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32)
검은 머리 영국 의사-132화(132/505)
132화 개선 [3]
“여긴가?”
“네. 확실합니다. 동전 좀 쥐여 주니까 다 불던데요.”
우리는 마부를 따라나섰다.
마부는 꽤 유능한 사람인 데다가, 이번 일에는 어쩐지 사명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가 교수가 찾아냈던 이들 중 런던에 사는 이들을 여럿 찾아낸 참이었다.
뭐…….
교수가 주로 타던 마차를 몰던 이를 이용했다고 별거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우리끼리였다면 그런 방법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 대단한 건 맞지 않나?
“좋구만. 자, 이걸로 갈음하게.”
“이건…… 이건 너무 많은데요.”
“괜찮네. 그만한 일을 해 줬어. 생각해 보게 런던에 고환 없는 이들이 가득 찰 뻔했단 말일세.”
“아…… 네, 감사합니다.”
리스턴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지 꽤나 거금을 마부에게 건네주었다.
아마 저런 보스 기질이 리스턴이 평소에 좀 거친 행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따르는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나도 좀 해 볼까…….’
돈…….
돈이라.
사실 이제 꽤 많지 않나?
부하 놈들에게 베풀 만큼은 되었다.
‘위에 갖다 바칠 수도 있는데…… 돈 준다고 원장이 되진 않겠지?’
그래, 기반이 작은 게 아니라 숫제 없다시피 한 내 상황을 고려해 보면 확실히…….
똑똑.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리스턴 박사님은 허름한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말이 좋아서 허름한 것이지 제대로 말하자면 이건…… 이건 집이 아니었다.
내 팔자가 좋아서 이따위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나도 나름 대학 병원에 재직하던 시절에 쪽방촌 의료 봉사도 하고 했고 그때도 정말 놀랐는데 이건…….
‘이게 창문인가……?’
창문이랍시고 뚫려 있는 작은 구멍 사이로 얼핏 사람들이 보였는데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둘 이상은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은 사이즈의 판자때기인데 여럿이 보이다니.
“뉘슈.”
하여간 문 안쪽에서 곧 목소리가 들려왔다.
걸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이 골목 주변을 오가는 이들은 죄 이렇거든.
아마…… 각 잡고 검진해 보면 후두암 환자도 꽤 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리스턴 박사입니다. 런던 칼리지의.”
“박사? 그런 사람이 왜.”
“여기 휴라는 선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난데.”
“할 얘기가 있으니 문 좀 열어 보시죠.”
“돈이라도 줄 건가?”
얘기를 듣다 보니 전에 돈을 좀 받은 모양이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이 런던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첨병이거든.
안 되는 것도 돈이면 거의 다 되는 곳이다 보니 염치 불고하고 이런 식으로 나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줄 돈이…….
‘응?’
돈이 있는데…….
이 양반은 왜 이럴까.
얼기설기 잠겨 있는 문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서 이게 열려 있나 싶어서 당겨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교수님, 잠겼는데요?”
“그래?”
제대로 된 문고리가 아니다 보니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화장실 문 잠그듯이 걸쇠가 걸려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철이다 보니 쉽게 열리진 않을 거 같았는데.
“열렸는데.”
“아니…… 부…… 부쉈…….”
리스턴은 문고리를 잡지도 않고 그냥 주먹을 찔러 넣고는 그렇게 난 구멍을 잡아당기는 식으로 문을 열었다.
당연하지만, 안에 있던 늙은 선원 휴는 뒤로 물러나 녹이 잔뜩 슨 쇠꼬챙이를 집어 들었다.
“뭐, 뭐야! 너 병원 사람 아니지!”
누가 봐도 병원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 테니…….
우리가 억울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저 칼.
아마 세상 그 어떤 날붙이보다 위험하지 않을까?
파상풍에 대한 치료가 불가한 세상인 이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일단 진정을 좀.”
허나 리스턴은 딱히 그 칼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칼을 꺼내니까 기분이 상한 듯했다.
“나쁜 놈이잖아. 갑자기 칼을.”
“그렇게 따지면 문은 우리가 부쉈는데요?”
“문을 안 열어 줬잖아. 돈 달라고 하고. 강도야?”
“그.”
가끔 이렇게 대화가 평행선을 달릴 때가 있긴 했다.
그렇다고 칼을 눈앞에 둔 와중에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너, 너 이 새끼들. 뭐야!”
칼 든 늙은 선원도 우리가 황당한지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벌써 구경꾼들로 가득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오는 사람은 없었다.
스르릉.
소드마스터…….
아니, 외과 의사 리스턴이 자신의 메스를 뽑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메스라기엔 너무 크고 거대했…….
아니지.
“교수님?”
“아, 오해 말게. 어디까지나 방어를 위한 거야.”
“아…….”
“아무튼, 휴. 대화나 하자고 온 걸세.”
하여간, 리스턴도 아예 정신이 나간 사람은 아니다 보니 칼을 뽑긴 했지만 일단 차분한 음성으로 대화를 요청했다.
“대화? 어떤?”
다행히 휴도 리스턴의 덩치와 저 거대한 칼을 보고 나니 정신이 바짝 들었는지 한층 누그러진 기색이었다.
사실 덤벼 봐야 별 소용도 없을 터였다.
죽을 게 뻔했으니.
‘이래저래 다행이구만…….’
어찌 보면 리스턴이랑 와서 일이 좀 커진 느낌도 들지만…….
뒤를 보면 그런 생각도 확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뒷골목 행인들이란 언제고 강도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
생긴 걸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건 나쁜 일이라지만 보라고 저 인상들을.
나 혼자 왔으면 벌써 해체되어서 어디론가 사라졌을 게 뻔했다.
“당신 고환이 없지?”
하여간, 내가 간신히 합리화를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달려가 휴의 손에서 꼬챙이를 치워 버린 리스턴이 입을 달싹였다.
“네?”
어이가 없어서 돌아보니, 리스턴은 뻔뻔한 얼굴 그대로 보고 있었다.
물론 나보다는 휴가 더 그럴 터였다.
“뭐, 무슨. 무슨…… 개, 개소리야!”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져서 외쳐 대는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잔뜩 신경 써서 낼 때보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잔뜩 가냘파져 있기도 하고…….
내막을 아는 나로서는 좀…… 그랬다.
다행인 것은 리스턴이 안으로 들어가 목소리를 죽이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 있던 이들은 물론이고 안에 있던 이들도 제대로 엿듣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자네 안 서나?”
“이…… 이 새끼가 점점……!”
다른 이들에게 들리는 건 그저 휴의 당황한 목소리뿐일 터였다.
“마지막으로 해 본 게 언제지? 가까이서 보니 수염이 없군그래.”
“이…… 이…….”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화가 나기 전에 억울해서 눈물부터 나온다던가?
휴가 그랬다.
다 늙은, 아무리 남성 호르몬이 사라졌다지만 지금껏 살아온 험악한 세월에 의해 조형된 만만치 않아 보이는 얼굴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스턴도 이쯤 되면 좀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 부리나케 동전을 좀 꺼냈다.
“자세히 말하면 돈을 주지.”
그때 휴의 눈동자가 지나치다 싶게 흔들려서 나는 어쩐지 가슴이 더 아팠다.
“이럴 게…… 아니라. 앉아서. 앉아서 얘기하죠.”
동시에 말투도 눈에 띄게 공손해졌다.
역시 돈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싶었다.
“앉을 데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여기서 말하지.”
“그, 그럼 다른 사람들 다 나가라고 해 주세요. 내, 내 위신도 있지 않습니까?”
“위신……?”
그런 것도 있냐는 눈길에 휴는 손사래를 쳤다.
“이, 있습니다.”
리스턴은 그 모습에 순순히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곤 이 작은 오두막에 있던 나머지 4명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아마 그냥 말했어도 나갔을 텐데 여전히 한 손에 칼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금세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렇게 오두막 안에는 나까지 셋만 남았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리스턴 박사님…….”
문까지 닫자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가 정말 못 견딜 정도로 심해졌지만, 리스턴은 비위가 좋은 편이고 나도 해부 실습하면서 많이 강해진 편이라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꽤 중요한 순간이었다.
‘혹 조금이라도 기능이 남아 있다면…….’
고환이 다 사라졌다면, 당연하게도 남성 호르몬이 제거된 것이다 보니 그 기능은 아예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누가 기계적으로 자른 게 아니라 일하다 다친 사람이지 않나.
우연히 한쪽만 남아 있다면 또 모를 일이었다.
“알고 있다면 얘기가 빠르겠구만. 고환이 없지?”
“그…… 네. 대체 어디서…… 그 교수 새끼가 불었습니까?”
“뭐 연구서에 써 놨지.”
“썼다고? 내 이 새끼를 그냥.”
“이미 돌아가셨네.”
“아.”
엉덩이를 들썩이던 휴는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얼굴로 다시 벽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래서…… 소변 잘 본다고 진술했었지?”
“아, 네.”
“흐음…….”
리스턴은 말을 하다 말고 휴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원래 남의 머리를 너무 주의 깊게 보는 건 빈말로도 예의 바르다 할 수 없는 일인데, 심지어 휴는 머리가 많이 없어서 더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왜…….”
“머리가 없네?”
“아니, 왜 아까부터 자꾸만 뭐가 없다고…….”
“평,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리스턴은 상대의 불만 따위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휴보다는 리스턴이 무서웠기 때문에 지체 없이 대꾸했다.
“빠지고 나서 없어진 건 소용 없어요. 다시 나진 않을 겁니다.”
“아, 그런가.”
리스턴은 어쩐지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갔다.
“아무튼, 자네 잘 서나?”
“너무 개인적인 얘기 아닙니까?”
“중요한 일일세. 온 런던의 명운이 자네 입에 달려 있어.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았을 거야.”
진중한 말투에 휴는 이 새끼가 지금 자길 놀리는 건지 아니면 진짜인지 모르겠단 얼굴이 되었다.
아니, 상대가 리스턴이 아니었다면 무조건 놀린다고 간주하고 화를 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칼 든 리스턴 앞에서 자기 성질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무슨…… 무슨 소리이신지.”
“자네 때문에 지금 런던 사람들 다 고환을 잃게 생겼네.”
“네?”
“자네를 포함해 고환이 없는 사람들이…… 소변 보는 데 불편함이 없다고 해서 지금 소변 보는 데 불편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르려고 하고 있다는 말일세. 내가 알기로 오늘 벌써…….”
리스턴은 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경…… 경찰들이 와서 데려갔네.
귀족이 움직인 모양이었다.
소변 보고 싶은 욕망이야 귀족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그 욕망을 실현할 만한 방도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랬으면 안 되었는데 해리를 데리고 가 버렸다.
도살자 해리를…….
“크흠.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기기 전에 고환이 없어 생기는 결점 중 치명적인 걸 확인해야 하네. 말하게.”
“그…….”
휴는 얼떨떨한 얼굴로 리스턴의 얼굴을 보다가, 리스턴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해지자 부리나케 입을 열었다.
“네, 그…… 실은 구실 못 한 지 오래됐습니다.”
“유레카!”
“저기, 그렇게 너무 좋아하시면 제가 좀.”
“자, 여기 돈 있네.”
“아, 감사합니다.”
“좋아.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