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42)
검은 머리 영국 의사-142화(142/505)
142화 아니, 이게 있었어? [3]
다그닥.
대미언 경이 보내온 마차는 리스턴 박사님의 마차와는 또 다른 멋이 있었다.
미안한 말인데, 리스턴 박사님의 마차는 졸부의 느낌이 있었다면 이건 고풍스러운 멋이 있달까.
배경에 대한 정보가 있어서 괜히 드는 생각은 아닐 터였다.
“와…… 마차가…….”
“그러니까.”
나 말고도 대부분이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아…… 피곤하다.’
하여간, 나는 마차 뒤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잠시 감았다.
침대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이면 자꾸 피를 뽑으려 해서 쉬지도 못해서 그랬다.
설마 남의 마차에서 칼 빼 들고 그러진 않겠지.
이게 보통 마차도 아니고 무려 대미언 경의 마차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 그렇지?’
물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틈틈이 실눈을 떠서 리스턴을 확인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제멜이 없어서일 터였다.
그 인간이야말로 방혈의 대가 아닌가?
방혈에 대가라는 말을 붙인다는 게 진짜 이상한 일이긴 한데…….
-죽은 피는 뽑아야지!
어제 꿈결에 들었던 말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어쩌면 전에 들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새끼는 맨날 이 소리거든.
‘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 몸속에 죽은 피라는 건 없다는 걸 납득시킬 수 있을까…….’
정맥을 째면 좀 꺼메 보이는 피가 나오긴 했다.
근데 그건 죽어서가 아니라 그냥 멀쩡한 피에 산소가 없어서 그런 것일 뿐이지 않나.
애초에 수명이 다한 적혈구나 백혈구 등은 비장에서 다 걸러지고, 뼈에서 골수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새 혈구 세포들이 핏속을 채우고 있는걸…….
‘내 평생에 가능하려나.’
그런 개념이 언제 정립된 걸까?
정립이 되긴 하는 걸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의료 수준을 보면 영영 오지 않을 미래 같았다.
‘여기 지구 맞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점점 발전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도…….
불과 200년도 채 남지 않은 미래인데 이게 그렇게 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거참…….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병원이었다.
평소보다 아무래도 속도가 더 빨랐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찐 귀족 마차였기 때문이었다.
노동자가 되었건 누가 되었건 간에 감히 이 앞을 막을 생각을 할 만한 사람은 이 런던 바닥에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으음.”
아편팅크를 마시고 나서여서 그럴까?
바로 어제 보고 아침에 찾은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좀 달라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몸이 안 좋나?”
아니, 그게 아니다.
칼을 빼 들려는 리스턴을 보고 나니 확실해졌다.
나는 죽다 살아난 사람의 감정을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나는 어제 이 사람들에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뒤질 뻔했다.
‘컨디션 조절을 최우선으로 둬야겠군…….’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 너무 크잖아.
무엇보다 잘해 주려는 사람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
이 인간들…….
내가 죽어 가면 더 쨀 것이 뻔했다.
그리고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면…….
‘산채로 무덤에 묻히겠지?’
아직 안 죽었는데 묻힐 가능성이 컸다.
그 와중에 청각만은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이따위 대화가 들리겠지.
-죽었네요.
-아깝게 됐네…….
-내 친구 평아…….
-해부라도 할까요? 헛되이 하는 건 좀…….
-아니, 아니지. 묻는 게 좋겠네.
개새끼들…….
그렇게 묻히고 나서 끝일까?
아니지.
시신 도굴꾼 놈들이 나를 파낼 가능성이 높았다.
난 귀족도 뭣도 아닌 만큼 공동묘지에 묻힐 테니까.
그리고 이 시기 공동묘지는 ‘공공’ 묘지랑 같은 말이고, 공공 묘지는 모두가 모두의 것처럼 사용하잖아?
-어? 두목.
-왜.
-살았는데요?
-살았었던 걸로 바꿔 주지.
-넵.
하…….
진짜 너무 무섭다.
이게 그냥 망상이 아닐 거라는 게 더 무서워.
아마 지금도 런던 어느 곳에서는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게 뻔하잖아.
“괘, 괜찮습니다.”
나는 그 암울한 미래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미소를 지어 보이곤 안으로 들어갔다.
대미언 경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병원은 아니고 내 연구실에 있었다.
이 시기 병실이라는 곳은 말로 표현하기 역할 만큼 열악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귀족, 그중에서도 권세가 대단하다는 사람을 그따위 곳에 두는 건…….
결례를 넘어 죄였다.
중대 범죄.
똑똑.
해서 나는 즉시 내 연구실로 향했다.
나를 알아본 수행원 중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밖에서도 지키고 있던 모양이었다.
권력이 좋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오라십니다.”
“네.”
하여간, 곧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음.’
들어서면서 습관처럼 상대의 안색부터 살폈다.
원래 같으면 오늘 새벽에 나갔을 혈액 검사를 챙겨야 하겠지만 여긴 혈액 검사 따위는 불가능하지 않나.
애초에 아무 피나 섞어서 수혈하려는 놈이 내 뒤에 서 있는 시대인데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덕분에 나는 오로지 환자의 안색을 통해서만 환자의 적혈구 수치를 계산해야 했다.
‘괜찮아 보이는데.’
약간 탈수가 있는지 입술이 말라 있었다.
허나 그 외에 색이 이상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잠시 눈꺼풀 좀 봐도 될까요?”
“응? 눈꺼풀?”
물론 그것만으로 안심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보니 나는 나름대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왜……?”
“이걸 보면 상태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생뚱맞아 보이기만 하는 요청이니만큼 대미언 경은 의문을 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의료진들…….
말이 의료진이지 아는 건 딱히 없는 이들도 의문을 표했다.
나중에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대미언 경의 눈꺼풀 안쪽을 살폈다.
핑크빛이 감돌고 있었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좋아. 혹시 여기 많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움직이면…….”
“움직이면?”
“그래. 이 안에. 이게 닿으면 아프네.”
“아.”
뭔 소린가 했다가 대미언 경이 어쩐지 열 받은 듯한 얼굴로 소변줄을 가리키자 감이 왔다.
하긴 안에 상처가 나 있는데 고무가 들어가 있으니…….
그게 닿으면 아프겠지.
“좀 내릴까요?”
“하…….”
“내려야 보죠. 이미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제 다 봤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게.”
말만 들어서 상태 파악이 되겠나?
적어도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보니 벗겨야만 했다.
특히 감염은 봐야 했다.
“끙.”
해서 나는 바지를 벗기고 안쪽을 들여다봤다.
귀족이라고 해서 잘 닦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냄새가 났다.
‘결벽증이었다는 엘리자베스 여왕님이…… 한 달에 한 번 씻었다지?’
대다수의 사람은 비에 젖는 날이 곧 물에 씻는 날이라고 보면 되었다.
로마 시대만 해도 공중목욕탕이 있던 곳이 어찌 이렇게 되었나 하는 한탄이 들었다.
물론 한탄만 할 일은 아니긴 했다.
나는 정답을 아니까.
‘씻으면 매독에 걸린다는 믿음이 있지…….’
뭔 개소린가 싶을 수도 있는데…….
성병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행위를 통해서만 전염이 되는 게 아니지 않나.
매독이라는 병이 워낙에 창궐하던 시절이 있다 보니 하필 그때 공중목욕탕에서 번졌던 사례가 있던 모양인데 미친놈들이 씻으면 매독 걸린다고 받아들이는 바람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숫제 씻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괜히 향수 같은 게 유럽에서 발달한 게 아니라니까?
“붓지도 않았고, 열감도 없고…… 좋네요. 아주 좋습니다.”
“그것 다행이로구만.”
나는 뛰어난 의사이기 때문에 딴생각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진료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수술도 아니고 그냥 감염의 징후만 보는 거니 그런 것도 있는데…….
“저, 각하.”
“응?”
그 후로도 이런저런 간단한 것들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잠시 후 집에서 같이 왔던 수행원이 조심스레 대미언 경을 불렀다.
그러곤 내가 실은 어제 아파서 아예 뻗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아편팅크를 먹었다는 말까지 했다.
약쟁이로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놈들이야 귀족도 뭣도 아닌 놈들이니만큼 자각이 없겠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배기 귀족이지 않나.
“허. 많이 아팠나 보군그래. 근데도 나를 위해 여기까지 오다니…… 이 은혜를 어찌 갚지?”
“각하, 닥터 평이 아편팅크가 유독 마음에 든 듯합니다. 사혈이라는 쉬운 방법을 두고 그걸 꿀꺽꿀꺽.”
그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이나 자연스레 리스턴이 아편 얘기를 했다.
아냐, 아니라고.
그거 아냐!
시발…….
욕을 한 사발 할 수도 없고.
“어허, 그래? 흐음…… 그럼 선물할 게 좀 있을 거 같은데.”
아니. 아뇨.
아편은…….
“모르핀이라고 아나?”
“네?”
모르핀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반색하고 말았다.
모르핀은…….
21세기에서도 쓰이는 약이잖아?
그리 흔히 쓰이진 않지만…….
대개는 개선한 약을 쓰지만, 아무튼, 이건 쓴다고.
잘만 쓰면 아주 위력적인 진통제지 않나.
물론 중독의 위험이 너무 큰 만큼 양날의 검이긴 한데…….
“하하, 정말인가 보군그래. 아편을 아주 좋아하는 거 같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억울했지만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모르핀이 존재하는 세계관인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 모르핀을 약제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거 꽤 좋은 감기약일세.”
아니…….
왜 그걸 감기에 쓴답니까…….
마약인데요…….
물론 기침을 억제하긴 하죠.
억제하긴 하는데…….
‘그 친구는 호흡도 억제한단 말입니다.’
어떻게?
너무 강력한 진통제다 보니 우리 몸에 이산화탄소가 쌓이면서 발생하는 통증도 잊게 만들거든.
다시 말해 호흡 노력도 죽여 버린단 뜻이었다.
‘나는 괜찮은 거지?’
같은 이유로 반복적으로 아편이나 모르핀에 노출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뇌가 저산소증에 빠지게 된다.
뇌가 망가진다는 뜻인데…….
술로 인해 블랙아웃이 발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인데…….
‘한 번은 괜찮겠지.’
나는 억지로 괜찮으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는 여러 오해를 낳았다.
“좋아 죽는구만. 나도 좋구만그래…… 독일에서 얼마 전에 구해 온 모르핀이 좀 있네. 나야 쓸 일이 없으니, 그걸 자네에게 주지.”
“아. 감사합니다.”
거기에 더해 내 인사 또한 오해를 낳았다.
나는 진짜로…… 응?
진통제로 쓰려고 받은 거다.
죽기 전에 쓴다고 해도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
런던은 각종 노동 재해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도시였고, 그 때문에 손쓸 도리 없이 죽는 사람이 많다고.
근데 병원에 와도 해 줄 게 없어…….
진통도 안 돼.
그때 모르핀이 있다면.
‘고통 없이 보낼 수 있겠지.’
아니, 이런 게 있으면 병원에서 당장 썼어야지…….
이제라도 쓰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래.
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