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2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28화(128/505)
128화 멈춰 [4]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왜…… 어? 이런 당연한 일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해야 하는 건가.
어?
아니…….
생각이라는 걸 조금만 해 보면 그렇잖아.
“평.”
“네.”
내 얼굴에 뜬 불만을 읽은 걸까?
리스턴은 조금 진중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힐끔, 저 멀리 누워 있던 노인을 바라보면서였다.
“이 소변을 못 보는 거 말일세. 이게 죽기보다 힘들단 말이지.”
“형님도 그러십니까?”
“나? 나야 아직 괜찮지. 하지만 아버지도 그랬고…… 말년에 이거 때문에 모진 고생을 하셨다네.”
“음.”
고생이라…….
하긴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일단 소변을 못 본다는 거부터가 문제인데…….
거기에 더해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른 여러 병이 들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는 인슐린이 개발되기 전까지 불치의 병이었던 당뇨도 있다.
이게 뭐 현대인의 질환인 것처럼 묘사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늘어난 게 현대에 이르러서일 뿐 역사적으로 문제를 무던히도 일으켰던 질환이지 않나?
‘당뇨가 있으면…… 여러 신경에 문제가 생기고 그러면서 배뇨장애도 발생하지…… 거기에 조절되지 않는 전립선 비대증까지 있다……?’
이건 뭐 신이 그냥 이쯤 되면 죽으라고 명령을 내린 거나 다름없었다.
아마 저 노인도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수술을 받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렇게 수상쩍은 곳에서 수술을 함부로 받을 리가 없을 거 같았다.
“절박한 사람들이 많다 이 말일세. 당장 내 환자들 중에서도 그렇고, 지인 중에서도…… 무슨 방법이라도 쓰겠단 사람이 많아. 근데 지금 전립선 비대증 치료라는 것이 어떠한가?”
“위험하고, 무엇보다 효과가 적죠.”
나는 리스턴의 말에 교수의 방에 있던 기구와 수술법에 대해 쓰여 있던 책자 및 서류 등을 떠올렸다.
나름 여러 가지를 고안해 본 거 같기는 한데…….
그래 봐야 별다른 개선은 없었던 거 같았다.
그러니까 거세술을 떠올렸겠지.
“그래, 그런데 만약…… 저 수술로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건 나로서도 별다른 방도가 없다네. 추천을 할 수밖에 없어.”
“네? 아무리 그래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나? 나도 이게 꺼림칙하긴 하다네. 사실 처음에 자네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해리 이 자식을 죽일까도 했어.”
“어우.”
의사가 돼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을 하는데 이렇게 잘 어울릴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런가 해리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죽을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 것이겠지.
하지만 그 순간, 리스턴의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얘기를 더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어. 하긴, 우리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데…… 아무 근거도 없이 남의 그…… 소중한 것을 제거했을 리가 없지.”
아니…….
나쁜 사람이거나 적어도 미친 사람인 거 같긴 한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
“아무튼, 내 말의 요지는 이것일세.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런 말도 안 해. 하지만…….”
리스턴은 내가 벙찐 사이에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을, 그러니까 적절한 말을 찾고 있는 듯했다.
시간이 좀 걸렸다.
답답했지만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기도 했다.
그동안 나도 나름대로 이 상황을 합리화할 수 있었거든.
‘그래…… 호르몬에 대해 아직 아는 게 없지.’
호르몬이라는 게 밝혀지는 게 아마도 19세기 후반이거나 20세기 초반이었을 거다.
임상 의사가 되는 데 있어 그리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억이 나는 건 이게 호르몬이기에 그랬다.
현대 의학에 있어 호르몬만큼 재조명받게 된 물질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이나 중요한 놈 아닌가.
게다가 내 절친 중 하나가 내분비내과를 했는데, 그 녀석 별명이 호르몬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곳이 없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야.’
남성 호르몬.
남성이 남성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녀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게 사라진다?
그럼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이 된다 이건데…….
알고서 선택한다 해도 쉽지가 않을 텐데 모르고 선택하게 되었다면 이 후폭풍을 어찌 감당하겠나?
‘모르니까…… 이러는 거야.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어.’
하지만 이 시대는 무지한 시대였다.
현대 의학이 이룩한 거의 대부분의 긍정적인 지식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럴 수 있다.
이럴 수 있어.
이 말을 자꾸 반복하다 보니 마음이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자네의 천재성을 믿겠네. 부디…… 몇 개월 안에라도 수술법을 들고 오게나. 그전까지는 내가 책임지고 이놈 손을 묶어 두지. 환자들도 엄한 소리 못 하게끔 하고. 괜히 소문이라도 번지면…… 차라리 이놈이 나서는 것만 못하게 될 수도 있네.”
리스턴의 말을 정리하자면 거세하고 실제로 소변이 편안하게 나온다는 게 알려지게 되면 우리 실험 정신 미치게 뛰어난 19세기 의사들…… 아니, 의사들 아니더라도 그냥 칼깨나 쓴다는 놈들이 나설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말이 되나 싶을 테지만 진짜 그랬다.
“아무튼, 자네는 그렇게 하도록 하고…… 해리.”
“네, 네.”
분위기가 심각해진 지 오래다 보니 리스턴의 말에 해리는 극존칭을 썼다.
태도도 그랬다.
무릎을 잘 모으고 손도 잘 포갠 채로 녀석은 리스턴 박사의 말을 경청했다.
“너 오늘 수술 몇 개 했어.”
“4, 4명이요.”
“근데 왜 여기 둘뿐이야.”
“하, 하나는 죽었고…….”
“죽어? 이 개새끼가.”
리스턴은 하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도 한숨과 함께 잠시 묵념했다.
세상에…….
이따위 수술을 받다가 돌아가시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죽음이 있단 말인가.
“나머지 하나는?”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집에 갔습니다.”
“집에? 아니…… 저런 수술을 하고 집에……?”
리스턴이 이해가 안 된다며 뒤를 돌아보았다.
노인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내가 확인했던 사람 그러니까 사타구니 주변이 붉게 젖은 사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나마 피는 안 나는지 멀뚱히 누워 있는 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봐도 멀쩡히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진 않은데…….
“네. 네. 집으로…… 꽤 지체가 높으신 분이라서요.”
“거짓말 치지 마. 네까짓 게…….”
“원래 교수님께 받으려 했는데 변수가 생겼다고 제게 왔습니다.”
“이런 망할.”
교수라면 그래도 꽤 명망이 있던 사람 아닌가.
아니, 그 개인은 몰라도 병원은 지금 온 런던을 넘어 영국 전역에 어마어마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마취에 더해 리스턴의 절단 수술 그리고 환상통 등에 대한 치료 덕분이었다.
그러니 이놈의 말이 꽤나 신빙성이 있다 이 말인데…….
“누군가?”
“제이미 벨…….”
“이런 미친. 귀족을……? 이거…… 이건 내 선에서 완전히 틀어막는 게 어렵겠는데.”
리스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막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넋두리를 쏟아 내면서였다.
그걸 보던 내 입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저 리스턴의 입에서 저런 얘기가 나올 줄이야…….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저럴까.
“기도를…… 아니지. 근데 또…… 의사가 되어 가지고 환자가 더 아프게 만들 수는 없고…… 하아…… 이것 참. 평.”
“네.”
“몇 개월도 안 될 거 같아. 만약 이게 단 몇 주 내에라도 개선을 시킨다면…… 귀족들 중심으로 소문이 날 공산이 있네. 그치들이 이놈을 부르게 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못 막아.”
“그럼 도살자가 가서 귀족들 거세시키게 된다…… 이 말입니까?”
“그렇지. 최대한 그럴 수 없도록…… 흐음. 그래, 일단 납치를 하지.”
“네?”
좀 전이라면 납치라는 말을 저렇게 당당히 해도 되나 싶었을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우린 의사니까?
하지만 거세 양성을 하게 된다면 그런 일은 막아야 했다.
“우선…….”
“끅.”
리스턴은 명치를 후려쳤다.
그러자 진짜 만화에서 본 것처럼 바로 해리가 기절했다.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가운데 리스턴은 쓰러진 해리를 뒤에 두고, 환자들에게 다가갔다.
“으으…….”
당연하지만 환자들은 쫄아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 리스턴은 선량한 의사를 때려눕힌 갱단 두목 그 자체였기에 그랬다.
“좋은 말로 할 때, 같이 갑시다들?”
“어…….”
그렇게 말하면 오해만 깊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하여간에 환자들은 중대한 수술을 받은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부리나케 움직여서 마차에 올랐다.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단은 그대로 두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그닥.
하여간, 우리는 그렇게 세 명을 납치 아니 한 명은 납치 나머지 둘은…….
그래, 전원(轉院)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좀 강제성을 띠고 있긴 하지만…….
원래 21세기에서도 환자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하기도 하잖아?
물론 보호자에게 따로 연락도 해 보고 해야 하긴 하지만, 내 고민의 끝을 마주하기도 전에 이미 병원에 도착한 참이었다.
“다 왔습니다.”
“좋아. 일단 환자분들은…… 절단 병동으로 가지.”
“네?”
“절단하긴 했잖아.”
“아…… 하긴, 뭐…… 절단했죠.”
리스턴 박사는 그럴싸한 이론과 함께 환자 둘을 데리고 절단 병동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어차피 억제대를 비롯해 환자를 묶고 가둬 둘 만한 장비와 인력까지 있으니 어찌 보면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아, 안 돼.”
해리?
이 녀석은 좀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닥터 케인. 부탁합니다.”
“결석 환잔가? 아니, 해리잖아? 도살자. 이놈은 여길 왜?”
“살려 줘!”
결석 제거술의 일인자 케인.
그는 안 그래도 날카로운 칼을 숫돌에 갈고 있었다.
생긴 것도 음침한 게 진짜 어둠의 암살자 그 자체였다.
해리가 리스턴을 마주하고 있을 때보다도 더 떨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죽…… 아니, 죽이는 게 아니라. 저기 억제대에 묶어 주세요.”
“으응? 처형인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나는 가죽으로 이루어진 케인만의 억제대를 힐끔 바라보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러자 백날천날 끔찍한 수술만 해 대던 케인도 혀를 내둘렀다.
사실 그 또한 다루는 부위가 비슷하다 보니 이따금씩 전립선 비대증에 대한 수술을 하기는 했는데, 이런 발상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세상에…….
“미쳤군. 근데 효과가 있다고?”
그러면서 솔깃해하길래, 나는 부리나케 말을 더 이어야만 했다.
“아니, 아직 모릅니다! 그리고 기존 방식을 조금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어요!”
“으음. 으으음.”
“다른 사람 자를 생각은 부디 그만두시고…….”
“뭐, 나도 당장 밀린 수술이 있어서 그렇게는 못 하네. 하지만 효과가 있다면…… 그리고 개선이 안 된다면 충분히 해 볼 수 있겠지.”
시발.
어찌 된 게 제정신 박힌 놈이 하나도 없는 거냐…….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만들긴 해야겠구만…….’
뭐, 괜찮았다.
난 미래의 수술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하면 된다.
내가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