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47)
검은 머리 영국 의사-147화(147/505)
147화 절단술을 줄여 보자 [5]
‘있잖어?’
있었다.
기록이.
그것도 몇백 년 전에 남겨 놨어…….
프랑스의 군의관이 구더기가 발생한 병사 상처를 보고 죽을 거라 판단, 내버려 두었는데 그게 사실 신의 한 수였더라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16세기라면 더더욱 의사가 건드리는 게 더 위험할 테니…….
‘아무튼, 구더기가 썩은 살만 먹어 치운 덕에 환자가 산 거 같다는 내용이 있잖아.’
그 군의관이 태만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 보고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보고는 했다.
다만 무시당했을 뿐이었다.
그럴 리가 있냐는 식으로 매도당했을 뿐이었다.
‘하긴…… 썩은 살이 있어야 사람이 살아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게다가 구더기라고 하면 뭔가 좀 죽을 거 같잖아? 파리라는 게 예로부터 불길한 곤충이기도 했고.’
그래.
이게 매도된 건 이해가 가긴 간다.
하지만 한 번쯤 궁금해해야 하긴 하는 거잖아……?
혹시 썩은 살이 사람을 오히려 죽이는 것은 아닐까?
그거 제거하는 게 좋은 건 아닐까?
‘아니……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다가 둥글다는 건 잘도 믿게 되었으면서 이런 건 생각을 안 바꾸나?’
나로선 좀처럼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평아…….”
그렇게 기록을 뒤적거리다가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으려니, 즉 고뇌에 찬 얼굴로 앉아 있으려니 조지프가 다가와 물었다.
녀석의 시선은 내 책상 어느 한 지점에 박혀 있었다.
“응?”
나는 녀석이 무슨 생각 중일지 대강 알았다.
하지만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태연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별 쓸데없는 짓거리긴 했다.
조지프는 여전히 내 책상의 어느 한 지점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저건…… 왜 모아 둔 거야……?”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은 구더기 무리를 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절단술 보조하느라 나중에 합류하게 된 앨프리드와 콜린도 그랬다.
“평, 미쳤나?”
리스턴도 혹시 모른다는 얼굴로 문을 꽝 닫으며 물어 왔다.
블런델은 눈을 꽉 감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기도라도 올리고 있는 듯했다.
‘파리 대왕 같은 거 때문인가?’
거기서 파리가 벨제붑이었지?
근데 그거 20세기 소설이잖아.
그거 때문은 아닌 거 같았다.
하여간, 분위기는 개판이다 이건데…….
뭐, 상관없었다.
이제 내 구라 실력은 하늘 끝에 닿았거든.
어쩌면 곧 의술보다 구라를 잘 치게 될지도 모른다.
“놀라지 마시고 들으십시오. 오랜만에 입에 올리는데, 제 고향 조선은 사실 전쟁이 아주 빈번했던 나라입니다.”
“언제는 신비에 뒤덮인 나라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자꾸 쳐들어와요. 신비를 파헤치려고.”
“으음.”
리스턴은 내 말에 개소리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저 인간은 내게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챈 것도 같으니, 뭐…….
이번에도 대강 그럴싸한 얘기만 하면 넘어가 줄 거 같았다.
“아무튼, 밑에는 일본이 있고 위에는 청이 있다 보니 그랬단 말입니다.”
“그래, 대강 알겠네. 그래서?”
이번엔 블런델이 물어 왔다.
구더기를 보다가 내 얼굴을 보다가 하면서였다.
아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이런 모습을 봤다면 당장 고발하지 않았을까?
흑마술이니 뭐니 하면서.
얘네 되게 과학적인 척하면서 온갖 미신으로 점철되어 있잖어.
하지만 이젠 나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쌓인 만큼, 조선의 신비로 대충 퉁 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상처를 치료하는 데 능하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외상은 그 빈번함에 비해 꽤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거든.
특히 골절 같은 경우엔 더해서,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개방형 골절은 그냥 죽는 거였다고 하더라고.
정형외과 친구한테 주워들은 거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우리 조선에서는 장이라는 걸 담급니다.”
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장이 뭔가?”
“된장, 고추장이라는 건데. 조지프는 알 겁니다.”
“아, 그…… 뭐라고 하지. 냄새는 이상한데, 먹다 보면 맛있는 거 있습니다. 듣다 보니 먹고 싶네.”
“음식이야?”
“네.”
리스턴이 물었고, 조지프가 답했다.
그래, 저놈도 나름 그거 잘 먹었지.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영국 음식은…….
“하여간, 그 장에서 구더기가 나올 때가 있어요. 워낙에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이다 보니. 그런데, 그 구더기를 이용한 상처 치유술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흐음…… 좀 이상한데.”
“구더기가 파리가 되는 건데…… 파리가 도움이 된다고?”
아니, 구더기가 도움이 된다고.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그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괜찮았다.
계속 구라를 이어 나가면 되니까.
“조선에서는 이곳 영국과 좀 다른 개념으로 접근을 하는데…… 여기서는 이제 좀 상처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해야 낫는다고 보지 않습니까?”
“그렇지. 뭐…… 요즘 들어서는 아니라는 얘기도 있긴 하다만. 놈들이 바르는 그 정체불명의 연고를 보고 있자면, 그것도 틀린 거 같네.”
리스턴이 말하는 정체불명의 연고란 산화구리와 산화납을 섞어 만든 연고다.
아까 봐서 아는데…….
그걸 바르는 거랑 썩히는 거랑 과연 뭐가 더 나쁠까.
진짜 막상막하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지.
막하막하…….
“조선에서는 상처를 물로 깨끗이 씻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천을 붕대로 이용해 감아 주죠. 이 또한 전통주로 적신 후에 감아 줍니다.”
“그리스식이군. 너무 오래된 방식인데…….”
그리스가 이랬어?
그건 몰랐네.
아니, 근데 이렇게 퇴보를 했다고?
이 자식들이 대체 역사 속에서 뭔 짓을 한 걸까.
“흠흠.”
나는 애써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의문을 뒤로하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만 뒀다면 후진 방법이겠죠. 하지만 거기에 우리는 구더기를 더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뇨. 구더기는…… 구더기는 썩은 살만 먹습니다.”
“그걸 제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교수님도 의문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그건…… 그렇네.”
다행히, 리스턴은 나름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 너무 많이 잘라서 더 그럴 것이었다.
오늘도 몇 개 자르고 왔는데 이런 생각이 안 들겠어?
-아, 나는 왜 이렇게 팔다리를 많이 잘라야 하나.
뭐 이런 생각 말이야.
그렇다 보니 기존의 이론에도 얼마간 의심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내 새로운 이론들이 계속해서 검증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아마 최근 들어서는 그 의심들에 날개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썩은 살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어떨지.”
“칼은 안 되나?”
“칼도 되지만…… 아무래도 썩은 살만 잘라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양이 많으면 칼도 쓰고 아니면 구더기를 쓰는 거죠.”
“흐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잠자코 듣고 있던 리스턴이 블런델을 돌아보았다.
기실 열린 생각이라고 하면 블런델이 리스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는 인간이었다.
세상에 교황청에서 인간에 대한 수혈을 금지했는데 피를 섞어다 넣었잖어.
미친 건지 뛰어난 건지 모를 정도로 앞서가는 인간이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환영이지. 근데 그게 꼭 구더기를…… 아후.”
블런델은 역시나 호의적이었다.
구더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극도의 혐오가 담겨 있긴 했지만…….
‘너네는 입원 병실에 있는 구더기나 좀 치우고 그런 눈 하면 안 되냐?’
나로서는 이해가 어려웠다.
더러운 줄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더러운 줄은 아는 거잖아?
그런데도 방치하고 있다는 건, 정말로 위생이라는 게 환자 예후에 미치는 영향이 아예 없다고 믿는 게 분명했다.
일종의 신앙이 있다 이건데…….
그건 나중에 차차 조선의 신비로 박살을 내 주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치료야.”
“그건 그렇지. 아직 살 썩히는 치료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네.”
내 생각과는 별개로 런던의 두 명의는 진지한 얼굴로 토론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천 년 넘게 이어진 치료를…… 하루아침에 증거도 없이 뒤집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
“이렇게 하지. 전에 손 씻기도 그랬잖나. 우선 일부 환자에게만 적용하도록 하지.”
“하아, 고민이 되는구만그래.”
“왜.”
“그때 손 씻는 건 의사들이 고생만 하면 되는 건데 이건 환자들의 살을…….”
“그건 그렇군. 쉬운 일이 아니야.”
정말이지 사려가 깊은 대화였다.
뒤에선 학생들 그러니까 내가 제자로 생각하고 있는 놈들도 거기에 감동, 감화되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
‘미친놈들.’
썩은 살 자르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견이 저렇게까지 고심할 일이냐?
당장 쓸데없는 짓 그만하라고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리스턴은 칼을 차고 있었다.
아니, 칼이 없다 해도 마찬가지긴 할 터였다.
저 솥뚜껑만 한 주먹에 한 대라도 맞으면 뒤질 게 뻔하거든.
“그럼 최소화하도록 하지. 그래도 난 저 조선의 의료라는 것에 관심이 간단 말일세.”
“안 그러면 이상한 일이지. 내 평생 평이만큼 발상의 전환이 빠른 의사는 처음 보네. 그래, 그렇게 할까.”
아무튼, 다행이었다.
둘의 토론은 뭐가 되었건 내 말을 얼마간이라도 따르는 쪽으로 흘러갔으니.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다 끝났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의사들인데.”
“환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걸. 살을 썩혀야 한다는 건 상식이니.”
열 받는 포인트가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일단 참고 있었다.
둘이 날 도우려고 저러는 거잖아.
“그 상식에 반하려면…… 어지간한 일로는 안 될 거야. 힘이 필요해.”
“그건 걱정 말게. 내 칼을 빌려주지.”
“아. 리스턴 칼을…… 확실히. 그건 효과가 있겠군그래. 전에 손 닦을 때 위력을 봤지.”
“그래, 그리고 치료실에 있는 놈들은 나와 접점이 있거든. 한 놈은 처맞은 적도 있고, 칼만 봐도 바들바들 떨걸.”
“아, 전에 그 친구야?”
“그 친구는 다른 친구고.”
“아…… 그래. 이제 사람 좀 그만 패고 다녀…….”
그래서라고 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하여간, 내 손에는 리스턴의 칼이 들려 있었다.
요새 하도 절단술을 많이 해 놔서 그런가 칼 바꾸는 쿨타임이 줄어서, 이전 버전 칼도 아니었다.
가장 최신의 리스턴 칼…….
그러니까 끝이 더더욱 날렵하게 휘어 있고 무게 중심도 더 잘 맞는 칼이었다.
“음.”
“뭐요.”
“아니, 아닐세.”
“팍 씨.”
“자, 잘못했네.”
그 덕분에 나는 별 방해 없이 환자들의 썩은 살을 도려내고 또 조금 남은 부분엔 구더기도 올려 둘 수 있었다.
물론 환자들이 그걸 보면서 마냥 누워 있지만은 않았다.
“어어, 이거!”
“뭐요.”
“아니!”
“절단?”
“아니, 아닙니다.”
그들도 리스턴 칼 앞에서는 별수 없었다.
나라고 환자에게 이렇게…….
어?
강압적으로 나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을 뿐이었다.
이 시대는 말로만 하기엔 너무 미개했다.