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44)
검은 머리 영국 의사-144화(144/505)
144화 절단술을 줄여 보자 [2]
“그럼 가지.”
“네.”
원장님은 성질이 급한 편이었다.
원래 병원 같은 거 운영하려면 실행력이 좋아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이곳은 19세기 런던이다, 런던.
밑에는 리스턴이니 블런델이니 하는 애들도 있고…….
보통 사람일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덜커덕.
하여간 원장님은 어떤 진료실 문을 덜컥 열었다.
대강 외래 보는 곳인데…….
사실 그렇게까지 잘 구분이 안 되어 있긴 했다.
옆에 보면 구더기 지나가는 침대에 누운 환자도 있고, 심지어 의사도 한둘이 아니라 셋이나 있었다.
누군가 배우거나 가르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
개인 프라이버시?
귀한 사람들 아니고서야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여기네. 보통 여기서 다친 사람들을 봐.”
“아하…….”
다친 사람들…….
‘근데 왜 농 냄새가 이렇게까지 나는 것이죠?’
그냥 다쳤을 뿐이잖아?
저 봐.
방금 나간 환자…….
저게 붕대인지 걸레인지 모르겠는 걸 감고 나간 환자는 엄지손가락 살짝 베인 게 단데?
‘차라리 집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내 생각과는 별개로, 원장님은 기존에 있던 의사들에게 내가 이제부터 참관을 하면서 개선할 점을 알려 줄 거란 얘기를 해 주었다.
“으음.”
“으으음.”
본인을 전문가라고 여기는,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영역을 제일 잘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 특유의 불만 어린 얼굴이 툭 튀어나왔다.
무리는 아니었다.
나 같아도 웬 그지 깽깽이 같은 놈이 와서 참관하다가 개선할 점을 알려 주겠다고 하면 화가 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게 맞다.
비록 내가 여기서 어떤 치료가 이루어지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내가 맞다.
왜냐.
이 새끼들이 잘해 왔으면 런던에 그렇게 많은 불구자들이 발생했을 리가 없어.
“잘 부탁드립니다. 닥터 평입니다.”
“으으음.”
그렇다고 해도 일단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근데 이놈 봐, 이거.
악수를 안 받네.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다.
필살기.
“리스턴 형님과 형님, 아우 하는 사이죠.”
“그, 그래. 반갑네.”
리스턴 소환.
속으로 떨떠름하건 뭐건 간에 뭔 상관이야.
이놈들이야말로 리스턴의 위력을 제일 잘 알고 있지 않겠나.
지들이 양산한 환자들을 모조리 참수 아니, 절단하는 사람이니까.
급할 때는 양손 검도 휘둘렀다던데 그건 직접 볼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좋게 좋게 갑시다.”
“그래…… 리스턴 교수님도 오시나?”
“제가 부르면.”
“부, 부탁하네.”
“그래요.”
반응이 예상보다 격한 거 보니까 마냥 보기만 한 건 아닌 거 같았다.
‘한 대 맞았나……?’
그러고 보니, 얼굴이 좀 찌그러진 거 같기도 하고?
골절이 있었는데 제대로 붙질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뭐…….
골절이 치료가 되겠냐.
‘그것도 언젠가는 좀 건드려야지.’
할 게 진짜 많은데, 일단 급한 거부터 보기로 했다.
“다음!”
그렇게 있으려니 의사 중 하나가 소리쳤다.
죽을 놈 오라는 건지 치료받을 사람 오라는 건지 헷갈리는 가운데, 환자 하나가 들어왔다.
“아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요?”
딱 봐도 아까 그 환자랑은 상태가 달랐다.
뭔 작업을 하다 다쳤는지 팔뚝까지 길게 쭉 찢겨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리 깊지는 않다는 정도일까?
저 정도면 뭐…….
“흐음. 일단 피를 좀 닦아 볼까.”
오.
닦아?
‘아…… 이런 사소한 거에 감동을 하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상처가 있으면 닦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것을 너무도 안 하니까…….
‘응?’
물로 닦아야지.
뭐 하는…….
너…….
“으아, 으아아아!”
“아파야 잘 낫지.”
“으, 으!”
의사는 환자의 비명을 으레 있는 일로 치부하면서, 옆에 놓아두었던…….
이미 다른 사람의 피와 고름이 잔뜩 묻은 이상한 걸레 같은 걸로 환자의 상처를 닦고 있었다.
아니, 아니지.
저쯤 되면 닦는 게 아니라 좀 더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봐야 했다.
실제로 아까보다 피가 더 나…….
“좋아. 이제 보이네. 흐음…… 뭐…… 꿰맬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그나마 다행…….
이미 다행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될 거 같긴 하지만.
하여간, 봉합이 불가하다는 의견은 일치했다.
물론 이유는 달랐다.
난 깊이 때문에 봉합을 안 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저렇게 더러운 상처를 변변한 소독도 없이 또 항생제도 없이 꿰매는 건 일종의 살인이었다.
‘빵…… 썩은 빵…….’
잠시 내 푸른곰팡이가 떠올랐지만…….
그건 대량 생산도 어렵거니와 약효와 부작용 모두 신뢰도가 떨어졌다.
그 안에 있는 항생 물질의 용량이 늘 똑같게 나올 수가 없잖아.
그거뿐이면 괜찮은데, 부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의 용량도 중구난방이었다.
누군가, 그러니까 나 말고 훌륭한 과학자가 정리해 주기 전까지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겨 두어야 했다.
“붕대!”
하여간, 의사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상처를 보더니 붕대를 가져오라 일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수인지 뭔지가 커튼 찢어다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어딘가 누레 보이는 물건을 가져다가 팔을 감았다.
‘와…….’
뭔가 말릴 틈도 없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저 양반은 내가 이따 따로 봐야지.’
환자 이름을 기억했다.
앞으로 두세 명만 더 보고 나가서 봐 줄 생각이었다.
안 그럼 죽을 거 같아.
저 아무것도 아닌 상처로…… 죽는다고.
아니, 죽지는 않겠구나.
‘잘리겠구나.’
이 새끼들 혹시 리스턴 교수한테 뒷돈 받고 절단술이 필요하게 만들고 있나?
절단술 카르텔이라도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때쯤, 또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이미 전에 치료를 받았는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붕대는 누렇게 변해 있었다.
“어때요?”
“아픕니다. 이상하게 전보다 더 아파요.”
이상할 것도 없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치료를 고려해 보면…….
훌렁.
의사에게도 이상할 게 없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저 새끼는 지가 치료한 사람이 더 아프다는데 느낌이 없어?
사람 맞냐?
“읍.”
그렇게 붕대가 풀리고 나자, 환자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망할.’
상처는 빈말로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애초에 상처가 작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 와중에 치료가…….
아니, 의사가 독이라도 뿌렸나.
포도상구균이 자랄 때 나는 냄새가 순식간에 진료실 안을 메워 나갔다.
-죽음의 냄새가 나는구만…….
-데브리먼트(Debridement, 죽은 조직 제거술) 쳐야죠?
-그래야지.
펠로우 시절 레지던트 애들과 나눴던 대화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선명한 기억이었다.
이제 다들 심각해지겠지.
느긋하게 있진 못하겠지.
아, 이때 절단을 고려하나?
좀 이르긴 한데…….
이 시기 의료 수준을 고려하면…….
“음 잘 숙성됐군.”
그래, 그래…… 응?
“이러면서 낫는 거지.”
“아…… 그렇습니까?”
옆에 있던 의사까지 와서 숙성 운운했다.
그러자 붕대를 직접 푼 의사도 뿌듯한 얼굴이 되어 이러면서 낫는 거라는 둥 이상한 말을 해 댔다.
환자야 의사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표정이 밝게 변하고…….
“자네는 잘 모르겠지.”
나머지 의사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가면서였다.
“원래 상처란 저 냄새와 함께…… 농이 좀 흘러야 잘 낫는 법일세. 뭘 모르는 것들이 저걸 불안해하고 그러지.”
“그…… 근거는?”
“근거? 벌써 수백 년도 넘게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일세. 그 세월이 근거지.”
“아.”
이…….
시발…….
나는 나도 모르게 잇새로 새어 나오는 욕을 집어삼킨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필 여기 창은 먼지 때문인지 뭔지 뿌예 가지고 밖도 뿌옇게 보였다.
어쩌면 그냥 지금 하늘이 저럴지도 몰랐다.
런던 하면 대기 오염이잖아.
‘여기…… 지구 아니지?’
하여간, 나는 그 기이한 대기를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맨눈으로 해를 봐도 눈부심이 거의 없는, 그런 하늘이었다.
‘그치? 시발……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말이 되냐?’
나는 그 해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말이 안 되잖아.
여기가 지구라니.
이따위 말도 안 되는 가르침이 몇백 년 동안 변함없이 흘러 내려오는데…….
“아주 좋으니까, 일단 두고 보세.”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욕설만 하고 있을 틈도 없었다.
그사이 환자가 무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구.
그것도 방금 자기가 감고 왔던 붕대를 다시 감고서…….
상식적으로 새 붕대로.
‘여기 새 붕대랄 게 없구나.’
모든 붕대가 기존에 있던 무언가의 재활용이다 보니 별 의미가 없기는 하겠지만…….
“자, 다들 주목. 다음 환자는 중요해.”
“아…… 주드 경인가.”
“그렇지.”
“연고 있나?”
“있지.”
나는 그 환자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바로 제지당했다.
의사들이 좀 부산스러워진다 싶었는데 수행원들마저 안으로 들어와서 그랬다.
“얌전히 있게. 귀족 치료야. 돈을 따로 쓸 수 있다, 이것이지.”
“그…… 네.”
귀족.
현대 사회에도 귀족이 있긴 했다.
영국에는 왕족도 있잖아?
그래 봐야 직접적으로 뭔가 행사를 하진 못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귀족은 말 그대로 귀족이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진짜로 뒤질 수도 있었다.
법 위에 선 존재들이란 말이었다.
“오랜만일세.”
그렇게 수행원들부터 앞세운 채 안으로 들어온 귀족 나으리는 외투와 모자를 벗어 수행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곤 익숙한 몸짓으로 바지를 걷어 탁자 위로 올렸다.
“중간에 붕대가 풀려서 집에 있는 걸로 다시 감았네.”
“왕진을 가도 되는 건데요.”
“어디 가는 길이라 들른 거야. 번거롭게 할 일이 있나.”
“네네.”
집에서 다시 감아서 그런가, 붕대가 거의 새것 같았다.
그 붕대가 풀리고 나서야 나는 붕대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더러운 붕대가 아니다 보니 안에서 생성되는 농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아까 그 환자보다 상처가 나아 보였다.
딱 하나만 빼면 그랬다.
‘저…… 초록색은 뭐지? 설마 슈도모나스(Pseudomonas, 녹농균)인가?’
녹농균이 초록색이긴 한데, 저렇게까지 영롱한 빛깔이었나 싶었다.
내가 알기로 저 정도는 아닌데…….
‘내가 감염 내과는 아니니까.’
안됐지만 귀족 나으리가 살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녹농…….
응?
그때 의사 하나가 연고랍시고 들고 온 것을 펐는데, 그 색깔이 참으로 영롱했다.
“저, 저게 뭡니까?”
그냥 영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입자 같은 것이 있었다.
알갱이?
“아, 자넨 저것도 처음 보나?”
아까부터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고 있던 의사…… 편의상 의사 3이라고 하겠다.
의사 3이 후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산화시킨 구리와 납일세.”
“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왜…….
연고에 중금속을 써?
“산화구리와 납을 작게 빻아서 기름과 섞은 거야. 저걸 바르면 상처에 좋다네.”
그러니까 대체 어느 지구에서 그런 거냐…….
니들 왜 그러냐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