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3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33화(133/505)
133화 개선 [4]
다그닥.
다그닥.
마차는 곧 제이미 경의 저택으로 향하게 되었다.
우리 리스턴 박사님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꽤 좋은 마차였는데, 아까와는 달리 꽤 심각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저는 왜.”
휴 때문이었다.
늙도록 배에 타다가 이내 심각한 부상을 입고 하선하게 된 이다 보니 당연히 거친 사람일 텐데…….
편견이 아니라 이 시기 뱃사람들은 진짜 어지간히 거친 사람 아니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 대신 술 먹으면서, 전 세계의 각종 이상한 기후와 이민족들과 맞서야 하는 이들이 얌전하겠나.
아무튼, 그는 그로서는 아마 실로 드물게도 바들바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입을 열 때마다 가뜩이나 몸에서 풍겨 오는 악취에 똥내까지 섞여서 참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잘 참았다.
‘치과 쪽…… 양치질…… 안 하고 있겠지?’
뭔가 다른 생각을 하면 뭐든 견디기 쉽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랬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휴가 말을 건 상대는 내가 아니라 리스턴이었다.
“에이.”
그 냄새를 정면에서 맞았다는 얘긴데, 그렇다 보니 인상이 더욱 더러워졌다.
물론 리스턴도 19세기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악취 견디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이다 보니, 딱 그것만으로 반응을 끝내고 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네가 직접 증언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그, 그래도…… 귀족 나으리를 만나는 건 좀.”
“불알이 없어서 그런가, 겁이 많네. 원래는 안 그랬을 거 아닌가. 이런 것도 설득의 단초가 될 테니 좋군.”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러곤 휴를 기똥차게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휴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 대신 그저 당황만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하아. 이게 무섭단 말입니다.”
“‘하아’는 하지 말고. 여기서 죽고 싶나?”
“죄, 죄송합니다.”
“창밖 보고 말해, 지금부터.”
“그건 좀 너무…….”
“너무하는 건 자네 입 냄새야. 아무튼, 이게 다 좋은 일을 위해서라고. 돈도 받아 놓고 이러면 안 되지.”
“그…….”
결국, 휴는 창밖을 보면서 말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까지 기분이 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아무래도 아까 우리가 건넨 돈이 꽤 두둑해서일 터였다.
하긴 어지간한 노동자 한 달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였다.
뭐가 되었건 우리 리스턴 박사님은 좋은 사람이란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말이나 행동이 좀 거칠긴 해도…….
보상은 화끈하잖아?
“어떻게 오셨소?”
하여간, 우리는 곧 런던의 최상위층들이 거주하는 동네에 들어섰다.
제이미 경의 저택은 그중에서도 꽤 자리가 좋은 곳에 있었는데, 딱 마차가 서자마자 바로 경비병이 달려왔다.
경비원이 아니라, 경비병이었다.
진짜 정규 병사란 얘기였다.
‘이러니까…… 우리 교수님도 저어했지…….’
어지간한 상대였으면 어? 우리 리스턴 박사님이 가서 조져 놨지.
불알 자르는 거보다는 어디 하나 부러지는 게 나을 테니까.
하지만 경비병이 따로 와서 지키고 서 있을 정도의 집안이라면 리스턴 아니라 리스턴 할애비라고 해도 무리가 좀 있었다.
너무 무섭잖어.
“런던 의과 대학의 리스턴이라고 합니다.”
“아…… 아! 그때 교수대에서…… 그럼 이쪽은 닥터 평입니까?”
“아, 네. 안녕하십니까. 저를 아시는군요?”
“알죠, 알죠! 해부 쇼도 아주 잘 봤습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카니발이었습니다.”
일단 박사님부터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경찰 쪽이야 서장하고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데다가 일도 같이하고 있다 보니 좀 편하지만, 얘네들은 잘못 걸렸다간 진짜 얄짤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나도 긴장 빡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날 알아봤다.
“여기 그럼 무슨 일로…… 수술이 잘못된 겁니까?”
그래서 그런가. 별 얘기도 안 했는데 지레짐작으로 대화가 진전되고 있었다.
나와 리스턴 박사님은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일단 들어가고 보자고 뜻을 맞추었다.
어차피 좋은 일이지 않나?
특히 나는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추호도 의심을 품고 있지 않았다.
“네, 크게 잘못됐죠.”
“아하. 왕진 오신 거로군요.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들어가시죠.”
그래서인지 눈빛도 반짝 빛났고 애초에 날 알고 있던 병사는 경례까지 붙이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중간에 휴를 좀 애매한 눈으로 보긴 했는데, 그럼에도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해부 실습 쇼…… 쇼라고 하기 좀 그런데 아무튼, 다들 쇼라고 부르는 그것을 하고 나서 교수 된 것 말고는 딱히 그 효과를 체감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실로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좋아…… 확실히 유리해졌어. 이렇게 되면…… 주기적으로 좀 하긴 해야겠는데…….’
어차피 우리 빅토리아 공주님의 지엄하신 명에 의해 조만간 한 번 더 하긴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하게 되면 시신 공수하는 데 문제가 생기지도 않을 테니 사실상 나로선 좋은 일뿐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구상 중인 전립선 수술을 연습하고 싶었지만, 공주님이 와 계시는데 그런 숭한 수술을 진행했다가는 아마 뒤지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 시기 의학을 고려하면 뭐 거의 모든 수술이 시연 대상일 테니 별 상관은 없을 거 같았다.
“음?”
그렇게 정말이지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잘 관리된 정원을 지나 저택 앞으로 가니,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 하나가 달려 나왔다.
앨프리드 선배네 집에도 집사님이 계시긴 하는데, 지금 달려오고 있는 사람을 보니 확실히 집안 차이가 있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생긴 거부터가…….
“형, 진짜 만만치 않게 생겼는데요?”
“괜찮아. 우리는 틀리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칼도 안 들어가게 생겼는데.”
“내 칼은 들어갈걸.”
“뽑아 들 생각은 아니죠?”
“감옥 갈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은 말고.”
우리는 꼬장꼬장해 보이는 집사와 그 뒤를 따르는 다른 하인들을 보면서 짤막한 대화를 마치고 우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뭐죠?”
집사는 불만 어린 얼굴로 물었다.
중간중간 이 새끼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왔나 하면서 대문 쪽도 바라보았다.
병사가 경례까지 하면서 들여보내 줬다는 건 아마 상상도 못 할 터였다.
“런던 칼리지 의과 대학의 외과 교수 리스턴입니다.”
“저는 닥터 평입니다. 저도 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답하는 대신 소속과 직급 그리고 이름을 밝혔다.
종종 이런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 두 의사분이 여긴 왜?”
과연 집사는 조금이나마 표정이 누그러진 채로 물었다.
이번에는 대문 쪽이 아니라 저택 위쪽을 힐끔거리면서였다.
“도살자 해리 때문에요.”
“도살자……? 우리는 저명한 의사로 알고 있었는데. 실험적인 면이 있지만…… 지금 주인님께서는 아주 만족하고 계십니다만.”
“그…….”
제이미 경은 이미 글렀다.
벌써 잘랐으니까.
“그 수술이…… 그게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서요.”
만족이란 말에 고장 난 라디오처럼 버벅거리고 있는 리스턴을 대신해 내가 나섰다.
그냥 나섰다면야 눈살을 찌푸렸겠지만 아까 나도 교수라고 밝혔기 때문에, 선을 넘지는 못했다.
허나 여전히 집사는 나 대신 리스턴을 보고 있었다.
“무슨 소립니까?”
“듣자니 다른 사람도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데…… 말려야 합니다. 이 안에 증인이 있어요.”
“증인…… 읍.”
집사는 마차 안에 탄 휴를 보고는 인상을 썼다.
아무리 19세기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집안 집사쯤 되면 휴 같은 이를 마주할 일이 없기는 할 테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었다.
“아무튼, 다른 사람…… 대미언 경이 와 있지 않습니까? 절대 수술을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 리스턴 박사님과 닥터 평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초대받지 않은 이들이 이렇게…….”
“에헤이! 이럴 일이 아니라니까! 의학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해리 놈은 나쁜 놈이야! 아니 미친놈이라고!”
“그…….”
리스턴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하자 집사도 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원래 의사가 이런 면에서 늘 유리하긴 했다.
의학적이란 얘기를 들이밀면 사실은 그게 아니더라도 이길 수 있거든.
근데 이번에는 심지어 진짜다 보니 텐션도 좋았다.
“정말입니다!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거기에 나까지 가세해 빌다시피 하자 집사도 한 걸음 물러섰다.
“그…… 흐음. 그…… 알겠습니다. 일단…… 오시죠. 대신 소란을 피우시면 안 됩니다. 저택 안에서 고성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게다가 아시다시피 주인님께서 최근에 수술을 받으셔서.”
“네네. 감사합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주어졌지만 괜찮았다.
진짜로 소란 피울 생각은 없었거든.
물론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기준과 이 양반들의 기준이 좀 다를 수는 있는데…….
끼익.
하여간, 우리는 진짜 화려한, 그러면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로비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간 후로도 한참을 걷고 나서야 어떤 방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집사는 문을 열면서도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휴가 소란을 피우지 않을까 하고 뒤를 돌아보니 녀석은 바짝 얼어 있었다.
저 상태로 소란을 피울 수 있다면 그것도 재주는 재주란 생각이 들어서 그냥 안으로 향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러자 해리부터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우리에 의해 묶여 있던 팔과 다리를 연신 주무르면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 앞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 누워 있는 노인이 제이미 경인 듯했다.
옆으로는 점잖아 보이는 젊은 귀족 셋이 서 있었는데 아들이지 싶었다.
반대편에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서 있었다.
‘저게 대미언 경인가요?’
‘아마 그럴 거야. 다행히 아직 상황이 끝난 거 같진 않군.’
안이 넓은 데다가 해리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보니 우리가 온 것을 대부분은 모르고 있었다.
해리도 그랬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를 질투해서…….”
“하하…… 은인을 죽게 놔둘 수는 없지. 그건 그렇고 리스턴? 그치가 시원한 성품이라고 들었는데 옹졸한 면이 있군그래.”
“다행히 연락이 닿아서 살았습니다. 평소에도 저를 두고 도살자니 뭐니 하면서 누명을 씌우는데…….”
“하하. 인사치레는 그만하고…… 내 친구인 대미언 경일세. 나와 같은 증세로 고생하고 있으니…….”
이야.
사람이 눈앞에 없다고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구나 싶어서 옆을 보니 이미 리스턴이 없었다.
“응? 아.”
벌써 저벅저벅 걸어서 해리 옆에 가 있었다.
“근데 누구신가?”
“안녕하십니까, 제이미 경. 저는 런던 칼리지 의과 대학의 외과학 교수를 맡고 있는 리스턴이라고 합니다.”
“히이익.”
인사말과 동시에 해리의 비명이 방 안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