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3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38화(138/505)
138화 드디어 수술 [4]
나만 마음을 다잡은 건 아니었다.
“후.”
리스턴 박사도 그랬다.
그는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긴장한 기색이라기보다는…….
“제기랄.”
분노에 떨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너무 떨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낯설 뿐이었다.
“형님?”
“아…… 간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다 리스턴이 자초했다고 보면 되었다.
‘뭐…… 천재라는 걸 증명하는 느낌이긴 하지?’
내가 진짜 이거 리스턴한테 듣고 놀랐다.
엄청 놀랐어…….
거의 평생 수술을 해 온, 그러니까 평생 외과 의사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해 봐야 19세기 수술이지 않나?
우리가 보통 수술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개념의 수술을 해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들…….
시야니 촉감이니 하는 걸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이 말이었다.
근데 놀랍게도 우리 리스턴 박사님은 촉감을 이용한 수술 부위 감시를 해내는 방법을 떠올렸다.
“하아.”
말이 멋져서 한 번 더 말하는데 ‘촉감을 이용한 수술 부위 감시’라고 하면 되게 팬시하지만 방법까지 팬시하지는 않았다.
리스턴은 몇 번이나 장갑 낀 손을 확인하더니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 환자의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러곤 검지를 더듬거리더니 무척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도 좋겠어.”
“네.”
전립선을 더듬는 데 성공했단 뜻이었다.
사실 이 환자의 경우엔 전립선이 너무 커서 넣기만 하면 느낄 수 있으니 이건 대단하다고 할 것도 없었다.
정말 대단한 건 그가 떠올린 개념이었다.
‘확실히…… 이 양반은 21세기에 태어났으면 뭐라도 했을 거야.’
내가 볼 때 이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는 건 단지 시대의 한계 때문일 뿐, 개개인의 우열 때문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방법을 조금만 더 개선하거나 하면 아마 좀 더 작은 사이즈의, 그러나 증상은 확실히 있는 이들에 대한 수술도 가능할 터였다.
“얇아지는 거 같으면 말씀해 주세요.”
“알았어. 빨리할래? 아까 닦았지? 닦았는데 왜 냄새가 나지?”
그야…….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으니까요?
관장이라는 개념 따위 없는 시대니까요?
그래서 더 주의해서 해야 한다, 이 말이었다.
“아무튼…… 꼭 말해 주세요. 사고 안 치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아, 알았다고!”
“네네.”
리스턴은 화가 나서 외치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칼자루를 쥔 것은 나였다.
수술장에서만큼은 집도의가 왕이다.
왕인 만큼 침착을 지켜야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난 이러한 면에 있어서 도가 트다 못해 통달해 있는 수준에 오른 지 오래였다.
“후우우…….”
자칫하면 환자는 죽는다.
전립선 수술하다가 변에 오염이 되어서 패혈증이 오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왜 없었겠나.
보통 이런 생각을 하면 긴장이 되겠지만 나는 도리어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미친놈이라서가 아니라…….
외과 의사라면 누구나 칼날 위에서 걷는 느낌을 안고 살아야 하기에, 그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드드득.
그렇게 완전히 준비가 되었단 느낌이 들자마자 나는 기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인다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기구 안을 왔다 갔다 하는 날 부분을 앞뒤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은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움직임밖에 하지 못했는데, 거의 주사기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후…… 힘들어…….’
이게 한 번 왕복할 때마다 정말이지 손톱만 한 전립선 조직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수술을 완료하려면 적어도 100번가량은 움직여야만 했다.
앞뒤로 왕복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 또 기구가 작다 보니 일견 옹졸해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냥 큼지막하게 썰면 안 되나?
평소 대도로 사람 팔다리를 썰고 다니는 리스턴에게 얼마나 고구마로 느껴졌을지 딱 알겠지 않나?
당연하게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내게 말했더랬다.
-큼지막하게 썰다가 직장까지 썰면 환자 죽어요.
-왜?
해서 나는 아주 합당한 답을 해 주었고…….
왜냐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왜냐니…….
직장 터지면 똥이 나오는데…….
‘아, 이 시기에는 감염체에 대한 개념이 없지.’
이거 어떻게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에는 안 좋은 기운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라도 풀어야지…….
물론 21세기 현대 과학의 세례를 받은 내가 기운 운운하는 게 좀 한심하기는 했다.
그래서 현미경을 그냥 만들어 볼까도 싶었는데, 물리학 할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어지러워지길래 기운 얘기를 하는 것으로 일단 가닥을 잡았다.
-똥 흘러나와서 좋을 게 뭐가 있어요…… 그거 꿰매려면 배 열어야 할 텐데?
-아, 배를 열면 안 되지.
다행한 것은 여전히 배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미신처럼 불길하단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것도 언젠가는 박살 내야 할 개념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머리가 아파 오지만…….
뭐가 되었건 이 답답하지만 안전한 기구를 계속 쓸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드드득.
그렇긴 한데, 막상 하다 보니까 되게 힘들고 지루하긴 했다.
360도 수동으로 돌려 가면서 전립선을 손톱만큼씩 깎는다는 게…….
이게 뭐 내시경으로 보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 내가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나마 원래도 해부학에 자신이 있었던 데다가, 이 수술이 처음이고 해서 연습하느라 최근에 더 지식을 쌓아서 3D로 상상이 가능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졸 뻔했다.
“아니…… 이게 뭔 심심한 수술이야.”
“뭐 하는 건가, 저게…… 남자라면…….”
“리스턴류 아니었나? 칼 어디 갔어.”
“내 평생 이렇게 소심한 수술은 처음 보네.”
나야 그런데, 기자들 같은 문외한이 보기엔 진짜 지루한 모양이었다.
그렇다 해도 리스턴류라니…….
함부로 ‘류(流)’라는 거 붙이지 말라고…….
저런 칼은 사라져야 할 고대의 유물일 뿐이라고…….
그리고 소심한 수술이라니.
어?
애초에 몸에 칼 안 대는 게 제일 좋은 거라고.
수술이라는 걸 대범하게 할 생각 따위를 버려야…….
“평.”
“아.”
“얇아진 느낌이 드는데. 확실히 얇아졌어.”
딴생각을 하면서 깎다 보니, 리스턴이 내게 말했다.
직장 안에 집어넣은 검지를 앞쪽으로 꾹꾹 눌러 대면서였다.
그러자 기구를 잡은 내 손으로도 압력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얇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기구 전체를 앞뒤로 살짝 움직여 보았다.
“오…… 확실히 압력이 거의 없어요.”
“좋군. 그럼 나 빼도 되나?”
“네.”
“흐.”
리스턴은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장갑 낀 손을 뺐다.
그러곤 장갑도 집어 던졌는데 하필 아까 환자 소변 들이부은 곳에 떨어졌다.
“이런 망할…….”
아마 시발이라는 욕을 알고 있었다면, 바로 시발 시발 하지 않았을까 싶은 얼굴로 그는 장갑을 집어 들었다.
그러다 검지 쪽에 손가락이 닿아서 말 그대로 악귀 같은 얼굴이 된 채 물 떠진 곳으로 향했다.
“망할…… 몇…… 몇 명 남았지?”
“7명이요.”
“하.”
그러곤 연신 욕을 해 대며 장갑과 손을 닦았다.
닦으라고 할 때는 그렇게 안 닦더니 똥 묻으니까 자동이었다.
잠시 이걸 어떻게 이용해 볼까 싶었지만…….
19세기 의사 놈들 중에는 분명 똥 묻어도 대충 문질러 닦고 환자 만질 놈들이 있을 거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뽕.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기구를 뽑았고, 대신 그 자리에 소변줄을 낑겨 넣었다.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까는 좁아서 문제였다면 지금은 넓어져서 문제가 있었다.
방향이 틀리면 안에서 돌 수가 있었다.
물론…….
좁은 것보다는 당연하게도 넓은 것이 넣기에 훨씬 수월했기 때문에 나는 곧 방광 안에 소변줄을 거치시킬 수 있었다.
“이거 절대. 절대 못 뽑게 해야 돼.”
“응.”
“묶어 놓을 건데 뭐.”
그래.
그렇지.
나는 병원보다는 감옥 같은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가죽끈을 바라보았다.
저걸로 묶으면…….
‘섬망 아니라 섬망 할애비가 와도 못 움직일 듯?’
애초에 수술이 짧았으니 섬망이 올 거 같지도 않긴 한데…….
아무리 내가 만든 물약, 그러니까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이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해도 아주 강력하지 못하다 보니 악재가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했다.
거기에 더해 병원 내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문제였다.
의사들도 그렇지만 간호사들, 의대생 그리고 환자들 모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분위기지 않나?
거기에 더해 환자들의 인식 자체도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보니 저런 걸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몰래 하면 되는구나로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니 어쩌겠냐고.
“자, 끝났습니다.”
하여간, 수술은 끝났다.
별거 아닌 수술일 수도 있는데, 워낙 긴장을 해 놔서 그런가, 머리에 땀이 맺혀서 슥 닦으면서 종료를 알렸다.
“끝?”
“아니…… 피는?”
“비명은?”
“이렇게 밍숭맹숭한 수술이 어딨단 말인가.”
그랬더니 반응이 가관이었다.
기자 새끼들.
설마 수술이 아니라 사형 구경이라도 온 건가?
사형 구경이라는 말도 섬찟할 텐데, 이 시기에는 흔한 일이니 넘어가야만 했다.
그나마 런던은 도시라 망정이지…….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참수를 한대…….
그리고 참수해서 튄 피에 빵 찍어 먹는 시민들도 있대…….
“대미언 경. 어떻게 보셨는지요?”
“아주 좋네. 위험해 보이지 않는군그래.”
“네, 보신 바대로입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좀 더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 나는 마음에 드는군.”
다행히 구경꾼에 불과한 기자들 말고 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장본인인 대미언 경은 흡족하다 못해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취제가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이 시기 수술은 유흥의 일종일 정도로 과격한 것이 태반이었으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리스턴 교수님의 수술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지 않나?
익숙해져서 망정이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질겁할 정도로 끔찍했다.
“자아…… 형님?”
“하아.”
“형님?”
“하.”
“형님?”
“흐흐.”
아무튼, 나는 리스턴 박사와 함께 나머지 7명의 수술을 진행했다.
하다 보니 점점 더 개선되는 점이 있었는데, 아무리 연습을 했다고 해도 이럴 수밖에 없긴 했다.
뭐…….
개선이라고 해 봐야 소변줄 꽂기 전에 바구니 갖다 놓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개선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점점 더 깔끔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딱 하나 지저분해지고 있는 게 있다면 리스턴의 기분이었다.
“이제 그만 꽂고 싶군…….”
그는 장갑 벗은 맨손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 얼굴을 뻔히 보면서, 대미언 경이 몸을 일으켰다.
“기자들은 이제 가게. 이제 내 차례야.”
리스턴은 그 모습을 보면서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진 못했다.
역시 묘하게 권력에 약한 리스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