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24)
검은 머리 영국 의사-124화(124/505)
124화 정식으로 의사 [3]
세상에 길이 막혔다고 그냥 뚫다니.
이건…….
이건 사실상 고문 아닐까?
생각해 보면 실제로 이쪽, 그러니까 요도 활용한 고문이 아주 다양하게 나와 있기도 하니까 무리한 생각도 아니긴 했다.
뭐…….
뚫어 놓으면 잠시라도 소변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하긴 할 터였다.
“근데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긴 한 거야?”
이미 자료는 다 찾은 지 오래기도 하고, 19세기 좋은 게 공간을 널찍하게 쓴다는 거다 보니 나는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침, 내 손에는 아마도 우리 돌아가신 교수님이 쓰셨을…….
끝에 침이 달린 막대가 들려 있었다.
그냥 침만 달아 둔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침과 바깥 원통이 구분이 되어 있어서 원통은 둔 채로 침 있는 부위만 앞뒤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돌릴 수도 있었는데…….
하여간 드릴의 아주 원시적인 형태라고 보면 될 거 같았다.
“이렇게까지 하면 효과가 있어야 하지 않나……?”
먼저 물은 것은 조지프였고, 그다음 말을 꺼낸 건 앨프리드였다.
사실 모두가 자료를 들여다보게 된 것은 꽤 한참 전의 일이었지만 이제사 입을 열게 된 것은 자료가 던진 충격 때문이었다.
우리가 심약해서가 아니라 그냥 전립선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겠나?
“있으니까 계속했겠지…….”
그나마 넷 중에서 신분이 가장 귀한, 그래서 점잖음을 담당하고 있는 콜린 또한 혀를 내둘렀다.
그러곤 셋이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뭐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 있거나 하면 나를 보기는 했는데, 이제는 내가 아예 교수가 되어서 그런가, 보다 기대감이 강하게 서려 있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그렇다고 말하길 바라는 거 같았다.
안타깝게도 난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전립선은…… 계속 자라는 부위지…… 물론 이게 꽤 두껍긴 하지만…… 이런 걸론 무리가 있어.’
나는 일단 답을 하는 대신 들고 있던 기구를 내려다보았다.
나름대로 이 정도면 19세기 의료 기구치고는 꽤 진보한 녀석이라 할 수 있었다.
좀 끔찍한 모양새긴 하지만…….
그래도 하여간 제대로 찔러 넣기만 했다면 나름 얼마간은 소변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 터였다.
물론…….
요도도 다 부수는 수술이 될 테니 막힌다 싶으면 굉장히 빠르게 막혔을 테고 협착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끝장이겠지만…….
그리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 상황이 굉장히 자주 벌어지긴 했을 테지만…….
“아니, 일시적으로 열리기만 했을 거야.”
“허어…….”
“어찌…….”
“이런 걸 여기다 집어넣었는데…….”
당연하게도 다들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라면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보여야 하기도 했고.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야말로 의사가 가져야 할 미덕 아니겠나.
내가 봤을 때 이놈들이 유독 이러고 있는 건 아랫도리에 본능적으로 찾아오는 고통 때문인 거 같기는 했지만, 아무튼.
“자료를 봐 봐. 교수님도 한계점을 지적했잖아. 일단 이렇게 삐죽하고 곧은 막대를 바로 넣게 되면…….”
해부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굉장히 높은 확률로 다른 데를 푹 찌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
요도가…… 안에서 한 번 꺾이거든.
특히 전립선 때문에 고생할 정도로 나이 든 남자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있던 21세기에서야 애초에 방광경으로 보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그럴 사고가 날 일이 적었고, 또 폴리(Foley Catheter, 유치 도뇨관)를 꽂는다고 하면 고무 소재이기에 막 찔러 넣는다고 해도 어디가 잘못 뚫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여긴 그런 게 없지. 그렇다면…… 만들 때 해부학적인 고려를 해야 해. 끝만 조금 뭉툭하게 굽혀서 만들면…… 쑥 들어갈 거 같은데…… 윤활제가 문제인데…… 그거야 뭐 부드러우면서 독성 없는 걸 찾으면 될 거 같고.’
나는 속으로 대안을 찾으면서 동시에, 입으로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마 이 교수가 죽기 전에 만났다면 엄청 좋아했을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아니, 고집쟁이라면 싸움만 벌어졌으려나?
아무튼…….
“이렇게 구멍이 날 거야. 실제로 봐 봐. 소변이 아니라 피만 났다는 보고가 있지? 그래서 이제 들어가다가 저항력이 느껴지면 그때 한 번 쑥 아래로 내린다고 쓰여 있지. 그럼에도…… 아. 소변이 나왔는데도 잘못 뚫은 적이 있다고 되어 있네. 이건 어떻게…… 아.”
교수의 기록은 퍽 세세한 편이었다.
심지어 꽤 정확한 지적들도 있었다.
이 시절의 유구한 전통…….
수술하다가 죽거나 한 사람들의 경우엔 합의금만 지불하면 일단 해부가 시작되어 버리지 않던가?
이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죽은 사람들은 해부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 덕에 원래 있던 요도 외에 다른 곳을 통해 방광까지 뚫어서 잠시 소변이 나오는 쾌거를 맛보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되면 소변이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복강 안에 쌓이게 되기에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직접 관찰하고 써 놨더랬다.
“아…… 그럼 이거…… 아프기만 하고…….”
“그래도 제대로 찌르면……?”
“그러니까요. 제대로 찌른다면…… 어땠을까요?”
제대로 찌른다…….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끝이 삐죽한 게 문제였다.
너무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문제고…….
하지만 그 모든 난관을 뚫고 성공했다고 치면 어떨까?
그래도 별로였다.
슥.
나는 일단 그림을 그렸다.
해부학적으로 완전한지는 모르겠다.
이쪽은 사실 내 전문이 아니거든.
항문 쪽이면 눈 감고도 그리겠지만 말이야, 애초에 아랫도리에 있다고 하나로 묶어 두는 게 말이 되냐? 해부학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
이건 비뇨기 계통이고 항문은 소화기 계통의 끝에 위치한 거잖아.
“오…….”
“와…….”
“역시…….”
아무렇게나 그린 거 같은데, 세 놈이 보기엔 어마어마하게 그럴싸한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내가 200년은 더 후대 사람이다 보니 이렇게 만들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하여간, 나는 그렇게 대강의 그림을 그린 후 요도를 무지막지한 기세로 누르고 있는 둥근 구조물을 가리켰다.
“이게 전립선인데…… 이따 해부할 때 기회 되면 직접 보여 줄게.”
“오오오오.”
아마 이렇게 도식화해서 보는 건 처음일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쪽 해부는 진짜 어렵거든.
일단 방광이나 이런 곳이 빨리 썩기도 하거니와 전립선은 특히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 곳이다 보니 딱 하나의 지식만 쌓고서 까부는 놈들이 태반인 이곳 19세기에서는 더더욱 제대로 된 지식을 쌓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 이게 또 아랫도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튼, 이게 너무 크잖아. 구멍을 낸다고 치자. 그럼 당장은 졸졸 나오긴 할 거야. 하지만 압력이 많이 제거가 된 거 같아?”
“아…… 이게 이렇게 누른다고……?”
“아…….”
“허어…… 그럼…… 이 환자들은……?”
콜린은 하필 환자 명단을 찾은 마당이었다.
교수님이 진짜 열과 성을 다해 진료를 했는지 뭔지 진짜 많은 환자를 보았더랬다.
이름마다 그냥 남아 있는 게 있고 빗금이 쳐져 있는 게 있었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너무 알 거 같아서 슬펐다.
정말이지 이루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환자가 죽어 나갔다 이건데…….
지금 내 말대로라면 딱히 효과도 없을 치료를 위해 죽어 나갔다는 얘기가 되지 않나?
다들 한동안 다시 말을 잊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문제를 나름 우리 교수님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머지 서류 뭉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편지 형식이었다.
-친애하는 닥터 해리에게.
닥터 해리에게 보내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오타가 좀 있고 죽죽 그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봐서…….
편지는 보냈고 이건 그냥 보관하고 있던 거 같은데 내용이 이게 정말 심상치가 않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껏 본 전립선 비대증 환자의 수가 물경 천을 헤아린다네. 하지만 실제로 해결이 된 환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지.
뭔가 자국이 보이는데, 이거 눈물 자국인가?
맞는 거 같았다.
불확실한 건 이 눈물을 흘릴 때의 교수님 감정이었다.
자괴감이었을까 아니면 죄책감이었을까?
도리에 맞는 인간이라면 죄책감을 느꼈어야 할 거 같았다.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게 정당화되진 않을 테니까.
-노상 고민을 하던 중…… 은퇴한 뱃사람들 중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변 보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는 이들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네.
어?
이건 나도 좀 흥미가 돋았다.
사실 수술…….
수술은 최종 보스처럼 마지막에 가서야 하는 치료법이지 않나?
내가 암만 외과 의사라지만 별거 아닌 환자도 째려고 막 날뛰진 않는다 이 말이었다.
뱃사람이라면 어디선가 새로운 것을 주워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보니 그중 우연히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것이 있었다면?
약이다.
약.
-수소문 끝에…… 지난 10년간 스무 명이 넘는 은퇴한 뱃사람 또는 군인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정말 모두 증상이 없더군.
흐음.
이건 좀 애매했다.
은퇴한 뱃사람 아무나 뽑아다가 선정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소변 증상이 없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면…….
으음.
이런 걸 전문용어로 ‘편향 오류’ 즉 ‘Bias’라고 하는데…….
-그들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네.
오?
공통점이 있어?
증상이 없는 것 외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이건 꽤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 교수님이 설마하니 19세기 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연구 설계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있었을 거 같지는 않고, 그냥 우연이었을 터였다.
뭐…….
우리네 속담에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는 말도 있잖아.
자료를 보면 우리 교수님처럼 또 열심히 뒷걸음질 치던 사람도 없을 테니 그중 하나는 어디선가 잘 밟았을 수도 있지 않겠나?
“으음.”
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다음 문장으로 눈을 넘겼다.
-그들은 모두 고환에 부상을 입었네. 총에 맞았거나 칼에 맞았거나 혹은 일하다 배의 구조물에 부딪혔거나…… 원인은 다르지만, 고환에 부상을 입었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별로 다음 문장을 읽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내 눈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흥미로 인해 절로 게걸스럽게 읽어 대고 있었다.
-고환의 손실과 소변의 불편감이 연관이 있다는 얘기일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문헌을 뒤져 보니 카스트라토(Castrato, 거세 가수)들 또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소변 보는 데 불편감이 없었다는 걸 확인했네. 어렵게 카스트라토의 시신 하나를 얻어 해부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전립선이 작더군. 자, 난 여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었네.
아니…….
아냐…….
그러지 마…….
아이디어 얻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