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27)
검은 머리 영국 의사-127화(127/505)
127화 멈춰 [3]
도살자 해리라고 했나?
그 새끼는 진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뛰었다.
아무래도 의대에서 가르치는 과목 중에 승마만 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빨라, 시발.
육상 선수야?
“하악, 하악.”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와중에도 멈출 수 없는 건…….
일단 놀랍게도 내가 이 집단 중에서는 제일 빨라서 그랬다.
미친놈들이야?
내가 응?
전생에서부터 운동이라는 건 단 한 번도 잘해 본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느리냐고.
“후욱, 후욱.”
뭐 어차피 이 집단도 생긴 게 좀 험악해 보일 뿐, 의사 집단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또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리스턴 박사님?
댁은 이것보단 빨라야지.
“뭘…… 뭘 보나.”
“아니, 아닙니다.”
아닌가?
몸이 너무 무거워서 느린 건가?
그래, 저 양반은 그렇다고 치자.
근데 다른 놈들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흐, 흐. 살…… 살려 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발을 부리나케 놀리고 있으려니, 앞장서서 가던 도살자 놈의 비명 아닌 비명이 들려왔다.
이제 보니 저 새끼가 저렇게 빠를 수 있는 건 죽음의 위협을 느껴서였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직 우리 얼굴도 본 적이 없는데 저 모양이라니…….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누가 ‘나와’라고 말했다는 것만으로 저리도 겁에 질려서 뛸 수 있는 걸까.
“평!”
“응?”
아무리 봐도 좋은 삶은 아닐 거 같았다.
일단 의사한테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거부터가 심상치 않잖아?
게다가 오늘은 사람 불알까지 땄을 게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나 아까 깨진 창문 틈새로 아랫도리가 붉게 물든 누군가를 본 거 같어…….
“비켜!”
아무튼, 뒤에서 고함이 있길래 돌아봤더니 우리의 희망 리스턴 박사님이 길가에 떨어져 있던 돌덩이를 집어 들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걸 집어 들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돌이었다.
숫제 바위랄까?
힘이 센 것과 잘 맞히는 건 별개의 문제 같아 보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내가 맞으면 한 방에 뒤질 게 뻔해 보여서 부리나케 옆으로 튀었다.
그러던 와중에 길가에 널려 있던 똥을 밟은 거 같긴 한데…….
부우웅.
그따위 것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컥.”
와.
저게 날아가서 맞네.
리스턴…… 당신은 의사가 아니라 뭔가 스포츠 같은 걸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끄윽…… 끅.”
아무튼, 도살자 해리는 허리에 돌을 맞아 널브러진 후에도 기어서 도망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잡히면 죽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우린 그냥 불알 따지 말라고 온 건데…….
“이 친구, 달리기가 더 늘었네.”
슬슬 불쌍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처절하게 기어가는 녀석의 주변으로 나를 비롯한 일행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 선두엔 당연하다는 듯 리스턴이 있었다.
“으응……?”
그 목소리가 낯이 익었는지 해리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곤 리스턴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흐어…… 허어. 으어어어.”
“아까 허리에 돌 잘못 맞았나?”
의사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약간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보니, 명색이 명의를 자처하고 있는 리스턴이 참지 못하고 나서서 그의 머리카락을 쥐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다.
저게 딱히 도움을 줄 거 같진 않았지만…….
“개…… 개자식아…… 이름…… 이름을 말했어야지! 난…… 난 또……!”
“그러게 평소에 제대로 된 의사로 살았으면 이렇게 도망칠 일도 없지 않나?”
“너…… 너……!”
해리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혼절했다.
어쩐지 나는 그가 하고 싶었을 말을 알 것 같았다.
적반하장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이 런던에서 리스턴만큼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도 없을 테니까.
물론 그만큼 많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는데…….
사망률이 50%에 육박하는 수술을 해 온 사람이잖아.
차라리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게 더 생존율이 높다는 얘기였다.
“기절을 해? 사람 얼굴을 보고?”
리스턴은 그렇게 넋을 놓아 버린 해리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천천히 다가온 마부를 향해 말했다.
“이거 싣죠.”
“아…… 네, 교수님. 해부실로…… 갑니까?”
“아니, 아니. 큰일 날 소리! 오해하겠어!”
리스턴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우리들을 둘러보면서였는데, 솔직히 나는 리스턴이 어디 가서 시신 주워 온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도굴만 안 하면 되지 뭐…….
그리고 이 자식은 막말로 당장 교수형에 처해도 되는 놈 아닌가?
세상에 전립선 비대증 치료하겠답시고…….
“그럼 어디로……?”
“일단 저기로 가자고. 저 병원. 잠깐 사이에 멀리도 뛰어왔네.”
하여간 우리는 해리를 마차에 싣고, 옆을 따라 걸었다.
애초에 마차 타는 사람이 잘 오지 않는 동네인 데다가 리스턴이라는 인간 백정이 곁에 있다 보니 구경꾼들이 몰리긴 하는데 죄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사실 마부 아저씨도 리스턴에 비해 멀끔한 것일 뿐, 객관적으로는 상당한 인상의 소유자인 데다가 아까부터 권총을 아예 드러내 놓고 있어서 더 그럴 터였다.
내가 알기로 저러면 경찰한테 잡혀갈 텐데, 뭔가 딜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뭐 요새 리스턴 박사님과 경찰 사이에는 끈끈한 정이 흐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끼이익.
멀리 뛰긴 했지만 그래 봐야 한동네 안 아니겠나.
금세 해리 치료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아후.”
“이게 뭔…….”
“개 같은 냄새가 나네.”
내가 진짜…….
19세기 와서 온갖 악취에 단련이 되었다고 믿고 있었거든?
아니, 단련이 된 게 맞다.
해부 실습실만 몇 번 얼쩡거려도 저절로 사람이 강해지니까.
근데 여기서 나는 냄새는 나뿐만 아니라 토종 19세기인들에게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벽면에 죄 이상한 풀과 약초뿐 아니라 짐승 내장 같아 보이는 것들이 함부로 걸려 있었다.
‘지가 먹었을 거 같진 않은데…….’
중세 시대에 괜히 마녀사냥이 있던 게 아닌가……?
이런 놈 집에 들어선다면 자연히 악마니 뭐니 하는 것들이 떠오를 거 같았다.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해리 이 친구, 겉으로는 돌팔이 의사 행세를 하면서 뒤로는 사탄 숭배자였던 것은 아닐까?
“일단 저기다 눕히지.”
“아, 네.”
냄새에 혼미한 와중에도 리스턴은 괴력을 발휘해 해리를 혼자서 들고는 아마도 병동일 곳에 들어가 아무 데나 내려놓았다.
침대…….
그래, 이것도 침대긴 하지.
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거 위에 아마도 버려진 옷가지나 모래 같은 것을 넣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매트리스가 얹어져 있었다.
뭔 와신상담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봤을 땐 멀쩡한 사람도 일단 여기 뉘어 놓으면 골병 걸리기 딱 좋아 보였다.
“아후…….”
질감도 질감이지만 예의 그 위생이 제일 커다란 문제였다.
우리 병원도 개판인데 여긴 뭐 어떻겠나.
원래 어떤 색깔이었을지조차 짐작이 잘 안 가는 가운데, 노랗고 빨간 액체가 덧칠해져 있었다.
이런 걸 보는 게 처음도 아니고, 정말 매일같이 보지만 볼 때마다 궁금해졌다.
그냥…… 이런 걸 보면 생리적인 거부감 같은 건 들지 않는 건가?
“이봐.”
물론 이런 걸 이 상황에서 생각하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리스턴은 솥뚜껑만 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별 망설임 없이 누워 있는 해리의 뺨을 후려쳤다.
저기서 조금만 더 셌으면…….
내가 단언하건대 죽었다.
“크헉.”
“너 저 환자…… 거세했나?”
실제로도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리스턴은 으르렁거리는 표정으로 해리에게 물었다.
턱으로는 옆 옆에 있는 환자를 가리키면서였는데 내가 아까 잘못 본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랫도리가 빨게…….
그리고 정신이 없어 보여…….
“거세라니! 전립선 비대증에 대한 치료일세. 어어 주먹 내려놓고! 내려…… 아니, 내 배로 내리면…… 컥.”
“전립선 비대증이라고 고환을 제거해?”
“나…… 내 아이디어가 아닐세! 닥터 론의 아이디어라고! 그러고 보니,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 내 영혼의 단짝이신데…….”
“론은 죽었어.”
“허.”
리스턴의 말에 해리의 얼굴에 두려움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럴 만했다.
약간…….
리스턴이 죽였다는 말처럼 들렸거든.
심지어 병으로 죽었다는 걸 아는 나도 그렇게 들렸으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야 얼마나 겁이 나겠나.
“왜…… 왜…… 사, 살려 주게.”
“무슨 소리지? 론 교수는 집에서 죽었어.”
“그, 그러니까 살려 주게.”
“내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노환으로 간 거야.”
“오, 오십도 안 된 사람이 무슨…….”
“오십 넘어 사는 사람이 많던가.”
“아. 그건 그렇지.”
해리는 간신히 납득한 얼굴로, 그러나 두려움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리스턴이 턱으로 가리킨 환자를 돌아보았다.
“그…… 그래. 고환을 제거했네.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역사적인 사례가 증명하네. 내 장담하지. 이제 런던의 노인들은 다 내게 와서 고환을 제거하게 될걸세.”
“환관이 될 거라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네! 하지만 내 확신하네. 닥터 론은 우리 인류를 드디어 전립선 비대증의 손아귀에서 구원한 거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고환 때문에 전립선이 커지는 걸세. 고환을 다친 사람들은 소변 증상이 없다니까?”
“흐으음…….”
리스턴은 이것 봐라? 하는 얼굴이 되어 나를 돌아보았다.
뭔가 설득이 된 느낌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만약 리스턴이 팔다리 자르던 솜씨로 고환을 따기 시작한다면…….
런던은 고자 천국이 되지 않을까?
이 명성으로 밀어붙이면 도리가 없었다.
“교수님……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멀쩡한 고환을 자르는 게 말이나 됩니까? 역사적 사례 운운하는데 환관들을 보면 수염도 없고 근육 발달도 더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아.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닥터 평. 만약 획기적으로 개선이 된다면…… 혹하는 환자들이 꽤 있을걸세. 아, 그러고 보니…… 오늘 몇 명이나 땄지?”
“다, 다섯.”
“이거 보게. 아직 증명도 안 되었고, 돌팔이로 유명한 해리가 말했음에도 벌써 다섯 명이야.”
“하…….”
이 시대 사람들은 지나치게 용기가 넘치는 거 아닌가?
뭘 믿고 그걸 자르러 오는 거야?
아니, 일단 옆에 할아버지는 지금 돌아가실 거 같잖어…….
소변 보기 전에 뒤지게 생겼다고.
‘하지만…… 어쩌겠냐. 시대가 이런데.’
죽음이 너무 가까운 시대이지 않나.
게다가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기는 할 터였다.
실제로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소변이 쌓여서 정말 고통스럽게 가는 경우도 있거든.
‘내가…… 시발…… 책임지고 수술 만든다…… 내가…….’
비록 비뇨기과는 아니지만…….
이놈들보다는 낫지 않겠냐.
인류가 200년이라는 세월을 허송세월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줘야겠다.
“교수님, 아니, 형님. 제가 새 수술법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동안만 이 미친 짓거리를 좀 막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