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2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23화(123/505)
123화 정식으로 의사 [2]
“아, 나는 오늘 자를 다리가 있어서.”
“나도 애 받으러 가 봐야 하네.”
“네네.”
리스턴 박사와 블런델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저것도 언제 한번 크게 손봐야 할 처치들이긴 했다.
자를 다리라…….
‘우리는 정형외과에서 잘랐었지?’
현대 의학이라고 해서 절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기 마련 아니겠나.
당뇨발뿐 아니라, 교통사고로 인한 사지 절단은 피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뼈가 다 으스러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친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응?
여기서 자르는 건 좀 아니잖아.
‘그래…… 어차피 리스턴 박사님도 수술을 진보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니까, 내가 한번 도움을 줘야겠어.’
원래는 좀 두려고 했다.
리스턴도 천재긴 하니까 알아서 발전시킬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달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사실 새로운 수술을 만든다는 게…….
무협으로 치면 일대종사나 다름없지 않나.
그런 게 어디 흔하다던가.
그랬으면 응?
뭐 다 문파 만들겠지.
나도 불가능했고, 스승도 불가능했다는 걸 생각해 보니 확실히 이대로 방치하는 건 좀 아닌 듯했다.
“뭐 찾으면 돼……? 말 그냥 편하게 해도 되나?”
하여간, 지금은 원래 이 방에 있던 교수의 연구 자료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한 시점이었다.
“응? 친군데 뭐. 남들 볼 때만 교수라고 해.”
“오…… 역시…… 태평이…….”
자료를 들여다보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만, 찾는 건 잡일 아닌가?
본디 잡일은 어? 아랫것들이 해야 하는 법이었다.
물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따위 잡일을 대가도 없이 내렸다가는 난리가 나겠지만…….
여기서는 교수가 명하면 이빨도 뽑혀야 하는 것이 학생이었다.
“이런 거 찾으면 되나?”
“응, 그래. 그런 거.”
“좋아.”
그러니 기껏해야 자료 찾아 달라는 건 아무것도 아니란 얘기였다.
오히려 희희낙락해 보이기까지 했다.
친구가 교수니 뭐…….
재밌지 않겠나?
인성이 아주 개판인 놈들이라면야 질투심에 사로잡힐 수도 있겠지만.
조지프야 오래전부터 날 존중했던 녀석이고 앨프리드는 내가 생명의 은인이지 않나.
“이것도 될까요?”
“어, 응. 근데 말 편하게 해.”
“교수님인데 어찌…… 가뜩이나 요새 계속 배우고 있었는걸요.”
“그…… 뭐. 그게 편하면 편한 대로 해.”
“네.”
제일 걸렸던 콜린은 이제 그냥 충직한 종놈이 된 지 오래였다.
하여간, 덕분에 나는 금세 자료들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일단 내 전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치질부터 살폈다.
사실 분과를 대장항문으로 하진 않았지만…….
레지던트 때부터 진짜 지겹게 배우지 않았나?
-이게 다 니네 나가게 되면 밥줄이다, 밥줄.
환자 똥구멍을, 그것도 성치 못한 똥구멍을 가리키면서 밥줄 운운하는 것이 좀 그렇긴 했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긴 했다.
개원하는 선배들을 보면 90%는 치질을 봤으니까.
‘어디 보자…….’
나는 머리에 손을 짚은 채, 노교수의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름 그림들이 꽤나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어떤 건 좀 너무 자세해서 욕지기가 나올 정도였다.
뭐, 나쁜 건 아니었다.
이 정도로 성의가 있었다는 건, 그만큼 환자에게도 최선을 다했다는 거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시기에는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는 건데…….
‘나폴레옹도 치질로 고생했다고 하지…….’
그 양반 시대가 지금보다 좀 전이긴 한데, 고작해야 2, 30년 지났다고 많이 달라졌겠나?
그러한 권력자마저 고생을 했다면 말 다 한 셈이었다.
‘에구머니나, 이게 뭐여.’
그렇게 직접 그린 삽화 중간에 나름 색이 들거나 그림이 하나 있었다.
붓 터치가 딱히 없는 걸로 봐서는 판화인 모양인데…….
환자 자세부터 충격적이었다.
아랫도리를 벗은 채 팔로 앞에 벽을 짚고 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굉장히 항문이 잘 보일 거 같겠지만, 사실 그렇지가 못했다.
만약 그랬으면 다 이런 자세로 하지…….
‘와…… 설마 치핵을 불로 태우는 건가?’
물론 자세만 보고 놀라는 건 너무 성급한 일이었다.
인간 백정 아니, 집도의는 인두를 들고 있었다.
그가 노리고 있는 건…….
그림상으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무조건 치핵일 터였다.
치핵이어야 하고.
딴 데를 지지는 건 좀 너무 무섭잖아?
‘근데 어설픈 온도로 지지면 오히려 피가 다 터질 텐데……? 아, 옆에 이거 설마 풀무인가.’
조수는 인두의 온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풀무를 들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 환자는…….
사실 치핵이 제대로 잘 보이지도 않는 자세를 취한 채로 항문을 인두로 지져 버렸다, 이 말이었다.
와…….
설마 이 교수도 이랬…… 아, 부연 설명이 있구만.
-이렇게 할 경우 살이 같이 타는 경우가 흔하고, 심지어 항문이 틀어막아져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우리는 루이 14세를 수술한 펠릭스 경의 방법을 참조해야만 한다.
다행히 이렇게는 안 한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뒤를 뒤적거리다 보니, 이번에는 훨씬 조악한 형태의 그림이 보였다.
필체가 비슷한 걸로 미루어 볼 때, 이게 교수가 그린 그림인 모양이었다.
안타깝게도 환자는 여전히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 환자 포지셔닝의 중요성이 자리 잡은 것도…… 어찌 보면 마취 이후이긴 하겠지.’
현대 의학에서 환자의 자세를 집도의의 편의를 위해 조정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너무 집도의 생각만 하는 거 아니냔 불만이 쏟아질 수도 있겠지만…….
수술하는 사람이 편해야 수술하고 나서 결과가 좋지 않겠나?
특히 수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정밀함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수술 시간의 증가를 초래했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사실 이게 가능하려면 환자가 의식도 없어야 할뿐더러 근육이 이완되어 유연해져 있어야만 했다.
결국, 마취 기술의 발전이 선행되어야만 이런 것도 고려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여간…… 오…… 치핵을 실로 묶어……? 피를 굳힌다는 의미겠지? 설마.’
뭐 다른 주술적인 의미가 있진 않겠지.
그러길 바라며 교수가 남긴 자료를 읽었다.
확실히, 그랬다.
피를 굳히기 위해 1시간 이상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가위로 싹둑 자른 모양이었다.
‘흐음…… 뭐…… 나쁘지는 않지만…….’
치핵을 일단 제대로 확인했는지 여부가 불투명했다.
게다가 치핵에는 외치핵과 내치핵이 있는데 그걸 딱히 구분을 안 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치질의 병기 4단계에 대한 교려(矯勵)도 없었다.
뭐…… 몰라서였을 터였다.
그렇지 않겠나?
알면 안 그랬겠지.
‘엄청 아팠겠네. 이거 심지어 마취도 없이 했던 거잖아?’
와…….
이거…….
치질이 진짜 아픈 질병이지 않나.
왜 아프냐면 항문이라는 곳이 진짜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감각이 예민해서 그랬다.
근데 그걸 마취도 없이…….
“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 한숨이 미처 다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눈을 감고 애도를 표했다.
물론 인두로 항문 지지던 시절보다야 훨씬 나았겠지만…….
이 시절이라고 해서 딱히 행복하진 않았을 거 같았다.
게다가 수술이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동반해야 하는 절차가 역시나 빠져 있었다.
바로 소독.
‘상식적으로 여기 수술하고 싶으면 좀 닦았어야 되는 거 아닌가?’
여기를 대체 뭔 생각으로 닦지도 않고 맨손으로…….
그냥 어?
아니, 그렇잖아.
제대로 된 휴지조차 보급이 안 된 시대에 여기가 깨끗할 리가 없는데.
나는 그래서 물로 닦는다구?
왜 인도 사람들이 물로 닦는지 한번 닦아 보니까 알겠어.
아마, 이건 내 생각인데 인도 사람들 치질 유병률은 꽤 낮을 거다.
사실 치질이라는 게 항문 위생하고도 어느 정도는 연관이 되어 있거든.
‘아무튼, 기본부터 다지는 게 좋겠군. 이거야 원…… 자기 하고 싶으면 수술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그랬네.’
자료를 더 보다 보니 아무래도 점점 더 많은 문제점이 눈에 띄었다.
기본적인 문제들이었는데, 뭐…….
기본이 잡혀 있을 시기가 아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닐 거 같았는데…….
확실히 부위가 부위라서 그런가?
이렇게 흔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잘 안 잡힌 느낌이었다.
이게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기도 한 게, 21세기에도 치질 수술이라고 하면 경원시하는 느낌이 있잖아?
남들한테 말도 잘 안 하고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떤 환자를 수술해야 할지…… 이런 것도 정리를 안 해 놨네.’
수술의 적응증(適應症)이라고 하지.
외과 의사에게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스승님도…….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의사이신 그분이 맨날 하던 말씀 중 하나가 이거였을 지경이었다.
-How to do는 나중 문제야. When to do, What to do. 이거부터 정해야 해.
다시 말해 수술을 어찌해야 할지는 나중 문제고, 언제, 어떤 치료를 할지가 중요하다 이 말이었다.
그게 맞았다.
치질만 해도 비수술적 치료가 많지 않나?
실제로 1단계, 2단계에서 수술을 하는 건 어찌 보면 과잉 진료였다.
특히나 지금처럼 수술에 제한점이 아주 많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수술은 지양해야 했다.
외과 의사 주제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그렇겠지만, 어쩌겠어.
그게 환자를 위한 일인데.
‘좌욕부터…… 가르쳐 보자. 그래. 그렇게 하고. 수술법은 자세부터 좀 손을 보고…… 예약되어 있는 환자들은 일단 원장님이 좀 미뤄 준다고 했으니까…… 좋아.’
하여간 나는 그렇게 치질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다.
그동안 내 조수들…….
아니, 제자들이자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아까 내가 말했던 자료들을 찾고 있었다.
사실 뭐 지식의 깊이만큼 자료도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다 보니 치질은 벌써 다 찾은 지 오래였고, 이제는 전립선 비대증에 대한 자료를 찾아오고 있었다.
사실 나는 좀 놀란 마당이었다.
대체 어떻게 나이가 들면서 소변이 불편해지는 원인으로 전립선 비대를 짚어 냈을까?
‘뭐…… 해부를 하다 보니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전립선이 비대해지지 않던가.
그걸 해부하다가 확인했다면, 얼마든지 직관적인 추론도 가능할 터였다.
다만 궁금한 것은 그것을 대체 어떻게 치료를 했는가였다.
요새는 약도 나오고 수술법도 발전해서 꽤나 좋아지긴 했는데…….
예전에는 어떤 수술을 했을까?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는 조지프가 찾아서 책상 위에 올려 둔 기구를 내려다보았다.
“오…… 이거…… 내시경인가……? 아니, 아닌가?”
내시경이라기엔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가 없었다.
생긴 건 어디론가 집어넣게끔 생겼는데 렌즈는 없었다.
잘 보니까 끝이 칼날같이 생겼는데…….
불길했다.
“이걸로…… 그냥…… 뚫어…… 뚫어 버리나?”
“그런 거 같은데?”
“막혀서 안 나오니까.”
“아…….”
허이구…….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서웠다.
아니, 아파.
아픈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