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46)
검은 머리 영국 의사-146화(146/505)
146화 절단술을 줄여 보자 [4]
주드 경의 수술이 잘 끝나, 다른 귀족들을 설득하는 일도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들 이 귀족처럼 쿨하게 내 의견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나마 직접 보고 처리했던 사람들은 찜찜한 얼굴이 되어 그런가 하며 수긍하기도 했다지만…….
왕진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도 별도리가 없었다.
어쩌겠어.
마차가 꽉 차서 난 못 탄다는데.
‘나도 돈 있는데…… 미리 구해 놓을 걸…… 그랬나?’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앨프리드 선배네 집에 얹혀살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마차를 산다면 그 마차를 둘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하는 데다가, 마부에 말까지 둬야 할 텐데…….
‘해 달라고 하면 안 해 줄 거 같진 않아.’
물론 앨프리드 선배나 그 아버지나 성격이 원체 좋기는 했다.
거기에 더해 아들 생명도 여러 번 살렸고, 또 돈도 나 덕에 엄청 번 상황이기도 하고.
슬슬 파리에서도 콘돔 팔아 치울 작정이라고 하니, 대체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벌릴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에이…… 역시 미리 할걸.’
나는 아쉬움에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이내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작정했다.
“조지프.”
“응?”
“복도에 아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 있는 아저씨 하나 있을 거야.”
“무슨 소리야?”
내 말에 조지프도 뭔 소린가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전이라면, 그러니까 전생하기 전이라면 이런 일에 익숙할 수 없을 터였다.
왜냐.
난 정말 당연한 말만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 시대의 나란 인간은…….
신비로운 인간이었다.
“아 불러오라면 불러와. 그대로 두면 죽거나 팔 잘라야 해.”
“팔 잘라? 우리 잘 자르잖아.”
“그…….”
아니다.
말을 고쳐야겠어.
내가 신비롭다기보다는 그냥…….
이 새끼들이 너무한다.
팔 자를 수도 있다니까 뭐? 잘 잘라?
그게 시발놈아 할 소리냐?
“왜 인상을 구기고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지.”
“일단…… 데려와. 데려와!”
“어, 어어. 왜 그래? 화를 내?”
조지프는 여전히 자신이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러나 역시 내 말을 잘 듣는 놈답게 밖으로 향했다.
그러곤 내 말대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환자를 끌고서 들어왔다.
붙잡으려다 주드 경의 방문으로 놓친 환자였는데, 다행히 다시 내원하라 전해 두자마자 돌아온 모양이었다.
“저는 왜.”
“아, 일단 들어오라니까요.”
“아니…….”
“습.”
“그…… 네.”
조지프도 사실 한 덩치 하는 놈 아닌가.
게다가 병원에서 흰 가운을 입고 있다는 건, 21세기에서도 꽤나 특별한 일이었다.
환자로서는 어지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이 흰 가운 입은 놈들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게 아무리 나나 조지프처럼 어려 보이는 놈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거의 반강제적으로 환자는 안으로 끌려와 내 앞에 섰다.
그제야 나는 제대로 환자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잘도 썩혔네…….’
기존에 어디를 어떻게 다쳤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일단, 이 붕대부터가 엉망이었다.
그냥 보기만 할 때도 엉망진창 같기는 했는데, 벗기다 보니 모든 것이 더 확실해졌어.
‘아니…… 같은 붕대를 쓸 거면…… 빨기라도 하라고…….’
전에 감아 놨던 걸 그대로 써서 그런가 진짜로…….
붕대가 헐다 못해 썩어 버렸다.
농 색깔도 다채로운 것이 안에서 2차, 3차 감염 다 일어난 거 같았다.
“어, 그걸.”
“쳐다보지도 마세요. 저런 걸 쓰면 안 돼.”
나는 나도 모르게 냅다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놀랍게도 쓰레기통엔 여전히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연필이나 종이가 들어가 있었다.
‘아니…… 저런 거 버리지 말고 이런 걸 버리라고…….’
나는 참담한 기분에 한숨을 쉬고는 재차 환자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직 완전히 늦은 건 아니었다.
자를 정도는 아니라는 건데,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빵 먹일까.’
빵이란 썩은 빵, 즉 푸른곰팡이를 뜻했다.
‘아니, 아냐…….’
그놈의 빵은 아직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둬야 했다.
그거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
19세기 의사라면야 뭐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하면서, 과학자는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어쩐다.’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 나는 일단 물부터 부었다.
아까 귀족에게 썼던 물이다 보니 훨씬 식어서 환자는 통증보다는 그냥 시원함을 느끼는 듯했다.
가만히 잘 있었다.
잘된 일이었다.
“흐음.”
“으음.”
그제야 고름이 씻겨 나가면서 상처가 보다 온전히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주 깊진 않았다.
아마 기껏해야 진피층 정도, 혹은 근육의 얕은 부분에 상처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응급실로 왔으면 바로 씻어 내고 소독한 다음에 꿰매고 벌써 다 나았을 것 같은 상처인데, 지금은 주변이 죄 썩어 가고 있었다.
그냥 뒀어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거야…….
‘이거 다 자르면…… 어쩐다?’
썩은 부위를 다 자르는 건 원칙 중의 원칙이었다.
데브리먼트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건데, 이제 와 이 환자에게 지키게 된다면 자르는 거나 다름없을 것 같았다.
“어, 이거.”
그때 나랑 같이 환자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조지프가 영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구더기였다.
하얀…….
꾸물거리는 구더기.
저런 게 환자 침구에서 나오다니.
“에이, 디러.”
그리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다니.
예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놀라기만 하느라 머릿속이 새하얘졌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방금도 환자 보려고 침구에 걸치고 있던 내 손등으로 한 마리 지나갔다구.
이런 걸로 내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엔 무리가 있지.
‘가만…… 가만있자.’
대신 나는 아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더기…… 구더기를…… 요청했던 적이 있었지?’
미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구더기를 의료 용도로 쓰는 경우가 있었다.
구더기는 썩은 살만 파먹지, 생살은 먹지 못하거든.
그 말은 곧 썩은 살을 제거하는 용도로 써먹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렇게 쓰이는 구더기는 멸균 상태에서 자란, 아주 깨끗한 놈들뿐이지만…….
이런 시대에 그런 걸 어찌 기대할 수 있겠나.
‘근데 구더기를 내가 지금 딱 집어서 환자 상처에 올려 두면 어찌 되려나.’
욕먹겠지?
맞을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의 위생 관념이 꽤나 왔다 갔다 하거든.
‘하지만 우연히 들어간 거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물을 붓고 또 그나마 깨끗한 천을 이용해 상처를 닦았다.
일부러 좀 박박 문질러 보기도 했는데, 피가 나질 않았다.
그저 썩은 살이 조금 떨어져 나올 뿐이었다.
“숙성은 잘됐네. 이걸 뭐 더 할 게 있나?”
그걸 보면서 조지프는 후후 웃었다.
미친…….
미친놈들아.
‘어쩐지…… 절단술이 너무 많다 싶었어.’
당장 자동차도 없는 세상에 절단술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손상을 입을 일이 많겠나?
뭐 공장이나 이런 곳에 관련 법규 따위가 없는 세상이다 보니 아무래도 산업 재해 숫자는 더 많기는 할 테지만…….
기술이 달려서 사람을 정도 이상으로 다치게 하는 것도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절단술이 주요 수술 아니, 거의 유일한 수술이라고 불릴 정도로 메이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상처치료 개념이 개 같아서였다.
“더 할 게 있냐니. 팔 자르게 생겼잖아.”
“죽는 거보단 낫지. 안 그럼 죽는다고.”
아니?
아닌데?
미친놈이.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어 댔다.
“안 자르게 해 볼게. 너…… 기억나지, 앨프리드 선배.”
“아…… 어, 기억나지. 아, 그러고 보니까 좀 다르게 했네. 시신에서 나오는 미아즈마는 좀 더 독해서 그런가?”
후후.
죽일까?
죽여?
암만 생각해도 죽이고 싶은데?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떨쳐 내고, 입을 열었다.
“환자분.”
“네네.”
“제가 보니 환자분에게 들러붙은 미아즈마 말입니다. 이거 보통 독한 것이 아닙니다.”
아후, 마음에 안 드는 단어 말하려고 하니까 자꾸 혀가 꼬이는데…….
그래도 참아야 했다.
“어…… 네. 그럼 집에 갈까요?”
“지금 일을 하고 있어요?”
“당연하죠.”
“그렇군.”
마음 같아서는 입원시켜서 치료하고 싶지만, 19세기 런던의 노동자는 사실상 노예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어지간히 아픈 게 아니라면 일을 쉴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정도면 어지간히 아픈 건데…….
하여간, 쉬게 놔두질 않았다.
“그럼 일단 지금 당장 치료를 좀 하겠습니다. 하고…… 붕대를 감아 드리죠.”
“무슨…… 무슨 치료요? 이제 숙성됐으니 끝난 거 아닙니까?”
어, 끝나 가.
당신 팔의 생명이…….
아니, 어쩌면 당신 생명이.
“독하다니까요? 더 해야 합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제가 리스턴 박사님 제자라는 건 알죠? 절단술에 관련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리스턴 박사님뿐입니다.”
“으음.”
미아즈마도 팔고, 리스턴도 팔고.
내가 사람 생명 살리려고 이렇게 최선을 다한다.
“알겠……습니다. 아프진 않죠?”
“지금까지 좀 따끔했죠? 이거보다 더 아프진 않을 겁니다.”
겉으로 드러난 부위의 태반이 감각이 죽은 부위다 보니…… 아픔은 덜한 모양이었다.
부은 부위는 살짝만 눌러도 죽을 것처럼 아프겠지만…….
“가위.”
“어. 근데 이렇게 살을 잘라도 되는 거야?”
“썩었잖아. 피도 안 나.”
“오…… 역시 숙성의 힘인가.”
조지프도 죽도록 아프게 해 주면 좀 나아지려나?
아무튼, 나는 썩은 부위를 잘라 냈다.
다는 아니었다.
지금 대번에 그렇게 했다간 그냥 팔 자르는 느낌이 날 거 같거든.
그래서 진짜 피가 날 리가 없게 생긴 부위만 잘라 내고는…….
톡.
아까부터 다른 한 손으로 모아 온 구더기 세 마리를 상처에 떨어뜨렸다.
“어?”
“뭐.”
“아니, 아냐. 잘못 봤나.”
그러곤 순식간에 붕대로 그 위를 덮었다.
세게 감으면 터져 죽을까 봐 살살 덮었다.
“내일 다시 와요. 돈 따로 안 받을 테니까…….”
“앗. 정말입니까? 그래도 됩니까?”
“어, 나는 돈 안 받을게요. 그러니까 와요.”
혹 구더기가 죽으면 또 다른 놈들로 리필해 줄 참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하면 썩은 살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고…… 생살만 남을 테니, 그때가 되면 완치를 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구더기가 더러워서 다른 감염이…… 아냐,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노력을 기하고 있었지만 돈은 받지 않기로 했다.
왜냐.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분명 다른 놈들이 저지르고 있는 짓거리보다야 훨씬 나을 테지만 그럼에도 잘하는 짓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어서 그랬다.
-Do no harm.
의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인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이 앞에 떳떳하지 못한 이상 돈 받을 생각은 없었다.
물론 콘돔 팔아서 벌고 있는 돈이 워낙에 많아서이기도 했다.
하여간, 나는 그렇게 환자를 보내고 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혹 전에 구더기를 이용한 치료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신박한 치료 방법이 있었으면 다 쓰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 따위는 옛날 옛적에 버렸다.
이 새끼들 마취 가스로 파티만 수십 년 했던 놈들이잖아.
이번이라고 해서 아닐까?
‘아무튼, 근거가 있으면 좀 더 떳떳하게 해 볼 수 있을 거야. 찾아보자…….’
근거를 찾지 못해도 좋았다.
이번 일을 근거로 하면 되니까.
적어도 그럼 리스턴과 블런델 정도는 설득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