
하여간, 한번 배울 때 잘 배워 두길 잘했다.
‘고맙다…… 이비인후과…….’
새끼.
명의라 그런가 딱 한 번 배운 건데도 귀에 쏙쏙 박혔단 말이지.
물론 내 실력 자체가 어떤 경지에 올라 있어서이기도 했다.
덕분에 Platysma Muscle Flap, 즉 넓은목근판이라 불리는 목 수술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술기를 막힘없이 해낼 수 있었다.
“난 왜…… 이게…….”
“아…… 어려운데.”
“어. 피부에 구멍 났다.”
내가 하는 것만 보면 와 저거 되게 쉽구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 있겠냐?
그럼 개나 소나 목 수술하지.
리스턴 박사와 블런델이야 내가 따로 가르쳐 준 적이 있기도 하고, 특히 리스턴 박사는 재능 자체가 나 정도 되거나 어쩌면 내 위일 수도 있는 사람이니만큼 실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전혀 상황이 달랐다.
“아니, 뭉툭한 걸로 하라니까요?”
“그러니까 안 되던데.”
“왜…… 아, 보세요. 여기 보면 근육 위로 들었잖아. 재주도 좋네. 이런 종잇장 같은 걸 어떻게 든 거야?”
“아…… 다른가?”
“잘 봐요. 제 건 사이에 분홍빛 근육이 있잖아요. 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건 그냥 이 위로 들어 줄게요.”
“아니, 안 되던데…… 허어…… 이게……?”
재주도 좋지.
근육 위에 있는 피하지방 층을 따라 든 놈도 있었다.
물론 말이 든 거지 실제로는 2cm 정도 안으로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그걸 리스턴 박사님이 쓸 거 같은 칼로 했다는 게 참 놀라운 일인데, 하여간 나는 그걸 메스로 쭉쭉 밀었다.
신기에 가까운 술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알아봐 줄 놈들이 단 하나도 없었을 테지만…….
“허어…….”
“이것 좀 보게.”
“어마어마하군.”
방금 똑같은 걸 시켰는데 못 하던 놈들이 태반인 상황이지 않나.
그런데 오히려 더 어려운 걸 더 쑥쑥 하고 있으려니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양반이 말 그대로 양반이라는 점이었다.
피부에 구멍 낸 새끼도 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그게 이렇게 밀다 보니까.”
“아니, 왜 손잡이도 삐죽해?”
“이걸로 푹 찌를 때가 있네.”
“뭘…….”
사람이라도 찌르나?
왜…….
왜 때문에…….
이 새끼 칼 손잡이는 송곳인 것이지?
“총알 뺄 때 이걸로 쑤시면 잘 나오네.”
“아.”
총알이 나오긴 할 거 같았다.
근데 그런다고 사람이 살 거 같진 않았다.
아마 총알 뺀 시신이 되지 않을까.
언제 한번 외상학도 건드리긴 해야 할 거 같았다.
‘아니…… 아냐. 내 몸은 하나…… 차근차근 가자…….’
총체적 난국이다, 이 말인데.
“와…….”
“저게 엄청 어려운 것인 모양입니다. 방금 혼난 의사는 나도 아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뭔가 굉장히 체계가 잡혀 있는 느낌도 있고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난국을 타개하는 걸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도 정신을 놓고서.
‘그래…… 이렇게 되면 오히려 나중에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내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언젠가는 불러 주지 않겠나?
물론 인종차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의사는 얘기가 달랐다.
당장 뒤지게 생겼는데 차별?
일단 살려 달라고 하지 않겠어?
실력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그 믿음을 이 시간에 줄 자신이 있었다.
“자…… 일단 다 열었고…… 거기에 이런 거. 저는 삼지창 같은 게 있지만 없는 분들은 그냥 뭐 아무거나 대서 위로 들어 보세요.”
“응?
“오…….”
“오오.”
“들어서 위로 올리면 앞치마 들춘 것처럼 될 겁니다.”
그래, 그래서 이 절개의 다른 이름이 에이프런이지.
제대로 못 한 놈들이 태반이었지만 내가 다 손을 봐준 덕에 모든 사람들이 꽤 좋은 시야에서 목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이렇게까지 깨끗한 목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 건, 다들 처음일 터였다.
교수형에 처해진 시신은 여기가 뭉개져 있을 수밖에 없거든.
물론…….
도굴해 낸 시신은 얘기가 다르겠지만, 업자들도 안 걸리려고 강제로 상처를 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니 그럴 터였다.
“자…… 여기 귀밑에 있는 뼈에서 목의 가운데로 가는 근육. 이건 고개를 숙일 때 다른 사람이 다시 펴지 못하도록 힘을 줘 보세요. 아니면 뒤로 폈다가 숙이려고 할 때 힘을 줘 보든지. 그때 만져지는 게 이놈입니다. 엄청 크죠?”
“크구만…….”
“목에 근육 중에서는 이게 제일 큰 건가?”
“그렇겠지? 다른 건 다 자잘한데?”
다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보니 집중력이 팍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몇몇 의사들은 내 말에 따라…….
방금 시신 만지던 손으로 자기 목이나 다른 이의 목을 짚어 대고 있었다.
하여간 위생 관념이나 보호에 대한 관념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웠다.
이런 걸 전생에서는 상남자나 낭만 따위로 포장하기도 했는데…….
막상 와 보면 그딴 소리 쏙 들어갈 거라 확신한다, 진짜로.
“그건 일단 이따 보기로 하고. 가운데를 봅시다. 보면…… 근육 사이에 하얀 줄이 보일 겁니다.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으면 와서 보세요. 사고 치지 말고. 벌써 여럿 있었죠?”
“알겠네.”
“리스턴 박사님, 저 새끼 저거 칼 쥐는데.”
“뒤지고 싶나?”
“자, 잘못했습니다.”
“대답은 알겠다고 하고 칼은 왜 들어?”
“죄, 죄송합니다.”
그사이에 또 존경심을 잃고 지랄하는 놈이 있긴 했는데, 그놈에게는 리스턴 박사님이 강제로 예절을 주입시켜 주셨다.
진짜 데리고 다니길 잘했어.
“보셨죠?”
“네.”
한층 공손해진 일원을 보며, 나는 목 한가운데를 세로로 지나는 흰 줄…… 그러니까 목을 세로로 오가는 근육 사이의 막을 가리켰다.
이제 모두가 그 흰 줄이 어디 있는지 확인한 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Sternohyoid Muscle 즉 흉골설골근 사이에 있는 결체조직인데…….’
이런 것까지 말해 주면 좀 그렇잖아?
무지렁이들이야 몰라도 높으신 분들 중에는 조선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아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아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었고.
구라도 정도가 있다, 이 말이었다.
“자, 거기를 쭉 따라서 그어요. 지금 긋지 말고. 나 하는 거 보고. 이렇게.”
해서 나는 그냥 흰 줄을 따라 메스로 그었다.
여긴 혈관이 없는 곳인 데다가, 내가 그 밑에 있는 구조물이 다치지 않도록 여러 번 얕은 절개를 그었기 때문에 피가 나는 일은 없었다.
그저 톡톡 소리와 함께 붙어 있던 두 근육이 쭉 벌어지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자, 이 안에 보면 이 핑크빛 조직이 있어요. 이거 되게 뭉글거리고 잘못 건들이면 피가 많이 나니까 이거 안 다치게 해 봐요.”
나는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갑상샘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당연하지만 해부학 매니아로 통하던 빅토리아 공주의 눈은 그 갑상샘에서 또 내게서 떠나갈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