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45)
검은 머리 영국 의사-145화(145/505)
145화 절단술을 줄여 보자 [3]
이건 막아야 했다.
단지 눈앞의 사람이 귀족이라서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아니라 조금 지나서라도 어느 정도 지켜봐 줄 수 있을 터였다.
거부하겠지만, 정 그렇게 나오신다면 리스턴을 대동하고 가서 강제로 끌고 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건 돌이킬 수 없어. 이건…… 산화구리는…….’
저걸 바르면 어떻게 될까?
알 수가 없었다.
케이스 리포트조차 없을걸?
물론 현대 의학의 지식을 조금 끌어와서 추론해 보자면…….
아주 높은 확률로 파상풍 또는 그에 준하는 병에 걸려 뒤질 것이 뻔했다.
색깔만 보면 이미 늦은 거 같지만…….
“잠깐.”
해서 나는 용기를 내 나섰다.
지체 높은 사람 같아 보이긴 하지만…….
‘난 대미언 경도 알고 리스턴도 알고 원장님도 알고…… 아직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빅토리아 공주님도 안다…….’
아무래도 용기라는 게 그냥 막 나는 건 아니다 보니 억지로 내 인맥을 떠올리면서였다.
“응?”
당연한가?
아무튼, 상대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동양인이 낯설 수밖에 없다 보니 그랬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들이 익숙하게 보여 주는 비백인 인종에 대한 혐오나 무시 또는 질시는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제대로 의복을 갖추어 입고 있었다.
이 망할 섬나라 격식에 맞춰서.
“닥터 평이라고 합니다. 리스턴 박사님의 제자이기도 하고…… 지금은 부족하나마 교수직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아…… 그, 동양인 의사구만그래…… 들어 본 적은 있네. 다만 지금은 담화에 적당한 시간이 아닐세. 내가 좀 바빠서.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겠나.”
귀족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사방을 가리켰다.
확실히 귀족, 그러니까 피부터 귀하신 분들이 잠시라도 머무르기에…… 그리 적합해 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일단 냄새부터가 그랬다.
“냄새…… 이것들이 사람을 죽인다고 원장이 그러던데. 나중에 하세.”
그도 이참에 다시 한번 제대로 돌아보았는지 고개를 가로저어 대다가 이내 나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저리 가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녹색의, 어떻게 봐도 위험해 보이는 연고를 보고 있었다.
마침 의사 1이 그 연고를 담뿍 떴는데 심지어 그러기 위해 쓴 기구조차 아까 다른 환자에게 쓰고 한 번도 안 닦은 기구였다.
‘사람…… 생명 살리는 셈 치자.’
저러다 잘못되면 절단술로 안 끝난다.
죽는다.
중금속 중독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잠시만요. 그거 때문에 나선 것은 아닙니다. 송구하오나…….”
“뭐지? 이 친구? 나 좀 불쾌해지려고 하는데.”
“어허! 이 사람! 리스턴이 좀 잘해 준다고 기고만장해 가지고!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서 이러는 건가!”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에라 시발.
한 번쯤 질러 보자.
조선 핑계를 대건 뭐건 하면 넘어가겠지.
하고 소리를 쳤더니만 안에 담긴 내용 때문인지 아니면 감히 자기 앞에서 이렇게 한 사람은 나뿐이라서 그런지 귀족은 눈을 끔뻑이고만 있었다.
의사들도 매한가지였다.
미친놈 보듯 하고 있다는 게 굳이 말이 없어도 팍팍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럴 거면 나서지도 않았어.
“이 연고…… 구리와 납으로 만든 겁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대강은.”
“그거…… 그러면 안 됩니다. 제 고향은 조선이라고 여기서 꽤 먼 곳이온데…… 다른 학문보다 유독 의학이 발전했습니다.”
“으음. 이 영국보다도 말인가?”
나는 자부심 어린 귀족의 얼굴을 하마터면 후려칠 뻔했다.
너네는…….
너네는 인마 21세기에서도 한국에 비빌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지금?
지금은 그냥 지옥이었다.
“다 종합하자면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상처 치료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감히 그렇다고 자부합니다.”
“흐음.”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이 나이에 교수를 달 수 있었겠습니까?”
실은 리스턴빨도 있고 마취빨도 있고 해서 그런 것이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의사 1, 2, 3이 할 말이 있는 듯 삐죽대기 시작했지만, 그래 봐야 변하는 건 없었다.
감히 귀족이 이미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한 마당에 끼어들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귀족이거나 또는 미친놈뿐이니까.
“흥미를 끌었네. 그래, 어디 말해 보게.”
“저희 조선에서도 한때 이런 연고를 썼었습니다. 녹색…….”
녹색 하면 자연이지.
자연 하면 생명이고.
실제로 녹색으로 배경 해 놓으면 뭔가에 좋다고들 하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즉석에서 구라를 풀어놓았다.
“녹색은 생명의 증거니까요. 하지만, 이상하게 그걸 쓴 환자들은 죄 팔이나 다리가 썩어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파상풍.
대한민국에서는 낯선 질환이 된 지 오래지만, 따져 보면 이 질환만큼 다친 사람들을 오래도록 죽여 온 질환도 드물 터였다.
근데 그걸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다니.
그것도 수백 년 전부터.
“혹 경께서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신 적이 없으신지요.”
“있네. 하인 중 하나가 그렇게 아파하다가 다리를 잘랐네. 나도 그렇게 된다는 건가?”
“이대로면 그렇게 될 공산이 큽니다.”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또 머릿속이 하릴없이 복잡해져 오는 가운데서도 환자의 환부를 면밀히 살폈다.
전에 발라 둔 연고 때문에 확실하진 않은데 이미 주변으로 썩어 버린 조직이 보였다.
저건…… 제거해야 할 터였다.
‘제거하는 게 이단이려나?’
그럴 공산이 컸다.
이 미친놈들은 과학자랍시고 설쳐 대면서 그놈의 전통을 중시하니까.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과학자는 적어도 자신의 지식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로 지조를 지켜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지 않나.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지금까지 굳게 믿어 왔던 지식들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는 법이거늘 수백 년을…….
“제게 시간을 20분만 할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20분…… 흐음.”
귀족은 고민에 빠졌다.
이러고 나서도 연고 바르겠다고 하면 뭐, 하는 수 없다.
나는 분명 경고했으니까.
나중에 수행원들 손에 붙들려서 리스턴 앞으로 오겠지?
그럼 저 다리는 영영 못 쓰게 될 것이 뻔했다.
“내, 자네에 대한 소문을 여러 곳에서 들었지. 하나같이 우수한 친구라고 하더군.”
“과찬이십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아니, 아닐세. 그래, 한번 맡겨 볼까.”
“감사합니다.”
“근데 아프진 않겠지?”
아, 통증?
그거야…….
일단 물로 씻을 거다.
그리고 물에 적신 거즈로 썩은 부위 포함해서 닦을 거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확인한 후에는 썩은 부위를 피가 날 때까지 잘라 낼 참이었다.
‘앨프리드가 어떻게 했더라.’
벌써 반년도 더 된 일인데, 여전히 앨프리드의 비명 소리가 귀에 선연했다.
19세기 사람으로서 유별나게 엄살이 심한 인간일 리는 없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내가 얼마 전에 소변줄 꽂았을 때 울었겠지?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그건 억울하고 분해서 흘린 눈물이었지, 고통에 찬 눈물은 아니었다.
‘그 괴물이 비명을…….’
안 아픈가 해서 나도 해 봤는데 뒤질 거 같더라고.
아무래도 19세기 인간들과 21세기 인간들 사이엔 종을 뛰어넘을 정도의 격차가, 적어도 통증 민감도에는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말은 곧 내가 지금부터 이 귀족 나으리에게 하려는 행위가 사실상 고문이나 다를 바 없단 얘기가 되었다.
‘후후.’
괜찮았다.
나는 이럴 줄 알고 뭔가를 들고 다니거든.
“그게…… 그게 뭔가?”
“마취 기기입니다. 이거 마시고 주무시고 나시면 싹 나을 겁니다.”
“허어…… 그럼 안 아픈가?”
“네, 그렇습니다.”
“그럼 망설일 것 없겠군. 당장 하게.”
“네.”
가방에서 작은 마취 가스를 꺼내는 사이, 수행원들이 병실인지 진료실인지 모를 모호한 공간에 있던 침대를 정리했다.
구더기가 지나는 곳이니만큼 귀족이 누울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수행원 중 두 명이 재킷을 벗어 그 위에 덮어 주었다.
확실히 경악할 만한 수준의 위생 수준인데…….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 잠깐만 누워 계시면 제가 제 전용 기구를 들고 오겠습니다. 조수도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여기 있는 기구를 그대로 쓰고, 고쟁이 같은 붕대를 감을 수는 없었다.
“여기 있는 걸로는 안 되나?”
“안 됩니다.”
“알았네.”
다행히 귀족은 내 눈에서 뭔가 영험한 기운을 느꼈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나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달음에 달려 미리 소독해 둔 기구와 주변에 어정거리고 있던 조지프를 잡아다 올 수 있었다.
아니, 같이 오진 않았다.
“넌 내 방에 천 있지. 그거 푹 삶아서 가져와.”
“아 왜 또. 그냥 커튼 찢어…… 아니면 시트 찢든가.”
커튼과 시트라.
후후.
삭은 천과 구더기 나오는 시트라.
용호상박인걸?
둘 다 아주 훌륭한 기세로 환자를 죽이겠어.
“그냥 좀 가져오라면 가져와.”
“나도 바쁜데.”
“너 해부 안 배울 거야.”
“아. 진짜 치사하네. 알았어.”
조금 투덜대던 녀석은 해부라는 말에 아까 내가 달려갔던 기세로 달려 나갔다.
하여간, 나는 홀로 돌아와 귀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 새끼…….’
‘웃기는 놈이네?’
‘감히 우리의 연고를 매도하다니.’
의사 1, 2, 3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일단 무시했다.
내가 들은 체도 하지 않자, 놈들은 오히려 더 멀어졌다.
‘멍청한 놈…….’
‘잘못되기만 해 봐라.’
‘그러니까 말이지. 목을 매달까? 그리고 해부하는 거야.’
더 본격적으로 욕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잘된 일이었다.
나도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술기를 믿을 수 없는 놈들에게 보여 주면 좀 곤란해질 거 같거든.
뭐가 되었건 청결과 위생 그리고 죽은 조직을 잘라 내는 데브리먼트 등 모든 것이 19세기 상식에 반하고 있으니까.
귀신 들렸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과학자들이 뭐 그런 말을 하냐고 한다면 어, 진짜 그런 시대였다.
심심풀이로 읽었던 소설 보면 멀쩡히 서울 살던 주인공들이 중세 시대 넘어가서 잘만 살던데…….
그거 다 구라야.
소설이 원칙적으로 그럴싸한 구라긴 한데, 진짜 말이 안 돼…….
“흐음.”
“잠이 드셨군요. 자, 그럼 서두르겠습니다. 시간도 없으시고, 무엇보다 마취에서 깨기 전에 처치해야 하니까요.”
나는 마취 가스를 최소 용량으로 쓰고는―최소 용량이라고 해 봤자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다― 곧장 물을 들이부었다.
한번 끓였다가 식힌다고 식혔지만, 여전히 미지근한 수준은 되었다.
아니 좀 뜨거울 수도?
그 누구도 미리 끓여 놓질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 마취는 잘됐구.’
난 긍정적인 사람이라 이참에 마취 확인했다 치고 그대로 상처를 닦았다.
원래는 거즈도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거즈가 없잖아.
그래서 장갑 낀 손가락으로 문대 보았다.
물컹한 게 썩은 조직이 꽤 컸다.
망할.
서걱.
그래서 칼로 조직들을 잘라 냈다.
그때 몰래 보고 있던 수행원 중 하나의 눈동자가 부릅떠지는 것을 느꼈는데, 썩어서 피도 안 나는 것을 보고는 돌연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왜 저러나 싶었지만 궁금해하기엔 시간이 없어서 나는 그대로 수술을 이어 나갔다.
말이 수술이지 내게는 단순 처치 수준이다 보니 일사천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