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2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20화(120/505)
120화 해부학 강의 [2]
인류가 호르몬이라는 존재를 인식한 게 언제였을까.
자세히는 몰라도 20세기 초 또는 19세기 말이나 되어서일 터였다.
다시 말해 지금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게 갑상샘이라는 건데 여기서 갑상샘 호르몬이라는 게 나오고…….
그게 생존에 있어 엄청 중요한 거라 이게 절대로 다치면 안 된다, 이따위 소리를 하면 되겠어?
‘보인다…… 십자가…….’
21세기에 십자가라고 하면 교회부터 떠올리겠지만.
사실 그거 형틀이지 않나.
곤장 치던 거 세워 놓으면 그게 십자가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곤장을 치는 대신에 어? 못을 박았다니까?
그걸로만 끝나?
아니지.
그러면 우리 야만인들이 섭섭해서 울지.
불을…… 불을 질러.
“자…… 여기 와서 보세요. 이 분홍빛 감도는 거, 이게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주님께서 우리 몸을 설계하실 때 설마 쓸데없는 것을 만들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아멘.”
“그렇지.”
“그렇겠지.”
다행한 일은 이 시대가 르네상스를 거치고, 인본주의도 거치고 하면서 뭐랄까?
종교와 과학의 대통합 시대를 겪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실 이쪽으로는 지식이 짧아서 잘은 모르겠는데, 하여간 믿음으로 풀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표했다.
“그럼 주여 삼창하시고 이거 안 다치게 조심해서 잘 절개를 해 보십시다.”
“아멘.”
“주여.”
물론 의사들 중에는, 그러니까 본인을 과학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들 중에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무신론자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듣기는 했는데…….
‘입 모양만 봐도 알겠네.’
우리 높으신 분들.
그러니까 저기 위에 앉아 있는 귀족 나으리 또 왕족 나으리들께서는 지들이 해부하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연신 아멘을 내뱉고 있었다.
사실 뭐…….
아직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펼치고 있을 때도 아니다 보니 창조론은 말 그대로 진실 그 자체다 이 말이지.
게다가 인체라는 것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나도 해부학을 공부할 때면 진짜 신까지는 몰라도 설계자는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니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 아니. 조심해서 가르라니까 시원하게 반으로 갈라 버렸네.”
하여간, 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주변을 돌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야 쉽게 쉽게 했지만 다른 이들까지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사실 나도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깔끔하게 할 수 없는 게 수술이거든.
그리고 그 원칙이라는 건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들도 나름 경험이 있는 외과 의사들이긴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시행착오라는 걸 겪을 만큼의 제대로 된 수술 경험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마취가 없던 시절의 수술이라는 건 결국, 환자가 통증으로 죽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하는 초치기였기에 그러했다.
“아까 나 하는 거 봤잖아요. 핀셋으로 이렇게 들고, 그다음이 절개를 살짝 넣어요. 그럼 안쪽으로 틈이 생기잖아. 거기에 이런 거 쑤셔 넣고 위로 들어 올린 다음에 절개를 넣으면 어떻습니까.”
“아…….”
안에 구조물 다치지 않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칼날이 닿지 않게 하면 될 터였다.
되게 간단한 일인데…….
이게 익숙지 않은 시대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안에 구조물 운운하려면 일단 안에 뭐가 있는지, 그게 있다면 또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를 알아야 하잖아?
그나마 시신 도굴 등으로 인해 해부학적 지식이 폭발적으로 쌓여 가고 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곳들이 굉장히 많았다.
“자…… 그래요. 뭐 좀 칼집 들어갔는데. 이건 일단 넘어갑시다. 사람한테 할 때 이렇게 안 하는 게 중하지.”
나는 몇몇 곳을 더 둘러보면서 설명을 보탰다.
그러면 그럴수록 위쪽 반응이 점점 내게 호의적으로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 엄청 쉽게 쉽게 하는데 여기 있는 놈들은 개판이잖아.
게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름 런던 내에서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지.
“허어…… 실력이 정말 대단하군요?”
“게다가 하는 말이 이치에 맞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이교도가 아닌 것이 좋군요.”
“이교도라니, 누구보다 신실한 거 같은데.”
거기에 더해서 아까 의도적으로 했던 말 때문인지 몰라도, 다들 응?
아주 이뻐 죽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다는 아니긴 했다.
여전히 피부 노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한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머리로는 아닌 척해도 몸은 솔직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아파 봐라.
그럼 날 찾게 될걸.
“자…… 그럼 이 갑상샘을 위로 끌어당깁시다. 아니. 아니! 칼로 하지 말고……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은 대체 어디로 들은 거예요. 이런 기구를 만들어 봐요. 여기 앞에 대장간 가면 잘 만들어 주니까. 잘 보세요.”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나는 수술 교육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는 딱히 어려울 게 없어서 따로 돌진 않았다.
어차피…….
다음이 하이라이트다.
“자, 그럼 뭐가 보이죠?”
“이거…… 뼈인가?”
“아니, 오돌토돌한 게 뼈 같지는 않은데?”
지금, 나와 이들이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도였다.
기도.
코나 입으로 들어온 공기가 폐로 가는 길.
이 구조물은 그 특성 때문에 상당히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우리가 호흡하는 기전을 대강이나마 알아야 했다.
‘아, 입 털고 싶다.’
아! 입 털고 싶다!
잘난 척하고 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 있던 인정 욕구가 스멀스멀 음침하게 고개를 불쑥 들고 일어났지만 참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지식이지 않나.
설마하니 우리 몸이 호흡을 횡격막이라는 근육이 아래로 움직이면서 생성된 음압을 통해 뭉글뭉글한 폐가 밖에 있던 공기를 들이쉬는 것이라는 걸…… 상상이나 하겠냐고.
당연히 폐가 스스로 부풀 거라고 믿는 게 뭔가 더 그럴싸하잖아.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음압이 형성되는 것이기에 기도가 단단하지 않으면 쭈그러들게 되어 있었다.
“저는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만…….”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 이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다른 핑계가 없었으면 뒤질 뻔했어.
“주님께서는 이 기도를 연골과 근육이 반지 모양으로 번갈아 이어지는 형태로 만들어 두셨습니다.”
“아, 이게 연골인가?”
“반지……? 일자로 보이는데.”
“잘 돌려 보면, 그러니까 아니. 칼 돌리지 말고요. 이 사람들이 칼 못 휘둘러서 한이 맺혔나. 그렇게 휘두르고 싶으면 저기 리스턴 박사님이랑 결투해 보시든가.”
미친놈들이 설명하고 있는데 기도 옆으로 칼을 집어넣고 있네.
덕분에 갑상선으로 들어가는 혈관이 툭 잘리면서 피가 뭉글뭉글 나고 있었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나는 내 정수리 쪽을 내려다 보고 계신 빅토리아 공주를 생각하며 참았다.
그러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억지로 여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히익.”
그렇지 않아도 벌써 리스턴 박사님이 험악한 얼굴로 다가가 있던 참이어서 그는 잔뜩 쫄아 있었다.
“남의 목이라고 어? 이렇게 하면 되겠어?”
“안 됩니다.”
“그래. 잘하자?”
“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는 그에게 다가가 옆으로 밀었다.
그냥 밀기만 한 게 아니라 옆구리를 팔꿈치로 푹 찔러 가지고 옆으로 튀게 만들었다.
“읏.”
그리고 동시에 장갑 낀 손을 이미 웅덩이를 이룬 목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죽은 사람이라서 피가 막 나오진 않았다.
원래 사람이 죽으면 심장이 뛰지 못해 피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럼 아예 싹 굳어야 할 거 같겠지만, 실제로는 고여 있던 피가 이런 식으로 줄줄 새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는 건…….
‘진짜 동맥이나 정맥이 터졌어도 나는 할 수 있지…….’
목 수술하는 분들이 알게 된다면 좀 화를 낼 수도 있긴 한데…….
솔직히 목은 해부학 구조가 복잡하고 다치면 되게 위험하긴 하지만…….
배보다는 좁잖아?
불상의 출혈이 있을 때, 복강 안에 있는 혈관 찾는 게 진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목이야 뭐…….
게다가 지금 이 양반이 어떤 혈관을 건드렸을지도 예상이 가는 상황이었다.
“옳지, 여깄네.”
나는 일단 손으로 피 웅덩이를 빼다 버렸고, 손가락 끝에 걸린 혈관을 집게로 집었다.
끼리릭.
아무래도…….
원래 내가 쓰던 베슬 클램프(Vessel Clamp)나 모스키토(Mosquito Forcep)와 같은 기구랑은 좀 다르게 꽉 끼지는 않았지만 나름 혈관 붙잡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물론 붙잡다 보니 확실히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쓰기엔 아직 무리가 좀 있을 거 같긴 한데…….
하여간, 이 환자는 죽은 사람이고 피가 이미 굳어 가는 상황이다 보니 정말이지 금세 지혈이 가능했다.
“휴.”
“오…… 벌써?”
“뭐, 목의 해부는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구라다.
이비인후과 의사도 아닌데 경부 해부를 3D로 머릿속에 박아 둘 수 있겠어?
나도 21세기였다면 이런 식으로 너무 과다하게 말을 하진 않았을 텐데…….
19세기는 어필의 시대이지 않나.
어?
수술도 광장에서 하고, 해부도 극장에서 할 지경이니…….
정해진 값도 없고 예약 시스템도 없다 보니 결국, 유명해야 의사로 밥이나마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잘했네.’
‘감사합니다.’
리스턴은 자신의 가르침을 넙죽 잘 받아먹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렇게 짤막한 어필을 마친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메스를 쥐었다.
피 볼 일이 있을지 몰라서 물도 안 떠다 놓았던 참이다 보니, 내 장갑은 피로 물든 채 그대로였다.
‘담도 크지…….’
‘해부만 아니라 수술도 잘하겠는데…….’
‘어마어마하구만…….’
한번 좋게 보이니까 그것도 좋게 보이는지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 중에 칭찬만이 그득했다.
“자…… 그럼 이 하얀 게 연골이고 연골 사이에 있는 게 근육입니다. 이 근육을 째 보세요.”
“네. 어?”
“어어.”
“어라?”
처음 여길 째는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
기도잖아.
안에가 비어 있다고.
마치 허공에 칼질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을 터였다.
“자, 그 안이 기도입니다. 지금은 숨을 쉬고 있지 않지만…… 원래는 숨을 쉬고 있겠죠? 이렇게 탁 열릴 때, 가래 같은 것들이 튀어나올 공산이 큽니다.”
큰 게 아니라 거의 100%라고 보면 되었다.
아니, 가래만 나오면 다행이지, 피도 왈칵 나오기도 했다.
뭐…….
그거야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다.
교과서에도 안 쓰여 있던 거 같아.
그냥 친구가 알려 주면서 말해 준 게 다였어.
“아무튼, 이렇게 열어 놓고…… 자 이렇게 생긴 거. 실습 신청하실 때 사라고 했던 거 기억하십니까?”
“아, 네.”
“네네.”
기억 못 하면 병신이다.
왜냐.
나랑 리스턴 박사님이 가서 강매했거든.
원래 같으면 그럴 생각이 없었을 텐데, 이게 금속으로 만드는 거다 보니까 단가가 너무 비싸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걸 넣어 봐요. 그럼 이제부터 환자는 그 구멍으로 숨을 쉬게 되는 겁니다.”
“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주변을 보다가, 앞을 바라보았다.
사실…… 별거 아닌 수술인데, 다들 너무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개념 자체를 바꾸는 수술이긴 하지.’
아무래도 나나 리스턴 박사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유명해질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