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4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40화(140/505)
140화 아니, 이게 있었어? [1]
이 새끼들이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떠들어 댄 ‘감기 치료법’은 도합 열 가지가 넘어갔다.
일반인도 아니고 의대생들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거기에 더해 나라는 규격 외 선생에게 배우고 있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쓸만한 의견이 하나는 나와야 했다.
“방혈! 방혈!”
“야야. 가서 빨리 개똥 구해 와라.”
“발목? 발목을 째?”
“일단 옷을 다 벗겨! 열나잖아!”
“강에 던질까?”
“그것도 좋을 거 같은데.”
아냐…….
이러지 마…….
미친놈들아.
왜 자꾸 열나는 사람 앞에서 칼을 들고 설치냐고.
“이 미친놈이.”
그 와중에 똥 내미는 건 또 뭐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라’가 우리 속담이 아니라 영국 속담이었어?
“오, 정신은 있네?”
없어질 거 같아도 지켜야 될 거 같았다.
저 봐, 저 저.
신나서 칼 가는 거 봐라.
“걱정 말게. 내가 방혈은 또 기가 막히지.”
리스턴, 저 양반은 대체 언제 온 거냐고…….
어?
칼은 왜 갈고.
발목 짼다는 것이 설마 발목을 자른다는 것이었나?
“절대…… 절대 내 몸에 칼 대지 마요…….”
그렇지 않아도 열이 올라서 정신이 없어지는 와중이었는데, 저 지랄하는 걸 보고 있자니 진짜로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어디서 본 것처럼…….
‘정신 나갈 거 같아, 정신 나갈 거 같아. 아니지, 시발. 여기서 나가면 이승 탈출이다……!’
나는 가까스로 눈을 흡 떴다.
그사이 시간이 좀 지났는지, 누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시발! 하지 마!”
그리고 리스턴 박사가 칼을 들고 아까보다 가까이 와 있었다.
“응? 왜 그러나? 열 나는 데는 피 뽑는 게 직빵인데.”
직빵이겠지!
차갑게 식겠지!
뒤지니까!
‘아니, 이놈의 4체액설의 망령은 대체 언제 사라지는 거지?’
히포크라테스…….
확실히 이 양반이 남긴 업적 중엔 대단한 것들이 있긴 했다.
일단 그전까지는 질병이 귀신이나 저주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연 현상이라고 못 박아 둔 것부터가 대단하지 않나?
그래 놓고 약으로 안 되면 칼로, 칼로 안 되면 불로 지진다는 말을 한 건 좀 그렇긴 한데.
“제게……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열나는 상태에서 하는 생각이 의미가 있겠나. 자네 모르겠지만 온몸이 불덩이 같아.”
“그건 그렇고 저 지금 어디에 있죠? 병원은 아니죠……?”
병원이라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거기에 묻은 고름 때문에라도 잘못될 수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괜찮을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냐.
뒤져.
나는 19세기 놈들처럼 강하지…….
아니,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강하단 뜻이 되기는 하려나.
“멀쩡히 좋은 집 있는 사람을 왜 병원에 두나.”
“아.”
아무래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잠깐 또 생각이 딴 데로 샜는데, 리스턴이 있어서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이 얼굴을 보고 있으면 뇌가 강제로 정신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여간, 이건 잘된 일이었다.
앨프리드 선배의 집은 병원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니까.
적어도…….
나쁜 기운.
아니지, 내가 미쳤나.
정체 모를 균이나 바이러스에 2차 감염이 될 가능성은 덜었다고 봐야 했다.
“그…… 일단 따뜻한 물이나 좀 주십쇼.”
“물 뿌려 달라고?”
“아니…… 물 달라고요. 먹게…….”
“흐음. 물 너무 먹으면 설사가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아니…….
아직 설사를 안 하는데 왜 그거부터 걱정을 하냐고.
게다가 설사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물부터 줘야 한다는 걸…….
‘모르겠구나…….’
하긴, 그걸 알았으면 콜레라니 뭐니 하는 설사하는 병이 있을 때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진 않았겠지…….
여기 온 이래 늘 느끼는 거지만, 내가 아파 보니까 더 확연히 알겠다.
이 시대에 아프면 안 돼.
진짜로 죽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뒤져.
“휴.”
하여간, 그동안 내가 쌓아 온 명성 덕에 난 간신히 물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리스턴은 여전히 불만이 좀 있어 보이긴 했다.
아니, 아쉬움이 있는 거 같았다.
‘남의 발목 보면서 입맛 다시지 말라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머리, 머리는 안 아픈가?”
자칭 두통 치료의 천재 토마스도 와 있었다.
다짜고짜 사람 잡아다가 빙빙 돌리는 놈인데…….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을 갖다준 이후로도 돌려 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긴 싫은데, 아무래도 그게 약효가 아주 뛰어나지는 않다 보니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이 인간도 자기가 아는 이론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역시 피를 뽑아야 하는데.”
자세히 보니 제멜도 와 있었다.
말이 의사지 사실상 인간 백정인데…….
“아니, 왜 이렇게 많이 왔어요?”
그보다 의사들이 왜 이렇게 많단 말인가?
이상하잖아?
해서 물었더니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자네는 원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지 않나. 그 전에 빅토리아 공주님의 총애도 받고 있고. 나야 그냥 왔지만 다른 이들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빨리 나아야 해. 고집부리지 말고 발목을 내놓게.”
아, 뭐 걱정받고 있다 이 말인데…….
그런 건 기분이 좋았다.
안 좋으면 미친 사람이지.
하지만 발목은 지켜야 했다.
“쿨럭.”
갑자기 다리를 오므리느라 힘을 써서 그런가, 아니면 단순히 질환이 진행해서 그런가는 모르겠는데 기침이 나왔다.
“이거 기침까지 하는군.”
“허어…….”
“좋지 않은데.”
그러자 돌팔이들이 모여서 또다시 불길한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열에 기침이라니.”
“뜨거운 증기를 쐬게 하는 건 어떤가?”
“확실히 효과가 있겠지만…… 열이 악화될 수 있네.”
증기?
수증기지?
수은 같은 거 들고 오지 마라, 제발…….
‘와 진짜 미치겠네? 일어날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까, 이거.’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으려니, 문이 덜커덕 열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블런델이었다.
맞네.
저 인간도 나 좋아하지.
행색을 보아하니 헐레벌떡 온 거 같았다.
늘 뒤뚱뒤뚱 느리게 걷던 양반이 땀에 절었어.
‘고맙긴 한데…… 저기 손에 소중한 듯 들고 온 물건이 뭘까?’
이 망할 놈의 19세기.
사람의 호의를 호의만으로 받을 수가 없잖아.
치료라는 게 하나같이 다 불안해.
그냥…….
열나면 머리에 찬 수건 올려 주고 기다려 주면 안 되는 거야?
나 아직 10대고 평소 지병도 없잖아.
감기 정도는 혼자 떨치고 일어날 수 있다구.
“자네 뭘 사 온 건가?”
“아. 이거.”
내 바람과는 별개로 블런델은 뚜벅뚜벅 들어와 바구니에 담겨 있던 병을 꺼냈다.
딱 봐도 음료수 같았다.
‘휴…….’
그래.
병문안은 역시 음료수지.
돈 좀 쓰고 싶으면 과일, 아니면 음료수.
이게 국룰 아니겠나.
역시 상식에 가까운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통하는 모양이었다.
“아편팅크로구만.”
“이거 좋지.”
“그래,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꽤 유명한 음료수인 모양이었다.
하긴, 영국은 물이 개판이라 물 대신 음료수 또는 술 먹는 사람이 꽤나 많거든.
어찌 보면 그냥 물 떠먹을 수 있던 동아시아야말로 복 받은…….
‘응? 아편팅크?’
아편?
내가 아는 그 아편인가?
에이…… 설마…….
의사란 사람들이 마약 중에서도 대표적인 마약으로 꼽히는 걸 보면서 저따위 반응을 보일 리가 없지.
“내가 토마스와 친분이 있지 않나. 감기 걸리면 난 꼭 이걸 먹는다네.”
블런델은 후후 웃으며 자신이 사 온 음료수의 마개를 뿅 하고 땄다.
그러자 은은한 술 냄새가 방 안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술이구나.’
감기에 술을 먹인다는 발상 또한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긴 했다.
감기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감염이라는 건 병원균이 들어왔다는 걸 의미하지 않나.
우리 몸이 그놈들과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분 보충이었다.
술도 물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술은 최종적으로 탈수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더해 점막도 붓게 만들고 혈액순환도 악화시키는 등 안 좋은 효과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아편보다는 나았다.
마약이라니?
“그 친구가 그랬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픔을 덜어 주시기 위해 우리 인류에게 선사하신 치료제 중 아편만큼 보편적인 효능을 발취하는 약은 없다고.”
“맞는 말일세.”
“너무 많이 먹지만 않으면 되지.”
“사실 나는 우리 병원도 슬슬 아편을 본격적으로 써야 한다고 보네.”
아.
마약 맞네.
아편팅크에 아편 들었네…….
“자, 평.”
블런델은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친하단 말인데, 지금도 진짜 친근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이게 독일에서 분리했다는 모르핀을 넣은 약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효과가 좋다네.”
“네?”
모르핀?
모르핀이라고 했냐?
그게 있는 시대였어?
‘아니…… 그게 있었으면…….’
절단하고 아파하는 환자에게 단기간으로 쓸 수 있었잖아?
마취로 쓰기는 호흡 억제 때문에 부적절하겠지만…….
“내가 다음에는 꼭 모르핀을 구해다 놔 주겠네.”
“아니, 그럴 필요는.”
아플 때 쓰는 모르핀은 그냥 환각을 보기 위해 쓸 때보다는 중독성이 좀 덜하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래도 의존증을 일으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약들도 부작용을 아예 피하진 못했지만…….
잠깐 얘기가 딴 데로 샜는데,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맞았다가는 순식간에 중독될 수 있단 말이었다.
외과 교수였던 내가 마약 중독이라니.
안 될 말이다.
“자, 쭉 들이키게.”
그렇다고 이걸 아예 입에도 안 대긴 어려워 보였다.
“효과 없으면 발목?”
“좋지. 그리고 돌릴까?”
“조오치.”
날 죽이기 위해 작당하고 있는 놈들이 너무 많았다.
언제나 내 가장 커다란 아군이었던 리스턴이 적이 되었다 보니 막을 수도 없을 거 같았다.
확실히 리스턴은 무조건 아군으로 돌려야만 했다.
‘아편 함유…… 5%.’
5%.
저 정도면 모르핀은 0.5% 정도 된다는 거 아닐까?
예전에 양귀비 배울 때 들었던 거 같아.
아편의 약 10% 정도가 모르핀이라고.
‘한 모금 정도는…… 나도 지금 아프긴 하니까?’
그래.
시발.
죽는 거보다는 낫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블런델이 건넨 아편팅크를 한 모금 마셨다.
“크아.”
술 냄새가 잔뜩 나더라니 꽤나 독주였다.
술에 탄 아편이라니.
사람 가라고 만든 건가?
‘어…….’
그 생각과 함께 지독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그로 인해 괴로웠냐고?
모르겠다.
정신을 잃었으니까.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곁을 지키고 있는 건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에 리스턴, 블런델 정도였다.
말이 지키고 있는 것이지 다들 자고 있었다.
“발목!”
벌떡 일어나 봤더니 다행히 멀쩡했다.
피 난 흔적도 없었고.
“휴…….”
난 안심한 얼굴로 내 몸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