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21)
검은 머리 영국 의사-121화(121/505)
121화 해부학 강의 [3]
당연한 일인데, 술기 하나 가르쳐 준 걸로 끝이 나진 않았다.
일단 내가 너무 잘하기도 한 데다가 애초에 그리 어려운 술기가 아니었던 탓에 시간도 너무 적게 걸렸다.
‘이제 끝났으니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 당장은 호의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있는 우리 높으신 분들부터 역정을 낼 터였다.
아니, 경찰서장도 그럴 게 뻔했다.
여기가 뭐…… 빌리기 쉬운 곳은 아니었지 않겠어?
제아무리 공주님이 해부학 매니아라고 해도 턱턱 빌려주진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심대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이 시대의 해부란…….’
처음엔 왜 이따위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니, 대체 왜 해부를 다 구경하려고 드냐고.
심지어 학생 실습조차 다른 과 놈들이 와서 구경할 때도 있었다.
물론 우리 해부 실습실은 환경이 지옥이다 보니 그런 일이 드물긴 한데…….
하여간, 전반적으로 해부라는 게 구경거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카니발에서도 한다고 했지?’
이게 다 이유가 있었더랬다.
사실 사람 시신에 손을 댄다는 게…….
막 기분 좋은 일일 수는 없지 않겠나?
손을 대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그것보다는 시신…….
아니,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 사람의 가족들에게는 실로 꺼림칙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종교적으로 시신을 화장해야 한다거나 배를 태워 보내야 한다거나 또는 매장해야 한다는 등의 풍습이 있지 않았나.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니 이런 식으로, 공식적으로는 사형수들에게만 해부가 허용되어 있었다.
‘원래는 아예 금지였다고 했어.’
그러니 금지였다.
해부는 원래…….
그러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인체 해부를 해 보게 된 것도 있는 데다가, 암흑기를 거치고 있는 유럽이 여러 학문이 발전해 있던 이슬람 제국에 비해 특히 의학이 너무 후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똑같이 다쳤을 경우 이쪽 귀족은 죽고 저쪽 귀족은 살아남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나.
해서 5년에 한 번, 사형수에 한해 해부가 가능하다는 칙령이 발포되었는데…….
아마도 선의에서 시작했던 일이었을 텐데…….
생각해 봐라.
어? 지금도 주변을 보라고.
동양인 무시하는, 인종차별주의자조차 뭔가 배울 생각이 드니까 와서 하고 있잖아.
특히 외과 의사에게는 해부 실습을 해 보고 안 해 보고가 어마어마한 차이를 부를 텐데 그걸 5년에 한 번 제한을 해 뒀으니 눈이 돌아가겠지?
‘나 같아도 구경 가지…….’
그렇다 보니 누군가 순번이 되어서 해부를 하게 되면 구경 가서 보는 풍습이 자리하게 되었다.
동시에 시신이 썩기 직전까지 해부를 하지 않으면 뭔가 무례한 일이 되어 버렸다.
모름지기 해부란 다들 보는 곳에서, 끝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 말이었다.
“자, 목을 좀 더 들여다보죠.”
솔직히 힘들었다.
나는 그렇게 체력이 좋은 사람도 아닌 데다가, 사실 해부 실습이 막 그렇게 절실한 상황은 아니란 말이지.
“그래, 목을 보자!”
“보자!”
“보자아아아!”
하지만…….
나 빼고는 다 절실했다.
심지어 의사 아닌 놈들도 그랬다.
그 중엔 높으신 분들도 있다 보니, 나로서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게다가 기왕 잡은 기회지 않나?
제자 놈들 가르치면서 동시에 유명해질 수 있다는 얘긴데…….
“우선, 아까 봤던 이거. 엄청 큰 근육 있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목 양쪽에 위치한 거대한 근육을 가리켰다.
객관적으로야 거대하다고 하기 좀 뭐한 놈들이지만…….
목에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놈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게 왜 이렇게 큰가.
다 이유가 있었다.
“칼 말고 뭉툭한 거. 아니…… 칼 집어넣으라고.”
나는 아직도 분위기 파악 못 하고 20cm도 넘는 칼을 들어 올리려 하는 놈을 지적하고는, 장갑 낀 손가락을 해당 근육 그러니까 흉쇄유돌근과 그 밑 구조물 사이에 집어넣었다.
근막과 근막 사이에는 딱히 이렇다 할 혈관이 없기 때문에 그냥 투두둑 소리와 함께 근육이 들어 올려졌다.
“불.”
원래 같으면 머리에 불, 그러니까 헤드라이트를 써서 안을 들여다봤을 테지만 지금은 헤드라이트 해 달라고 했다간…… 머리 타 죽을 게 뻔했다.
하여간, 그러한 연고로 인해 옆에 있던 조지프가 등불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안쪽 구조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 여기. 이거 큰 거. 뭉글거리는 거. 이게 경정맥입니다.”
“오…….”
“그 밑에…… 잘 보면.”
근육을 들어 올린 데다가, 목이라는 부위가 넓지 않다 보니 이제 손가락으로 뭘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서 나는 집게를 오므린 채로 경정맥을 위로 들이밀었다.
안에 피가 죄 굳어 가지고 단단한 느낌이 일었다.
원래는 그렇다기보다는 뭔가 좀 흐물거리는 느낌인데…….
“더 얇지만 훨씬 단단해 보이는 게 있죠. 이게 경동맥입니다. 머리로 가는 혈관이니…… 엄청 중요하겠죠.”
나는 혈관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러다 마녀사냥당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지식은 놀랍게도 이미 쌓여 있었다.
특히 지난 십수 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더랬다.
도굴 덕분이라고 하면 좀 그런데…….
실제로 그랬다니 뭐…….
“다시 말해 중요한 혈관을 이 근육이 덮고 있다는 겁니다. 목 건드릴 때 이 근육 안 다치게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야 직접 해 본 적은 없지만, 이비인후과에서도 목에 있는 임파선 떼거나 할 때 굳이 이 근육을 살리더라고.
이리 들었다가 저리 들었다가 진짜 별의별 짓을 다 하던데…….
그래야만 하냐고 물어봤더니, 암의 침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자른 환자 사진을 보여 주었다.
목의 한 부분이 움푹 꺼짐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미학적인 결손도 결손인데, 기능적인 결함이 더 결정적이었다.
목을 지탱을 못 하고 한쪽으로 삐뚜름하게 숙이고 있었다.
“에 또…….”
내가 목에서 뭘 더 보여 주어야 하나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 박사가 다가왔다.
그냥 온 건데,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좀 무서웠다.
그래서 조금 뒤로 물러서려니 그런 반응이 익숙한 리스턴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먼저 썩는 부위부터 하는 게 좋겠네. 배가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조금만 시간 지나면 못 쓰게 된다고.”
“아…….”
“그리고 각오는 되어 있는 거지? 아까 너무 잘해 가지고…… 내 생각에는 저 윗분들 어지간해서는 자리를 비울 거 같지가 않네.”
“어차피 내일은 공연 있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옆에 있던, 그러니까 원래는 집에 가야 되는데 높으신 분들까지 다 온 마당에 눈치가 보여 붙박이장이 되어 버린 경찰서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 취소됐습니다.”
“네? 왜요?”
“아까 목 열어서 보여 줄 때…… 그 분홍색? 그거 보여 줄때…… 공주님하고 총리께서 명했습니다. 적어도 3일은 비어 있어요.”
“아.”
돌았나, 이 새끼들이.
나 힘들다고…….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위로해 주는 게 정상일 텐데…….
“축하한다, 평아.”
“그러니까. 너 진짜 이제 떴어.”
“자, 급하니까 빨리하게. 팔다리는 내가 도와줄 테니까, 배는 자네가 하라고.”
이 새끼들은 오히려 칭찬을 하고 있었다.
물론 멀리 보면 좋은 일이긴 했다.
좋은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당장 힘든 게 가시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 좋게 가자.’
다행인 건 난 의사고, 이런 식으로 참고 넘기는 데 익숙하다 못해 달인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힘들어 봐야…… 레지던트 때만 하겠냐?’
단언하건대 이 자리에서 나만큼 밤잠 아껴가면서 일해 본 사람은 없을걸?
내가 진짜…….
어?
우리 때는 전공의 특별법도 없어서 주 88시간이 아니라 120시간도 넘게 일했다구.
너무 라떼는 라떼는 하면 틀 같지만 어쩌겠어, 사실인 것을.
다시 말해서 여기 있는 놈들 지금이야 멈추면 당장 죽일 것처럼 굴어도…….
밤 좀 깊어지면 죄 뻗을 거라 이 말이었다.
그런데……
‘왜…… 왜 안 가?’
아니었다.
하…….
시발.
생각해 보니까 여기 대한민국이 아니라 19세기 런던이잖아.
하루 4시간 자고 일하시는 분들이 천지 사방에 널려 있는 곳이라 이건데…….
지금은 일하는 것도 아니고 구경하러 나와 있는 거다 보니 기운이 펄펄 나는지 여전히 환호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이제 신장이죠. 신장. 잘 보면 관이 있는데 방광으로 이어지고 방광은 다들 아시다시피 소변으로 차 있습니다. 이 환자는…… 어이쿠, 돌이 있네. 엄청 아팠겠네.”
“와하하하!”
“이미 천벌을 받고 있었군그래!”
“난 저렇게 깔끔하게 떨어진 신장은 처음 보네!”
심지어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윗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양반들은 따로 해부하는 걸 구경한 적이 많아서 그런가…….
기존에 어떤 식으로 해부를 해 왔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거기 따라다니면서 본 건 아니지만…….
제대로 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특히 호르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이 시대 특성상…….
“자, 여길 보세요.”
나는 신장 위에 놓인 아드레날샘을 가리켰다.
모든 호르몬 분비 기관이 중요하겠지만, 이건 진짜 중요한 기관이었다.
‘하…… 아는데 말을 못 하네.’
자세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대신 내가 너무 잘하니까 슬슬 동양의 마녀론을 꺼낼 기색을 보이고 있는 일부 불순분자들을 잠재우기 위해 눈을 감았다.
“목에 있는 분홍빛 기관을 기억하실 겁니다. 뭉글뭉글했죠? 그걸 떠올리면서 이걸 만져 보십쇼. 색은 다르지만 비슷하죠? 우리 주님께서 쓸데없는 걸 만들었을 리가 없을 텐데…… 아직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한입니다. 허나 비슷한 질감임을 미루어 볼 때, 뭔가 비슷한 일을 하거나 그럴 거 같습니다. 나중에 저보다 훌륭한 분이 나서서 연구해 주시면 좋겠네요.”
신앙을 어필했다 이 말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안 그래도 밤이 깊어져 뒤에 불을 피우고 있어서 후광 효과도 있었을 텐데 거룩한 말을 해 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멘.”
“주여.”
“우리에게 지혜를…….”
여기저기서 부흥회를 방불케 하는 반응이 있었다.
그거야 뭐 지들 마음이니 상관이 없었다.
나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됐군.’
빅토리아 공주도 눈을 감고 아멘 하고 있었다.
할렐루야다, 진짜.
나는 나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흥얼거리면서 해부를 이어 나갔다.
이 양반들이 은혜도 받았겠다, 눈앞에서는 계속 신기한 구경거리가 펼쳐지고 있겠다,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는 데다가 나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는 우울증 치료에 수면 박탈을 쓰는 기전으로 인한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흥이 나는 바람에 해부는 밤을 꼬박 새우고 진행되었다.
딱히 다친 데가 없어도 해부 실습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던데 왜 그런지 알겠는 기분이었다.
30시간이 넘게 흐르고 나서야 해부를 끝낸 나는, 과로사가 바로 이럴 때 발생하는구나 싶었다.
집에도 못 간 채였는데, 다들 마찬가지다 보니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 그리고 리스턴과 블런델까지 그냥 병동에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