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34)
검은 머리 영국 의사-134화(134/505)
134화 개선 [5]
“갑자기 비명을 지르다니, 이 무슨 실례란 말인가.”
상류층치고 시끄러운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던가.
그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제이미 경이나 대미언 경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
‘나이가 들면 귀가 나빠지는데…… 난청 환자들은 오히려 큰 소리를 훨씬 더 불편하게 느끼기 마련이거든.’
이를 전문 용어로 하면 청각역치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 귀가 안 들리면 안 들리게 될수록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량의 범위가 좁아진다고 보면 쉬웠다.
외과 의사인 내가 이런 걸 어찌 아냐고?
의사라면 다 알아야 하는 그런 거냐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 베프가 이비인후과 의사라 그랬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닥터 리스턴. 자네가 유명한 의사라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청하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죄송합니다. 너무 급한 사안이라…… 의사로서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은.”
리스턴에게 무려 사과라는 걸 하게 만든 제이미 경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리스턴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너무 어색해서일 터였다.
그게 아니면 그의 굵은 목과 팔뚝 그리고 우람하다는 말조차 모자랄 만큼이나 거대한 흉부 때문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무기를 들고 내 방에 들어오다니.”
“무기라뇨?”
“자네 허리에 매달린 그거, 무기 아닌가?”
“아…… 이건 제 수술 도구입니다.”
제이미 경은 모로 누운 상태였는데, 머리 쪽에 두꺼운 베개를 댄 덕에 방 안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었는지 꽤 정확한 지적을 해 댔다.
그래, 허리에 저건 어떻게 봐도 무기지.
하지만 실은 수술 도구였다.
물론 말이 수술 도구일 뿐 실제로 하는 일은 팔다리 날리는 것이니 본질적으로 같았다.
괜히 저기 누구야, 그래, 잭 더 리퍼.
그 양반도 저 칼을 썼더라는 얘기가 있잖아.
“아, 그게 그 유명한 리스턴 칼인가. 그래, 그걸로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지.”
“과찬이십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여기까지 온 연유를 보다 자세하게 말씀드려도 좋겠습니까?”
하여간, 리스턴은 귀족 앞에서는 분노 조절을 잘해서인지 평소와는 아예 다른, 그러니까 실로 공손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저 인간이 저런 식으로도 말할 수 있구나 싶어서 감명을 받았는데, 제이미 경도 비슷한 심정인 듯했다.
하긴, 딱 봐도 문명인이기보다는 야만인으로 보이는 인간…….
아니,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의 용모인데, 고릴라가 저리 말을 잘하니 얼마나 신통방통하겠나.
‘저 인간은 귀신같이 조용해졌군.’
거기에 더해 도살자 해리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무슨 저승사자라도 도래한 것처럼, 제이미 경이나 대미언 경도 아닌 리스턴의 눈치만 살피면서였다.
그를 잡아 가둔 장본인이 풀려나자마자 눈앞에 나타났으니 뭐 그럴 만도 하긴 했다.
“그래, 말해 보게. 예까지 왔으니…… 내 허락하지.”
아무튼, 제이미 경은 너른 아량으로 리스턴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그러자 리스턴은 흠흠 목을 가다듬고는 물었다.
“제이미 경. 경께서는 수술을 받고…… 소변보는 불편감이 좀 해소가 되었는지요?”
“내가 수술받은 건 어찌…….”
“이놈이 불었죠.”
“하아. 못 믿을 놈이로군. 아무튼, 다 알고 왔으니 말 안 해 줄 도리는 없겠지. 그래, 해소가 되었네. 확실히…… 요즘처럼 시원하게 본 적이 오래되었어.”
“그렇군요.”
그의 말에 대미언 경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부터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폼이 딱 오줌 마려운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건 경험상 가 봐야 별거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일 터였다.
“그래서 대미언 경에게 추천을 하신 거겠죠?”
“아…… 그렇네. 근데 그건 또…… 저치는 정말 안 될 놈이로군?”
해리야 돈을 벌어야 하니 대미언 경이라는 명사도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말을 풀려나자마자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 참이었다.
녀석은 제이미 경의 매서운 눈초리에 몸을 움츠렸지만 사실 경 칠 일은 아니긴 했다.
환자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생긴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어서 그랬다.
당장 병원 가면 어제 있었던 치료나 환자에 대해 당차게 떠드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높으신 분들이 괜히 병원을 꺼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런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수술은 받으면 안 됩니다. 이놈은 인간 백정이에요.”
“음……. 무서운 경고지만, 난 효과를 보고 있네. 실제로 별문제도 없어.”
놀라운 일이었다.
잡아 올 때 보니까 해리의 진료실은…….
그걸 과연 진료실이라고 해도 좋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거든.
심지어 이놈은 리스턴처럼 명성이 쌓인 놈이 아니다 보니 어거지로 경험을 이끌어 와야 하는 입장인지라 칼도 한 번도 안 닦은 게 분명해 보였다.
거기에 더해 하는 수술이 수술이다 보니 거기에 묻은 게…….
‘우웁.’
상상만으로도 속이 안 좋아졌다.
아마 여기가 귀족 나으리 방이 아니었다면 바로 토하지 않았을까?
“어…… 나는 왜.”
간신히 참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내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휴가 끌려갔다.
이 작자도 체격은 꽤 좋았는데, 그럼에도 리스턴이 멱살을 잡아당기니까 무슨 종이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풀거리면서 갔다.
“어어.”
그와 거의 동시에 소드마스터 리스턴의 검이 뽑혔다가 들어갔다.
나 또한 꽤나 훌륭한 칼잡이…… 그러니까 외과 의사라고 자부하는 몸이건만 잔상만 봤다.
훌렁.
그리고 휴의 바지가 끊어져 내려갔다.
이어지는 광경은 꽤나 끔찍했는데, 19세기 사람들은 끔찍한 것과 신기한 것을 잘 분간 못 하는 편이다 보니 그저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건 무슨 일인고?”
제이미 경은 나보다 눈이 안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멀리서 봐도 살짝 하얀 기가 감도는 것이 백내장이 분명했다.
저것도 어떻게 치료를 해 보긴 해야 할 텐데…….
‘이 시기에는 대체로 높으신 분들이 오래 살잖아? 오래 살면 백내장을 피할 수가 없겠지?’
선글라스가 있길 하나 뭐가 있나.
그나마 여기가 영국이니 망정이지 볕 좋은 프랑스로 가면 아마 백내장 환자들로 넘쳐날 것이 분명했다.
귀족 백내장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부와 명예가 절로 쌓이겠지.
그럼 나만의 병원을 차리는 것도 꿈은 아니지 않겠나.
“이자의 이름은 휴. 선원입니다. 배에서 고환을 다쳐…… 두 알이 모두 없습니다. 보이시죠?”
“아…… 아, 확실히. 제대로 된 선의는 없었나 보구만.”
나도 사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봤다.
아이고…….
뱃사람만 험한 게 아니라 선의도 어지간히 험한 모양이었다.
하긴, 군의관 갔을 때 해군 배정되어서 배 타던 동기들 있었는데 욕이 늘더라고?
이 시대 배가 21세기 대한민국 해군 배보다 나을 리가 없을 테니 뭐…….
거기 알아서 타고 있는 사람들이…….
‘그때 봤던 그놈도 그랬지.’
미친놈이 환상통 치료하면서 팔을 한 번 더 자르면 된다고 했지?
대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는지가 너무 신기할 지경이었다.
“휴, 자네 입으로 말씀드리게. 잘 서나?”
하여간, 리스턴은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심지어 그가 그 광경을 만들어 낸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휴를 툭 하고 쳤다.
그러자 얼빠진 얼굴로 서 있던 휴가 아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이었다.
차라리 그게 잘된 일일 터였다.
지금 자기 몰골이 어떤지 알면 말이 뭐야 그냥 도망가거나 아니면 저 앞에 펼쳐진 너른 창문을 깨고 뛰어 내리겠지.
“아, 안 섭니다.”
“원래는 잘 섰지?”
“그, 그러문요. 잘 섰죠. 제가 정력이 얼마나 좋았는데요.”
“이거 다치고 안 되는 거지?”
“네네.”
“자, 그리고…… 다리를 좀 보십쇼. 허벅지가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살뿐이지 않습니까. 근육도 빠진 겁니다.”
리스턴은 안 선다는, 일생일대의 증언을 해 준 휴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다리를 가리켰다.
말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였는데 제이미 경도 그렇고 대미언 경도 그렇고…….
아니, 그뿐만 아니라 제이미 경의 아들로 보이는 이들도 귀를 빡 기울이고 있었다.
하여간 사내새끼들은 아랫도리 관련한 얘기만 나오면 다들 저랬다.
뭐, 나도 그랬으니 따로 할 말이 있진 않았다.
“이게 다 이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니, 그럼…… 아니…….”
이미 사라진 제이미 경은 경황이 없는 얼굴로 ‘아니’만 반복했다.
누가 보면 한국 사람인 줄 알겠어.
“허어…….”
그에 반해 대미언 경은 아직 두 쪽 다 멀쩡히 달려 있었기 때문에, 보다 침착했다.
“근데 말일세.”
“네, 대미언 경.”
“소변 불편한 건 그럼 대체 어찌 고쳐야 한단 말인가. 내 위치쯤 되면 모임이 아주 많은데…….”
아.
휴의 충격적인 몰골 때문에 모르고 있었는데 대미언 경을 돌아보니 하나 명확해진 사실이 있었다.
이 양반 살짝 지렸다.
전립선 비대증이 있으면 이게 문제였다.
방광이 빵빵해지면서 압력이 올라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좀 나오는 것…….
그리고 하도 방광이 빵빵해진 상태로 오래 지속되다 보니 감각이 둔해져서 갑작스럽게, 정말 못 참을 만큼 마려워지는 것…….
사회생활 하는 사람에게 이건 진짜 미치게 만드는 증상이었다.
“그건 제 제자이자 같은 대학 교수로 있는 닥터 평이 말씀드릴 겁니다.”
“닥터 평?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얼마 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사형수들 대상으로 해부를 했었습니다.”
“아, 아! 그렇군. 하긴, 동양인 의사가 런던에 또 있을 리가. 그럼 구면이로군.”
제이미 경은 넋이 나간 채 이불을 들치고 무언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괜찮아? 설 수 있지? 아니지? 그치?
뭐 이런 말인데, 일단 무시하고 대미언 경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네, 제가 닥터 평입니다. 이런 자리에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해 놓고 보니까 이런 자리라는 게 딱히 영광으로 느껴질 만한 몰골이 아니긴 한다.
귀족 하나는 자기가 까 버린 불알에 대고 말 걸고 있고, 도살자 하나 있고 휴는 바지 잘린 채로 서 있고…….
“그래, 말해 보게.”
다행히 대미언 경은 이런 사소한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나를 재촉했다.
“일단…… 뭔가 쓸 만한 것을. 아, 네. 감사합니다. 자…… 보시죠.”
나는 간단히 도식화한 해부도를 그렸다.
해부도라고 해 봐야 신장과 요관 그리고 방광, 요도, 전립선 정도를 그린 것이 다였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여기서 이 전립선이 커지면서 요도를 누르기 때문에 소변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치료는 여기를 찔러 넣어서 넓히는 데 집중했는데 그건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효과도 적어서 널리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그에 반해 이건 꽤 안전하고 효과도 좋지 않나. 부작용이…… 심각하긴 한 거 같네만.”
“네. 그 부작용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서 제가 고안한 방법인데…….”
거기에 이제 기구를 그려서 설명을 하다 보니 시간이 뚝딱 흘러갔다.
중간중간 제이미 경의 흐느낌이 들려오긴 했지만, 설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