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25)
검은 머리 영국 의사-125화(125/505)
125화 멈춰 [1]
전립선 비대증…….
이게 21세기에는 그냥 뭐 불편한 병으로 인식될 뿐이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만만한 질환일 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나?
이걸로 죽기도 했다.
소변을 잘 못 보게 되면 요독증이라는 것이 생기거든…….
근데 그렇다고 고환을 자를 정도의 충격적인 치료를 시도할 정도는 아닌 거 같았다.
그러느니 그냥 매일 병원 와서 철로 된 소변줄 잠깐 꽂아서 빼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아. 이거 일단 치료법 중 하나로 남겨 놓자.’
이것도 이것대로 끔찍한 치료법이긴 했다.
매일 소변줄을 꽂는다…….
뭐 21세기에도 하던 치료긴 했다.
기간을 두고 하는 것이고 또 철이 아니라 고무 소재의 넬라톤(Nelaton Catheter, 단순 도뇨관)을 꽂는 것이긴 한데…….
그 대신 철을 꽂는다고 하면 진짜 가다가 칼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고환 자르는 것보다는 낫지.
“이거…… 이거 발송이 된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충격에 빠져 실어증 걸린 사람처럼 멍하니 입만 꿈뻑거리고 있는 동안 내 친구들…… 그러니까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게 된 19세기 친구들은 방을 좀 더 뒤졌다.
그러곤 조지프가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편지 봉투였다.
수신인이 교수고, 발신인은 해리였다.
그 말인즉슨 해리라는 양반이 보낸 편지라는 뜻이었다.
도착한 지 한 3, 4일 정도 된 모양이었다.
확인을 못 한 건 아마 몸이 부쩍 안 좋아져서겠지?
“남의 편지지만…… 돌아가셨으니 잠깐 볼까?”
조지프는 차마 편지를 열지는 못하고 있었다.
해서 내가 대신 받아다 열었다.
참고로 19세기는 온갖 야만적인 행동은 다 하는 주제에 그 야만성을 보상하기 원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쓸데없는 예의범절이 남아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어으.”
“찝찝한데…….”
“지금 환자들 불알 따이게 생겼는데 찝찝한 게 대수야?”
“그건…….”
“그렇긴 하지.”
해서 다들 나를 좀 뭣하단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불알 딴다는 말을 하니까 금세 조용해졌다.
왜인지 모르게 엄숙한 기분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두는 편지가 아니라, 아랫도리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내가…… 이 비슷한 수술을 본 적이 있네…… 그렇네, 생각해 보니까…….’
당연한 얘긴데, 사람한테 이런 수술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물론 암이란 병은 이론적으로 전신 어디에라도 생길 수 있었고, 당연하게도 고환암이라는 것도 있어서 제거가 필요한 경우도 있긴 한데…….
드물기도 하고 외과가 아니라 비뇨기과에서 시행하는 수술이다 보니, 볼 일이 없었다.
내가 본 건 군의관 때의 일이었다.
같이 복무하던 수의사 동생이 하던 걸 우연찮게 목격한 일이 있었다.
대상이 개였으니 망정이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걸 봤다면 아마 꽤 오랫동안 입맛이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교수님, 역시 탁월하신 의견입니다. 저도 옛날 자료들을 뒤져 보니 확실히 환관들에게서는 늙도록 소변 관련해서 증상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아무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을 뿐…… 어쩌면 저희가 전립선 비대증의 치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단초를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다음 주에 시도해 보려고 하는데 오실 수 있으면 그날 오셔서 얼굴도 뵙고 조언도 구하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깐 편지지에는 끔찍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뭐…….
그렇긴 할 터였다.
남성 호르몬이 안 나오면 그래, 전립선이 남아나겠나.
한번 커진 게 어찌 작아지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작아질 터였다.
생각보다 우리 몸에 호르몬이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니까.
그뿐이겠나?
탈모도 해결될걸.
‘하지만…….’
탈모는 잠깐 혹했다.
일단 우리 리스턴 박사님…… 이마가 점점 넓어지고 있단 말이지.
조지프도 아버지 따라가려는지 응?
벌써 좀 듬성듬성한 느낌이 있고 말이야?
그에 비해 나는 아버지 팩터(Factor, 인자)는 없는 거 같긴 한데 나중에라도 어찌 될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탈모란 말 그대로 도적처럼 찾아오는 두려운 병이기에 그랬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이 사람 아는 사람?”
교수는 죽었다.
죽은 사람에게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양반이 더 살아서 남에게 크나큰 죄악을 범할 일은 없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해리가 있었다.
“어…… 잘 모르…….”
“닥터 해리는 처음 들어 보는데…….”
여기서 다음 주라고 함은 바로 오늘이지 않나?
당장 찾아내서…….
아니, 어쩌면 늦었을 수도 있었다.
허울뿐인 면접이었긴 했는데, 그럼에도 꽤 오래 걸렸으니까.
그러고 나서 교수님 방 들어와서 이것저것 뒤적거리고 했더니 점심때도 지나 있었다.
쓸데없이 부지런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해 뜨면 움직이는 사람들이 태반인 이 런던에서 해리가 과연 칼을 놀려 댔을까 그냥 쉬었을까.
“알 만한 사람은……?”
“뭐…… 교수님하고 교류했다면 외과 의사일 거예요. 나름 리스턴 박사님이 마당발이시니까, 그쪽으로 가시면 될 거 같은데요?”
쓸데없는 말이나 나불거리던 조지프나 앨프리드랑은 달리 콜린의 말은 꽤 도움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뜩이나 어려운 리스턴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말이 달갑지 않겠지만, 나는 예외지 않나.
게다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냥 띨룽 찾아간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이제 나도 정식 의사고 또 교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새파랗게 어린 나이가 어디 가겠나.
일단 피부색도 노랗고 하다 보니 내 말대로 순순히 따르리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리스턴 박사님이 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난리 나지.
뒤졌지, 뭐.
물론 해리라는 사람이 더 무섭게 생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 했다.
모름지기 과학자라면 그런 확률은 무시할 수 있어야 했고.
“가자.”
“지금 수술장에 있으실 텐데?”
“아…… 거기.”
살짝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예전, 그러니까 아직 리스턴이 그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엔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광장에서 주로 팔다리를 잘랐더랬다.
가뜩이나 비가 자주 오는 런던에서 그런 짓을 했다는 건 거의 뭐 이름만 의사지 망나니였다 이 말인데…….
다행스럽게도 내 마취 시연과 더불어 무통 절단술이 가능해짐에 따라, 사실 완전한 무통은 아니긴 했다,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더 이상 광장에서의 수술은 시도하지 않게 됐다.
대신 강의실에서 잘랐는데…….
우리 원장님이 늘 꽉꽉 들어차는 그 강의실을 보면서 한 가지 계책을 냈다.
“아직도 돈 받고 그러나……?”
“응? 그래야지. 그래서 진짜 부자가 되시는 건데?”
“그건…… 그렇지.”
돈 좋지.
좋은 거지, 암.
사실 나도 돈 좋아합니다.
하지만 수술 관람료를 걷는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냥 뭐 도덕적으로 좀 켕긴다, 이 정도가 아니라 감염의 위험을 높일 수 있어서 더 그랬다.
그렇다고 감염 운운할 수도 없었다.
아직 그런 게 입증되지 않은 세상이니까.
그냥 두기는 양심에 찔려서 학생들 공부하는 곳에 잡상인이 껴서야 되겠냐고 했더니, 원장님도 그건 좀 아니란 생각을 했는지 알겠다고 했다.
-런던 의과 대학 극장(시연 중)
그 결과 만들어진 악의 참상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의과 대학 극장이라니…….
게다가 시연 중이라니.
어찌 보면 내 탓이었다.
원장님이 내 의견을 받아들여서 강의실 하나를 통으로 뜯어서 아예 극장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똑똑.
-시연 중입니다. 눈 안 보여요? 늦었으면 다음 수술에 와야지. 어차피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데.
하여간, 안에 들어가야 할 거 같아서 문을 두드렸더니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이들이 꽤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벌써 여러 차례 똑똑거린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이 말이었다.
-나 닥터 평입니다.
-히에엑.
이해는 가지만, 어쩌겠나.
지금 다른 사람들 응?
거세당하게 생겼는데.
해서 난 평이고, 리스턴 박사님이랑 잘 아니까 들여보내 줘라, 긴히 할 얘기가 있다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내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만 문이 벌컥 열렸다.
“교수님인 줄 모르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 네네.”
“아직 자르고 계셔서 조금만.”
“네.”
그러곤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잘 보니까 리스턴 박사님 밑에서 그래도 꽤 구른 사람이었다.
내가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 아마 내 선배겠지?
그런데도 이러는 걸 보면 역시 교수가 좋긴 좋았다.
‘하긴…… 여긴 뭐 의사 되려면 여러 교수 추천이 있어야 하니까…….’
이게 다 악습 때문에 더 그러는 거라 이 얘긴데…….
나중에 차차 고쳐 가면 되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오히려 좋잖아.
하여간 나는 그렇게 과도한 환대 속에 안으로 들어간 뒤 옆으로 비켜섰다.
극장…… 아니, 수술대 주변은 말 그대로 피범벅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다리를 자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정형외과 수술이라는 게 피가 팍팍 튀고 그러거든.
‘역시 저쪽도 손을 좀 봐야 해…….’
잘려 나온 다리를 내려다보니 발에 난 상처가 발단이 되어 이 지경까지 온 모양이었다.
잘 보면 막상 다친 상처 자체는 별것도 아니었다.
소독만 제대로 하고, 미리 썩은 조직 좀 잘라 냈으면 절대 절단까지 갈 일은 없었다고…….
‘이게 다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이건데.’
안 그대로 절단술이 지나치게 많다 싶어서 리스턴 박사의 케이스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절단 수술의 가장 흔한 원인은 일단 당뇨발하고 교통사고거든.
그 외에는 잘 없어.
없어야 하고!
물론 이 시대에는 외상이라는 게 더 흔할 테니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뜯어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상처가 썩는 게 치료의 일환이라던가…….
미친놈들이 그런 믿음을 의사고 환자고 다 가지고 있었다.
‘하…… 진짜 갈 길이 머네.’
나는 왜 몸이 하나뿐인 걸까.
여러 개였으면 이것저것 다 고쳐 줄 텐데.
딱 하나뿐이니까 제일 급한 것부터 중구난방으로 돌봐야 하잖아.
‘일단은…… 거세부터 말리자.’
나는 애써 마음속을 정리한 후, 차분히 리스턴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저 양반이 개념이 부족한 것일 뿐이지 그 개념을 토대로 한 상황에서 재능이 부족하거나 한 건 아니란 점이었다.
늘었다, 그 와중에.
혈관 결찰(Ligature, 묶기)하고 하는 게 확실히 달라졌어.
더 빠르고, 더 세밀해졌다.
무조건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수술을 가르쳐도 잘하겠지. 기관 절개술도 나 빼면 제일 잘하기도 하고…….’
하여간 마취가 생긴 덕에 여유가 생겼다고는 해도 여전히 기가 막히게 빠른 것이 리스턴의 수술이었다.
나는 그렇게 끝나자마자 아직 피 칠갑을 하고 있는 상태의 리스턴에게 다가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게 뭐? 하고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리스턴은 칼을 이리저리 휘두를 정도로 화가 났다.
“뭐? 무슨 그런 흉악한…… 마침 내가 아는 놈이니 가세! 앞장서게.”
칼로 죽이라는 건 아니었는데…….
‘어떻게 되겠지, 뭐…….’
내가 맞을 일은 없지 않나?
가면서 화가 좀 가라앉을 수도 있고.
해서 일단 그렇게 극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