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3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39화(139/505)
139화 드디어 수술 [5]
“아…… 내 수술 끝날 때까지 원고 작성하지 말게. 원고는 내 수술이 끝나고 나서 내가 읊어 주는 대로 적게.”
“네? 아니…… 아무리 대미언 경이라 해도 저희에게 이런 요구까지는.”
“자네, 월급 누가 주고 있는지 아나?”
“네? 저는 윌리엄…….”
“윌리엄은 누구를 위해 일하지?”
대미언 경은 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바지를 내린 상태로도 저만한 위엄을 뽐낼 수 있다니.
나 같으면 일단 입 열기 전에 주섬주섬 입었을 거 같은데.
‘뭐…… 기구에 붙들린 상태였으면 저런 말이 안 나왔겠지?’
대미언 아니라 윌리엄 4세, 그러니까 지금 영국 국왕이라고 해도 저기 묶여서 발가벗은 채로 다리 벌려지면 뭐…….
위엄이 어딨겠나.
앞에서 비웃음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었다.
“그, 알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라고. 아, 이제 그만 나가게.”
대미언 경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지 다리가 벌려지기 전에 축객령을 내렸다.
기자들은 꺼림칙한 얼굴들이었지만, 뭐가 되었건 저널리스트로서의 의식보다는 밥그릇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자, 대미언 경.”
“음. 나도 벽을 짚나……?”
“네.”
“하. 이거 하고 수술 못 하게 되고 그럴 일도 있나?”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뭐…….
대미언 경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클 수밖에 없을 거 같긴 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바지를 벗으니까 아까부터 한층 더 지린내가 강해졌다니까.
하긴, 전립선 비대증에 걸린, 높은 확률로 당뇨도 있을 노인에게 3시간은 좀 길긴 했다.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시원하게 싸 재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왜 수술을 받겠나.
그게 안 되니까 여기 왔지.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쇼. 아마도…… 아. 아 해 보세요. 그래야 힘이 빠져서.”
“아…… 압.”
“아유. 아주 큽니다. 수술하셔야 됩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할 텐데, 안전할 겁니다.”
“아, 알겠으니까. 빼…… 빼게.”
“아, 네네.”
예상대로 거대했다.
내가 비뇨기과를 전공하지 않아서 그런가는 모르겠는데, 거의 케이스 리포트 감이다.
이래서야 이거 소변줄이 안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 마취 가스를 씌우면 좀 힘이 빠지긴 하겠지만.’
아직 근이완제를 쓰고 있진 못했다.
큐라레(Curare)라는 게 있다는 건 알았다.
이 유럽 제국주의 놈들이 대항해시대 때부터 진짜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어찌나 수탈을 했는지, 아마존 원주민들이 화살에 묻혀 쓰던 독까지 들고 왔더라고?
그거 맞으면 숨 못 쉬어서 죽는 독이라는데, 뻔하지 뭐.
‘근이완제가 틀림없어.’
그게 그거 하나만 쓰면 진짜 아주 훌륭하고도 끔찍한 독이었다.
하지만 의식도 꺼 버리면 마취의 완성을 도와줄 약이 된다.
물론 그게 가능하려면 인공호흡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효율적이면서도 안전한 인공호흡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지 않나.
벤틸레이터(Ventilator, 인공호흡기) 따위를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인권 따위 개나 줘 버린 시대이니만큼 아무나 불러다가 시키면 돼.
몇 시간이고 풀무 형태의 바람 쏴 주는 걸 쥐어짜고 있으면 된다 이건데, 문제는 그 숨이 효과적으로 닿게 만들 만한 관이 없다.
‘그래도 소변줄이 이만큼이나 좋다는 걸 알았으니까…… 뭐…… 그것도 부탁하면 나오긴 할 거야?’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이제 손을 바꿔 마취에 나선 조지프를 바라보았다.
일단 지금 내 곁에 있는 제자는 나중에 과를 정해 둘 때는 몰라도 가르칠 때만큼은 차별 없이 다 가르치려고 애쓴 덕이었다.
얘네는 진짜 나중에 어디 가서 내 수제자라고 할 때 당당할 수 있으면 좋겠어.
“된 거 같은데.”
조지프는 우악스러운 주먹으로 무려 대미언 경의 가슴골에 있는 뼈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저게 뭐가 대수인가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거기에 주먹 뼈 대고 문대 보기 바란다.
응급실에서 제일 간단하게 통증에 반응하는지 안 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심감할 수 있을 터였다.
곧, 조지프의 완력을 고려할 때 대미언 경 같은 노인이 얌전히 누워만 있을 수 있다는 건 죽었거나 또는 마취가 되었다는 걸 뜻한단 말이었다.
“안 죽었지?”
“어? 어. 숨 잘 쉬지.”
“그래. 넌 그것만 봐.”
“응. 걱정 마. 우리 팀은 아직 이걸로 죽은 사람은 없잖아?”
“그렇지.”
우리 팀은 이라던지 아직 이라던지 마음에 걸리는, 그러니까 재수 없는 말들이 좀 있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이 새끼들 개념 없는 거야 뭐 하루 이틀 보나.
특히 생명에 대해서는 더한 편이었다.
죽음이 늘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여서 그럴까?
누구 죽는단 소리를 의대생인 주제에 정말이지 쉽게도 해 댔다.
“다리 걸고.”
“응.”
“네.”
하여간, 나는 그런 말을 무시하면서 동시에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의 기본인 시야부터 확보했는데 지금까지 시신으로 연습한 거까지 다 치면 진짜 며칠 새에 열 번도 넘게 했더랬다.
내가 뭐 재능이 없나 아니면 수술에 대한 개념이 없나.
쉽게쉽게 해야 정상인데 어쩐지 긴장이 됐다.
‘잘해야 된다…….’
생명에 경중이 없다는 데에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왜?
대미언 경이 잘못되면 나도 뒤지고 높은 확률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리스턴을 제외한 모두의 인생도 꼬일 가능성이 높거든.
“후.”
“한숨 쉬고 싶은 건 나일세.”
역시 리스턴은 강심장이었다.
그는 대미언 경이고 나발이고 자기 손이나 보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이거 넣는 게 싫다, 이거겠지.
‘나중에 시발 가르쳐 줘 봐야지.’
그럼 적재적소에 시발을 쓰는 리스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딴 생각이나 하다 보니 다소 긴장감이 완화되는 느낌이 일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나는 뭉글거리는 우뭇가사리를 살짝 소변줄에 묻힌 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말이 좋아 밀어 넣은 것이지 바짝 당긴 후에 박아 넣는 느낌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구만.”
리스턴의 말마따나 보기엔 끔찍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안 하면 오히려 더 아팠다.
어떻게 아냐고?
우리끼리 해 보거든…….
응.
고통의 기억이라 다들 기억 저편에 밀어 두고 사는데 우린 해 봐…….
“흐아압!”
고통은 성장의 어머니라던가?
이럴 때 쓰는 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힘이 나서 그런가, 쑥 들어갔다.
콸콸.
그와 동시에 안에 묵어 있던 소변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하도 오래 있어서 그런가, 냄새가 굉장했다.
“와.”
“대미언 경…….”
옆에 있던 수행원들 중 일부가 그 꼴을 보면서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주인의 방광에 설마하니 이만한 양의 소변이 있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모양이었다.
“자, 그럼.”
나는 그렇게 소변을 제거한 후에 소변줄을 빼고, 그 자리에 기구를 밀어 넣었다.
아까 소변줄로 한차례 밀어 놓기도 했거니와 이 기구는 철이다 보니 훨씬 잘 들어갔다.
그렇게 다 넣고 눈짓을 보내자 리스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그의 커다랗지만 예민하기 짝이 없는 검지를 집어넣었다.
“어, 도착.”
“네, 저도 느꼈어요.”
“그럼…… 빨랑 해라.”
“네네.”
크기도 큰데 리스턴이라는 모니터 장치도 쓰게 되었으니 안심 아니겠나.
나는 기구를 아까처럼 빙빙 돌려 가면서 전립선 깎는 노인이 되었다.
드드득.
드득.
처음엔 상대가 대미언 경이다 보니 욕심을 부려 볼까도 싶었지만 같은 이유로 욕심부리는 건 참기로 했다.
괜히 그랬다가 응?
구멍이라도 나 봐.
다 죽어, 진짜.
나는 모르겠지만 대미언 경은 백방 죽는다.
드드득.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깎다 보니 어느새 리스턴의 손가락이 훌쩍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형도?”
“야, 너두?”
우리는 각자의 뜻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의 기구와 손가락을 뺐다.
리스턴은 그 즉시 후다닥 물가로 달려가 장갑을 벗어 던지고 손을 닦았다.
그러곤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미안한데 저 장갑은 버려도 되겠나?”
“네, 뭐. 장갑 정도는 달라고 해도 줄걸요.”
“그래, 그래 주겠나.”
왜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벌써 장갑 들어다가 밖에다 던졌잖아, 당신.
아무튼, 나는 그렇게 튀어 나갈 수가 없다 보니 자리에 있었다.
이 자리에 다시 소변줄을 낑겨 넣어야 하거든.
안 그러면…….
‘소변줄은 괜찮을 거 같은데…… 기구로 들이판 곳은 여차하면 들러붙을 수가 있어.’
유착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게 만만히 볼 게 아니라, 원래 떨어져 있어야 할 곳이 상처 때문에 유착이 되어 버리면 진짜 큰일이었다.
관이 막힌다 이 말이었다.
전립선 때문에 수술했는데 관이 아예 막혀?
그런 일이 있어서 되겠나, 이거.
“합.”
나는 소변줄을 다시 집어넣은 후,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묶어요.”
“허참. 점잖은 분이라 괜찮을 텐데…….”
“여기 꽂고도 점잖을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조용히 묶겠습니다.”
수행원들은 점잖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말을 하다가 소변줄을 가리키자마자 즉시 움직여서 대미언 경을 꽁꽁 묶었다.
어찌나 꽉 묶었는지, 대미언 경이 깨어나서 제일 먼저 물어본 게 수술이 아니라 가죽끈에 대한 것일 정도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수행원들이 묶은 겁니다.”
“내 수행원……?”
“네. 이거 뽑으실까 봐. 봐요. 지금도 손끝이 거기로 가잖아.”
“불편해서. 너무 불편하다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3, 4일은…… 이거 하고 계셔야 합니다.”
“3, 4일? 하.”
“어찌 되었건 수술은 아주 잘 되었습니다. 이거 뽑고 나면 신세계를 보게 될 겁니다.”
“그…… 흠. 오? 이게 이런 기분이었나.”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수술이 잘되었건 말건 소변줄을 꽂지 않았나.
방광이 비어 버렸다, 이 말인데 그게 굉장히 생소하면서도 편안한 기분인지 대미언 경은 소변줄로 인한 불편감보다도 거기에 더 꽂혀 버렸다.
“좋군그래.”
“다행입니다. 제가 매일 세 번 정도 찾아뵐 예정입니다. 중간에라도 불편한 게 생기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저는 앨프리드의 집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하여간, 나는 인사를 마치고 아까 수술했던 사람들도 한 번씩 보고 밖으로 나왔다.
입학할 때만 해도 봄이었는데 이제 슬슬 여름도 끝나 가고 있었다.
다시 찬 바람이 분다 이건데…….
“야, 너 왜 이렇게 떨어?”
“모, 모르겠네. 추울 정도의 날씨인가?”
“응? 열? 열이 나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고생했나 보다.
감기에라도 걸린 모양인데…….
그리 걱정할 건 없었다.
좀 쉬면…….
“조지프! 콜린! 평이가 아픈 거 같은데!”
“수술인가!”
“그런가!”
“피, 피 뽑아!”
아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 시발놈들이 대체 뭔 짓을 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 시대에는 병원에 가거나 의사를 만나면 뒤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기 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